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Ⅱ)
(약 3:13-18)
Ⅰ
지난 시간에 저는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지혜에는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 두 가지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두 가지 지혜 가운데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는 본문 말씀에 나오는 대로 땅 위의 지혜 즉 세상적인 지혜이고, 정욕의 지혜이며, 귀신의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는 땅, 즉 세상적인 성격과 정욕적인 성격과 귀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가 땅 즉 세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말은 그 지혜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알게는 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할 수는 없고, 이 땅의 것들을 소유하게 하나 영원을 소유하게 할 수는 없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질문인 인간의 시작과 존재이유 그리고 인간의 종말과 관계된 질문에는 분명한 답을 해주지 못해 인간으로 하여금 더 큰 번뇌를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가 정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말은 그 지혜가 사람으로 하여금 이웃과 화평을 추구하며 사는 것 대신 자기 욕망을 우선하며 살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가 귀신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말은 그 지혜가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인간을 유혹에 빠뜨려 결국 범죄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로 인생을 살면 안 됩니다. 분명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를 가지고는 인생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Ⅱ
오늘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위로부터 내려오지 않은 지혜에 대한 말씀에 이어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위로부터 내려 온 지혜.” 이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다른 말로 바꿔 말한다면 하늘의 지혜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일찍부터 후손들에게 ‘참된 지혜는 언제나 위로부터, 즉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은 참된 지혜는 하늘, 즉 하나님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 내용이 잠언서 9장 10절 말씀에 나옵니다. 잠언서 9장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렇습니다. 잠언서 기자는 이 말씀에서 위로부터 내려 온, 그래서 인생의 가장 큰 능력이 되는 인생의 참된 지혜는 인간의 지식추구나 자기 수행과 같은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할 때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인생의 가장 큰 능력이 되는 참된 지혜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신다 그 말입니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인생을 살아야 인간은 선한 인생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많이 받고 살 수 있습니다. 잠언서 13장 14절과 15절 말씀입니다. “지혜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진정 이 말씀 그대로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인간이 진정으로 소유해야 할 금생과 내생의 여러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분명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늘의 지혜, 즉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만이 인간에게 참된 지혜입니다. 축복하기는 이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지혜로 인생을 사는, 그래서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사는 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Ⅲ
그럼 구체적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 즉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요? 본문 17절에서 야고보는 위로부터 난 지혜, 즉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가지고 있는 내용을 여덟 가지로 말합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여러분! 위로부터 난,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여덟 가지 특징적 내용을 무엇이라고 야고보가 말했습니까? 그 내용은 첫째 성결이고, 둘째 화평이며, 셋째 관용이고, 넷째 양순이며, 다섯째 긍휼이고, 여섯째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고, 일곱째 편견이 없는 것이고, 마지막 여덟째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여덟 가지 특징적 내용입니다.
오늘은 시간 관계상 하늘로부터 온 지혜의 여덟 가지 특징적 내용 중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 이 네 가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나머지 네 가지 특징적 내용인 ‘긍휼과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과 편견이 없는 것과 거짓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오늘 살펴 볼 하늘로부터 온 지혜의 특징적 내용 가운데 네 가지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의 첫 번째 특징적 내용은 성결입니다.
여러분! 성결이 무엇입니까? 본문에 성결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하그노스(ἁγνός)인데, 이 단어의 뜻은 ‘깨끗하다, 순결하다, 혼합되지 않았다, 순수하다, 구별되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불의와 더러움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불의와 더러움을 멀리하는 깨끗하고 순결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죄의 유혹이 늘 곁에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그 죄악된 세상과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죄를 거부하며 살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단호하게 죄를 거부하는 삶을 살게 하여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게 합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성결한 삶을 살도록 하늘의 지혜가 인도해 준다 그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늘의 지혜로 인생을 사는 인간은 언제라도 주저함 없이 세상의 인간들 앞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히 설 수 있는 충분한 모습, 즉 성결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진정 이런 성결의 모습으로 사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복도 받을 수 있으며, 세상에서도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도 위로부터 내려온 여러 가지 하늘로부터 온 지혜의 특징적 내용들 가운데 첫 번째 내용으로「성결」을 말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3장 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성결하게 사는 사람 즉 세속과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을 시대에 맞지 않게 사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결하게 사는 사람, 즉 세속과 구별된 성결한 삶을 사는 사람을 위해 기이한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기이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놀랍다, 멋지다, 경이롭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인 성결의 모습,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속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놀랍고 멋지고 경이로운 일을 행하시기에 합당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은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도 눈치껏 잘 적응하며 사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 하나님은 죄악과 유혹이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거기에 혼합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들과 구별된 자로 살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키며 가꾸는 것을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지혜가 위로부터 난 하늘의 지혜이고, 그 지혜의 첫 번째 내용이 성결입니다. 그러기에 위로부터 난 하늘의 지혜인 성결의 내용으로 사는 인간이 성결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기이한 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런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인 성결한 내용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답게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하늘의 지혜인 성결의 모습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는 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의 두 번째 특성은 화평입니다.
