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9편은 38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편입니다. 38편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시인의 기도였다면, 39편도 징계 중에 있는 시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개인적 애가입니다. 10절과 13절이 특별히 그것을 보여줍니다.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인 다윗이 자신을 깊이 돌아보면서 기도하는 이 시편에는, 인생의 덧없음, 헛됨, 무상함에 대한 통찰이 깊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점에서 이 시편은 전도서나 욥기와 밀접한 연관을 지닙니다. 아르노 개벌린(Arno Gaebelein)은 “이 시편을 자주 읽는 것은 마음과 삶에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헛됨을 깨닫고 영원한 것에 우리 마음을 쏟는 법을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의 표제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에서, ‘여두둔’은 다윗이 세운 악사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시편은 대략 세 연으로 구분됩니다. 1~3절은 시인의 심정을, 4~6절은 인생의 헛됨에 대한 시인의 통찰을 쓰고 있고, 7~13절은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시인의 기도입니다.

1. 말로 범죄하지 않으리라(1~3).
이 시편이 쓰여진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3절에서 우리는 시인이 처한 상황의 답답함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뇌를 겪은 듯 합니다. 이미 너무나 복잡한 상황 가운데 처해 있어서, 무슨 말을 하게 되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을 압니다. 좋은 말이 나올 수 없고,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입에 재갈을 먹이겠다고 말합니다. 침묵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시인의 앞에는 악인이 있습니다. 시인은 징계를 받아 심한 질병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13). 그런데 자기 앞에 있는 악인들은 건강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질병에 걸린 자신을 보면서, 온갖 비난을 쏟아내고 하나님을 모욕합니다. 이런 악한 자들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윗에게 실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악인들에게는 뭔가 말을 해서 쏘아붙이고 싶은데,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악인들의 형통과 번영을 인해 불평하는 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시편 37편의 말씀처럼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시 37:1).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시인의 마음은 답답하고 근심이 심하여 마음에 불이 붙습니다. 3절에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표현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척이 살해된 것을 알게 된 사람의 분노와 억제할 수 없는 반응을 묘사하는데 쓰여진 매우 강력한 표현입니다(신 19:6). 또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는다’는 표현에서 ‘읊조린다’는 말은 묵상을 한다는 말이라기 보다, ‘갈망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말로, ‘한숨을 쉰다’는 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한숨을 내쉬면서 불붙은 마음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이를 때, 가장 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말을 내뱉습니다. 이게 뜨거워서 불이 붙은 마음을 식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입에 재갈을 먹이고 침묵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입으로, 말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특별히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2,7,8을 보지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2,7~8).”
시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불붙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기로 결심합니다.

2. 인생의 헛됨을 생각하다(4~6).
악한 자들은 번영하고 자신은 고난을 당한다고 말하려는 유혹 속에서 말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불의하시다고 말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이 되므로, 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시인은(1) 이제 자신의 존재,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알고, 그 헛됨을 인식하게 된다면, 자신의 불타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부당해 보이는 현실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 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자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고후 5:7).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그것을 구하는 것입니다(4).
그리고 그는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5).” ‘한 뼘 길이’는 히브리 척도 체계에서 가장 작은 단위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로 7.6cm 정도입니다. 이것은 사실 한 뼘이 아니라, 네 손가락의 폭, 손 넓이를 가리킵니다. 인생이 이 작은 단위에 비교될 수 있다는 말은, 인간 존재가 그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는 실체가 없는 안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의인들을 희생제물로 삼아 자기들의 성공과 부를 쌓는 악인들의 형통과 번영을 시인이 시기하거나 불평했다면, 이것은 그들이 실제로 가지지도 않은 영구적 가치와 중요성을 그들에게 부여해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헛됨을 생각한 시인은 바로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한 뼘 길이 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자명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는 삶의 방식과 태도로 쌓아 올린 그들의 부와 성공은 오직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허망함을 깨달은 시인이 이르게 된 결론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6).” 인생은 그림자에 불과한데,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헛된 일로 소란하고 재물을 쌓겠지만, 그것을 영원히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간 존재의 헛됨을 확실하게 인식함으로써, 시인은 인생의 어려움과 곤경을 해석할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인생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입니다(잠 1:7). 이 지혜를 얻지 못한 자들은 눈 앞의 것을 얻으려고 목숨을 걸텐데, 이들은 멀리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벧후 1:9).

