포도원에 들어간
사람들
성 경 : 마태복음20:1-16
요즈음 한창인 과일이 포도입니다. 포도가 제 철을 만났습니다.
우리 나라의 포도는 맛이 뛰어나고, 당도가 많아 초가을의 과일로는 최고입니다. 우리 나라의 포도도 매우 좋지만,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도 가장 좋은 포도를 재배하고 있으며, 지중해를 끼고 있는 여러 나라들은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포도나무에 대한 이야기나 포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이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들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땅에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주 유익을 주고 있는 이 포도나무를 비유의 소재로
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포도원의 주인이십니다. 아주 기름 산에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포도원 지기가 되셔서 때때로 물을 주셨고, 밤낮으로 간수해주셨고, 아무든지 포도원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 그러기 위해 포도원에 망대를 세웠고, 포도원 안에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좋은 포도만 맺 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맺힌 것을 보니 들포도에 불과하였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탄식하셨습니다.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택하신 특별한 민족으로 좋은 열매를 원하셨으나,
불순종하고, 율법을 거스리는 것을 보 시면서 실망하셨다는 것을 포도원으로 비유하시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의 깊은
관계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시고 있습니다. 요15장은 포도나무 비유장이라고 할만 큼 주님과 사랑하는 성도들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그 가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 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15:1-2)고 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 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 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열매를 맺기 원한다 면 우리 주님 안에 거하고 붙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과의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포도나무 하나를 가지고 아주 깊은 영적인 교훈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은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간 사람들의 여러 신앙적인 유형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포도 원에 들어간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천국을 말씀하면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9장의 내용이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 켜라" "어느 계명입니까?"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 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 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하
셨습니다. 이 때 이 청년은 재물이 너무 많으므로 이런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 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말 씀을 듣고 놀라면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라는 제자가 주님에게 말씀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제자들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주님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무슨 까닭이 있었습니다. 출세를 하고, 명예를
얻고 부를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세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로나 자식 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결론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보상은 하나님에게 맡겨 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편에서는 충성스러운 일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포도원을 말하면서 단순한 포도밭이 아니라, 천국을 말하려는 것이었니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의 상징을 사용하는
해석방법입니다. 천국을 나타내는 재료로 포도원을 사용하는 것은 팔레스틴 지방에 포도원이 많은 연고였으며, 포도원이란 자 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심고 돌아보는 주인이나 농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와 천국도 설립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관 리하시는 우리 주님과 성령이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가지는 것은 어떤 재목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단맛을 지닌 열매를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사복음서에서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19:30절의 말씀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 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신 말씀을 설명하시려는 비유였습니다. 마20:16절에서도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천국의 보상은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이 자기의 어떤
노력이나 보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주인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서 설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어떤 포도원을 가진 주인이 자기의 포도원에 일거리가 생겼습 니다. 포도원은 크고 넓어서 많은 일꾼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가지를 치는 전지 할 때도 많은 일손이 필요하였고, 거름을 주거나, 포도송이를 싸주거나 거둬들일 때에도 많은 일꾼이
있어야 했습니다. 유대 나라의 포도를 수확하는 계절이 우 리 나라와 비슷해서 9월 중순 전에 포도를 모두 따야 한다고 합니다. 일꾼이 필요할
때는 어린아이라도 일을 붙여야 합니다. 주인은 일꾼을 모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에 나가보았습니다. 많은 일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고 하면 해가 뜨기 전으로 오전 6시경을 말합니다. 지금도 우리 나라에는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
서소문 공원 같은 곳이 인력 시장으로 막 노동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이렇게 새벽이 되면 인력 용역시장이 열립니다.
