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왜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을까요?
우선 이해하기 쉽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깊고 심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억하기 쉽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이고 실제 경험할 수 있는 비유로 설명해서 잘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단순한 비유 이야기를 통해서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의미를 발견하고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잘 깨닫고, 잘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주님의 따뜻한 배려와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비유의 내용
우선 이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씨를 뿌릴 때 여러 곳에 뿌려졌습니다.
일부가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땅에 심겨지지 못하고 새에게 먹혀버린 것입니다.
일부는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심겨져서 싹이 나왔지만 흙이 깊지 못해서 해가 돋자 말라 버렸습니다.
또 일부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졌습니다. 심겨져 싹도 나왔고 자라기는 했는데, 가시가 성장을 방해해서 그만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심겨져 싹도 나왔고, 잘 자라서 꽃도 피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떤 씨는 백배, 또 어떤 씨는 육십 배, 그리고 어떤 씨는 삼십 배 결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는 잘 와 닿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이 이야기에 나오는 농부처럼 씨 뿌리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제가 아는 한, 요즘은 많은 경우 씨를 뿌리기보다는 모종을 심습니다. 벼만 논에 모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고추, 상추, 토마토, 깨, 고구마, 당근, 대파, 양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밭작물도 모종을 심습니다.
씨를 뿌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도 ‘흩뿌리기’보다는 ‘점 뿌리기’나 ‘줄 뿌리기’를 많이 합니다. 여기서 점 뿌리기는 밭에 구멍들을 내고 그 구멍 안에 씨 몇 개를 함께 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줄 뿌리기는 줄을 맞춰서 씨앗을 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씨를 뿌렸는지 정확히 압니다. 한 알도 허투루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농사짓는 시대에 이 비유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질문이 나옵니다. “왜 농사를 이렇게 짓지? 이렇게 농사를 져도 먹고 살 수 있나?” 그래서 비유 안에 담긴 메시지를 찾기 보다는 비유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결국 도움이 되라고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비유가 방해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먼저 2000년 전 당시 이스라엘에서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농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지역은 땅이 비옥하지가 않습니다. 강수량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로 목축을 하며 살았고, 일부 지역에서만 밭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갈릴리 지역은 평야지대가 아니라서 밭이 주로 산비탈이나 구릉지대에 있었습니다. 땅도 척박한데다 수로를 만들어 물을 댈 수 없었고, 가시덩굴과 같은 잡초도 많고, 그리고 돌도 많았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가방이나 그릇에 씨를 담아서 걸어가면서 뿌렸습니다. 씨를 흩뿌린 것입니다. 그리고 씨가 뿌려진 곳을 밟아주거나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씨가 정확하게 어디에 뿌려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런 농사 방법을 비유 소재로 삼으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당시의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비유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선 씨는 19절을 보면 “천국 말씀”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천국 말씀이란 천국에 대한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를 뜻합니다.
다음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천국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씨가 뿌려진 밭은 천국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밭에는 네 종류의 땅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다양한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천국 말씀이 어떻게 이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지는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들려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비유에 담긴 의미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공개적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이제 제자들에게만 다시 말씀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왜 제자들에게 또 다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9절을 보면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개적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셔서 듣기는 들었지만 이 비유에 담긴 의미를 깨닫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이 비유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려고 다시 이 비유를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천국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비유 안에 천국의 비밀을 담아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비유를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비밀이라는 말은 성경원어 ‘뮈스테리아’(μυστήρια)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미스터리”(mysteria)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비밀이라는 말은 ‘천국의 미스터리’ 또는 ‘천국의 신비’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천국 말씀이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심겨지고, 그리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신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통해 이 신비를 가르쳐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작은 봉투에 완두콩 씨를 담아서 나눠주셨습니다. 방학동안 잘 키워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릇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동네 뒷산에서 가져온 흙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씨를 심었습니다. 정성껏 물을 주었습니다. 며칠 뒤에 싹이 났습니다. 