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하는 태도를 버리십시오

민수기 11:1-3


  9월 한 달간 민수기 말씀을 통해서 태도시리즈 설교를 합니다.

  ‘태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 어떤 사람의 많은 것을 설명해주고 또한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이번 9월에는 민수기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불평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스스로 생각할 때 불평하는 편이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아마 오늘 설교의 앞부분을 듣자마다 ‘왜 좋은 주제가 많은데 하필 불평이야?’라고 생각을 하셨다면 아마도 불평하는 스타일이실 것입니다. 


  왜 불평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까? 성경이 바로 이 태도에 대해서 여러 번, 여러 사람의 예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에는 12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의 반응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민14:2)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듣고서 원망합니다.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평은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극단적인 말로까지 확대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너서 만나를 먹고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서 큰 불평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탐한 사람들로부터 분명 두 가지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보고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음의 말로 이스라엘을 위로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9)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불평의 반대는 ‘믿음의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불평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말이 위력적입니까? 믿음의 말이 위력적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을 보면 부정적인 불평이 더 위력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14:10)


  온 회중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1절)


  하나님은 불평하는 백성을 향해서 나를 멸시하는 백성, 믿음이 없는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불평은 광야 백성의 모습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사실 인생의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불평하게 합니다. 우리에게서 믿음의 세계를 깨뜨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돌아봄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고 놀라운 기적 가운데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앞에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불평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장 큰 기적들을 체험했음에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출애굽한 1세대들은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 바로 불평입니다. 단순히 어떤 태도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냐? 어떤 사람들이냐의 질문이 여기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불평하는 광야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냐? 

  믿음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이냐?를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1. 불평은 상황에 이끌리는 태도이다.


   이끌림 – 사람마다 그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에 이끌리고 있습니까?


< 제가 한국 교회를 섬길 때 몽골로 단기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 집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부탁인지 궁금해 하는 저에게 집사님은 ‘불닭볶음면 한 상자’를 주셨습니다. 몽골에 자신이 아는 선교사님이 계시는데 한국에서 교사직을 그만두시고 몽골에 있는 선교사 자녀학교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사역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비량으로 선교를 하다가 보니 여러 가지로 넉넉하지 않는 삶을 자녀들과 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평소에 매운 것을 좋아하셨던 선교사님을 생각하면서 ‘불닭볶음면’을 준비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


  불닭볶음면을 들고 서 있는 집사님의 모습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그 분의 태도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 태도에 들어있는 마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고서 몽골에 가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불닭볶음면을 드렸더니 선교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십니다. 라면 한 상자가 아니라 자신을 기억하며 기도하면서 준비한 그 마음 하나에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1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시내산을 출발해서 3일을 행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또다시 악한 말로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1절)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3일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받는 동안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불순종했던 3천명의 사람이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이스라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 백성이 무엇에 이끌리고 있습니까? 자신들이 만난 상황입니다. 상황에 이끌리는 사람들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수르 광야에 이르렀을 때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불평을 쏟아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은혜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광야 백성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불평은 대책없는 분노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불평을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불평합니다. 왜입니까? 불평이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불평할 때 그 불평함을 통해 내 감정을 풀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 아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불평할 일들만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불평할 일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부터 시내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비전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말씀을 받는 시간입니다. 십계와 성막 짓는 법과 수많은 말씀들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믿음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함께 꿈꾸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시내산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안에 있고, 믿음이 시작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에 이끌리는 불평이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11개월 동안 받은 비전과 영광에 이끌리질 못하고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만나서 그것에 이끌리고 또다시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불평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합니다. 

  사실 장정만 50만명인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기적과 은혜들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상황에 이끌리는 광야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모세를 원망했는데 이제는 원망이 쌓여 하나님을 향해 직접적인 불평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이 쌓여서 악한 말까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놀라게 되는 영성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을 따라가는 가나안 백성의 모습이 요셉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에 이끌리는 광야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까?

  믿음에 이끌리는 요셉과 같은 가나안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까?




2. 불평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태도가 그 사람입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가 그 사람을 만듭니다. 좋은 사람, 거룩한 사람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태도, 선한 태도를 가지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에서 얼마나 좋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 어린 시절 간디의 자서전을 읽다가 너무나 놀란 적이 있습니다. ‘간디의 신발 한 짝’이라는 일화입니다. 어느 날 사람이 너무 많은 기차를 타고 가던 간디의 신발 한짝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나머지 신발 한짝을 벗어서 기차 밖으로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 행동을 본 어떤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 짝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또 다른 짝을 던지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


  간디의 이런 태도가 간디의 인생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태도, 나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는 태도가 간디의 인생을 아름답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오늘 주제인 불평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불평이 무엇입니까?

