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 본문 역대하 24:15-19 >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년이 자신의 삶에 큰 가르침을 주실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고을고을마다 다녀보았지만 위대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너무 지친 소년이 나무 밑에 주저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맑은 눈동자를 지닌 한 노인이 지나가다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젊은이, 왜 그렇게 방황하고 있는 거요?” 소년이 위대한 스승을 찾아 집을 나셨지만 아직까지 스승을 찾지 못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자네가 찾고 있는 위대한 스승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겠소. 지금 곧장 집으로 돌아가 보시오. 그러면 한 사람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올 것이요. 그 사람이 바로 자네가 찾는 당신의 위대한 스승이라오.” 노인의 말을 들은 소년은 빨리 스승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두드리며 들어서자 한 여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와 소년을 맞아주었습니다. 그 위대한 스승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스승,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위대한 스승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네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떤 사람이 좋은 스승일까요?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좋은 스승인가 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내가 추구하는 바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면 돈을 벌 수 있는 비법을 잘 가르쳐주는 사람이 좋은 스승일 것입니다. 운동선수에게 좋은 스승이란 그 운동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잘 지도해 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생을 멋지고 보람되게 살려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자신을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는 스승이 좋은 스승입니다. 때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바르게 지도해 주는 분이 좋은 스승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좋은 스승은 누구일까요? 아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신앙의 좋은 스승이 있습니까? 나에게 좋은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남 유다의 8번째 왕인 요아스에게도 참 좋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입니다. 요아스에게 여호야다는 그의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스승이었습니다. 여호야다의 이야기는 유다의 제7대 왕인 아달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이었던 아달랴는 남 유다의 왕이었던 여호람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공주가 남 유다의 왕비가 된 것입니다. 이 아달랴는 자기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유다 왕국의 왕족들 씨를 말려버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자식들을 다 죽였는데, 그 때 여호야다의 아내였던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 왕의 어린 아들이었던 요아스를 몰래 빼돌려 죽음을 면케 했습니다. 그게 요아스가 불과 한 살 때였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구한 요아스는 성전에 숨겨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러던 사이 아달랴가 남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이었던 아달랴는 자기의 어머니 이세벨처럼 바알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유다에 바알 숭배자인 아달랴가 왕이 되자 제사장을 비롯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아달랴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달랴는 다윗 왕의 혈통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여호야다가 중심이 되어 아달랴에 반역을 들고 성전에서 몰래 숨겨져 자라던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그게 요아스가 불과 7세 때의 일입니다. 결국 아달랴는 죽임을 당하고 요아스가 7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됩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요아스는 나름 괜찮은 왕이었고, 바른 신앙으로 백성을 다스리려 했던 왕이었습니다. 요아스가 한 대표적인 업적이 성전을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6년 동안이나 성전에 숨겨져 자라면서 성전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아하시야 왕과 아달랴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방치되면서 곳곳이 파손되었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데 열심하느라 성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아스는 왕이 된 후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도록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려, 성전을 깨끗하게 수리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 자신이 성전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 바로 전까지 이어진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앞인 14절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 성전에서 번제를 드린다는 것이 당연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하시야와 아달랴가 통치할 때에는 성전이 방치되면서 번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하고 나자 성전제사가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가 그렇게 성전을 수리하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 때문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자신에게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여호야다의 아내가 한 살배기 어린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그는 여호야다의 보호 아래 성전에서 아달랴의 눈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사람도 여호야다였습니다. 불과 7세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을 다윗의 후손(유일한 왕족)이라는 이유로 왕으로 옹립해준 사람이 여호야다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요아스의 입장에서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조언을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악당에게 약점을 잡혀 악당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끔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한 나라의 왕이 누군가의 손아귀에 잡혀 좌지우지되는데, 왕을 움직이는 사람이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들은 불쌍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요아스에게 영향력을 준 사람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제사장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참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은 요아스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여호야다가 요아스에게 어떤 정치적인 압력을 가한다거나 무언의 압박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하려 마음 먹은 것도 여호야다 제사장이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아스 자신이 제사장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보이지 않는 선한 영향력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그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12: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되.” 여호야다가 요아스에게 교훈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왕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왕궁의 예절이 무엇인지, 신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군사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교훈했다는 말씀일까요? 분명 아닙니다. 제사장이 어린 왕에게 교훈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율법을 가르쳐주고 그 말씀대로 따라 살 때 어떤 복을 받는지, 하나님을 버렸을 때 어떤 벌을 받게 될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가르쳐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어쩌면 때때로 요아스가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는 따끔한 경고를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요아스 역시 그런 여호야다의 교훈을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호야다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고 늙어서 죽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복을 다 누렸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늙어서 죽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호야다는 백성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어른이었습니다. 16절의 기록처럼, 여호야다가 죽자 백성들이 여호야다를 다윗 성 왕의 묘실에 장사했습니다. 왕이 아닌 제사장이 왕의 묘실에 장사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왕과 동등한 예우를 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백성들은 그를 존중했고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말입니다.

