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따분해 질 때면

i Pod, i Phone, i Pad, i Sad.

우리에게 IT세상을 가져다주었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떠난 날, 신문들은 애도하는 마음을 ‘i Sad’ 한 단어로 표현해 냈다. 한 디지털 사용자는 “하나님도 스마트폰이 필요하셨나 보다”고 위트 있게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IT세상만 남긴 게 아니다. 그가 남긴 것 중 하나가 말이다.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살아보니 돈은 중요하지 않더라.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오늘 정말 멋진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진짜 예술가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하지만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우리가 오래 기억해야 할 말은 이것이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럼 당신은 정말로 잃을 게 없다.”

실제 그는 희귀병에 걸려 매일같이 죽음과 싸웠다. 그의 죽음에 대한 단상을 더 길게 엿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연설문이다. 미 스탠퍼드대에서 긴 시간을 할애해 그는 이런 고백을 한다.

“17세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옳은 삶을 살 것이다.’

이 글에 감명 받은 나는 그 후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게 인생의 고비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죽음 앞에서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덧붙여 이런 말도 한다. “아무도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이래서 죽음의 끝은 삶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말하게 된다. 인생을 뜻하는 옛말에 ‘죽살이’란 말이 있다. 죽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죽살이’에서 하루하루를 죽음을 향한 행진으로 받아들였던 선조들의 인생철학을 엿보는 듯하다. 더구나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을 전제하지 않은 인생은 가벼울 수밖에 없다.

중국 송(宋)나라에 주신중은 무릇 인생에는 오계(五計)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가 말한 오계란 다섯 개의 계획을 말하는 것으로 생계(生計)가 그 첫째며 다음이 신계(身計), 그리고 가계(家計)와 노계(老計), 마지막으로 사계(死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生計란 먹고 사는 문제로 내 일생에 대한 설계를 의미하며, 身計는 몸가짐을 어떻게 하고 사느냐는 것으로 건강계획을 갖고 있어야 하고, 家計란 집안을 이끄는 문제로 가문의 장래에 대한 꿈을, 老計는 노년에 대한 설계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死計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에 대한 계획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생계(生計)나 신계(身計) 그리고 가계(家計)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데 흔히 놓치기 쉬운 것이 사계(死計)다. 예기치 않은 죽음, 즉 별안간 맞는 죽음을 최상의 죽음으로 여겼던 이들에게 죽음의 계획은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음은 준비될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인식에서 가사(假死)·임사(臨死) 체험이라 불리는 근사(近死·Near-death) 체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나비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