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 빌립
사도행전 8:4-8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 우리는 울산교회 선임 장로이시며 비전 5555를
완수하기 위하여 50명 파송자의 첫 역할을 수 행하기 위해서 나선 최복만 장로님과 김순예 권사님의 선교사 파송예배 와 5,6,7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아 왔습니다. 특히 최빌립 선교사님과 김사라 선교사님을 파송하는 마당에 우리는 최
초의 선교사요 전도자 빌립의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복음은 온 유다와 사마리와와 땅끝까지 전파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이 사명을 위해서 흩어질 생 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거기에는 사도의
말씀이 있 었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명을
잊고 예루살렘에 만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이런 상황 속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시작됩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깃점으로 핍박의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외에는 다 흩어져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나아갔 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 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 이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서 빌립의 일을 사도행전 8장은 기록하고 있 습니다. 기록상으로 보면 그는 사마리아 지역을 복음화 시킨 최초의 선
교사였습니다. 사도를 제치고 복음을 들고 유대지역을 벗어나 최초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사람은 집사 빌립입니다. 비젼 5555를
따라서 파송되는 울산교회 최초의 선교사가 최복만 장로님과 김순예 권사님이 라는 점은 이런 사도행전의 전통과 부합됩니다. 항상
목사나 전도사가 먼저 선교하러 나간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는 오랜 부락의 앙금이 있었습니다. 그
틈새는 세월이 흘러 갈수록 더 커 가기만 했습니다. 박해로 인해서 흩어질 때 만 해도 사마리아를 복음전파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 다. 급히 흩어지다 보니깐 사마리아 까지도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메시아를 전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전 도자 빌립의 가슴 속에는 영혼을 향한 뜨거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만 이 아니라 사마리아인 역시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전 도자 빌립은 주님의 명령 속에 사마리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남달리 의미있게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요즈음 식으로 표현하면 능력전도 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행하는 표적도 보았습니다. 7절은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마리아에 임한 표적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 러운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쫓겨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 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 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나아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악의 능력이 맞대결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마리아 전도를 특징짓는 현상이 었습니다.
빌립의
능력전도의 결과는 대중적인 회심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많은 사 람이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에 접한 결과 주께로 돌아 왔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고 누가는 간략히 그 결과를 기술하고 있습니 다. 그 당시 귀신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그 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풍병은 고치기 쉬운 병이 아닙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의술에 대해서는 저는 아직
들어 본적이 없습니 다. 한번 앉은뱅이가 되면 영원히 앉은뱅이였던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 나가고, 중풍병자가 낫고, 앉은뱅이가
서고 이런 역사가 나타나자 사람 들이 초청하지 않아도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밤 예배가 어떻게 생겼 는지 말하지 않아도 몰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의 사역은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습니다. 기존 사마리아 영계의 거 장이라고 불리었던 시몬이라는
사람까지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 습니다. 물론 시몬이 얼마나 진지한 믿음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도 논란이 있습니다만
전도자 빌립의 사역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데 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마리아인들 모두 큰 자나 작은 자를 수 중에 넣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큰 자라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시몬 이 예수를 믿겠다고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급기야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도 복음을 받았다는 기쁜소식 앞에 대 표단을 파견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기쁜소 식의 진상을
살피고 복음의 진전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여기 대표단 가 운데 베드로와 함께 요한이 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요한은 사 실
사마리아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자기 형제 야고 보와 예수님의 제자로 다닐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스승 예수를 환대하지
않는다고 사마리아 마을에 불을 내려 태우도록 건의한 그 요한이, 지금 은 사마리아가 복음을 받았다는 기쁜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파송을 받았 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능 력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 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복음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저는 얼마전에
나이가 70이 넘도록 전도사를 한 사람인데 철저하게 지역감정 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들어보았습니다. 절대 경상도에 자기 딸을 전
도사로 파송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가 복음을 받았다는 소식 을 들었을 때 요한은 달려가 보고 싶었읍니다. 그처럼 완고한
사람들 가운데 복음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자기의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말로 듣던 것 보다
눈으로 확인한 빌립의 전도 사역은 엄청났습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전도활동을 보고 아주 놀랐을 뿐만 아 니라
감동하였습니다. 함께 기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이 임 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빌립의 전도에 자극을 받아 예루살렘에 돌아오
는 길에 두 사도도 사마리아 고을을 들려 복음을 전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교회의 성도들 모두가 전도의 은사를 받은
자일 수는 없습니다. 전 도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보통 10 % 정도 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 회는 성장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10 % 넘는 성도들이 전도의 은사를 활용할 때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천명교인이 예배하면 그 중에
200명은 전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분 들이 앞장서서 전도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불이 붙게 되어 있 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 나 빌립의 전도 은사 활용의 결과로 사마리아 각 촌에서
전도하면서 예 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바다 농아교회
형제들이 들어온 것도 울산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울산교회 사람들이라는 소문을 듣고 자기 들은 들을 수는 없지만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생동감이 있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기 위해서 우리교회에서 지금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최빌립 선교사입니다. 김포공항에서 출국하는 날은 아마 최장로님의 생 애의 최고의 날이 될
것입니다. 평생 기도하던 것이 사랑하는 아내 김 순예 권사님과 함께 늘 전도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하나님 께서 이루어
주시는데 시골동네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교사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비행기 트랙이 보일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감격하셔서 말입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분들에게 제일 기쁜 날은 전도 나가는 날일 것입니 다.