  여호야다가 죽었다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가 오래 살든 짧은 인생을 살든 언젠가는 세상의 것을 다 내려놓고 떠나가야 합니다. 누구나 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본문 17-1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영적 스승인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는 신앙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호야다가 죽었을 때 요아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자신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자신이 불과 일곱 살 때 왕이 되도록 자신을 적극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신앙의 가르침을 주던 스승입니다. 어쩌면 요아스 입장에서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 요아스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마음이 공허했을 것입니다. 어디에다 마음 두어야 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 때 방백들이 그에게 찾아와서 절을 합니다. 그들은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여호야다가 죽자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왕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왕에게 절을 했다는 말은 왕을 지극히 공경하는 것처럼, 왕을 굉장히 높여주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들의 마음에 품은 다른 뜻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결국 요아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길로 들어서고 맙니다. 그 결과 1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되었습니다. 어떤 진노입니까? 23절 이하에 보면, 1년 후에 아람의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군대를 이끌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요아스를 유혹했던 방백들은 다 죽었고, 성전에 있던 성물과 성전 곶간과 왕궁에 있는 보화들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열왕기하 12:18) 요아스도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신하들에 의해서 배신당하여 죽고 맙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요아스와 유다에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교사주일입니다. 교사주일에 여호야다와 요아스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학교 교사와 학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상당한 지도력도 있었고, 선을 행함으로 백성들에게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건 요아스의 영적 스승으로서 요아스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어매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권력으로 따진다면 왕에 비해 제사장의 힘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작은 권력의 사람이 자신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호야다라면 조금 다릅니다. 그는 요하스의 영적 스승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고, 또 그렇게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가 평생 하나님 앞에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살도록 여호야다가 좀 더 바르게 지도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한 사람을 바르게 이끈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기도하며 자녀들을 양육하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기 자식이라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교육입니다. 하물며 교회학교에서 잠깐 가르치는 것을 가지고 아이들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그 생명을 하늘의 생명으로 이끄는 것은 너무나도 힘겨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한 아이의 생명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덧입혀지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29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사도로서, 또 교회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고백에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든, 아니면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아 헌신하든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분명하게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통해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하시기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합니다. 주님이 주신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 여러분, 그리고 자녀들이나 손주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기를 바라시는 부모님 여러분, 또 교회를 섬기시는 봉사자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에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때 바르게 잘 가르치고 이끌어 주십시다.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었을 때 최선을 다해 수고하십시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요아스가 신앙을 버릴지라도 여호야다가 어떻게 해 볼 수 없습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사를 그만 둘지라도, 우리가 세상을 떠나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만 남을지라도 우리의 제자들과 후손들이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힘을 다해 바르게 가르치고 이끄십시다.

 

여호야다에게만 아쉬운 점이 있는 건 아닙니다. 요아스 역시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그는 불과 한 살 때부터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비록 몸을 숨겨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일찍부터 성전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다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통해서 율법을 배웠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배웠던 것들을 끝까지 지켜내야 마땅합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마음이 변질되어 신앙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어쩌면 요아스도 그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율법에서 분명하게 가르쳐준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백들이 그를 꾈 때 요아스의 신앙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끝까지 따르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언제나 그런 유혹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있고, 우리 제자들에게도 그런 유혹은 언제나 찾아옵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스승으로부터 배운 말씀, 영원한 생명이 있는 말씀에서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취미생활을 하듯이 마음이 좋고 기쁠 때에는 신앙생활을 하고, 힘들고 어려우면 포기해버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의 영혼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세상의 행복을 포기하거나 잠시 뒤로 미뤄놓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핍박이 가해지고 유혹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요아스는 스승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신앙을 버렸습니다.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결국 요아스는 불과 1년 후에 생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가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요아스가 스승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잘 따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학생들입니다. 세상의 스승은 삶과 지식의 가르침으로 제자들에게 교훈하지만, 예수님을 생명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로 제자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삶의 본을 보여주신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제자로 사십시다. 예수님은 진리를 길을 가르쳐주신 스승이십니다. 친히 생명의 길이 되어 주신 스승이십니다. 길과 진리이신 주님에게서 떠나지 않고 주님을 따라 가십시다. 어떤 유혹과 시련이 오더라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스승이십니다. 우리의 생명 다 하는 순간까지 스승이신 주님의 품에 머물러 사십시다. 그 품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고, 그 품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품입니다.

  스승이신 주님의 마음을 품고 끝까지 주님 뒤를 따라가는 주님의 제자로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