화평이란 말은 어떤 대상과 막힘이 없는 평화의 관계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화평을 인간이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세 대상과의 관계에서 화평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자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대상은 이웃입니다. 분명 이 세 대상과의 화평을 잘 이루며 사는 인간이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세 대상과의 화평을 인간이 어떻게 잘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지혜를 소유해야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지혜는 자신과 자신,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자신과 이웃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맺게하는 화평을 온전히 누리게 할 지혜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지 않은 지혜는 인생살이에서 얻게 된 이런 저런 상처와 절망의 감정을 더 크게 갖게 하고 자기 통제의 능력을 상실하게 하며, 자신 안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또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을 살게 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게 하여, 하나님과 불화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자기 욕심에 우선권을 두는 삶을 살게 하여, 함께 살아야 할 이웃과 분쟁하게 하고 이웃을 교만한 태도로 대하게 합니다.
그렇게 사람이 자기 안에서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이유, 그리고 하나님과도 화평을 이루지 못하며 사는 이유, 그리고 이웃과도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다 화평을 만드는 하늘의 지혜로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 사람은 자기 자신과의 화평을 위해 하늘의 지혜로 자기를 용서하며 사랑해야 하고, 또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해 하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살아야 하며, 또 사람과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 하늘의 지혜를 따라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화평이 다 중요합니다만, 이 세 가지 화평 가운데 신앙인인 우리는 오늘에 특히 이웃과의 화평을 이루며 사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 중에서 자신은 평안하다 말하면서도,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면서도, 이웃과 화평은 이루지 못하는 신앙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진정 신앙인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화평을 만드는 사람을 영어로 ‘피스 메이커(Peace maker)’라고 합니다. 진정 피스 메이커는 어떤 불화가 발생했을 때 그 불화의 원인을 밝혀내어 불화의 원인을 만든 사람을 비난하거나 추궁하는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 그 모든 불화의 책임에 자신이 있음을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그 불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겸손히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화평을 만드는 피스 메이커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이런 복이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9절 말씀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화평으로 이웃과 화평하게 살며 세상을 화평케 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화평의 대사로서 이웃과 화평하게 살면서 세상을 화평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화평을 이루게 할 하늘의 지혜를 우리는 소유해야 합니다. 기도하기는 우리 모두 다 화평이 내용인 하늘의 지혜를 소유하여 자신과도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과도 화평을 이루며, 그리고 또 피스 메이커도 되어 속해있는 가정과 직장과 나라와 교회를 화평한 곳으로 만드는 사명까지도 잘 감당하는 참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의 세 번째 특징적 내용은 관용입니다.
관용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에피에이케스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인관계에 사용되는 단어로 ‘정당한, 공정한, 동등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타인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관용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뜻이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로부터 내려 온 하늘의 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인관계에 있어서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이웃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하게 하고 공정하게 대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자기처럼 대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지 않고, 거친 말과 행동으로 이웃을 비난하지 않으며, 토론이나 협상의 자리에서도 무조건 내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이웃이 어떤 실수나 과오를 행했을 때에도 너그럽게 용서합니다.
정확히 말해 저와 여러분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부족한 것이 있고, 그래서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관용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분명 관용의 마음은 부족함과 잘못이 있는 이웃을 이해하는 마음이고, 그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며, 그 이웃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분명 우리가 관용의 마음으로 이해와 배려와 용서의 자세를 가지고 이웃을 대하면 그런 자세는 이웃과 우리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웃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볼 때,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겼던 것처럼 이웃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없고, 배려하지 못할 사람도 없으며,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바라기는 이런 하늘의 지혜인 이웃과 자신을 공정하게 대하며 동등하게 여기는 관용의 마음으로 원수와 같은 이웃까지도 받아들임으로 그 원수까지도 형제로 만드는 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의 네 번째 특징적 내용은 양순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양순’의 뜻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보통 ‘양순’ 그러면 순함이나 부드러움과 같은 그런 이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양순을 사람과 연결시켜 말씀드린다면, 양순한 사람이란 순한 사람 또는 부드러운 사람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양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사실 그런 생각보다 더 강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순’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페이데스(εὐπειθής)인데, 이 단어는 사나운 짐승이 길들여져 복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부터 순했고 부드러웠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는 사나웠으나 주인에게 길들여져서 주인의 말에 철저하게 복종하게 된 모습이 양순의 의미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양순을 신자와 연결시켜 설명하면 양순한 신자란 본래의 성품에 따라 교회 안에서 그저 조용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부드러운 신자 정도가 아닌, 본래는 세상적이었고 거칠었고 자기중심적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철저하게 복종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길들여진 신자를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양순한 신자는 절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먼저 내세웁니다. 그리고 또 양순한 신자는 주변 이웃의 권고에 대해서도 항상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마음이 열려 있다는 말은 주변 이웃의 권고를 무조건 다 들어주며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인생을 사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주관과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주관과 판단력을 절대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주관과 판단력을 내세우다가도 당신의 주관과 판단력과 다른 의견을 따르면 어떻겠느냐는 권고가 있을 때에는 진지하게 그 권고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통해 그 권고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권고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면, 그 때에는 고집이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권고를 수용하는 행동의 변화를 보여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양순이고, 그런 양순의 내용을 지닌 신앙인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축복하기는 하늘의 지혜인 양순의 모습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Ⅳ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위로부터 난 지혜의 여덟 가지 특징적 내용 중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 이 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위로부터 내려 온 지혜의 나머지 특징적 내용인 긍휼과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과 편견이 없는 것과 거짓이 없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