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다고요?

                                                                                                         이민규 교수

“절대로 우울증일 리가 없어요. 난 완벽하지는 않아도 정말 헌신된 예수님의 제자거든요!”

이런 사고는 우울증 이외에 우울증에 빠진 것 때문에 추가로 괴로움을 더하고 죄책감까지 느끼게 하는 최악의 경우다. 주변의 시선도 문제다. “목회자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다고?” “아니 어떤 상황에서도 늘 믿고 신뢰하면 주님이 평안을 주신다고 설교하더니, 다 위선 아냐?”

예전에 사모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자신의 우울증보다 사모가 우울증이 있다고, 교인들이 수군댈까 봐 정말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꽤 된다. “이젠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고 찬양하고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나 봐요. 잠시 우울감에서 회복되는 것 같아도 다시 우울해요. 이젠 신앙도 도움이 안돼요!”

기독교인 중엔 누구라도(우울증 환자 포함!)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마음이 평온하고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있다.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그래서 막상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평온하고 기쁨에 넘치게 보여야 하기에 강박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이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이 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이다. 우울증은 부정적인 태도나 믿음이 없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사악한데도, 신앙이 전혀 없어도, 늘 불평불만인 사람 가운데서도 우울증과 거리가 먼 사람이 많다. 반대로 신앙이 좋은 사람도, 늘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 중에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바울도 때론 죽을 것 같이 괴로워했다.

교회사에서도 훌륭한 신앙의 영웅 중엔 우울증에 시달린 이들이 부지기수다. 마틴 루터도, 찰스 스펄전 목사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스펄전 목사는 우울증이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질병임을 간증하기도 했다. 스펄전 목사가 신앙이 없어서 우울증을 앓았다면 역사 속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중증 우울장애 환자여야 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너무나 복잡해 아직까지 미지의 세계지만 주로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화학적, 신체적 요인에서 찾는다. 우울증(Depression)이란 영어로 내리누름(to Press Down)이란 뜻이다. 삶의 모든 것을 내리누르는 우울한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면 일상생활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게 된다.

우울증에는 정상적인 우울증과 치료받아야 할 우울증이 있다. 실연했거나, 원하는 결혼을 못했거나, 직장을 얻지 못해 생활이 불안정해서. 오랜 질병에 시달릴 때, 가족을 사고로 잃었을 때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런 경우 환경이 좋아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문제는 병리적인 우울증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는 것과는 다르다. 1년 이상의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는 우울증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장애인 등록이 되는 정신장애다. 우울증은 절대 개인적 의지의 약함으로 발생하거나 또한 자신의 의지로 없앨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우울함은 일차적으로 뇌를 비롯한 몸에서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이 화학적 불균형들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다(사실, 신앙이나 긍정적 사고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그런데 이 감정이 통제 불능인 상태로 지속돼서 사람의 마음을 병적으로 지배하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라 할 수 있다.

우울증을 앓는 이의 경우 우울한 감정은 그의 의지보다 훨씬 강하게 그를 지배한다. 우울한 생각과 감정을 뿜어내는 무의식에 대해 사람의 의지는 속수무책이다. 이미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이 고장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심한 상태가 되면 망상 증세도 나타난다(대략 10%의 경우). 그래서 치료받아야 할 우울증을 앓는 이에게 가장 잘못된 해결책은 환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우울증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당신이 기독교인임에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자책감을 가지지 말기 바란다.

어쩌면 당신의 교회 담임 목사님이나 사모님도 현재 혹은 과거에 우울증에 시달렸을 수 있다. 우울증을 앓았던 이들이 오히려 남들의 정신적 고통을 잘 이해하고 돕기도 한다. 자신이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영적인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마치 감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듯이. 우울증은 도움을 받아야 할 질병이지 정죄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교회 전도사들에게 종종 듣는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교회에서 다들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우울증을 믿음 없음의 동의어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런 잘못된 관점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그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들도 주변에 많이 본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지 영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아니다. 약함 가운데서 오히려 많은 이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세밀하게 체험하기도 한다.

둘째, 우리가 아무리 영적인 사람이라 해도 천상에 사는 것이 아니다.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죄악이 가득하고 불안한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만 가지고는 행복하기 어렵다. 사람에겐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고 정서적 나눔을 통해 기댈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울증이 해결되기 어려울 때는 믿을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바란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우울증을 앓아도 주변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감정에 공감해주는 이가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된다.

이것은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때론 우울증의 원인인 뇌와 신체에서 호르몬과 화학성분의 이상을 해결하면 우울증 증상이 많이 완화될 수 있다. 약물이 아닌 자연치료 방법으로는 정기적인 운동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울감을 막는 세로토닌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마치 관절을 삐거나 뼈에 금이 간 것과 같은 질병일 뿐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반드시 전문의의 도움을 닫기를 바란다. 우울증을 내버려두어 중증이 되기 전에 도움을 받는다면 현대의학의 치료 효과는 매우 좋다.
    
셋째, 기억하라.

필자는 우울증을 앓는 많은 기독교인의 고백을 들었다. 비록 힘든 삶이지만 이 또한 자신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놀라운 은혜의 통로였다고.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의 고백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