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 이야기
요 2:1-11
오늘 본문은 ‘가나의 혼인잔치 이적’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자인 요한은 본문 30절에서 이 이적의 특징을 “이 첫 표적”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이적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이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적은 37개나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참 많은 이적을 보이셨지만, 그 중에서 37개가 네 복음서에 기록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이적들 중에 제일 처음 행하신 이적이 바로 본문의 이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이적을 표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적이라고 하는 것을 요한은 표적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왜 이적이라고 하지 않고, 구지 표적이라고 했을까요?
우선 ‘이적’이라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원어 ‘두나미스’(δυναμις)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힘’ 또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미러클’(miracle)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놀라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적이라는 말을 예수님께서 신적인 능력으로 행하신 놀라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표적’이라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원어 ‘세메이아’(σεμεια)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어떤 것을 알리기 위한 특별한 표시’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사인’(sig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결국 표적이란 단순히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무엇인가 나타내고자 하는 어떤 뜻이 담겨진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청년을 고쳐주신 이적을 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요한은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살필 때 이 사건이 표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찾아보려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이 이야기 자체를 살펴보겠습니다. 갈릴리에 있는 가나라는 마을에 혼인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잔치를 돕기 위해 힘쓰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친척 집 잔치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대를 받아 이 잔치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보통 혼인잔치가 일주일가량 이어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뜬금없이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셨고, 하인들이 물을 채우자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떠다 연회장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물이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연회장이 놀라서 왜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이제야 내놓느냐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표적의 내용
그러면 이 이야기는 어떤 표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이 이적이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변화
이 표적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평범했던 물을 잔치에 꼭 필요한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면 변화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심리학자들도 대체로 이 말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성격이 지능처럼 5세 이전에 형성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능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성격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전학자들도 대부분 동의합니다. 이혼한 부모의 자녀가 성인이 된 후 이혼할 가능성이 높고, 어린 시절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자라서 더 폭력적으로 변하는 연구 결과를 증거로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성격이나 기질은 유전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변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스스로 변해보려고 애써보지만 변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변화시켜보려고 애써보지만 변화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개입하시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완전히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사울이 바울이 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런 변화를 체험한 뒤에, 고후 5:17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면 사람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누구든지”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특별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기만 하면 누구나 다 변화를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남들도 다 알게 변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들은 잘 몰라도 자신은 알게 변화하기도 합니다.
대학시절 몇이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한 일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부자집 귀공자여서 요즘 젊은이들 말로 노는 물이 달랐습니다. 엉뚱하기도 해서 방학이면 절에 들어가 참선을 한다고 부산을 떨기도 했습니다. 제가 전도했지만 당시 씨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이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저는 군에 갔다 와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연락이 끊기고 세월이 한 참 흘렀습니다. 한 20년 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이 친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목회한다는 것을 알고 만나러 온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도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목사가 된 저간의 사정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께 붙잡혔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분이 자기를 이렇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목회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분은 성품이 변하고, 또 어떤 분은 삶이 변하고, 또 어떤 분은 인생의 비전이 변했습니다. 대부분은 신앙이 깊어졌습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변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듯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우리 안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변화해야 할 것이 있으십니까? 누군가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십니까? 우리 스스로 변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대치
이 표적의 또 다른 강조점은 대치입니다. 원래 이 혼인잔치 집 돌항아리에 물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돌항아리에는 포도주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돌항아리에 물이 포도주로 대치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물은 유대교를 상징합니다. 유대교는 정결예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물로 씻음으로써 정결해 지려 했던 것입니다. 유대교는 성전에 들어갈 때, 어떤 의식을 치르려 할 때 늘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이에 비해 포도주는 기독교를 상징합니다. 기독교는 성례로 성찬예식을 거행합니다. 이 때 포도주는 성찬의 피 즉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물로 씻는 정결예식을 거행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사람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동안 의지하며 살던 것 물 같은 세상 것을 포도주 같은 저 하늘의 것으로 대치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바라고 꿈꾸던 세상 소망을 저 하늘의 소망으로 대치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인생의 안내를 받아오던 세상 이념, 철학, 사상들을 말씀으로 대치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면 이렇게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예로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잡이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꿈이라면 고기 많이 잡아 생계 걱정 없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만난 뒤 그 꿈이 달라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고기잡이 할 때 그동안 자기가 갈고 닦아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고기 잡는 기술을 의지해 왔습니다. 필요하면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들 도움을 받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만난 뒤 믿음의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게 됐습니다. 주님 인도 받으며 살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물과 같은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습니까? 세상 가치, 세상 삶의 목표, 세상 신념, 세상 꿈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포도주 같은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하늘의 가치, 주님께서 주시는 삶의 목표, 말씀, 같은 것들로 바꿔가야 합니다.
표적의 조건
그러면 어떻게 이런 변화와 대치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떻게 이런 역사를 일으키시게 됐을까요?
첫째, 믿음
본문에 우리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2-5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우선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아직 이런 표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마리아가 밀어붙였습니다.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부탁한 뒤, 하인들을 불러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했습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합니다. 바로 마리아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짜고짜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람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으로 특별한 방법으로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표적은 전적으로 마리아의 믿음 때문에 시작된 일입니다. 마리아가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믿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대로 하라고 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환우들 가운데 중한 수술을 앞두고 병원을 찾아 심방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수술 시간과 맞아서 수술장에 들어가기 직전 기도해 드릴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저도 수술장에 들어갈 때 배웅을 하기도 합니다.
기도해 드리고 마지막 격려의 말씀을 전한 뒤 의료진들이 침대에 뉘인 채 수술장 안으로 모시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면 문이 닫힙니다. 가족들도 목회자도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의료진에게 완전히 맡기고 돌아섭니다.
생각해 보면 수술장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족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치료를 하는지, 어떻게 환자를 다루는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의료진에게 맡깁니다.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의료진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하시든지, 어떤 방법을 쓰시든지 묻지도 않고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이 믿음이 이 놀라운 표적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 믿고 맡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노후 문제, 자녀문제, 사업의 문제... 주님께 믿고 맡길 때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능력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표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둘째, 순종
본문의 하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항아리는 사람들이 잔치 집에 들어오며 손과 발을 씻기 위해 물을 채워놓은 것입니다. 잔치에 쓸 포도주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말씀하셨을 때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항아리 아귀까지 물을 가득 채웠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했을 것입니다. 하인들이 직접 변화된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또 연회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놀라서 신랑을 불러 말할 때도 그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은 이 포도주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지 자세히 알지만, 연회장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인들은 그저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에 순종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 자기들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자기들의 역할이나 공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순종이 이 표적을 완성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천지창조의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우주만물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했기에 천지창조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하인들의 이런 순종이 본문의 표적을 주님 뜻대로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에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의 순종이 결국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순종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말없이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오늘도 주님의 표적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늘 문제가 생기고, 늘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없이 철저하게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