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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엡4:11-16

오늘은 영광스럽게도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 신실한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 처음으로 교회의 살림과 봉사하는 일을 위하여 공적으로 사람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전에도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주일학교 유·초등부를 위시하여 여러 봉사의 일들을 신실하게 섬겨왔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교회를 선호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교회를 큰 변화와 성장이 없어도 인내하고 기다리며, 신실하게 섬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주님의 지상명령인 제자를 삼는 일에 있습니다(마28:19-20). 이 일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믿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목회자인 저 혼자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가족들이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복음을 받음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주님의 명령인 제자 삼는 일을 위하여 함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함께 힘을 모아서 제자 삼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단순히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는 모임만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사회와 접촉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은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키우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일을 가장 우선적인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지금 있는 성경공부와 예배 외에 말씀에 따라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을 가지는 것은 지양할 것입니다. 어떤 열심있는 교회는 지나치게 많은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교회에 나오도록 조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많은 프로그램은 언뜻 보기에는 감탄할 만하게 보이지만, 많은 결점들과 위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결점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해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역시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직장이나 학교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일도 하나님을 섬기는 한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많은 프로그램들을 가지다보면 이러한 일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저희 교회는 이러한 점들을 무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여러 직분자들을 세우는 일은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렇게 사람을 세우고 외적인 조직을 갖추는 것은 단순히 어떤 외적인 조직을 갖추는 일에만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역시 우리 교회에 사람을 세워 조직을 갖추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로는 우리 사회의 관료제도가 부패하므로 나라를 세우는 일에 실패하듯이 우리의 교회 조직이 정체가 되어 있거나 조직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본질을 구현하는 일에 장애만 될 뿐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을 세워 조직을 가지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제자 삼는 사역을 좀 더 효과적으로 잘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직분자를 세우는 일을 앞두고 왜 교회에 사람을 세우는지 그 목적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일에 비중을 두고자 합니다.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교회에 여러 직분자들을 세운 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주님께서 그의 몸을 세우시기 위하여 직분자들을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교회에 주신 직분들을, 두 번째로는 교회에 직분자들을 주신 목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에 주신 직분들

주님은 교회에 어떤 직분자들을 주셨을까요? 그것을 1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도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다섯 가지의 직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도입니다. 이 사도는 신약성경에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12명의 사도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의해 직접 선택을 받고 권위를 부여받고, 부활한 주를 직접 목격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교회의 기초로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2:20에서는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3:5에서는 "이제 그의 거룩하신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들은 그들의 시대에만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2) 교회의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르치는 일이나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파송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바나바와 아볼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3)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보냄을 받는 자들, 곧 사도들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요17:18; 20:21). 이 경우는 교회가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의 경우 가운데 이 본문에서는 첫 번째 교회의 기초로 세우심을 받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직무는 교회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자들은 선지자들입니다. 이 선지자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 성경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 말씀을 신실하게 말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의 전달자였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선지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나 신약성경에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기근이 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아가보가 있었습니다(행11:28). 그리고 이 외에도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행13:1). 신약시대에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전달한 사람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직무도 오늘날 더 이상 교회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이 선지자직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아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선지자직을 현대 세계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여, 그 세대의 악을 지적하고, 그 문제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적용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예언에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신약성경에는 불신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신자들에게는 "덕을 세우며 권면하고 안위하였던 부분도 있습니다(고전14:3). 그래서 선지자라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통찰력과 시대의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도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초를 놓기 위해 세움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첫 번째 경우의 계시 전달자로서의 기능만 있습니다. 에베소서 2:20에서 사도들과 함께 교회의 기초라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세 번째로 주님은 교회에 복음전하는 자들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는 말은 "복음을 전하다"는 용어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명사형으로 사용된 것은 사도행전 21:8에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과, 디모데후서 4:5에 디모데에게 적용되었고, 이 본문과 합해서 모두 세 번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복음전도자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하는 사역을 이어 받아서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복음전도자부터는 오늘날 목사를 위시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은 복음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는 주님은 교회에 목사와 교사로 주셨습니다. 목사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양떼를 치는 목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와 교사는 사실상 두 가지의 직무라기 보다는 하나의 직무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두 가지의 직무에 단 하나의 정관사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는 양들을 돌아보는 일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교사와 다른 점입니다. 세상의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주임무로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지식의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고 인도하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의 목사나 교사는 세상의 교사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오늘날 없어진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포함하여 복음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들을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이 편지를 쓸 당시에 교회에는 사도들과 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자들을 언급할 당시의 교회에 있었던 직분자들만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좀 더 뒤에 쓴 편지인 디모데전서에는 집사직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은 없어졌지만 복음전도자들이나 목사와 교사, 집사는 계속하여 교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주님께서 어떤 필요를 위하여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교회에 이러한 사람들을 세우셨을까요?

