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지도력의 본질과 형성과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직면한 교육 사역의 중심과제는 성도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한 교육목회의 전략은 목회자를 비롯한 평신도들의 철저한 훈련을 통한 교회의 지도력 개발과 지원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1. 지도력(leadership)의 개발과 지원은 교회 조직의 한 부분이다.

교회가 어떤 방법으로 일하든지 지도력은 언제나 하나의 관심사가 된다. 왜냐하면 지도력(leadership)이란 교회라는 하나의 조직 체계 속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직 체계란 기능하는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parts)이나 요소(elements)들의 질서정연한 내적 상호 연결성으로 그 특징을 지닌다. 예컨대 뇌, 심장, 폐, 눈, 다리 등의 부분(지체)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체를 하나의 조직 체계라 일컬을 수 있다. 하나의 조직내의 각 부분들은 그 조직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 서로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조직 내의 각 부분들은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또 조직 전체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다리는 감각기관들(눈,귀)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자각하고, 뇌가 목적을 결정할 때 움직인다. 조직의 각 부분들만 상호 연결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전체조직 내에 하부 조직이 있어서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또 전체 조직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여 서로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인체의 큰 조직은 신경계통, 순환 계통, 소화기 계통 등의 하부 조직 체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음식을 섭취할 때 그 음식은 소화 기관을 통해 들어가지만 만일 순환기 조직으로부터 적절한 피의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소화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하나의 '유기체' 로서의 조직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고전12). 즉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 몸은 여러 부분(지체)들로 구성된 하나의 조직 체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교회라는 조직 체계 역시 몸체를 형성하고 계속 성장을 도모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하부조직들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조직을 형성하는 하부 조직에 해당하는 기본 요소들로서, 목표(goal),사역 활동(activities),지도자(leaders)자료(resources), 그리고 계획과 평가(planning and eval‎uation)등이 있다. 이들이 교회라는 몸(조직)을 지탱하게 해준다. 하나의 조직 체계(system)로서 교회를 이해할때 교회의 균형 있는 사역 수행을 위해 교회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도자의 지도력 개발과 지원‘은 교회라는 전체 조직 내에 반드시 있어야 하고 유지되어야 할 하부 조직(subsystem)이다.


2.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잠재적 지도력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처음부터 지도자가 있었다. 나사렛 예수는 첫번째 지도자요, 지금도 교회의 머리(headship)되신다. 그러나 머리는 그 기능을 적절히 수행할 하나의 몸체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12제자를 선택했고, 이들을 구심점으로 형성된 초대 교회는 집사들을 세웠다. 그후 여러 세기를 통해 교회는 감독, 장로, 교사 그리고 다른 직분자들을 세웠다. 오늘도 개 교회는 목사를 포함해서 여러 지도자를 세워 직분을 맡긴다. 이같이 교회 내 여러 직분을 맡은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도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직분을 맡은 특정인만이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로 보지는 않는다. 모든 지체, 곧 교회 구성원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기는 여러 사역에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교인들 모두 동일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적 지도력을 지닌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7)는 성경 말씀을 깨닫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의 신실하고 충성된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몸'이라는 헬라어의 '소마' (soma)는 단순히 신체인 몸만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를 포함한 전 인격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우리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와 하나되게 하시고 그의 몸의 지체(부분)로 삼으셨다. 이것은 놀랍고 신비로운 진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각기 개인적으로는 모두 다르지만, 구속의 공동체인 교회라고 하는 생명체, 곧 그리스도의 몸의 각 부분들이요 한 생명으로 통하고 또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적 존재이기에 홀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교회 내 지도력의 본질은 교회가 지닌 '몸'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세속적인 지도력의 개념과 분명히 구별된다. 교회의 지도력은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교회의 구조와 기능 때문에 특이하다.

