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7:1-51
<題目> 솔로몬의 궁전건축과 성구제작
<序言>
솔로몬이 왕위에 즉위한지 제 4년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제 11년에 완공했습니다 (6:37-38). 성전건축에 7년 6개월 걸렸습니다. 하지만 성전기구는 아직 제작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제 7장에서는 궁전을 건축하고 성전기구를 제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용의 구조는 궁전의 건축(1-12절), 성전의 놋기구들 제작(13-47절), 성전의 금기구들 제작(48-5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궁전의 건축 (1-12절)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솔로몬 궁전은 백향목으로 장이 200규빗, 광이 50규빗 고가 30규빗이 크기로 13년에 걸쳐 지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7년 걸렸는데 궁전을 건축하는 데는 13년이 걸렸습니다. 성전 건축보다 궁전 건축이 더 많은 기간이 소요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궁전 건축은 성전에 비해 어전 재판정 병기고 왕의 가족들의 거처 등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이 수효와 크기가 많고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궁전 건축은 성전 건축이 식양과 자본과 인력과 재료 등이 이미 준비된 상태에서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점에 비해 별도의 준비 기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궁전 건축은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하느라 7년 동안 물적 인적으로 힘을 다했기 때문에 성전건축에 비해 관심과 열의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궁전 건축이 성전 건축보다 오랜 기간이 걸렸기 때문에 솔로몬이 성전 건축보다 궁전 건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쉽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전 건축보다 궁전 건축이 더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기자는 궁전 건축 내용을 성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사이에 기록하므로서 궁전 건축이 성전 건축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열왕기상9:10과 역대하8:1에는 성전 건축을 궁전 건축 기간과 합쳐서 20년 걸렸다고 했습니다. 궁전이 성전에 비해 훨씬 컸지만 식양은 성전을 많이 본을 떴습니다. 솔로몬의 생각이 성전에 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의 핵심인 궁전이 성전과 함께 있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일반 생활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이 이중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이원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주의 일과 세상 일 등에 대해 이원적으로 생각합니다. 일원적 관점과 통합적 시각에서 생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 사회생활도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2. 성전의 놋기구들 제작 (13-47절)
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15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25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27 또 놋으로 받침 수레 열을 만들었으니 매 받침 수레의 길이가 네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28 그 받침 수레의 구조는 이러하니 사면 옆 가장자리 가운데에는 판이 있고
29 가장자리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가장자리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
30 그 받침 수레에 각각 네 놋바퀴와 놋축이 있고 받침 수레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어깨 같은 것은 물두멍 아래쪽에 부어 만들었고 화환은 각각 그 옆에 있으며
31 그 받침 수레 위로 들이켜 높이가 한 규빗 되게 내민 것이 있고 그 면은 직경 한 규빗 반 되게 반원형으로 우묵하며 그 나머지 면에는 아로새긴 것이 있으며 그 내민 판들은 네모지고 둥글지 아니하며
32 네 바퀴는 옆판 밑에 있고 바퀴 축은 받침 수레에 연결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이며
33 그 바퀴의 구조는 병거 바퀴의 구조 같은데 그 축과 테와 살과 통이 다 부어 만든 것이며
34 받침 수레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 넷이 있는데 그 어깨는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5 받침 수레 위에 둥근 테두리가 있는데 높이가 반 규빗이요 또 받침 수레 위의 버팀대와 옆판들이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6 버팀대 판과 옆판에는 각각 빈 곳을 따라 그룹들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아로새겼고 또 그 둘레에 화환 모양이 있더라
37 이와 같이 받침 수레 열 개를 만들었는데 그 부어 만든 법과 크기와 양식을 다 동일하게 만들었더라
38 또 물두멍 열 개를 놋으로 만들었는데 물두멍마다 각각 사십 밧을 담게 하였으며 매 물두멍의 직경은 네 규빗이라 열 받침 수레 위에 각각 물두멍이 하나씩이더라
39 그 받침 수레 다섯은 성전 오른쪽에 두었고 다섯은 성전 왼쪽에 두었고 성전 오른쪽 동남쪽에는 그 바다를 두었더라
40 히람이 또 물두멍과 부삽과 대접들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41 곧 기둥 둘과 그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 둘과 또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를 가리는 그물 둘과