자, 이들 일꾼들과 계약을 했습니다. 문서를 가지고 고용한 것은 아니고, 구두로 약속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이라 는 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해뜰 무렵에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품꾼을 포도원에 들였습니다. 이 한데나리온이란 돈은 로마의 은전으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이들 첫 번에 들어간 일꾼들은 당연히 품삯 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저녁이 되면 이들은
품삯을 받을 수 있는 당당한 권리가 주어진 것으로 알고 들어간 사 람들입니다. 우리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일하라고 하시면서 당시
사회관습에 따라 상당한 품삯을 약속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노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한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은혜로 불러주셨 는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당연히 받을 것을 생각하고, 자기의 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부름을 받았으며, 하루 종일 일 속에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율법적인 생각을 가지고 노력과 보상을 맞바꾸려고 하고
있습니 다. 먼저 부름 받은 사람들이 겸손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만한 것이 문제입니다. 3절입니다. 주인은 아직도 일꾼이 더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장터에 나가보았습니다. 오전 9시가 되었는데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에게도 상당하게 주겠으니 우리 포도원에 들 어가 일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여기서
"너희도 "라는 말은 강조하는 말입니다. 여기 이른바 "너희도"라는 말은, 힘있게 하는 말입니다. "상당하게 주 리라"는 말은 적어도 그들이
일하는데 비례하여 공정하게 주겠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 이상을 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상당하게 주리라는 말은
주인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내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낮을 대략 12시간으로 나누고 오전 6시에 해가 뜬다고 생각하고
오후 6시에 해가 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 삼시 는 오전 9시입니다. 오전 9시 경에 들어가는 사람들과는 정확하게 한 데나리온을
준다거나 한 데나리온에서 얼마를 제하고 준다거나 하지 않고 "상당하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들어간 일꾼들은 주인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주인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 다. 오늘 만난 주인은 동정심이 많고 일꾼을 긍휼히 여기는 주인이기를 바래야 했습니다. 이들은 처음 이른 아침에
들어간 사 람들이 율법적인 생각을 가진데 비하여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주인이 주고 싶은 대로 주는 것이며 , 주인이
시간을 잘 계산하여 주면 다행이고, 반나절로 계산해도 싸울 수 없는 입장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좋습니 다. 주인에게는 포도원의
일이 급하였습니다.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일꾼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제육시인 낮 12 시에 나가보니 그래도 몇 사람은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제9시인 오후 3시 경에 나가보니 그래도 일할 사람은 있었습니다 . 이들에게도 말했습니다. "내가 상당하게 주리라" 알아서
주겠다는 것이며, 손해되지 않게 챙겨주겠다는 뜻입니다 . 이들에게는 노동의 시간을 짧고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주인의
아량과 은혜를 의지하는 마음은 점점 커 졌습니다. 이들의 애절한 마음은 주인이 넉넉한 마음으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더욱 더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사모하 게 되었습니다. 오직 은혜만을 사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인은 하루의 일을 마칠 무렵인데 장터에 나가보니 아직까지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놀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제11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 시간이면 해가 지고 품삯을 나누어주어야 하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사업주도 이렇게 한 시간 남겨두고 일꾼을 채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는 일 할 것이 많기도 하지만, 무한
정의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일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남은 한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단 일분이라도 하나 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 포도원의 주인이 정말 일꾼이 필요해서냐? 단순한 자선 행위냐를 따질 것이 아닙니다. 그 마지막에 부름
받은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심정으로 이 본문을 볼 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온 종일 초조한 마음으로 보내고, 마지막 한 시간
남겨놓고 채용되었다는 기쁨을 생각해야 합니다. 품삯을 기대하기보다는 채용되었다는 기쁨이 더욱 컸을 것입니다. 마지막 한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었다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한 시간은 주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 다. 마지막 한 시간이라도 생을 의미 있게
보냈으면 인생을 잘 마친 것입니다. 한 시간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하루는 의 미 있는 하루였습니다. 생에 있어서 가장 보람있는 하루가 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최고조로 달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인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이어서
좋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 영광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무한정 놀고 먹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도 아닙니다.
