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레에서 떨어지려는 궤를 보호하기 위해 궤에 손을 댄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는 장면이 나온다. 통상 ‘제의 규정의 위반’에서 웃사의 죽음의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해당 본문이 쓰인 신학적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끈다. 웃사의 죽음은 ‘그가 소의 비틀거림에서 신적 개입, 곧 예루살렘으로 궤를 옮기려는 시도를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김필회 교수는 동 대학교가 발행한 논문집 ‘성경과 교회’에 발표한 논문 ‘어떻게 야훼의 궤가 내게로 올수 있겠는가 - 사무엘하 6장에 기술된 하나님의 궤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파국을 맞았음
궤를 옮기는 제의 규정에 방법상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의 궤는 레위인들에 의해서 채를 궤 양쪽 고리에 끼워 들어서 옮겨야하기에 소가 끄는 수레로 궤를 옮기는 일은 이 규정과 충돌한다”며 “이후 궤를 메어서 옮기는 다윗의 두 번째 시도도 제의적 위반에 대한 징계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본문을 이렇게 읽으면 그 신학적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며 “제의 규정이 문제였다면 웃사와 아효는 이미 궤를 수레에 실을 때 죽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제의적 해석에서는 소의 갑작스런 비틀거림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본문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축제 행렬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파국을 맞았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가 비틀거릴 때까지 궤가 별 탈 없이 잘 옮겨지고 있었다는 것은, 모든 준비 과정이 거룩한 궤를 옮기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궤를 수레에 싣는 것이 허락됐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웃사가 죽은 후, 궤를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다는 보고도 궤의 운반 방법에 문제가 없었음을 전제하며. 더 나아가 제의적 해석은 궤를 에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한 두 번째 시도의 성공 원인을 본문의 의도와는 달리 단순히 운반 수단의 변경에서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의 비틀거림, 하나님의 의지 담긴 계시적 사건
따라서 웃사의 죽음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소들의 비틀거림을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징조로 이해하면 웃사의 죽음을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웃사는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여 죽음을 당하지만 그의 치명적 과오는 제의적 위반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궤를 책임진 자인 그가 궤를 옮기기 전에 먼저 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그는 하나님의 의지에 거슬러 행동했기 때문에, 곧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들의 비틀거림은 길을 막는 신적 의지의 표징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궤의 하나님은 다윗의 일행에게 더 이상의 진행을 거절하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궤가 왕권에 의해 임의적으로 옮겨질 수 없음을, 다윗조차도 궤를 소유할 수 없음을 재앙의 경고를 통해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웃사의 죽음 후에 뒤따르는 다윗의 두려움과 탄식은, 웃사의 죽음을 초래한 소의 비틀거림이 우연적 사고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계시적 사건임을 분명히 해준다고 한다. 즉 다윗은 궤의 운반 방법에서 웃사의 죽음의 원인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다윗은 눈앞에서 벌어진 재앙으로부터 궤에 내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궤의 운반을 중단시켰다”며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자신에 대한 경고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다윗은 궤가 자신의 기대했던 축복 대신에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다윗, 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이와 관련 다윗이 궤를 옮기려고 했던 의도는, 축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돌발적 사태에 대한 다윗의 즉각적인 반응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의견이다.
김 교수는 “웃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의 호화로운 행사가 파탄에 직면하자 다윗은 하나님에게 화를 냈다”며 “그가 분노한 이유는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왕권과 도성의 신적 권위를 확보하려는 그의 의도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그는 “하나님의 거절에 화를 냈던 다윗은 곧 두려움에 빠졌다”며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자신의 보호 아래 있지 않음을, 궤의 하나님이 왕권의 보호자가 아니라 적대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왕적 권위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궤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시도의 실패를 통해 다윗은 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다는 설명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이끌려 사람이 정해주는 곳에서 안식하시는 분이 아니며 자신의 처소를 스스로 결정하시는 분’임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다윗이 비록 야훼의 보호와 은총에 힘입어 이스라엘의 왕이 됐다고 해도,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윗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지 하나님이 다윗에게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신 것이지 다윗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궤의 하나님의 결정에 감사하며 자신을 낮추는 다윗
다윗은 이러한 깨달음을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두 번째 시도에서 철저하게 실천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허락 때까지 기다리던 다윗은 오벳-에돔의 집에 내린 축복을 하나님이 예루살렘으로 궤 옮기는 것을 허락하신 긍정적 징후를 읽고 다시 궤를 옮기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성경본문은 다윗이 궤를 처음 옮길 때와는 달리, 두 번째 시도에서 궤를 멘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제사를 드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궤의 하나님이 마침내 다윗성에서 안식하시기로 허락했음을 인지하고 드린 감사제’라는 것이 김 교수의 해석이다.
또한 다윗은 더 이상 왕의 자격으로 제의적 행렬을 주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다윗이 권위와 체통을 완전히 포기하고 혼신을 다해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며 춤을 춘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도의 근본적 차이가 다윗의 자세에 있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다윗은 왕의 체통과 위엄을 벗어던지고 낮고 천한 자리로 내려왔다”며 “자신과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궤의 하나님의 결정에 온몸으로 감사하면서 자신을 낮추는 다윗은 야훼의 백성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의 이상적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궤에 대한 다윗의 이해는 사무엘하 15장 24-29절이 잘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본문에 의하면 헤브론에서 얻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두 그를 지지하자 다윗은 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한다. 이 때 제사장 사독이 레위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자기를 따르려하자 다윗은 이를 거절하고 궤를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려보낸다.
다윗은 “만일 내가 야훼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그분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셔서 궤와 그 있는 곳을 보게 하실 것이요. 그러나 그분께서 ‘나는 너를 싫어한다’고 하시면, 나는 준비가 되었소. 그분의 눈에 좋으실 대로 나에게 하실 것이요”라며 자신의 예루살렘에로의 귀환 여부가 오직 야훼의 결정에 속함을 인정한다.
김 교수는 “예루살렘으로부터의 도피가 야훼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궤를 가져가는 것은 죄를 한 번 더 범하는 일이 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구원을 담보하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소유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전적으로 야훼 하나님에게 의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