2.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

주님은 어떤 목적으로 그의 교회에 직분자들을 주셨을까요? 그것을 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에 성도를 "온전케 한다"(헬. ՊՁՔՁՑՔՉՆՙ)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의 의미로는 "자격을 갖춘다," "무장시킨다" 또는 "준비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무장시키고 준비시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성도들을 준비시키고,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일까요? 역시 이 본문에 그 목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봉사"(헬. ՄՉՁՊՏՍՉՁՒ)라는 말은 참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이 봉사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준비시키고 무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봉사라는 말을 목사나 당시에만 있었던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봉사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직자의 독특한 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목사의 독특한 사역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목사는 교회의 모든 사역을 혼자 도맡아 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발견하여 발전시키고 활용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목사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하고 준비시켜서 세상에서 각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사용하여 세상에서 겸손하게 봉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피라미드 모형이고, 또 하나는 버스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밋 형이라고 하는 것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목사가 앉아있고 그 밑에 서열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교회형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교회의 직분을 사회의 직위처럼 생각하고 일하지 않고 군림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큰 암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버스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목사 한 사람이 버스를 운전하고 성도들은 그 버스에 탄 사람들처럼 밖을 내다보며 세상을 즐기거나, 세상 모르고 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 버스는 목표를 향해 빨리 달릴 수는 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버스에 탄 사람은 봉사하지도 않고,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버스 운전사에게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버스에 탄 사람들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라미드 모형의 교회나 버스 모형의 교회는 바람직하지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사와 교사와 집사 또는 기타 섬기는 자들을 주신 목적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봉사하는 일을 하게 하여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교회에 세움을 받은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봉사하는 자로 훈련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목사와 교사와 그 외 다른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그들의 봉사로 인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장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외적인 교회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13-16절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16절에 보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자들을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일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직분자들을 세우는 일은 이러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꿩잡는 것이 매라는 식으로 교회에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풍조가 한 교회에 소속된 사람의 수가 얼마인지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노회나 총회에 가면 교회의 교인의 수가 작으면 발언권도 제한을 받고 자리도 앞자리를 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수단을 방법으로 가리지 않고 외적인 성장만을 지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온갖 종류의 경쟁과 마케팅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무조건 잘못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교회에 불러들이는 일은 복음을 듣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주님의 제자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대 교회로 성장하는데 목표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봉사하는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주님의 제자를 삼는 일에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을 단순히 교회를 외적으로 성장시킨다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특히 바울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머리와 몸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 보아야 합니다. 이 비유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몸은 머리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머리와 몸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이 머리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치하시고 그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직접 우리의 눈으로 보이시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마26:11), 인간의 봉사(ministry)를 사용하십니다. 특히 칼빈(J. Calvin)은 "기독교강요"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봉사자들은 모든 믿는 자들을 한 몸에 연결시키는 신경조직이라고 하였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성취할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고, 교회가 그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시하고 명령하신 모든 것을 수행하는 것이 교회요 모든 성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몸을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교회에 직분자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머리와 몸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몸이 머리에 의해 움직이고 기능을 유지하는 것처럼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그리스도와 교회와 관계를 머리와 몸의 관계로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몸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머리되신 주님께서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일을 수행할 때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본문의 의미를 한절 한절 자세하게 살피지는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그의 교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들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성장시키는 개념이 아니고 머리되신 주님이 명령하신 모든 하나님의 뜻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직분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직분은 중요한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오늘날은 사도와 선지자의 직무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교회에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와 교사와 여러 직분자들이 있습니다. 목사로 세움을 받은 저나 오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하여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 잘 훈련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직까지 세워져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세상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게 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와 교제할 때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직 여러 부분에서 서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함으로 이 직분을 감당할 때 주님이 힘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직무들을 잘 감당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영광스러운 일들을 나타나는 것을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교회에 주신 직분을 수행하는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것인지도 체험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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