'몸'의 지도력이란 교회 지도자들이 받은 직분들과 그들의 지도성은 모두가 으뜸(머리)지도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인 교회에 주신 은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영적 은사를 공유한 카리스마(은사) 공동체요, 모든 교인이 각기 다양한 은사를 지니고 있다는 성경의 교훈(롬12:5-8, 고전12:17-18)을 인정하는 것은 '몸'으로서 교회의 지도력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도록'(엡4:11-12) 각양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은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모두가 잠재적 지도력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은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몸의 이분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신자들이 사역자(minister)로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신자가 몸 안에서 제사장적 사역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롬12:1, 벧전2:5-9). 따라서 교회 목회자의 우선적 과제는 신자들 각 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자각케 하고 교회의 여러 사역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그리고 자신의 은사를 온전히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기독교적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역(partnership)의식을 가지고 책임있게 응답할 수 있도록 적절한 도전과 자극을 주는 교육환경 조성자로써의 책임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도전과 자극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앙 공동체와의 유기적 관계성 안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가능적 존재임을 인식시킬 뿐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세상을 향해 섬길 수 있는 지도력을 개발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3. 교회 지도력의 특징은 '나눔' 과 ‘섬김'이다.

(1) 나눔의 지도성 (shared-leadership)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회 역시 하나의 기관 내지 조직체로 이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직 형성의 동기에 비추어 볼 때, 교회 지도력은 정부나 기업체와 같은 세상 기관의 조직 형태와 성격상 엄격히 구별된다.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응답의 공동체요,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 기관과 달리 자발적인 출석에 의해 형성된 모임이요, 단체(voluntary association)이다.

이같이 교회의 회원됨(membership)의 자발성은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의 리더쉽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자발성에 기초한 교회의 리더쉽은 속한 사람들의 필요(needs)가 첫째이고 사역 안에서의 성과는 둘째이다.

반면 세상 기관(기업체)의 리더쉽은 업적 달성이 첫째이고 구성원들의 필요는 둘째이다.

즉 전자의 지도력의 초점은 '사람'이 우선인 반면, 후자는 '과업 달성'이 목적이다. 자발성에 기초한 교회의 리더쉽의 유형은 수평적 관계로서 여기서는 공유(sharing)와 상부상조가 강조되고 역할(role)보다는 관계(relation)에 역점을 두는 공유형 모델(shared leadership)이라면, 세상 기관의 리더쉽의 유형은 상하의 수직관계 속에서 지도자(특정전문인)의 권위와 통제를 중시하는 명령형 모델이다. 교회의 리더쉽은 결과보다 과정(process)을 더 중요시한다면, 세상 기관의 리더쉽은 과정 보다 결과(product)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발적 모임의 단체인 교회의 리더쉽의 독특성은 모든 구성원들이 지닌 각양 은사를 함께 나누는 민주적 리더쉽의 형태를 취하게 됨이 보다 성경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섬김의 지도성 (servant-leadership)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리더쉽이 지닌 또 다른 특징적 요소를 가르치고 있다.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두 형제가 세속적인 지도자의 신분과 권력을 갈망하여 저들의 모친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의 좌, 우 권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분명히 세속적 관점에서 최고의 지도자가 되길 꿈꾸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의 응답은 "내 잔을 너희가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 갈 것이다."(마20:23)였다. 이 말씀은 교회의 모든 지도력의 원천은 세상적 권위로 주어질 수 없고 오직 신적 권위에 속한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다른 제자들의 마음이 상했다. 드디어 그들간의 내적 갈등이 밖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목격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도자의 기본 정신을 소개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도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너희 사이에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25:25-27)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지도자직에 대하여 세속인 지도자의 정신과는 근본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 지도자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행사(명령)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력의 정신은 교회에는 부적합함을 지적했고, 놀랍게도 지도자상을 ‘종'(servant)으로 묘사했다. 교회의 지도자는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혹은 '가운데'에서 섬기는 자로, 그리고 '주관자’가 아니라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은 주인 앞에서 자기가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종의 리더쉽은 '섬김‘의 사역(눅22:26)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는 섬겨야 할 '몸'이지 다스리는 '기관' 이 아니다. 교회의 다스림(치리)이란 어디까지나 종으로 섬기는 일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는 무작정 교인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발을 씻어 주는 섬김과 봉사를 통해 교회 전체가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섬김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돌보는 종된 지도자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종된 교회의 리더쉽은 밀어붙이기보다 이끌어 주는 지도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명령과 권위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섬김을 통해 감동과 감화로 인도한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욕을 불러 일으켜 섬기게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는 비전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이 비전을 함께 나누며 그래서 모두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계획하고 함께 실천하며 헌신하도록 섬기는 자이다.


