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선물
행 2:37-42
천수답(天水畓)이라고 부르는 논이 있습니다.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을 말합니다. 저수지나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대거나 지하수를 이용할 수 없어서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을 말합니다.
이 천수답은 모내기철에 충분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할 수가 없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를 낸 후에도 비가 충분치 않으면 가뭄 피해로 안정적인 수확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천수답 농부들은 그 심정이 어떨까요? 늘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짓게 됩니다. 비가 와야 할 때 충분한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애타게 하늘만 바라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의 심정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주셔야만, 일용할 양식을 주셔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주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야만 영적 삶이 시작됩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셔야만 영적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사와 능력을 주셔야만 열매 맺는 영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천수답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신앙이 천수답 신앙이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이 성령은 오직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실 때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성령을 구하고, 또 성령의 충만을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
3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씀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려고 할 때 두 가지 점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우선 “성령의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령의 선물이라고 하면, ‘성령이 주시는 선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우리말이나 영어에서 성령을 주체로 해석하는 용례가 가장 많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본문을 “그리하면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해석도 많이 쓰입니다. 바로 성령을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해석하는 용례입니다. 그래서 ‘성령이’가 아니라 ‘성령을’로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럴 때 본문을 이렇게 해석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러면 본문에서 어떤 용례가 맞을까요? 문맥을 살펴보면 두 번째가 맞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을 받고 난 뒤 베드로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아직 성령이 주시는 선물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성령의 선물이란 성령 자체를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리하면”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인과접속사’로 보고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그 결과로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누구나 그 결과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이 말이 ‘카이’(καί)라는 말입니다. 원래 이 말은 헬라어에서 ‘그리고’라는 ‘등위접속사’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원뜻 그대로 해석해보면 이렇습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
왜 ‘그리하면’이냐 아니면 ‘그리고’냐를 따질까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세례 받으면 그 결과로 성령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리고로 해석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세례 받으면 그 결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어떨까요? 한 가지 성경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행 8장을 보면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에 의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이곳을 방문하여 이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했고, 그리고 이 두 사도가 안수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건과 성령 받은 사건이 다른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는 것이 성령을 받는 전제 조건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으면 자동적으로 성령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으로 상호연결은 되어있지만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무엇을 줄까? 언제 줄까? 어떻게 줄까? 그 모든 것이 다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작정하신 때에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셔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성령을 선물로 주실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성령을 받고자 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때 그 사람이 회개했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령을 주시려고 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주시지 않으십니다. 꼭 주셔야 할 사람이라면 그가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왜 성령을 받을 때 회개가 중요할까요?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행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선 요 2:13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처음 예루살렘 성전을 찾으셨을 때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온유하신 분이 화를 내시면서 상을 들러 엎으시고 채찍으로 가축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마 21:1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고난주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다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 성전 청결사건과 같은 행동을 하셨습니다. 이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더러워진 것을 참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더러워져 기도를 제대로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더러워져 예배가 제대로 드려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3:16-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전은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이 더럽혀지면 그곳에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치 성전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가 더렵혀지면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더렵혀지면 이미 성령을 받았더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악된 생각, 악한 마음, 저지른 죄를 씻어내는 일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다 내쫓으신 것처럼 걷어내고 쓸어내고 씻어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속사람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전이라는 생각으로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깨끗하게 청소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것일까요?
우선 거듭나게 하시려고
요 3:3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3:7-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거듭난다는 것은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듭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 믿기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듭나는 일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배움을 통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훈련을 통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성령을 받은 뒤에 성령께서 우리 심령 안에서 변화를 일으켜주실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마 13:33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의 비유’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천국이 이 세상 속에서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룩으로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빵을 만드는 과정으로 비유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루 서 말이면 약 22리터나 되는 적지 않은 반죽입니다. 여기에 누룩을 조금 넣고 숙성시키면 누룩이 반죽 전체의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먹기 좋게 그리고 맛있게 변화시킵니다. 이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한 사람의 인격에, 가정에, 공동체에 임하면 그곳의 성질이 새롭게 변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우리 속사람 안에 성령이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변화합니다.
믿을 수 없던 것이 믿어집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사람 깊은 곳에서 말씀을 들을 때 ‘아멘’이 터져 나옵니다. 깨닫지 못하던 것들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아지면서 감사가 터져 나오고 감격의 눈물이 나옵니다. 할 수 없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사랑할 수 없던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다음으로 거룩하게 하시려고
살후 2: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성령 받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려 하시는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하신 것입니다.
비둘기는 몸에 기름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름을 많이 분비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비둘기를 목욕을 시켜보면 물에 기름이 둥둥 뜹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날개가 물에 흠뻑 젖지 않게 해서 잘 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름 때문에 기생충이나 이 물질이 몸에 붙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둘기는 먼지나 오물이 많은 곳에서도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둘기가 기름샘에서 나오는 기름 때문에 비오는 날에도 젖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이 악한 세속풍조에 물들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기름샘에서 나오는 기름 때문에 기생충이나 이물질에 더렵혀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사탄의 공격과 미혹에 휩쓸려 거룩을 잃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에게 분별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십니다.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 일과 세상 나라 일이 어떻게 다른지 분별하게 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느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거룩을 지켜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능력있게 하시려고
눅 24:4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강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행 1:8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강림하신 뒤 일어날 변화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바로 권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뒤에 달라졌습니다. 박해가 두려워 숨어 떨고 있던 사람들이 성령 받은 뒤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달려 나갔습니다. 끌려가 옥에 갇히기도 했고, 야고보사도는 순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습니다.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덧입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 위에 덧입혀진 힘입니다. 그 힘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악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능력있게 하시려고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도 이 성령을 선물로 받기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그 선물을 귀히 여기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 기로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흔들림 없이 거듭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 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맡겨주신 사명을 능력있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