다른 사람들이 길거리에 서서 찬양을 하는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 면서 전도지 한 장이라도 더 나누어 주려는 사람은 분명히 전도의 은사
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전도의 은사를 활용하 게 될 때 전도의 은사가 없는 사람에게도 찔림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내 몫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빌립의 전도, 제2장면을 살펴봅시다.
26-40절까지의 기록입니다. 여기 전도자 빌립과 구도자 에디오피아 내시 사이에 아름다운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예기치
않은 자에게도 기쁜 소식인 동시에 찾아 헤매는 자에게도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주의 사자가 성공 적인 대중전도의 현장에서
빌립을 가사 광야길로 가도록 내몰았습니다. 왜 자기를 광야로 가게 하는지 빌립은 다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대중전도쪽에 도시에서 전도하는 것이 열매도 있고 크 게 은사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저 광야로 가라 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몰랐지만 순종했습니다. 주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축복해 주십니 다.
사막길을 걷다가 빌립은 그 길을 달려오는 병거를
만납니다. 그 먼길 (1200mile)을 나서, 진리를 갈구하는 에디오파아 여왕의 재정을 맡은 관 리 재무장관을 만났습니다.
마차에서 큰 소리로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글을 읽을 때 소리를 내어서
읽었습니다. 요즘은 소리 를 내지 않고 읽고 맙니다. 그러나 그때는 소리를 내어서 읽기 때문에 바깥에서 사람들이 듣고
달려왔습니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것이 무 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 내시가 아니 나에게 가르 쳐 주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도리어 질문 을 했습니다. 그는 고난 당하는 그 여호와의 종에 대한 본문을 읽고 있
었던 것입니다. 청컨대 묻나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 이요 자기를 가리킴이요 타인을 가리킴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종에서 시작하여 영광 받으신 메시야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신 것을 설명하고 그 죽음과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그 부활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죄가 용서됨을 증거
했습니다.
에디오피아 관리는 마음을 열고 주 예수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 때 마 차가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빌립의 마음속에는 이 내시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 이 있었기에 거기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내시의 마음을 여신 분이 성령 이셨기 때문에 빌립은 그에게 세례 주는 일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 다.
몇 가지 면에서 사마리아 전도와 대조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 다. 사마리아 전도가 다수를 상대로한 대중전도라면
여기에서는 한사람 을 상대로한 개인전도입니다. 빌립은 대중전도에 있어서도 은사가 있었 을 뿐 아니라 한사람을 두고도 복음을
전하는데 탁월했던 사람으로 여 겨집니다. 사마리아 전도가 도시에서의 전도였다면 여기서는 길에서 복 음을 전한 노방전도입니다.
사마리아 전도가 더러운 귀신이 쫓겨 나가 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는 능력전도였다면 여기서는 이사야 말씀에서 부터 성경을
풀어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는 말씀전도입니 다.
그러나 두 전도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우선 사마리아 전도에 나타난
표적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나타난 것은 표적이고 능력이지만 그 능력과 표적의 주체는 성령이셨던
것입니다. 여기, 빌립을 가사로 가는 길로 내려가도록 내모신 분도 역시 성령이십 니다. 그래서 전도의 주체는 항상 성령이십니다.
주의 성령이 병거 가까 이 가도록 지시하였고 읽는 성경에서 부터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 도록 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전도의
주도적 역할을 성령께서 담당하 신 점에 있어서는 서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축사와
치유로 인해 성중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능력으로 전파된 결과는 사람사이에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복음을 받은 결과 역시 기쁨이었습니다.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새번역에는 기뻐하며, 공동번역에는
기쁨에 넘쳐서로 풀이해 놓고 있습 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기쁨이 찾아 듭니다. 복음을 영접한 가슴 에는 기쁨이 넘쳐
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복음 전도의 결과 가 사람사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공통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들 사이에 찾아올 때 그 마음속에는 기쁨이 있습 니다. 그리스도의 영에 순종해서 할 때는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
다. 하나님의 영이 지시할 때 그것을 거부할 때는 마음의 평안이 없습 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에 순종하여 그 지시를 따라 살
때 여러분 의 삶에 기쁨이 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이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이 전달됩니다.