4.교회지도력 개발의 지름길은 <바른 영성의 회복>에 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교회의 지도자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닮는 일에 힘쓸 때 그의 지도력이 개발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철저히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인 사도바울의 실천적 '모범닮기' 방법은 오늘의 교회가 추구해야 할 지도력 개발의 좋은 모델이 된다(빌2:5-11, 고전11:1). 문제는 '어떻게' 실천적 모범을 사도바울처럼 오늘의 교회가 보일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우리 자신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날이 갈수록 제도화되어 가는 오늘의 교회 구조 속에서 성경적 리더쉽이 세속적 리더쉽으로 대체되어 가는 위기현상을 보면서 교회 갱신을 향한 교육의 중심과제는 성경적 리더쉽의 회복이다. '어떻게' 라는 질문 앞에서 성경 속의 바울의 대답은 곧 개혁교회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란 중심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바른 영성의 회복이 곧 교회 지도력 회복의 열쇠요 지름길임을 암시해 준다.

세속적 지도력이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면, 교회의 지도력은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 에,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중요시한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지도자로 세움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회중)를 섬긴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일(직분)을 맡든지 우리의 지도력은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칼빈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고전10:31)에 리더쉽의 초점을 두었다. A.W.토우져에 의하면, 교회 지도자의 특징은 매사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은혜의 수준(롬12:1)에 머무는 영적인 요소가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의 리더쉽의 회복은 바른 영성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교회의 지도력은 바른 영성을 지닌 영적 지도자에 의해 회복된다. 오늘의 교회는 섬김의 모든 사역에 바른 영성을 지닌 교회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왜곡된 영성들(외식의 영성, 반지성적 영성, 현실도피적 영성 등)이 교회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바른 영성,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하는 교회의 리더쉽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바른 영성은 항상 삼각형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영성의 핵심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에 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경건의 훈련은 하나님과의 건강한 생명적 관계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활기 있게 하고 아름답고 밝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공동적 예배와 양육, 그리고 친교를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다. 사실상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는 필연적으로 교회와의 관계에서 성립되고 확인되며 성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교회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 보내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시기 위해 교회로 부르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신실성이 시험받고 영성이 열매를 맺는 삶의 자리는 그리스도인이 구체적으로 살고 있는 세상 한복판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증거하는 섬김의 삶을 사는데서 증거된다. 따라서 바른 영성은 종교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은 교회안에서나 교회 밖인 세상에서나 늘 하나님의 주권적 신앙 가운데 성령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영성은 전인격적이요, 총체적인 신앙이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지향한다.


5. 교회는 교사의 지도력 개발과 지원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사역들(예전, 선교, 교육, 친교, 봉사) 중에 '가르침'의 사역이 있다. 이 가르침의 사역은 교회의 본질적 요소이기도 하다. 가르침의 사역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기관으로 교회학교가 있다. 그리고 교회 학교의 교육사역을 위해 목사, 교사, 부장 등 지도자들이 있다. 따라서 이들 교육 지도자들의 '지도력 개발과 지원'부분은 교회 학교의 조직 체계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유지되어야 할 하부 조직이다. 교회학교 교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후 5:18) 구속받은 존재요, 동시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고후5:20) 교회의 가르침의 사역에 부름받은 하나님의 동역자이다(골1:28-29).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 시점에서 교사들의 지도력 개발과 지원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늘의 교사들에게 개발되어야 할 지도력의 요소는 '바른 영성' 과 '전문성' (가르침의 기술)이다

영성과 관련해서 교사에게 바른 관계형성과 유지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기독교 신앙은 신뢰와 사랑, 복종과 용서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기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관계(하나님, 인간, 자연, 역사와의 관계)속으로 부르신다. 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인간관계, 특별히 학습자들과의 관계에 의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학습자의 개념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관계의 구조 속에서 교사가 갖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이다.