42 또 그 그물들을 위하여 만든 바 매 그물에 두 줄씩으로 기둥 위의 공 같은 두 머리를 가리게 한 석류 사백 개와
43 또 열 개의 받침 수레와 받침 수레 위의 열 개의 물두멍과
44 한 바다와 그 바다 아래의 소 열두 마리와
45 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이 모든 그릇을 빛난 놋으로 만드니라
46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47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아보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무게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
솔로몬이 성전기구 제작을 위해 두로의 히람을 데려왔습니다. 그는 '후람'이라고도 합니다 (대하2:13, 4:11). 히람은 두로왕 히람과 동명이인(同名異人)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스라엘 납달리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납달리 사람이었으나 남편이 죽은 후 두로 사람에게 시집가 히람을 낳은 것 같습니다. 그는 논점장이로서 놋에 관한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놋 뿐 아니라 근은동철과 목석과 천을 다루는데 있어서 탁월한 지식과 솜씨와 기술이 있는 장인(匠人)이었습니다 (대하2:14). 그는 성막 제작자인 브사렐에 견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출31:2-5). 성경이 그의 혈통을 지적한 것을 성전기구 제작자가 히브리인의 혈통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13-14절). 그는 놋으로 기둥, 바다, 물두멍, 물두멍 받침대, 부삽, 대접 등을 만들었습니다.
①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15-22절).
고(高)가 18규빗(8.2m) 되는 기둥 둘을 만들어 외소(성소) 앞 낭실(현관)에 세웠습니다. 기둥 꼭대기는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둥 머리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일곱 줄로 엮인 꽃 줄을 달았습니다. 기둥 머리 하단 공같이 불룩한 곳에는 두 줄로 된 석류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좌편 기둥을 야긴이라 하고 우편 기둥을 보아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야긴’(יכין)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는 뜻이고, ‘보아스’(בעז)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두 이름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전체 성전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주권적으로 세워 가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 가십니다. 전체 성전 사역인 하나님의 구원사역도 하나님이 친히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요한계시록1:8에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스가랴4:6에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개인 성전인 성도의 구원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어가며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루어가십니다 (빌2:2, 벧후3:18, 엡4:13).
② 바다를 만들었습니다 (23-26절).
성전기구 중 '바다'를 만들었습니다. '바다'는 큰 대야입니다. 이 기구를 '바다'(히.얌.sea)라고 한 것은 그 담은 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바다'는 놋을 부어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가장자리에는 박 모양의 형상이 두 줄로 있었습니다. 두께는 한 손 넓이만 했습니다. 크기는 직경 10규빗(4.56m) 높이가 5규빗(2.28m) 둘레가 30규빗(13.68m)이었습니다. 용량은 2,000밧의 물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1밧은 36.44ℓ로서 약 2말 정도 됩니다. 2,000밧은 약 4,000말 정도 된다고 봐야 합니다.
이 놋 바다의 용도는 제사장들이 사역을 하기 위해 몸을 씻는 곳입니다 (대하4:6). 제사장들은 제사 사역을 할 때 의식적 정결을 위해 몸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출29:4, 레8:6). 성막의 물두멍 역할도 그와 같았습니다 (출30:18-21).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에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히9:11-14, 계7:13-17). 그것은 예수를 구주로 믿으므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야 합니다 (요3:5). 이는 칭의(稱義)와 중생(重生)입니다. 이미 거듭난 자라도 매일 생활 가운데 더럽혀진 것을 씻어야 합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13:10). 이것은 성화(聖化)를 위한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가 맹렬하고 세속 문화와 문명이 유혹하고 육체의 부패한 성품이 끊임없이 죄를 짓게 하기 때문에 육체의 연약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항상 불결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날마다 씻는 일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엡5:26). 자범죄뿐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요구죄까지 정결케 해야 합니다 (롬14:23, 약4:17, 삼상12:23, 요일1:8). 그럴 때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됩니다 (롬5:20, 6:1).
