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5)
누가복음 24:25-26
'세월에 걸려 난파한 것들 외에 우뚝
선 십자가를 나는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거룩한 이야기가 비추는 찬란한 빛이 그 숭고한 기둥 둘레를 비춥니다.'(John Booring) 예수
십자가 고난의 영광을 명상한 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 태어나셨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때는 연약한 생명으로 태어나셨다.
둘째로 무덤에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태어나실 때는 하늘의 영광 속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태어나셨도다.'(Andrew Murray) 틀림없이
예수 부활의 영광을 명상한 글입니다. 의사 누가는 영감 속에서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던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눅 24:26).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던 날 오후에 엠마오를 향하던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가시면서 저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직결하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전 구약 예언의 핵심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4:27).
Ⅰ.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영광의 극치입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에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큰 고난’ 곧 파시온마그눔(Passion Magnum)의 상징입니다. 그가 짊어지신 십자가는 큰
고난의 총체입니다. 그 큰 고난은 육체적 고통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죽음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범한
죗값인 사망이었기 때문입니다(롬 6:23). 그의 십자가의 고난 곧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요, 진노요, 심판이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의 앞에 버림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그의 죽음을 예수 자신은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3-24절에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감당할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켜 인자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이
되는가?
1.
무죄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적법하게 임명된 한 세속 관리로서
공인(persona public)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 가운데서 그가 맡은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고 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8절에 「…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요한복음 19장 4절에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6절에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범죄자의 죽음은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자신과 가문과 백성들에게 부끄럽고 불명 예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무죄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죽 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 십자가 영광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2. 대속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대속물’은 노예나 포로를 석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 곧 속전을 의미합니다. 여기 「많은 사람」이란
바로 예수의 「자기 백성」(마 1:21),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요
13:1), 곧 「아브라함의 자손」(히
2:16)들의 죗값을 지불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요한1서 3장 5절에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2절에는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저 유명한 영감의 선지자 이사야는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사 53:3).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사
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사 53:5).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사 53:6).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영광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신 죽음이었다는 여기에 그 십자가의 영광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상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속죄 성취의 개가를 불렀습니다(요 19:30). 그리고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셨습니다.
Ⅱ. 예수 무덤에서의 부활은 영광의 극치입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력 니산월 14일 제3시(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제6시(12시)부터 해가 빛을 잃어 온 세상이 캄캄하여지고, 제9시(오후3시)에 운명하셨습니다(마 27:45-46). 바로 구약에
유월절 양이 희생되던 날이었습니다. 고센 땅의 구원받을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표적이 되기 위하여 양들이 희생되던 날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 예비일로 금요일이 됩니다(요 19:31). 예수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의
군병들에 의해서 그의 죽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군병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사실로 예수께서 완전히 죽으셨음이 확증되었습니다(요 19:32-34). 예수는 또한 완전히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숨은 예수의 제자였던 산헤드린 공회 의원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경건하게 장사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의 상하신 몸에 고가의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와서 발랐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를 위하여 준비해둔 새 무덤을
예수님께 제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고난의 종이 악인의 죽임과 같이 되셨으나, 그 분의 죽음은 무죄한 대속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그 몸은 부자의
무덤에 묻히게 되었습니다(사 53:8-9). 유대인들은 시체를 당일에 장사했습니다. 더욱이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이 안식일 예비일이고
다음 날이 큰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그 날에 완전히 장사되어 무덤에까지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지옥에 내려가신 지 사흘만에…」라고 되어 있는데, 한글 사도신경에는 「장사한지 사흘만에…」라는 말로 대신 번역하였습니다.
칼빈(John Calvin)은 예수님의 최후 구조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시고,
죽으시고, 묻히셨다’고 배열함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동안 지옥의 형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바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께서
우리 형벌을 대신하여 완전히 죽으시고, 장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완전히 사셨습니다. 그는 안식 후 첫날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의 시체에 향유를 부으려고 그의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와(막 16:9, 요 20:11-18) 여인들에게(마
28:9-10)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에게(요 20:1-10), 글로바와 함께 엠마오로 동행하던 자에게(눅 24:13-31),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들에게(요 20:19-23), 도마가 함께한 열한 제자들에게(요 20:24-29), 그 후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요
21:1-14), 또한 갈릴리 어떤 산상에서(마 28:16-20), 오백여 형제들에게(고전 15:6),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게(고전 15:7),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에서 열한 제자에게(행 1:4-11, 눅 24:50-51), 그밖에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었습니다. 부활 후
40일 동안이나 그의 부활의 정체를 보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3).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의 정체,
부활의 정체는 실로 영광스러운 정체였습니다. ① 우선 영광스러운 인격체의 몸이었습니다. 살과 뼈가 있는 몸, 말을 하고(음성), 음식을
먹고, 활동하고, 감각이 있는 인격체의 몸이었습니다(눅 24:38-43). 의심하던 도마는 예수의 창을 받은 옆구리를 만져보고 못박힌 그 손을
만져보았습니다. 진짜 육체를 가진 몸이었습니다. 결코 유령이나 환상이 아니었습니다(요 20:26-29). ② 홀연히 나타나고, 홀연히 사라지는
영화로운 몸이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식탁에서 그러했습니다. 문빗장을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의 방에 홀연히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몸이었습니다. 그의 부활의 정체는 영화로운 인격체였습니다. 실로 영화로운 몸이었습니다. 영광에 들어갈 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승천). 실로 극치의 영광이었습니다. 1. 그는 무덤에서 다시 사는 부활로 말미암아,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탄생이, 무죄의 삶이, 십자가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아들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던 로마의 백부장도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마
27:54). 예수의 부활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한 실제적 선포행위였습니다.
2. 신자 칭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부활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뿐 아니라, 그의 부활은 바로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되는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3. 부활 소망의 확실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 종착이 아니라는
약속을 입증하고 말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를 실제로 입증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산다고 하는 영생 소망을 입증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신자들은 적어도 사망을 호령하는 승리의 장군, 생명의 장군이 된 것입니다(고전 15:55-56). 그래서 베드로는
영감 속에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3-4). 이 일에 감사(찬송)하자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와 부활은 역사의 절정이자
영광의 극치입니다. 십자가는 비극인 동시에 영광입니다. 십자가는 불명예인 동시에 명예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이자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이자
존귀입니다. 십자가는 사망의 종착인 동시에 새 부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 영광의 본질입니다. 아니 지상에 자리잡은 그리스도
교회가 지닌 영광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교회는 결코 교회일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만이 교회의 자랑이요
교회의 존재적 자원의 전부입니다. 역사상에 존재하는 교회의 본질이 바로 예수 십자가요 부활입니다. 그리고 교회만이 받은 복음 선교의 전
주제입니다(갈 6:14). 이것이 바로 교회 영광의 극치입니다. 30배, 60배, 100배로 번성하고 창대하는 개인과 교회와 민족과
국가는 바로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소유한 자들이 아니었던가? 세계는 로마로 통한다고 하던 그 길에 지금도 사람들이 가고 있는가? 세계는
십자가와 부활만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2000년 기독교의 웅변적인 입증이 아닌가? 역사상에 존재하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들이 예수
십자가만으로 통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나라에 통하는 길은 예수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었던가? 이 영광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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