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니라!

< 본문 요한복음 18:33-38 >

 

1185425, 일본 시모노세키항 부근 바다에서는 단노우라(壇ノ浦) 해전이라 불리는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은 당시 일본의 양대 세력인 겐지(源氏) 가문과 헤이케(平家) 가문이 일본 패권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겨룬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천황은 헤이케 가문의 보호 아래 있던 안토쿠(安德, 1178-1185)라는 7살짜리 어린아이였습니다. 안토쿠는 1180년 불과 두 살 때에, 외할아버지인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 1118-1181)의 압력에 의해 아버지인 다카쿠라(高倉, 1161-1181)가 상황으로 물러나면서 천황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두 살짜리가 천황이 되었지만, 그가 어찌 정사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헤이케 가문의 독주에 대한 반발로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반란의 선봉에 겐지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안토쿠가 왕이 된 지 1년 만에 외할아버지가 열병에 걸려 죽자, 힘을 잃은 헤이케 가문은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183년 교토를 버리고 달아나고 맙니다. 결국 단노우라까지 쫓겨난 헤이케 가문과 뒤쫓는 겐지 가문은 단노우라에서 마지막 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 전투에서 500여 척을 이끌었던 헤이케 가문은 840척으로 맞선 겐지 가문의 수군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헤이케 가문은 적에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최후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 때 천황이었던 7살의 안토쿠는 외할머니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군의 마지막 함선이 불타 가라앉는 광경을 보고서는 외할머니가 어린 천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폐하, 이제 폐하의 왕국은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파도 속에도 도읍이 있습니다.” 그리고 7살의 안토쿠 천황은 외할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7살의 어린 천황이 다스릴 왕국이 파도 속 깊은 바다에 있을까요? 안토쿠 천황은 일본 땅에서 실패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가문의 마지막 천황일 뿐입니다. 그가 다스릴 그의 왕국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심지어 깊은 바닷속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왕국은 어떨까요?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나라를 꿈꾸었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권력자들에 의해 처형당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12세기 일본에서 자신의 왕국을 꿈꾸던 7살의 천황 안토쿠와 2천 년 전 당신의 나라를 꿈꾸시던 33세의 예수님,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시의 상황에서 본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예수님이나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최후의 일전을 펼쳤지만 전쟁에서 패해 가문이 모두 바다에 수장된 안토쿠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예수님과 안토쿠는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로 외치신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흔히 나라라고 하면 공간적인 개념으로 많이 이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또는 하늘나라라고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공간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나라는 영토나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하늘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하늘나라라는 말은 이 지상에 악이 판을 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통치하시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에 온 우주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소유이신 온 우주를 당신의 주권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계를 인간에게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게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잘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시면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관리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관리하도록 맡겨주신 것들을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의 욕심대로 관리했습니다.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통치자이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는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고 신약에서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애굽기 3:7)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 3:10)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주권자, 그들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자신의 주권자와 통치자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고 왕으로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백성된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후에 그들에게 왕을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도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왕을 섬기며 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람인 누군가가 그들의 통치자인 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왕의 자리는 오직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왕인 하나님 대신에 세상의 다른 백성들처럼 사람을 자기들의 왕으로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졸라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사무엘상 8:5)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대신에 세상의 다른 나라들처럼 자기들에게 왕을 세워 그 왕이 자신들을 다스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요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에 세상 나라들처럼 인간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상 8:7)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 되심을 거부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되심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로 하셨고, 그래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이 당신의 것이고, 당신의 통치를 받아야 할 피조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하고 모셨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잃을까봐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백성들 역시 자기들의 작은 삶에서 자기들이 왕노릇하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태복음 2:2)고 물을 때 아무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반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헤롯은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배척했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1장에서는 이렇게 고발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1-1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실 때에도 그랬습니다. 하늘나라의 비밀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권능으로 병든 자를 치유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거부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한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누가복음 23장에 그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한 첫 번째 내용은 백성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언제든지 백성들을 현혹해서 로마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위험 인물이기에 가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에, 당연히 로마에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금 내는 것을 못하게 함으로서 로마에 재정적으로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인물이고, 더 나아가 로마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을 왕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에, 로마 황제가 인정해야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스스로 왕이라고 한다는 것은 로마 황제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로마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로마의 총독으로 이스라엘 땅에 와 있는 빌라도에게는 이 세 번째 고발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다른 것 묻지 않고 딱 한 가지만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누가복음 23:3)

  예수님께서 그 물음에 그렇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분명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반역자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과감하게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렇게만 본다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즉각 반역죄로 처벌해야 마땅합니다. 총독의 임무는 황제의 통치권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황제에게 도전하는 자를 결코 가만둘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스스로 당신이 왕이라고 대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향해 그는 죄가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자신이 왕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반역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일까요? 로마 황제가 임명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왕이라고 한다면 그건 로마 황제의 권위를 부인하고, 로마의 통치를 거부하는 반역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로마 황제의 파송을 받아 총독으로 온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36)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이 고발한 것처럼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면서 백성들을 미혹하여 로마에 반기를 들어 권력을 얻으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이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여느 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로마 제국이 엄청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나라요, 로마제국처럼 땅의 일부를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를 통치하는 나라요 온 우주를 통치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예수님은 왕입니다. 그래서 37절에서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왕이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의 어느 나라의 왕과 같은 그런 왕이 아닙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로마의 황제와 같은 그런 왕이 아닙니다. 로마 황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로마 황제는 불과 몇 년, 오랫동안 통치한다 하더라도 불과 몇십 년 동안만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왕이십니다. 영원한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은 군림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백성을 섬기고, 당신이 다스리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은 섬김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과 분명 다른 왕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고, 내가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여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왕이신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의 삶에는 하늘의 평강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따라가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덧입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이 고백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 이 고백 또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1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교회력에서는 대림절부터 새해가 시작됩니다. 오늘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지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부터 시작해서 한 해 동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았는지 되돌아보자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 나라 백성은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왕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따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자비의 왕이 되어주십니다.

  여러분, 혹 예수님을 아직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은 세상의 통치자같은 왕이 아니십니다. 자비의 왕이시고 능력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내 삶을 왕이신 주님께 맡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하늘의 기쁨과 평강과 은혜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혹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지만, 아직도 내 삶에서 내가 왕노릇하며 내 마음대로 살지 않으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너무 자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 것처럼, 내가 내 삶에 왕노릇하고자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의 모든 주권을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맡기십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면 우리에게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는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할 때 능력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을 내 삶에 왕으로 모시고 살 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보다 크신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이 나의 왕,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하며 사십시다. 그것이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