한편 놋 바다는 12마리의 소(牛) 형상을 만들어 물두멍을 받치게 했습니다. 12마리의 소는 각 3마리씩 동서남북을 향해 있게 했습니다 (25절). '소'는 희생 제물로 사용되는 생축으로서 12마리의 소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陣)을 칠 때 성막(聖幕)을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민수기 2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지파의 진행(進行)과 배진(配陣)을 보면, 우선 이스라엘 전 지파를 4진영(陣營)으로 나누었습니다. 4진영은 유다 진영과 에브라임 진영과 르우벤 진영과 단 진영이었습니다. 유다 진영에 속한 지파는 잇사갈 지파와 유다 지파와 스블론 지파였고, 에브라임 진영에 속한 지파는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였고, 르우벤 진영에 속한 지파는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와 시므온 지파였고, 단 진영에 속한 지파는 아셀 지파와 단 지파와 납달리 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레위 지파가 빠지고 요셉 지파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로 나뉘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진행할 때는 1진으로 유다 진영이 가고 2진으로 에브라임 진영이 가고 중간에 성막과 레위인이 가고 3진으로 르우벤 진영이 가고 4진으로 단 진영이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속 진행을 하다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 곳에 성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성막이 자리를 하게 되면 그 주위에는 레위인이 진을 치고 그 다음엔 이스라엘 4진영이 사방으로 진을 쳤습니다. 동쪽에는 유다 진영이 서쪽에는 에브라임 진영이 남쪽에는 르우벤 진영이 북쪽에는 단 진영이 진을 쳤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들이 성막 중심으로 진행하고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친 것입니다. 이 진을 친 모습이 놋 바다를 받치고 있는 12마리의 소와 같은 형태입니다.
소 형상은 제물로 사용되는 생축 형상으로서 봉사와 희생과 헌신의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들의 몸을 씻는 '놋 바다'를 몸으로 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건과 그로 인하여 구원받아 정결케 된 사실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율법의 대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눅10:27).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출처는 신명기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입니다. 여기에서 '성품'(히.네페쉬,soul)은 목숨, 혼으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온 인생을 수고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목숨 내놓는 자세가 영적 이스라엘의 자세입니다. 마치 블레셋에서 유다 벧세메스로 법궤를 울면서 끌고 도착했다가 번제로 바침이 된 두 암소와 같이 말입니다 (삼상6:10-18).
③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38-40절).
놋으로 10개의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물두멍 하나의 직경은 4규빗(1.82m)이었고 그 물두멍 하나에 40밧의 물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1밧은 36.44ℓ로서 약 2말 정도 됩니다. 40밧은 약 80말 정도 됩니다. 23~26절에 나온 바다는 직경이 10규빗이었고 2,000밧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기구였으므로 직경으로 보면 2~3배 차이가 나고 물의 양을 보면 바다와 물두멍은 50배 차이가 납니다. 물두멍은 성전 좌우 편에 5개씩 두었습니다. 바다는 성전 가운데서 약간 우편에 위치했습니다.
성전의 바다와 물두멍은 동일하게 물이 담겨 있지만 사용 용도는 다릅니다. 솔로몬 성전의 바다는 제사장들의 몸을 씻는 곳입니다. 모세 때 성막의 물두멍 역할이었습니다 (출30:18-21).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은 제물(祭物)을 씻는 곳입니다 (대하4:6).
신약시대에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헌물과 사역도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물이 취한 방법과 드리는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깨끗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물은 드릴려는 목적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밭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일부만 드렸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을 책망하자 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행5:1-11). 그들은 거짓말 한 것보다도 드린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자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자기 밭과 집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사도들 발 앞에 두었습니다. 바나바도 밭을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권위자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행4:33-37).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영광과 칭찬을 받고 싶어서 드렸거나 그 그룹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드렸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되는 시점에 성령의 역사를 인간의 노력으로 바꾸는 누룩과 같은 요소였습니다.
한편 27-37절에 보면, 물두멍 뿐 아니라 물두멍을 받칠 받침대도 만들었습니다 (27-37절). 물두멍 받침도 놋으로 만들었는데 매 받침에 장이 4규빗(1.82m), 광이 4규빗(1.82m), 고가 3규빗(1.36m)이었습니다. 자세한 모양을 연상하기 힘듭니다. 그 받침에는 이동할 수 있도록 바퀴를 달았고 그 받침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과 종려나무의 문양들을 새겼습니다. 이 문양들은 비단 물두멍 받침에만 새겨진 것이 아니고 성전 곳곳에 그리고 여러 기구에 주로 사용한 문양입니다.