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학습자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적인 자아와의 바른 관계를 확림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셨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기능을 갖고 있고 어떤 기능을 필요로 하는가?‘ 등의 질문에 올바르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문성 개발과 관련해서 교사는
(1)성경적 인간이해와 발달단계에 따른 학습자 이해,
(2) 성경의 내용, 주제, 해석에 대한 기초지식,
(3) 교회의 전통과 예전,
(4)사회문제에 대한 복음적 이해와 분별력,
(5)교수-학습과정에 따른 가르침의 방법과 기술,
(6)학습자료의 선택,
(7)학습성과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한 기독교교육적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위의 두가지 지도력의 요소(영성과 전문성)를 형성하기 위해 보다 철저한 자기훈련이 요구된다.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로 바꾸는 자기훈련을 위해 순종해야 할 실천지침 열 가지를 아래에 제시해 본다.

(1) 매일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에 충실한다.

(2) 진실되고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3) 언행이 일치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추구한다.

(4) 각종 편견, 과장, 왜곡을 피하고 매사에 판단에 앞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

(5) 인간(학생)의 생명의 존엄성을 높이는데 힘쓴다.

(6)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 솔선 수범한다.

(7) 나눔과 섬김에 기초한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앞장선다.

(8) 불의를 고발하고 동시에 사랑과 화평을 도모하는 일에 실천적 모범을 보인다.

(9) '가르치는 일‘이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임을 인정한다.

(10) '바른 영성'과 '전문성'의 지도력 형성에 우선적 관심을 갖는다. 현실성이 없는 관심의 영역(관심의 원)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현재 삶의 영역(영향력의 원)에 초점을 맞추어 최선을 다한다.


<교회교육 지도력 개발>

교회의 교육지도력 개발의 방향
홍정근(목사, 기독교교육연구원)
월간「교육교회」97.1월호


Ⅰ 여는 글

흔히 '지도력' 하면 지도자들의 자질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주로 교회교육 지도자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느냐 하는 지도자의 자질론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지도력을 너무 제한적인 뜻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공등체적인 차원의 지도력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교육적인 지도력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교회의 교육지도력은 어떤 방향으로 개발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교육지도력이다. 또한 지도력에 관한 모든 논의는 결국 지도자론과 직결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본고에서는 먼저 교회가 교육하는 공동체로서 갖추어야 할 지도력에 관하여 먼저 다루고자 한다. 그 다음에 지도자의 자질론이나 지도자 교육의 방향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요, 유기체이다. 생명 없는 교회는 상상할 수도 없다. 교회는 그냥 모였다가 흩어져 버리는 조직이 아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요, 영의 공동체이다. 교육은 생명의 공동체인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힘써야 할 활동이다. 또한 교회교육은 공동체의 지체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장하기 위하여 참여해야 하는 본질적인 활동이다. 교육이 없는 교회는 생각할 수 없다. 교육이 힘을 잃은 교회는 건강할 수 없다. 교육하는 힘이 왕성할 때 교회도 왕성하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교회 공동체를 교육하고, 공동체의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을 교육하게 하는 힘이 곧 교육지도력이다.


Ⅱ 지도력, 교육하는 힘

일반적으로 지도력 이론에서 말하는 지도력이란,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는 영향력' 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은 의도적인 행동이요, 목표 지향적인 활동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지도력은 교회가 교육하도록 이끌어 가는 힘이요 영향력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교육지도력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개 교회마다 교육지도력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 전체가 교육지도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들의 교회 안에 교육하고자 하는 열정, 교육하고자 하는 욕구가 차 올라야 한다. 교육하고자 하는 바람이 일어나야 한다.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다. 성숙만을 위한 방편으로서도 아니다. 이 보다도 점점 쇠약해져 가는 교회공동체의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교회가 제2,제3의 영적 부흥을 맞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거룩한 교육의 바람이 일어나야 한국 교회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이러한 교육의 불꽃이 활활 타오를 때, 교육지도력이 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교회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 전체가 교육적인 사고, 교육적인 지원, 교육적인 배려로 충만해야 한다. 전 교회가 교육을 들고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교회마다 교육지도력을 일으켜야 한다.


