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열어 주신 하늘길(24:50~53)

 

여러분, 혹시 이런 이별의 장면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헤어지는데 하나도 슬퍼하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이상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런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40일 간 지상에 더 머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1:3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부활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시려고, 또 하나는 천국에 관해 설명해 주시려고 그랬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를 승천 사건이라 부르죠. 본문 50절을 보면 승천 장소가 베다니 앞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다니는 감람산(The Mount of Olives)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니까 베다니 앞은 곧 감람산(1:12)을 가리킵니다. 지금 이스라엘 성지에 가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점에 예수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Ascension)라는 기념교회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자그마한 교회당인데 본래 지붕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붕을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슬람 세력이 그곳을 정복했을 때 돔 모양으로 지붕을 씌워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내부에 보면, 바닥에 예수님이 승천할 당시 남기신 발자국이 찍혀 있는 바위가 있는데, ‘예수승천바위라고 부릅니다.

 

[1] 예수님의 승천이 기쁜 이유 : 이별이 아닌 또 다른 동행, 하늘길을 열어주심

 

이렇게 승천하신 예수님! 그로 인해 제자들은 다시 한번 예수님과 이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3년가량 항상 동고동락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이별했었죠. 그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슬펐겠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만나주시니까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겁니다. 이별의 순간이 다시 닥쳐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분명 섭섭하고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당국이 제자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활을 부정하고자 별의별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다 숨겨두고 부활했다고 거짓 선전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이 훌쩍 떠나가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큰일입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전혀 섭섭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 모습이 51~5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4:51~53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그 하늘은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하늘과는 다른 곳입니다. 영어로 구분하면 이런 겁니다. SkyHeaven의 차이입니다. Sky는 하늘의 공간 즉 천공(天空)이고, Heaven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별도의 장소인 천국(天國)입니다. 혹자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하니까 우주공간 어디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주비행사 인가요? 그건 아니죠. 천국은 물리적 세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체가 들어가신 곳입니다. 부활체는 몸은 몸인데 영적인 몸입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어도 됩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물리적 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초월한 영적 세계인 천국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신령한 몸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이렇게 승천하시는데, 제자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경배하고 돌아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어떻게요? 슬퍼서 눈물을 흘리며? 아니죠! 큰 기쁨으로! 그리고 늘 성전에서 찬송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맞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승천은 너무너무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이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으로는 헤어지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여전히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다가 예수님이 천국으로 통하는 하늘길을 열어주셨기에 너무 좋고 기뻤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눈앞에서 예수님이 승천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분명히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제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약속한 대로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대리자로 함께하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28: 보면 승천 장면이 기록되어 있죠. 맨 마지막에 지상명령을 내리고 떠나실 때 무슨 약속을 하셨나요? 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이 말씀을 육신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죠. 부활하신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계속 동행해 주시겠다니 말이 되나요? 다른 방식으로 함께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통해 예수님이 영적으로 계속 함께하심을 깨닫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도 슬프지 않았던 겁니다. 말하자면 승천은 이별이 아닌 또 다른 동행인 셈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승천함으로써 하늘길을 열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 원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대속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실 때 나타난 이적 가운데 이런 게 있었습니다.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찢어진 것입니다. 15:37~38 15:17~38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cf. 9:12, 10:19~20)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갈보리 언덕에서 죽으셨는데, 바로 그 순간 멀리 성 안에 있는 성전의 지성소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의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죄인은 그리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대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런 속죄 사건을 완성한 후 예수님은 승천을 통해 실제로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열어주신 하늘길 : 영생의 길, 축복의 길, 영광의 길

 

그 하늘길은 구체적으로 어떤 길일까요? 영생의 길, 축복의 길, 그리고 영광의 길입니다. 첫째로, 영생의 길입니다.

 

영생의 길 :

 

천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 그곳에 가신 것을 제자들이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거하느라 순교도 감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보지 않았지만,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모르지만,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14:2,3,6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6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많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출생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진 내 인생의 사건이었던 것처럼, 죽음 역시 반드시 이뤄질 내 인생의 중대 사건입니다. 성경은 그 죽음 이후에(9:27) 우리 영혼이 들어갈 내세에 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천국은 영생(영원한 기쁨) 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영벌(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3의 장소는 없습니다. 지옥은 모든 죄인이 가는 곳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갑니다. 넓은 길입니다. 그런데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며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 그리고 부활 승천으로 열어놓으신 천국 길입니다. 믿음으로 그 길에 접어들기만 하면 우리는 영생합니다.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비행기 탈 때 보면 정말 태평하잖아요. 목적지만 확인하고 그냥 타고 앉아 있습니다. 잠을 자기도 합니다. 우리가 직접 길을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 품 안에 거하면 이미 영생을 얻은 자요 이 세상에서부터 영생의 기쁨을 누립니다.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이 열어놓으신 하늘길을 통해 천국까지 그냥 갑니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은 그 길로 재림하실 겁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승천 기록이 자세히 나오죠. 제자들이 하늘만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까 천사가 증거합니다.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예수님은 가신 그 길로 재림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면 바로 그 길로 우리를 불러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재림하시면 그 길로 우리를 데려가십니다.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갈등으로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다가 지쳐서 돌베개 베고 잠을 잡니다. 그런데 꿈에 보니까 어떤 장면이 펼쳐집니까?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cf. 1:51)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는 땅에서 하늘까지 이어지는 초대형입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은 그 사닥다리가 하늘로 이어지는 실제의 길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요1:51에서 이런 장면이 자신에게 성취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그날 밤에 본 것은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영생의 길 즉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임종 시 평안한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명하기 전에 영안이 열려 천국을 보았다고 고백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가족들이 고인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임종 시에 빛나는 얼굴로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전보가 왔으니 이제 그만 가보아야 하겠소.” 무디는 평소에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무디의 사망 기사 보면 거짓말이니 믿지 마시오! 그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마침내 임종을 맞이했을 때 이렇게 외치고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나는 땅이 물러나고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노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계신다.”