'사자'는 왕권을 상징합니다. 다윗 가문의 조상 유다에게 '사자 새끼'라고 했고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창49:9, 계5:5). '소'는 희생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온유한 동물로서 희생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언약궤를 끌고 벧세메스에 도착한 암소도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삼상6:14). '종려나무'는 생명과 구원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아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요12:13). '그룹'은 위엄의 상징입니다. 그룹 천사는 에덴 동산을 지키고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하가했습니다 (창3:23-24, 출25:18, 겔11:12).
3. 성전의 금기구들 제작 (48-51절)
48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곧 금 단과 진설병의 금 상과
49 내소 앞에 좌우로 다섯씩 둘 정금 등잔대며 또 금 꽃과 등잔과 불집게며
50 또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을 옮기는 그릇이며 또 내소 곧 지성소 문의 금 돌쩌귀와 성전 곧 외소 문의 금 돌쩌귀더라
51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이에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두었더라
솔로몬 성전의 기구 가운데 금으로 만든 기구는 단, 진설병의 상, 등대, 등잔, 불집게, 대접, 주발, 숟가락, 문의 돌쩌귀 등이었습니다. 금으로 만든 기구에 대해서는 히람의 제작이라는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이미 성막 기구에 대한 경험이 있는 히브리인들이 제작한 것 같습니다.
① 분향단을 만들었습니다 (48절).
48절에 나오는 '금단'은 분향단을 말합니다 (6:20-21참고). 분향단은 성소(외소) 안에 있었는데 지성소(내소) 쪽 가운데 있었습니다. 본문에 분향단의 크기는 나오지 않았고 다만 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나옵니다. 그 용도와 의미는 성막의 성소에 있었던 분향단과 같았습니다 (출30:1-10).
분향단은 향을 피우는 곳입니다. 제사장들이 매일 등불을 끌 때와 켤 때에 향을 사르는 곳입니다 (출30:7-8). 그 향연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언약궤와 속죄소 앞에서 올라갑니다. 이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밤낮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입니다. 분향단 사역은 예수님의 중보사역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형벌을 치르므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했습니다(행9:14). 그리고 우리를 위해 매일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행7:55). 또한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계십니다 (롬8:34, 8:26, 요일2:1).
분향단 향연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5:8에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시편141:2에도 "나의 기도가 주의 분향함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 보좌에 향처럼 올라갑니다. 향불이 꺼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5:17). 하나님과 교제를 위해, 마귀를 대항하기 위해, 사역의 열매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삼상12:23). 그러나 특별한 상황 앞에서는 특별기도 기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21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고, 모르드개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금식하며 특별기도를 했고, 느헤미야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죄 문제를 두고 기도했고, 한나는 핍박과 자녀 문제를 두고 기도했고, 히스기야는 질병 문제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성역을 앞두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특별기도를 했고,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특별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한 바를 다 아시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36:37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했습니다. 구하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마7:7-11). 벗 됨을 인하여는 안 줄지라도 강청함을 인하여서는 주신다고 했습니다 (눅11:5-8).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눅18:1-8, 단10:12-14).
② 진설병상을 만들었습니다 (48절).
48절에 나오는 '진설병의 금상'은 '진설병 상'(陳設餠床)을 말합니다. 진설병(陳設餠)은 차려 놓은 떡을 말하고 금상(金床)은 진설병을 차려 놓는 상입니다. 이 상(床)은 좌우 편에 5개씩 있었습니다 (대하4:8). 성막에서의 진설병 상은 1개였으나 솔로몬 성전에서는 10개였습니다. 그 의미는 성막의 진설병상과 같습니다 (출25:23-30, 37:10-16). 사실 진설병상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 올려진 진설병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진설병상은 진설병을 올려 놓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床)에는 진설병을 두 줄로 6개씩 진설하여 항상 놓아 두어야 했습니다 (출25:30, 레24:6-8).