Ⅲ 교회 교육지도력의 개발의 구조 이해

교회의 교육지도력을 형성하는 그룹은 크게 네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목회 차원의 교육지도력 그룹이다. 기관으로는 당회, 제직회가 이 그룹에 속한다.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목회자와 당회원들이다. 이 그룹은 교회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정책결정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교육적 영향력도 대단하다.

두 번째는 교육위원회 차원의 교육지도력 그룹이다. 기관으로는 교육위원회와 교회학교 집행부를 들 수 있다.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교육목사와 교육위원장 그리고 부서장들이다.

세 번째 그룹은 교회 학교의 각 부서 차원의 교육지도력 그룹이다. 기관으로는 단연 각 부서들이다. 대표적인 지도자로는 임원교사를 들 수 있다. 학생들의 가정 또는 부모들은 이 그룹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 번째 그룹은 자치기관 차원의 교육지도력 그룹이다. 기관은 각 부서의 자치회이며 중심적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부서의 회장단이다. 교회의 교육지도력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 네 차원의 지도력 그룹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교육적인 지도력을 향상시켜가야 한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1. 목회 차원의 교육지도력의 개발

교육을 통하여 바르게 양육받은 교회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더욱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교육에는 소홀하고 숫자 놀이에만 급급했던 교회는 위기에 대처할 신앙적인 능력이 그만큼 미약할 수 밖에 없다. 한국 교회 안에 교회 성장에 위기가 찾아오면서 점차 교육에 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목회자들 사이에 교육목회에 관한 관심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회원들 가운데도 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이해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비록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교회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총회차원에서도 교육사 제도를 결의한 바 있다. 그리고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한 교육전담 목사를 찾는 교회가 늘고 있다.
이는 교육에 관한 관심과 필요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예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교회교육이 제자리를 찾고 교육목회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자와 교회지도자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교회 목회적인 차원의 교육적인 지도력 없이 교회교육이 정상화되고 활력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본 연구원에서도 '교육지도자 연수과정', '교육목사 세미나' 등을 통해 목회 차원의 교육지도력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당회원 연수나 세미나 등을 통하여 당회 차원에서부터 교육적인 사고가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육비 지출을 마지못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구조에서 교육비 지출을 우선순위에 두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비록 당장 눈 앞에 효과가 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교육에 투자하고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사고가 확산되어 가도록 해야 한다. 이 그룹은 교회에서 교육적 지도력의 최고 위치에 있다. 그 만큼 이 그룹의 교육적 의지는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그룹의 교육지도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담임 목회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노회, 총회 차원의 지원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2. 교육위원회 차원의 교육지도력 개발

지금까지는 주로 교육지도력하면 교사교육을 떠올려 왔다. 교사교육 역시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지도력의 허리에 해당되는 교육위원회 차원의 교육지도력 개발에는 무관심해 왔다. 소위 이 그룹이 교회교육 지도력의 중간지도력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들이 어느 그룹보다 더욱 전문적인 교육지도력을 갖도록 배려되어야 한다. 그냥 관리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곤란하다. 관리를 하더라도 교회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안목과 비전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간지도력의 개발은 시급한 과제이다. 교육위원장과 부장 부감을 위한 전문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교회교육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 전문적인 이해와 신앙적인 안목을 갖고 관리자의 자리에 앉도록 해야 한다. 돈으로 부장한다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

내 열심만으로 부장을 한다는 생각도 중간 지도자에게는 맞지 않다. 지도자는 지도자의 사고를 해야 한다. 교육전도사의 문제도 그렇다. 일반대학 졸업 후, 신대원 입학으로 몇 개월만에 교회학교 교사에서 부서를 책임지는 교육지도자의 중책을 떠맡게 된다. 그러기에 이들 초보 교육지도자를 위한 교육은 너무나 중요하다. 본 연구원에서는 교육전도사들을 위하여 총회교육부의 협력을 받아 '교육전도사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교육전도사가 되기 위하여 받아야 할 최소한의 교육과정으로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제3기 수료를 통해 약 150명 가량의 수료자를 배출하였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총회가 결의한 교육사제도에 대한 후속조치가 속히 이루어져서 정착이 되었으면 한다. 이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교육위원장, 부장, 부감을 위한 교육전문화 과정도 개설이 되었으면 한다. 이는 평신도 지도력 개발과도 맞물려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개 교회가 감당하기 어렵다면 시찰회나 노회 아니면 총회 차원에서라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사실 교회 교육의 중간지도력의 개발은 총회적인 차원에서 한국 교회 전체가 힘을 모아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3. 교사 지도력의 개발

