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다운 교회를 향하여
행 2:42-47
토마스 쿤이 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은 지성인들 사이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해 가는데, 그 발전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개로 된 단계적인 구조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전과학(Prescience) 단계입니다. 과학이 아직 미성숙한 상태입니다. 일반적으로 합의된 이론과 방법론이 없는 단계입니다. 즉 패러다임이 형성되기 전단계를 말합니다.
둘째, 정상과학(normal science) 단계입니다. 합의된 이론적 기반과 방법론이 세워지고, 이것을 따라 과학이 작동되는 단계입니다. 즉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 단계를 말합니다.
셋째, 위기(crisis) 단계입니다. 기존의 이론과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없고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대거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서 혼란이 가중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저자 토마스 쿤은 이런 과학발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위기가 나타나면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위기를 돌파해 보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이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큰 시련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때로는 발전을 위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고, 개혁과 발전의 새로운 미래를 맞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사태가 3년이나 이어지면서 우리는 큰 위기를 겪어왔습니다. 개인적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큰 위기를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코로나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위기 속에 함몰되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지만, 잘 하면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교회가 겪어온 위기는 한 마디로 말해서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속주의 물결 속에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가고 있던 중에 코로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게 됐고, 사역도 대부분 중단됐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중에 교회가 심각하게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초창기와 달리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물론 여전히 조심해야 하고 방역에 힘써야 하겠지만, 예배나 사역을 중단해야 할 만큼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본격적으로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일에 힘쓰고자 합니다. 축소되었던 예배를 온전히 회복하고 중단되었던 사역들을 재개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를 향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새해의 교회 표어를 ‘교회다운 교회를 향하여’라고 잡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다운 교회를 회복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가 무엇인가?
우선 새삼스럽지만 교회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지향하고자 할 때 교회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아는 일이 그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마 6: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 단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 원어 ‘에클레시아’(έκκλησία)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이 풀이를 근거로 교회를 이렇게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함께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쓴 편지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교회라는 말의 뜻을 보다 깊이 있게 그리고 신학적으로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엡 1: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한 마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엡 4: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바울은 교회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연합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인체의 각 마디와 지체들이 연합하여 몸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성도들 각자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 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믿음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여기 주님께 함께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우리가 교회입니다. 지금 말씀을 나누며 교회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먼저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의 모임들과 달리 말씀대로 연합하여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반석’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굳건한 기초 위에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반석이란 앞의 16절에 나오는 베드로가 주님의 질문에 답한 고백을 말합니다.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니까 이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63빌딩은 19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습니다. 한강변 모래땅에 남산 높이의 빌딩을 짓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빌딩을 짓는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공사가 바로 기초공사였습니다. 무려 2년 동안 든든한 기초 쌓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저 높은 빌딩이 비록 모래땅에 세워졌지만 든든하게 설 수 있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교회의 기초는 올바른 신앙고백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구원자이시라는 철저한 신앙고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를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공동체가 올바른 신앙고백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단의 미혹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세상의 종교다원주의에 휩쓸려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의 온전한 신앙고백 위에 굳건하게 서야 합니다.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 다음으로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을 보면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이후 교회가 시작됐고,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역동적으로 세워져갔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당시 교인들이 교회를 어떻게 섬겼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두 가지 점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는 교회를 뜨겁게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교인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에 모였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에 모여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부르심을 따라 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교인들은 자기들이 이 교회를 선택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설교가 좋고, 교인들이 좋고, 교회 분위기가 좋아서 이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교회를 선택하는 것인 줄로 착각합니다. 마치 백화점에서 여러 매장을 둘러보면서 그 중에 마음에 드는 매장을 택하고, 그리고 그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것처럼 교회를 선택하고 설교자를 선택하려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신혼부부가 결혼을 할 때 겉으로 보면 자기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 사연이 있지만 결국 자기들이 마음에 맞는 사람을 택해서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영안을 열고 보면,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서로 사랑하게 하셨고, 결국 결혼하여 가정을 세우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우리가 이 교회에 다니게 됐습니다. 이 교회교인의 자녀로 태어나 이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이 교회 주변으로 이사 와서 이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이 교회교인에게 전도 받아 이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저마다 사연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교회교인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당시 교인들은 교회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온 몸으로 사랑했습니다.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모이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저는 설교하면서 모인 성도들을 둘러봅니다. 눈에 띠는 분들이 있습니다.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예배에 참여하는 분들입니다. 용인과 분당에서, 수원과 안산에서, 인천과 강화에서, 파주, 의정부, 그리고 남양주 그 먼 거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십니다.
저는 이분들을 보며 크게 힘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설교 준비를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는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교우들이 많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운 생각을 갖게 됩니다.
행 4:36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팔아 교회에 헌금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은 당시 예루살렘교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돈을 헌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헌금 때문에 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교회가 마땅해 해야 할 일들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당시 교인들이 이렇게 교회를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시기를 겪으며 한국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헌금수입이 적게는 5%에서 많게는 15%까지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지원하던 것 줄이고, 선교도 축소해 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교회는 코로나 기간에도 헌금이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이나마 헌금이 늘어왔습니다. 현장예배 출석은 줄었는데 헌금이 약간 늘은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답은 하나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든든히 서가려할 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교회 사랑입니다. 새해에 우리교회, 상도중앙교회를 더욱더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사역에 헌신했다는 점입니다.
본문을 보면 교회가 세워지면서 다양한 사역들이 시작됐고, 그 사역들이 발전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의 열매들로 인해 교회가 부흥했고, 그리고 교회가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발전시켜온 사역들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가 레이뚜르기아(Leiturgia) 사역입니다. 예배, 예전, 기도, 찬양과 같이 직접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을 말합니다.
둘째가 디다케(Didache)입니다. 성경공부나 교육프로그램과 같이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여 세우는 사역입니다.
셋째가 케리그마(Kerygma)입니다. 전도와 선교와 같이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입니다.
넷째가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고 나누는 사역입니다.
다섯째가 디아코니아(Diakonia)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돕는 사역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저마다 이런 다양한 교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역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본문 47절에서 그 열매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교회는 참 좋은 곳이고 가고 싶은 부러운 곳이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도 풍성하여 교회가 날로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이런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다양한 사역에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교회가 역동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주변 이웃들이 우리교회를 보며 칭찬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 부흥해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3년을 지내며 우리가 많이 위축됐습니다. 웅크리며 꿈도 비전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향하여!” 우리의 꿈과 비전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들이 연합하여 교회를 이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믿음 위에서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더욱 교회를 위해 헌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