진설병(陳設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 생명의 제공자가 되실 것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을 행하시고 (요6:1-35), 자기를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습니다 (요6:35,48,58).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떡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대표적 단어입니다. 그 떡을 먹는 자는 생명을 부여받게 되고 생명을 유지하므로 영원히 주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늘로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도 주리고 죽었지만, 그것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먹은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요6:48-51, 고전10:1-5).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으로 그를 먹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보장받았습니다.
진설병은 매 안식일마다 새로 갈고 물리게 했는데, 그 물린 떡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회막 뜰에서 먹었습니다 (레24:8-9). 우리는 영적 제사장입니다 (벧전2:9, 계1:6). 우리는 매 주일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요6:53-58).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신명기8:3에 "-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갓난 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얻어 먹으려 해야 합니다 (벧전2:2).
진설병은 2줄로 6개씩 12개가 올려졌습니다 (레24:6). 그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거둔 곡식을 모두 바친다는 상징이었습니다 (롬12: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진설병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곡식 알맹이가 부서지고 빻아져서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하고,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부치거나 솥에 삶아서 익혀져야 합니다 (레2:1-10). 환난 속에서 부서지지 않으면 안되고 고난 속에서 익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한 쪽은 익지 않은 제물을 원치 않습니다 (호7:8).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부서지는 듯한 경험과 갈보리 산상에서의 타는 듯한 경험을 통과하는 과정으로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고난과 역경이 올 때 그 속에서 신앙 인격이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생축도 죽어야 제물이 되고 곡물도 부서져 열도를 통과해야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④ 등대를 만들었습니다 (49절).
7:48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곧 금단과 진설병의 금상과 49 내소 앞에 좌우로 다섯씩 둘 정금 등대며 또 금꽃과 등잔과 불집게며 50 또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을 옮기는 그릇이며 또 내소 곧 지성소 문의 금돌쩌귀와 전 곧 외소 문의 금돌쩌귀더라
등대(燈臺)를 만들었습니다. 등대는 성소의 좌우로 5개씩 모두 10개를 만들었습니다. 등대는 정금으로 만들었는데 7가지로 되어 있고 가지마다 꽃 장식이 있고 가지 끝에는 등잔이 있었습니다. 등대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성막의 등대와 같습니다 (출25:31-40). 진설병 상이 진설병을 차려 놓기 위함인 것처럼, 등대는 사실 등잔을 통해 불을 켜기 위함입니다. 그럼 관점에서 등대에서 관심있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등잔입니다.
등대의 등잔(燈盞)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매 가지 끝에 마다 있는 7개의 등잔은 하나님의 일곱 영(靈)이신 성령께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에 대해 상징으로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4:5에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다 (계3:1참조).
등잔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등대를 위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 가지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12:46, 계1:20). 등잔의 역할이 등대를 비추어 주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해줍니다. 성령의 별명인 보혜사(παρακλητοs)는 '대언자' '변호자' '증거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 주고 변호해 주는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과 사역을 알게 합니다 (요15:26). 그가 말한 모든 진리를 기억나게 하십니다 (요14:16).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시인하게 하고 고백하게 합니다 (마16:16-17, 고전12:3).
등잔의 역할 가운데 또 하나는 진설병상(陳說餠床)을 비춰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떡을 차리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떡을 응식으로 먹는 일을 도와줍니다. 이 떡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요6:35,48,58)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마4:4).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요14:16).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진리되는 모든 말씀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요6:48-59, 14:26). 요한복음16:13에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εν τη αληδεια)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진리 안으로(ειs την αληδεια) 인도합니다 (요16:13).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λογs)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말씀을 적용(ρημα)하도록 도와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의지와 그 말씀을 지킬 때에 은혜를 느끼도록 감동시키십니다.
등잔의 또 하나의 역할은 분향단(焚香壇)을 비춥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분향단 사역을 할 때 도움을 받습니다.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상징하는 동시에 (롬8:34)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시141:2, 계5:8). 성령은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열의를 갖도록 감동시키시며,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에 대한 감동과 확신을 얻도록 도와주십니다 (롬8:26).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 없이는 우리가 어떤 은혜도 받을 수 없고 어떤 사역도 할 수 없고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結言>
성전에 필요한 성전 기구들이 놋과 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기구들은 한결같이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본질과 성품과 사역에 대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혹은 본받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암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