그리고 잘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지지대를 세우고 넝쿨이 잘 올라가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그릇에 심은 것은 잘 자랐는데 다른 그릇에 심은 것은 제대로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 말씀이 하나는 햇볕이 잘 받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 눈에는 이 모든 일이 신비로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싹이 트고, 어떻게 자라고, 또 어떻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지, 생명의 신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신비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천국 말씀이 우리 심령 안에 들려진 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심겨지고,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그 신비로운 천국의 신비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 신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심령 안에서 어떻게 심겨지고, 또 어떻게 자라고, 그래서 어떻게 열매를 맺을 것인지 그 신비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농부가 씨를 뿌리고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땀 흘려 수고하듯이, 그 신비로운 일이 내 안에서 잘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 신비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여기에 소개된 씨가 뿌려진 곳, 네 곳을 살펴보겠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위, 그리고 좋은 땅, 네 곳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네 곳이 서로 다른 밭이 아니라 같은 밭 안에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비유를 해석하면서 네 종류의 다른 밭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길가라는 밭이 있고, 돌밭이라는 밭이 있고, 가시떨기라는 밭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떤 농부가 길가와 같은 밭에 씨를 뿌리겠으며, 어떤 농부가 돌밭으로 된 밭에 씨를 뿌리겠으며, 또 어떤 농부가 가시떨기로만 가득 한 밭에 씨를 뿌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씨가 뿌려진 곳은 네 종류의 밭이 아니고, 한 밭에 있는 네 종류의 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마음 밭에도 네 종류의 상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늘 길가와 같은 마음이고, 또 누구는 늘 돌밭과 같은 마음이고, 또 누구는 늘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이고, 그리고 누구는 늘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언제는 길가와 같았다가, 또 언제는 돌밭과 같았다가, 또 언제는 가시떨기와 같았다가, 또 언제는 좋은 땅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었지만 마음에 남아있지도 않을 때가 있고, 마음에 남아 있다가 얼마 안 가서 잊어버릴 때가 있고, 오래 남아있는 것 같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잊어버릴 때가 있고, 그리고 열매를 맺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좋은 땅 같은 마음이 되도록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씨가 뿌려진 뒤 일어난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뿌려진 땅에 따라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첫째, 길가
밭에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가와 같은 곳이 있습니다. 오늘의 밭의 밭고랑과 같은 곳입니다. 씨가 이런 곳에 뿌려지면, 땅에 심겨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굳은 땅 위에 노출되어 있다가 날아다니는 새에게 먹혀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길가처럼 마음이 굳게 닫힌 상태일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지 않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집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개정판’ 이전 성경을 ‘개역판’이라고 합니다. “완악”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강퍅”(剛愎)이었습니다. 이 강퍅이란 말은 굳셀 강(剛)에 괴팍할 퍅(愎)을 써서 “성질이 괴팍하고 고집이 센 것”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강퍅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쓸데없는 고집이 세고, 굽힐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애굽 왕 바로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말씀을 듣고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항하고 철저하게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강퍅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봄에 농부가 기경하여 밭을 부드럽게 하듯이 우리 마음을 기경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돌밭
밭 가운데 돌이 많은 곳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흙이 적습니다. 그래서 씨가 뿌려져도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릴 수가 없습니다. 특히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이면 뿌리가 수분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도 비옥한 흙이 많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는 마음의 토양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마음,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는 아멘을 잘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목회자가 “할렐루야” 외치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설교를 듣다가 “믿습니까?”물으면 “아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믿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멘하고도 그 내용을 마음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더더욱 그 말씀을 지키지도 않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멘을 잘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깊이 묵상해서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난 뒤에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어떻게 따르고 순종할 것인지 결단하고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셋째, 가시떨기 위
밭에 가시떨기가 남아있습니다. 씨가 그 위에 뿌려졌습니다. 싹이 트고 자랍니다. 그런데 가시떨기가 햇빛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줄기가 뻗을 때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에 가시떨기 같은 것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마음속에 세상 생각이 가득합니다. 먹고 사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염려가 가득합니다. 세상 즐거움에 대한 생각이 이것저것 많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구상도 많고 계획도 많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감동이 됩니다. 깨달음도 생겼습니다.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 다짐과 결단도 했습니다. 가슴 뜨겁게 아멘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마음속에 있던 세상생각에 묻혀버립니다.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멘이 노멘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세상생각을 잘라내야 합니다. 마치 잡초를 제거하듯이 제거해야 합니다. 귀농한 분들, 텃밭을 가꾸는 분들이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잡초를 제거하듯이, 우리도 이런 세상생각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끊어내야 하겠습니다.
넷째, 좋은 땅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밭입니다. 씨 뿌릴 최상의 컨디션입니다. 기경을 잘하고 물도 주어서 땅이 부드럽고 촉촉합니다. 씨가 뿌려지면 싹이 잘 틉니다. 돌도 잘 골라내서 흙이 깊습니다. 씨가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습니다. 잡초나 가시떨기도 깔끔하게 제거됐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잘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 상태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태는 한 번 이루어졌다고 그대로 계속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집니다. 돌도 생기고 잡초와 가시떨기가 생겨납니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내 마음에 잘 심겨지고 잘 자라고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 상태를 잘 살피고 관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