 

그러므로 죽음이 닥쳐와도 아무 염려하지 말고 승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천국 영생의 확신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성결을 지키며 주님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길 :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 둘째는 축복의 길입니다. 그 길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모습을 잘 보십시오. 어떤 모습입니까? 24:50~51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예수님은 지상에서 마지막 제자들에게 축복하십니다. 축복기도!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승천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대제사장의 축복기도 모습이고, 신약시대 목사의 축도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모습으로 지상의 성도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계실 겁니다. 8:34 보면 알 수 있죠.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4:14,16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말하자면 예수님의 승천으로 하늘길이 열리고 기도의 핫라인(직통전화)이 개통된 겁니다. 언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천국의 하나님 보좌 앞에 즉시 상달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네덜란드의 복음전도자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1892~1983)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나치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후 순회 전도를 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특히 공산권 선교에 힘썼습니다. 구 소련 당시 성경을 가방에 담아 배포하는 사역을 했는데, 주변에서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으로 결행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방에 성경을 가득 담은 후 비행기를 탑니다. 소련에 도착해서 세관에서 짐 검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차례가 됩니다. 긴장되는 순간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천사를 보내어 저를 도와주옵소서.” 기도하는 동안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새치기를 해서 맨 끝에 서게 되었습니다. 혼자 서 있는 그녀를 보고 검색원이 아이고, 할머니! 힘드시겠네. 할머니가 마지막이니까 제가 들어다 드리죠.” 그러고는 그 가방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위급할 때,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면 하나님 보좌 앞에 상달되어 응답되는 놀라운 역사의 실례입니다.

 

오늘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우리의 생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축복의 길로 그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되는 역사가 실제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 간증은 들으면서 은혜를 받지만, 정작 나 자신은 믿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한다고 될까?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도로 응답받고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길 :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 셋째는 영광의 길입니다.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장면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통해 열린 하늘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 사건이 나옵니다. 마지막 장면이 이랬습니다.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스데반은 하늘에 열려 있는 길을 통해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벌떡 일어나서 맞이해 주십니다. 그는 그 영광을 보았기에 무서운 핍박을 이기고 평안한 모습으로 운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예감한 그는 유언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딤후4:6~8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유대인 귀족이요 박사요 로마시민권자였던 바울이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예수님이 열어주신 하늘길을 통해 바라본 천국의 영광이 너무 크고 놀라운 겁니다. 그러니까 그 극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로마시대의 순교 사화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을 했지만 지역적인 박해는 곳곳에서 계속되던 시절에 발생한 일입니다. AD 320년에 튀르키예 세바스테(Sebaste)에서 40명의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로마 군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총독이 그들을 색출하고자 우상신 제사를 강요합니다. 기독교인 군인들은 거부했고 그들에게 처형이 진행됩니다. 추운 겨울날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가 있게 함으로 얼어 죽도록 한 겁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참아냈습니다. 그림에 그들이 가슴에 팔을 X자로 교차한 것은 춥거나 부끄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Χριστός) 헬라어 첫 글자 키(X)를 표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비하게 그 옆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 놓고 변절하는 자에게 몸을 담글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회유합니다. 그때 한 명이 배신하고 나와 뜨거운 물에 들어갔는데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습니다. 한편 옆에서 모닥불을 쬐다 잠든 군인이 꿈을 꿉니다. 천사들이 40개 면류관을 갖고 와서 하나하나 씌워줍니다. 그런데 한 천사를 면류관을 도록 갖고 가려고 돌아섭니다. 그때 그 군인이 깨어났는데 39명을 확인하고 외칩니다. 나도 기독교인이요! 그리고 옷을 벗고 얼음속으로 들어가서 순교함으로 모두 40명이 순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와는 상황이 달라서 먼 옛날의 이야기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만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육신의 안일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일 열어주신 하늘길을 통해 천국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육신의 안일보다 장차 들어갈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면서 왜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승천을 통해 하늘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이 열어주신 하늘길, 구체적으로 영생의 길, 축복의 길, 영광의 길을 바라보며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