최장로님은 열심히
영어를 하시기는 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곳 사람들 이 영어를 알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 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 의 표정이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장
로님 부부를 볼 때마다 무엇인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 니다. 우리 안에 없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될 때에 그들이 물어 올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을 베푸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못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할 사 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중에 큰 기쁨이 있었던 것처럼 울산
광역시 집집마다 큰 기쁨이 넘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 게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고위관리의 마음 뿐 아니라 대한민국
보통사 람들의 마음마다 기쁨이 넘치도록 예수 소식을 전해야 할 책임을 우리 는 공유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다 지어서 일 은 당신이 하시오 하고 우리는 내버려둘 수 없는 것입니다.
빌립은 계속해서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은 아 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 니라(40절) 주의 영에 이끌린 빌립은
가는 곳마다 전도의 은사를 활용 하였습니다. 빌립은 12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직을 수여 받지 않 았지만 복음 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전파는 목사나 전도 사의 전매 특허가 아닙니다. 누구나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5,6,7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최선교사님 내외분을 파송 하는 성도 여러분, 선교는 최장로님 부부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전처럼 살아 가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예배를 아주 가증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교의 사명은
두분에게 맡겨 버리고 우리는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앉아 있다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 셔야 합니다. 마치 여러분
자신이 그 선교지에 가는 것 같이 아니 선교 지에 가시는 두분의 영적인 연대감을 가지고 여러분은 이전에 드리지 않았던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이전에 봉헌하지 않았던 선교의 헌금 을 드려야 합니다. 이전에 살지 않았던 각오로 나도 이 복음 위해서 저
분들과 같이 살리라고 결단해야 그것이 파송예배에 동참한 우리의 몫입 니다.
우리가 두 분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우리는 이 예배가 마친 후 옛날 삶 으로 돌아가 산다고 하면 하나님이 이 예배 받으시겠습니까? 이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에 대해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몽골은 최장로님 부부에 게 위탁하지만 울산은 우리가 맡아서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100만
시민에게 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울산 광역시를 위한 멋진 전도의
계획을 세워 보시 지 않겠습니까? 행정구역에 따라서 전도계획을 수립해 보십시오. 아파 트, 또는 빌라를 대상으로 복음 전할 계획을
마련합시다. 계층별로 복음 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어른을 대상으로 할 때는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는 삼일클럽 훈련을 받아서
어린이 전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이슬비 전도편지를 보내기만 하면 여러 분의 직무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문서 전도도 가능합니다. 설교 테이프 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아예 전도에 유 리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름다운 결단입니다. 빌립처럼 평생을 전도인의 직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
아나갈 때 보장되는 수입이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는 유일한 이유가 아 닙니다. 꼭 퇴직을 해야 선교지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그 자체가 아 름다운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선교기금을 내놓는 일도 할 수 있겠지만 직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 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제사입니다. 젊은 날부 터 복음단체의 간사로서 사역할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 도 할 수 있습니다.
외판원도 복음 전하기 좋은 직종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때문 에 말을 붙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팔러간 물건 뿐
아니라 복음도 함 께 내어 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용사나 이발사 직종이 복음을 전 하기에 아주 좋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머리를 감아서 둘러 씌워 놓으 면 도망을 못칩니다. 들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해서 하나님과 자연계에 자연법 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영적이 법칙이 있습니다. 라고 시 작하면 사영리 몇
번을 전할 때까지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고 있지 않습 니까? 얼마나 좋은 직종인지 모릅니다. 이발사도 괜찮습니다. 우리교회 특별
집회하는데 손님 오늘 저녁에 나오십시오 하면 안나 올 사람 아무 도 없습니다. 면도해 주면서 오늘저녁 오십시오. 라고 한번 해보십시오.
거기서 누가 거절하는 사람 있겠습니까?
택시기사도 좋습니다. 얼마전 우리 임마누엘선교회에서 봉사를 했는데 괜찮은
직종인 것 같습니다. 택시를 타면 들어야 되지 안습니까? 요즘 은 기사님 시대가 되어 듣지 않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의사 말은 하나
님에 버금가는 말씀같지 않습니까? 교사, 얼마나 복음전하기에 좋은 직 종들입니까?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런 직종을 택하도록 권 유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의 변화입니다. 울산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은
자식들이 모두 법대만 가기를 바래서는 안됩니 다. 모두 다 의대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 직종이라 도 좋습니다.
여기는 잠깐 우리가 주의 뜻을 행하기 위해 나그네로 사 는 곳입니다.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여러분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선교사로 파송받은 장로님 부부 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복음 전파자로서 살아가기를 엄숙히
다짐합시 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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