진정하신 은혜는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일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따분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일을 주시고
일터를 주시 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은 영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오늘의 교회와 복음 사역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우 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일하겠다고 애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로 하셔서 불러주시고, 일터에 들여보냈다는
사실입 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헌신만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할 일이 없어 서 빈둥거리는 것은 쉼이 아니라,
고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든지 일할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일은 창조 적으로 해야지, 주어진 일만 해서는 무의미합니다.
이제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물 때는 하오 6시 경입니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는 시간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품삯이란 당일 에 지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니라"(신24:15)고 했습니다. 날이 저물고 품삯을 나누어주는 시간은 인생을 심판하시는
최후의 순간입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시켜서 돈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나중 들어와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 오후 3시에
들어와 반나절도 못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 낮 12시에 들어와 꼭 반나절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 그리고 오전 9시 경에 들어 와 거의
하루를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 그리고 이른 아침에 들어와 하루 종일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 다. 하나님 나라의
신실하신 청지기는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이 청지기는 일꾼을 불러 일을 마치게 하고,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하루의
품삯을 계산하여 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상식은 먼저 들어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나중 온 자에 이르러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상식을 초월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같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은혜요, 자비요,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속하였습
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지만, 마19:30의 말씀과 20:16절의 말씀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와 같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신 말씀을
강조하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제 십일시에 들어와서 한 시간 일하고 인생의 보람을 얻고 기쁨을 얻은 사람들을 더욱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저들, 한 시간 일한 사람들은 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쁨이 충만 한 사람들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일없이 아무런 보람도 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에라도 불러주시고 일거리를 주시고, 그리고 수고했다고 삯도 주시는 것은 오로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구원받기에 무가치한 존재인 것을 알고, 부르심의 은혜에 감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자기들은 더 받을 줄 알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 들어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루 종일 수고하였고 더위와 싸운 사람은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한 시간 일한 사람과 같게 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집주인을 원망합니다. 원망한다는 말은 미완료 과거형의
말인데, 게속적인 원망과 불 평을 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상식으로는 그들의 원망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지만, 신앙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이란 나와 하나님과의 만남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비교하여 우월의식을 가지거나 열등의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가 부름
받았고, 나에게 일거리를 주셨고, 나를 구원해주시는 것을 감사해야지, 이 세상에서 고약하고 죄악에 젖어 있던 사람이 구원받은 것을 가지고
비교하여 왜 나에게는 더욱 좋은 구원이 없느냐고 불평하는 것은 신앙의 세계를 모르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한 시간 남겨놓고 은혜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 니다. 주인이 주시면 받고, 내일 일하러 들어오라고 하면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을 독점한 것처럼 교만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찍
부름 을 받았고,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율법적인 대가를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 니다.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호흡하면서 살아갈 수 있던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 의 나라의 진정한 기쁨을
모르고, 방황하고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고 노심초사하던 것을 생각하면 일찍부터 부름을 받은 것을 감 사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율법적인 자세가 아니라, 은혜를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의
세계가 아니라, 은혜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봉사하였습니다. 당연히 구원받습니다. 불어주시는 그 자체가
구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평생 일한 것으로 감사해야 하고, 보람으로 알고, 인생을 성공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좀 늦게
믿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영원히 버리지 않고, 불어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시간 남겨놓고 부름 받았으면 한 시간 최선을
다하여 일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오직 겸손과 감사만이 넘치는 나라가 하늘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의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들을 보면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합니다. 중간에 오신 분들은 불평이 없습니다. 봉사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월감으로 하기 쉬운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봉사에는 우월감이 방해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고 대처해야 합니다. 우월감보다 선택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포도원에 들어가지 못하시면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버림받은 자요,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된 사 람입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불러주기 전에는 버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엄 청난 은총으로
부름 받은 사람인 것을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는 것은 복음이며, 축복입니다. 이것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위에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 얻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 최선을 다해 충성을 해야 합니다. 보상은
하나님에게 맡기고 우리는 부름 받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합니다. 사명에 충성을 다하시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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