3. 내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11).
인간 존재의 무상함과 인생의 헛됨을 인식한 시인의 마음은 이제 좀 가라앉은 듯 합니다. 가라앉은 마음으로 시인은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7a).” 가장 원초적인 질문입니다. 부와 성공과 성취와 형통이 아니라, 잠시 있다가 지나가고 말 가치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이 내 소망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런 고백은 쉽게 나오는 고백이 아니며,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가사도 아닙니다. 시인처럼, 깊은 탄식과 마음의 분노를 정리하는 과정을 지나, 인생의 헛됨을 깨달은 뒤에, 비로소 영원을 사모하고 그 가치에 기대어 사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하는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때, 그가 이전에 괴로와하던 그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목적과 소망이 될 때, 이것을 진정으로 고백하게 될 때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신앙의 고백인지 모릅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인생이 지나가는 것이기에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이 의미를 가지는 때는 오직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지를 아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의 존재,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복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비록 지금 눈 앞에서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소위 ‘든든히 선 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도 허사일 뿐입니다. 조금도 그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습니다. 심판의 날에 초개와 같이 불타 없어질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고백은 단지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이 고백은 가슴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이런 고백의 자리로 데리고 가십니다. 비록 지금은 1~3절과 같은 상황에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불이 붙는 것 같고,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끼면서 살아갈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악인과 우매자들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8)”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겪는 질병 때문에 하나님이 욕을 당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이 침묵하기로 한 이유를 직접 언급합니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9).” 그가 입을 열지 않기로 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은 자기가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압니다. 또 이것이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모든 일에서 마치 당당한 것 처럼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윌리엄 퍼킨스는 칼빈이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합니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내가 비둘기처럼 신음합니다－여호와여, 주께서 저를 갈아 가루로 만드시지만 저는 흡족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손으로 되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편의 인용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참된 믿음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윌리엄 바클레이는 자신의 영적 자서전에서 바다에서 딸을 잃은 이야기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아픔과 고통이 결코 그분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지 않는다……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치명적인 사고를 ‘하나님의 행위’라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이것이 소위 열린 유신론이 취하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책임이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치명적인 류머티스로 병석에 눕게 되었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내의 시간이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삶이든 죽음이든 아내와 저에게 가장 좋은대로 해주십시오. 소중한 아내를 다시 일으키시는 게 저와 아내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면 아내가 아무리 아파도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의 거룩한 뜻에 변함없이 온전히 만족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결국 죠지 뮬러의 아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시편 119:68을 읽고 설교를 했습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잠잠하는 태도이고 성경이 일관되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취한 태도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전의 고난이 자신에게 준 통찰력과 깨달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10절입니다.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여기서 징벌은, 자신이 겪고 있는 질병의 징계를 가리킵니다. 이어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얻은 유익을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11).” ‘영화’는 사랑스러운 것, 귀중한 것, 혹은 그의 아름다움, 그의 재물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하실 때, 이런 영화를 좀먹게 하여 소멸되게 하십니다. 헛된 욕망들을 좀 먹게 하십니다. 욕망이나 탐심은 존재의 의미와 목적이 될 정도로 강력하고, 인생의 헛됨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성질이 있습니다.
주의 자녀들이 이런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 하나님의 징계는 이런 욕망과 영화를 좀 먹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인생의 헛됨과 그것이 지나가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교만을 꺾고 자신감, 자존심을 낮추시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이렇게 해서 헛된 것을 탐하는 욕망을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게 된다면, 그는 실로 복된 사람입니다.

4. 나그네로 사는 인생(12~13)
이제 우리는 시인의 마지막 기도로 왔습니다. 12~13절은 1~3절이 보여준 시인의 심정을 생각해 볼 때, 그 시작점으로부터 엄청난 영적 거리를 여행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12절 하반절을 보지요.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을 ‘나그네’와 ‘떠도는 자’로 인식합니다.
여기 나그네라는 말은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어로 ‘게르’라는 단어인데, 모세가 애굽에서 낳은 첫 아들의 이름, 게르솜도 이 ‘게르’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세는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아들을 게르솜이라 불렀습니다. 요즘 개념으로 나그네는 비자나 영주권을 가지고 사는 외국인에 해당합니다. 성경에서는 나그네, 거류민, 객 등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조화를 이루어 살기는 하였지만, 기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도 나라마다 다르지만, 어떤 나라들은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땅을 매입하거나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없도록 법적 제한을 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든지, 가난한 백성으로서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권리 등을 가졌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이 나그네였다는 점을 생각하여(대상 16:19; 시 105:12) 나그네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도록 경고를 하셨습니다(출 22:21; 23:9). 물론 나그네 중에서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공하여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레 27:47~55).
그 뒤에 ‘떠도나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떠도는 자’는 나그네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구약성경에 14번 나오는데, 모든 경우에 나그네와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 나그네와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는 이들과는 다른 외국인을 의미하는 개념이 있는데 보통 이방인/이방으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 공동체의 신앙을 대적하고 같이 공존할 수 없는 무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은 유월절 음식이나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습 1:8; 말 2:11). 이들은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살더라도, 신앙과 종교의 영역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교류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다윗이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라고 말하는 심정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은 이 덧없는 인생을 지나가는 나그네요, 자신의 유일한 고향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그네라는 말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나그네는 결속이 끊어진 사람입니다. 그는 외국인이고 여행자입니다. 본토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기서 자신을 나그네로 규정하는 맥락이 그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는 지금 하나님과의 결속이 끊어진 상태에 있고,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결속이 끊어졌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죄로 인해 망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자신을 고쳐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자연스럽게 13절로 이어집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나를 용서하사’라는 말을 직역하면 ‘나에게서 눈길을 돌리소서(look away from me)’라는 말입니다. 즉 “제가 샬롬 가운데 살다 죽을 수 있도록 분노와 훈계의 얼굴을 제게서 돌리시옵소서”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또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노년에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바램이 아닙니까? 임종의 침상에서 우리가 평생 누려왔던 평안 보다 더 큰 평안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징계에서 자신을 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5. 영원을 바라보고 살라.
시편 39편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교훈하십니까?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살아야 합니까?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까? 땅, 집, 수입, 소유, 성공, 성취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과 탐욕이 우리 삶을 사로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한시적 관점, 이 세상이 전부라는 식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뼘 밖에 되지 않는 인생에서 우리는 욕망의 포로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서 불평하고 원망함으로써 우리는 말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시인이 깨달은 것처럼, 인생이 헛됨을 알고(영원하지 않다는 점에서)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까?
이 분요한 세상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는다면, 기도의 말이 우리 입술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불평의 말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시인이 그랬듯이,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인생의 헛됨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욕망에서의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열쇠는, 자신이 나그네요, 객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사도들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의 사람들로부터 ‘외국인과 나그네’로 여김을 받았고 또한 그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의 힘이었습니다. 이 땅이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궁극적 고향은 오직 하나님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이 땅을 살아가는 나그네임을 아십니까?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인식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는 언제나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