  

  1) 잘못된 습관이며 오래된 습관입니다.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가지 반응이 있다.


     < 사과 한 상자를 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좋은 사과부터 먹습니까? 아니면 나쁜 사과부터 먹습니까? 좋은 사과부터 먹는 사람은 사과 한 상자를 다 먹을 때까지 좋은 사과를 먹습니다. 그러나 나쁜 사과를 골라먹는 사람은 끝까지 나쁜 사과를 먹기 마련입니다. >


  사과 이야기가 아닙니다. 좋은 사과부터 골라먹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하면서 사과를 먹습니까? 좋은 말을 하면서 먹을 것입니다. 감사의 말, 기쁨의 말을 할 것입니다. 반대로 썩은 사과부터 먹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썩은 말을 하면서 사과를 먹게 될 것입니다. 


  같은 일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의 고단한 행군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불평하는 태도입니다. 


  사실 출애굽기의 시작부터 이스라엘은 불평하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노예로서 벽돌을 굽던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닥친 모진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 불평이 얼마나 컷던지 하나님께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불평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쌓여진 불평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노예로 살면서 계속해서 불평하던 습관이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 나와서도 그들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불평을 다시 꺼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받고서 그들은 그곳을 ‘다베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진노의 불을 만난 백성이라는 소리입니다. 왜입니까? 불평이 끊어지지 않아서입니다. 잘못된 습관, 오래된 습관이 멈추지를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을 광야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떤 백성입니까?


2) 긴 안목이 아닌 짧은 안목의 태도


  사람들이 고난을 만날 때 두 가지 태도를 가진다고 합니다. 

첫째는 연단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무슨 뜻이 있을꺼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찾으려고 합니다. 뜻을 찾으면 고난을 지나갑니다. 

둘째는 불평의 태도입니다. “왜 나에게만?”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광야 3일 길을 걷는 동안 없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 합니다.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작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보지를 못합니다.


< 지리산 노고단에 목사님들과 산행을 갔습니다. 쉽지 않은 산행입니다. 경험이 없는 우리는 언제 정상이 나오는지를 계속해서 묻게 됩니다. “언제 다 가나요?” 오랜 산행의 경험이 있는 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또 한참 산을 올랐는데도 정상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다왔는가 싶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또 묻습니다. “언제 다 가나요?” 그 목사님이 또 대답해 주십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


  산행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불평은 짧게 보는 태도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쓸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 담는 사람이 있고 쏟는 사람이 있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면 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평을 담습니다. 문제를 담습니다. 말을 담습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쏟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찾습니다. 불평을 쏟습니다. 문제를 쏟습니다. 말을 쏟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십니까?

  짧은 안목입니까? 긴 안목입니까?


3) 자신을 죽이는 잘못된 습관 


  불평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이 불평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상황에 이끌려 불평을 하는 동안에는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죽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


 < 제가 인천에서 부목사를 할 때 담임목사님이 매일 저녁 기도회를 만드시고는 저에게 그 기도회를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저녁 9시만 되면 기도회를 인도해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도회까지 인도해야 하니 목이 쉬어서 회복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제게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업무를 하고나면 다시 저녁 기도회를 해야 하니 친구를 만날 시간도,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들이 저를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을 향한 불평이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통해서 성령 충만해서 기도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의 훈련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기도를 드린 시간이었습니다. > 


  내가 죽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살아나는 시간이 있고, 내가 불평을 하면서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죽는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3. 불평하는 태도를 버리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불평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고 버려야 합니다.


  1) 불평은 죄입니다. 버리십시오.


  불평은 우리에게서 믿음을 빼앗습니다. 그래서 죄입니다. 불평하는 동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버려야 합니다. 불평에는 하나님이 일으키실 역사가 없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돌아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불평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모세는 불평이 없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불평이 없습니다. 믿음의 자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불평이 없는 것입니다. 

   

  2) 불평이 여러분을 죽이기 전에 버리십시오.


   불평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칩니다. 계속 불평해 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죽습니다. 불평은 주위 사람도 죽입니다. 불평하는 사람 옆에 있어보십시오. 같이 죽습니다. 불평하는 사람과 계속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도 함께 흔들립니다. 불평하는 사람 둘만 모여 보십시오. 그들이 지옥을 만들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3) 불평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니 버리십시오.


   불평하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모든 것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평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사단은 불평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평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4) 불평은 아무 것도 바로 잡지 못합니다.  버리십시오.


   불평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정작 자신은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불평은 좌절감이기 때문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좌절감에 빠져 입으로만 좌절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않는 불평에 자신을 맡기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