교사들은 교회 교육의 전위대라 할 수 있다. 교사가 살아야 교회교육이 산다. 교사는 군대의 일선 지휘관과 같다. 교회교사는 영적 전쟁터의 일선 지휘관이다. 그러기에 교사지도력의 개발은 교회 교육지도력 개발의 근간이 된다.

교사들을 위한 지도력 개발은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영적지도력의 개발이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교회 교육의 사활이 걸린 영역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교사 지도력 개발에서 이 부분이 무척 취약했다. 교회 생활 몇년 이상이고 세례를 받았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교회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영적으로 무너지고 넘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영적지도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교사는 영적지도자이다. 교사는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영성이 살아 있어야 영적 지도자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둘째, 교육적 지도력의 개발이다. 교육은 그냥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일반 교육 틀에서 수십 년을 교육받으며 지내온 교사들이기에 일반 교육이 심어준 거듭나지 못한 이론이나 원리나 신념들 심지어 신화에 길들여져 있다. 이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서는 기독교교육을 하는 교사로 재교육되어야 한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지 않고는 바람직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로새3:10). 이 말씀은 교회학교 교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거듭나지 못한 지식은 영적 지도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행정적 지도력의 개발이다. 출석 관리, 학생기록부 관리, 수련회 기획-실행-평가, 각종 문서 관리, 효과적인 의사소통 등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행정적 지도력의 일부분이다.
특히 갈수록 기획 능력의 배양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지도력 개발의 세 가지 영역은 교사 차원 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의 지도력 개발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사지도력 개발은 주로 교육적 지도력의 개발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회복되어야 할 부분은 영적 지도력의 개발이다.
불타는 영성의 복원이 시급하다. 영적 지도력 없는 교육적 지도력은 머리만 키우는 교육이 될 뿐이다. 영적 지도력의 개발은 힘을 잃어가는 교회교육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다. 이는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창세기2:7) 하나님의 사역을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급이나 신앙 경력만으로는 결코 영적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생활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영성'이 되어야 한다. 영력이 아니라 영성이다.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력은 기형화된 카리스마를 만들뿐이다. 이는 바람직한 지도력이 못된다. 영력은 영성적 실천을 통해서 검증되고 극대화된다. 영성적 실천을 통해 검증되지 못한 영력은 위험하다.

마태복음 6장의 거짓 지도자들처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는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다. 우리 교회학교에 이러한 영적 지도력의 개발이 시급한 과제이다.

4. 자치기관 지도력의 개발

자치기관은 교육의 수혜자의 위치에 있는 기관이다. 그러면서도 자치기관의 임원은 자치기관의 지도자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을 위한 교육은 자치기관이 활성화되고, 교회교육이 학생 중심의 교육이 되도록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대개 자치기관의 임역원들은 미래 교회 지도력의 중추가 된다. 이들에게 일찍부터 지도력을 길러주고 지도자의 비전을 심어주는 것은 미래교회를 위해서 의미 있는 투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역원 지도력의 개발은 그 동안 교회교육에서 방치되어 온 부분이다. 몇몇 소수의 교회에서 '임역원 수련회' 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고는 있지만 지도력 개발이라는 측면보다는 사명감 고취 내지는 헌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현실이다. 좀더 포괄적으로 '임역원 지도력 훈련' 이라는 차원에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교회의 상황,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상황, 자치부서의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필요한 과목들을 개발하여 '임역원 지도력 수련회'를 가졌으면 한다.

Ⅳ 지도력 개발의 방향

1.지도력의 수준에 따라 훈련의 내용도 달라야 한다.

목회 차원의 지도력과 자치기관 차원의 지도력이 같을 수는 없다. 그 깊이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지도력의 수준에 맞는 지도력 개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목회, 교육위원회, 교회학교와 부서, 자치기관 등 각각의 수준에 합당한 지도력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2. 교회의 형편을 고려한 지도력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마다 취약한 부분이 있다. 교사들은 훌륭한데 부장이나 부감 또는 교육위원회에서 뒷받침을 잘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상위 지도력에서는 열심을 보이는데 하위 지도력이 개발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마다 어떤 그룹의 교육지도력이 취약한지를 진단해 보고 약한 부분의 지도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3. 중간 지도력의 개발에 대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의 경우, 지도력 개발이라고 하면 주로 교사교육을 생각했다. 교회 공동체의 허리인 중간 지도력에 해당되는 교육위원회 차원, 부장, 부감의 지도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소홀해 왔다. 대개 지도력을 갖도록 훈련하지는 않고 임명하기에 급급했다. 중간지도력을 개발하고 극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간 지도력에 해당되는 지도자의 경우, 영적인 지도력과 교육적인 지도력 그리고 행정적인 지도력이 어느 정도는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위원회의 교육지도력 개발 교육전도사의 지도력 개발, 부장부감의 지도력 개발 등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으면 한다.


Ⅴ 닫는 글

교회학교가 안된다. 성장이 멈추었고, 침체의 늪을 헤쳐나갈 힘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거품을 빼고 다시 무릎을 꿇을 때다. "내 양을 먹이라"하신 주의 당부를 듣고도 가르치는 일에 소홀히 했음을 회개해야 할 때다. 숫자만 계산하면서 속으로 쇠약해져 가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통회해야 할 때다. 다시 무릎꿇고 기도하며 교육하려는 힘을 회복하고 교육하려는 의지를 세워가야 할 때다. 교회학교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교육 전도사에게 떠 넘기고 있을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 교육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말씀을 배우고 배운 말씀을 실천하고, 기도를 배우고 배운대로 기도하고 기도한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교육하려는 의지가 솟구칠 때, 교회는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교육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고,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서실 것이고, 가르치는 영이신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교육하심에 순종하고 따라나서는 마음이다. 교회들이 교육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들의 교회마다에 교육하려는 의지가 타오르는 불같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

탁월한 지도자가 있으면 교육이 흥하고, 지도자가 없으면 교육이 내리막을 걷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교육은 한 두 사람의 지도자의 역량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전과 지도력>
지금 필요한 것은 비전있는 지도력이다. 교회학교가 비전을 잃어가고 있다. 꿈을 잃어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리더쉽은 비전으로 시작된다. 비전에 대한 헌신이 사명이고, 사명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룩해 감으로써 완성된다,' (존 학가이, 「미래는 진정한 리더를 요구한다」159.)

<지도력과 동기부여>
지도자는 있으나 지도력이 없다.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교회학교는 바쁘다. 새로운 지도자들 맞이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에 따라 있다 없다 하는 교육지도력으로는 안된다. 지도력의 개발은 지도자 발굴보다 중요하다. 탁월한 지도자 몇 사람으로는 안된다. 지금 우리 교회교육에 필요한 것은 탁월한 지도력이요, 성숙한 지도력이다. (이 부분은 공동체 차원의 리더쉽과는 거리가 멀다. 지도자론에 가깝다.)

헤드쉽(headship)과 리더쉽(leadership)은 다르다. 헤드쉽은 직권(職權)이다. 자리, 위치, 지위가 보장해 주는 힘이 바로 헤드쉽이다. 헤드쉽을 강조하면 귄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극단적인 헤드쉽은 독재권력이다. 헤드쉽은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친 헤드쉽은 오히려 해롭다.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헤드쉽을 주장하고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성경은 헤드쉽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헤드쉽을 이방인적인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헤드쉽 대신에 종의 자세(servantship)을 가르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10:44).
리더쉽은 귄위나 권한에서 나오는 강압적인 힘이 아니다. 부드러운 힘이요, 영향력이다.

- 고용수 (교수,장신대 기독교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