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두라

레 24:1-4

 

   그림 하나를 보시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그린 그림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성막 안에 만들어 두라고 명하신 등잔대입니다. 보시는 대로 중앙 등잔대와 좌우에 세 개씩의 가지 형태로 뻗은 등잔대, 합해서 모두 7개의 등잔대 위에 등잔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등잔은 살구꽃 받침 위에 두었고, 그리고 등잔대 전체는 모두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성막 내부 성소의 모습입니다. 성소는 가로 4.5미터, 세로 9미터정도, 그래서 넓이가 40.5제곱미터, 평수로는 12.2평정도 넓이입니다. 이 성소 안에는 세 가지 성물이 놓여있습니다. 정면 지성소 바로 앞에 분향단이 있고, 우측에 진설병을 놓는 상이 있고, 그리고 좌측에 바로 이 등잔대가 놓여있습니다.

   출 27: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제사장들에게 저녁부터 아침까지 이 등잔대에 불을 밝히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보다 자세하게 이 등잔대의 불을 어떻게 밝힐 것인지 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옛날 등잔대의 불을 관리하라는 이 말씀은 도대체 오늘 우리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읽게 하셨을까요?

   히 8: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은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지은 성막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 8: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예수님께서 저 하늘의 참 성막에서 참 대제사장으로 섬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모세를 통해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하늘의 참 성막의 모형이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섬기게 하신 것은 하늘의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모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막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성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하늘의 참 성막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막을 통해서 참된 예배가 무엇이고, 진정한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막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막 말씀을 살펴볼 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성막에 대한 말씀 자체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영적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본문의 등잔대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등잔불을 켜라

 

   2절을 보면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소 안에 설치되어있는 이 등잔에 불을 켜라는 명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성막에는 창문이 없다는 점입니다. 성막은 그야말로 큰 텐트이기 때문에 창문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막 안으로 외부의 빛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저 출입문 여닫을 때 밖의 빛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저녁에 해가 지고나면 더합니다. 밤하늘의 달빛이나 별빛 그리고 사람들이 밖에서 피워놓은 횃불의 빛이 성막 안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막 안에 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 소중한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막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따로 준비된 등잔불의 빛이 필요합니다. 성막 밖의 그 어떤 불빛이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는 따로 준비된 빛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을 밝히는 갖가지 빛, 예를 들어 학문의 빛, 전통과 역사의 빛, 그리고 세상 지혜의 빛이 아닌 다른 특별한 빛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빛이 무엇일까요?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사 9:2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빛이 비출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요 1:9에서 이 예언이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은 바로 이 빛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께서 빛이시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요 8:12에서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그리고 요 9:5를 보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막 안의 등잔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막 안의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밝히기 위해 등잔불을 켜는 것처럼,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밝히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빛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진리의 빛을 말합니다. 요 3: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고 가르쳐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은 참된 빛 가운데 거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진리가 빛이라면 거짓은 어둠입니다. 이 세상에 거짓이 가득하고 거짓에 속고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른 채 영적인 무지 속에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인 어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해외토픽으로 소개된 뉴스 한토막이 생각이 납니다. 미국 남부 어느 마을에 고속도로 공사를 위해서 길을 막고 임시로 우회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낯선 길이라서 사람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임시 길안내 표시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장난꾸러기들이 그 길 안내표시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잘못된 표시를 따라 가면서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며칠 뒤 범인이 잡혔고, 다시 올바른 안내 표시가 세워졌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 이런 일이 넘쳐납니다. 사탄이 거짓의 영을 보내 이런 짓을 합니다. 영적으로 우상숭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갖가지 요설에 속아 하나님이 없다며 미혹당합니다. 세상에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풍조를 확산시켜서 하나님보다 세상과 돈을 더 사랑하게 합니다. 다 사탄이 거짓의 영을 보내 하는 짓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둠입니다. 오늘날 이 어둠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듣고 따르는 사람들은 어둠에서 빠져나와 빛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심령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어둠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 우리의 일터, 우리 교회 안에 이 진리의 빛을 더욱 밝게 밝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기름을 채우라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불을 켜기 위해 순결한 올리브기름을 가져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성막 안에 놓여진 등잔대는 원어 “메노라”(םנרה)를 번역한 것입니다. 만일 촛대라고 잘못 번역을 하면 상징적인 의미가 달라집니다. 촛대는 자신을 녹여서 불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희생이라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등잔대는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로 붉을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이 등잔대는 기름이 없으면 붉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비싼 순금 등잔대라고 해도 기름이 없으면 불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가져오게 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기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눅 4: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읽어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빛을 비추기 전에 먼저 성령이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임하신 사건을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바로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후에 빛의 사역을 펼치셨습니다. 우리는 더더욱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름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씀드려서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눅 11:13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않겠느냐”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에 대한 갈급함, 생수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25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중국선교 차 사천성 삼성진이라는 시골마을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고 시골마을에도 길이 잘 뚤려서 성도에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하도 오지 마을이어서 가는 길이 대부분 비포장도로였고 길도 좁았습니다. 그래서 대여섯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저 민가가 40-50호 정도 되는 작고 깊은 산골마을 뒤 언덕 위에, 가축축사를 개조해서 만든 허름한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너무 놀랐습니다. 우선 모인 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무려 1500명 정도가 모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배의 뜨거운 열기가 한국교회 저 뜨거운 기도원집회와 같았습니다. 예배 후에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대부분 1시간에서 멀리는 세 시간을 걸어서 예배드리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주 이렇게 예배를 드리러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분들의 눈빛에서 주님을 향한 갈급함을 보았습니다. 이분들의 찬송과 기도에서 영적인 목마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는 영으로 드려지는 예배였고, 한 사람 한 사람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갈급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영적인 목마름이 필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교회의 등잔에 기름이 떨어져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등잔대에 불이 약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름을 채우라 명하고 계십니다.

 

등잔을 정리하라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제사장들에게 등잔들을 항상 정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등잔을 정리하라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원어성경을 보면 ‘아라크’(ערך)라는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배열한다.’, ‘돌본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한다는 말은 등잔대가 제 위치에서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게 세심하게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등잔들을 ‘항상’ 정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7개 등잔 어느 하나라도 꺼지지 않게 잘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제사장들 가운데 밤을 새워가며 성소에 드나들며 불이 꺼질세라 세심하게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군에 병영 외곽에 초병이 그리고 막사 안에는 불침번이 있어 밤새 경계근무를 서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밤새 쉬지 않고 보살피게 하셨을까요? 가만히 두면 불이 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7개 잔 어느 하나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그 잔에는 불이 꺼집니다. 그리고 심지가 다 타버리거나 심지가 기름 속에 빠질 경우도 불이 꺼질 수 있습니다. 또 생각지 못한 사고가 생겨서 불이 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 보살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소중한 영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신앙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보살피고 지키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사명감을 가지고 보살피고 지키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깨어서 영적인 불침번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 13:24-5를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훈입니다. 우리 마음 밭에 말씀의 씨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를 뿌려주시지만, 사탄이 그 위에 잡초 씨를 덧뿌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은퇴 후에 어떤 분이 아파트를 팔고 늘 꿈꿔오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널찍한 정원에 잔디를 심고 나무와 꽃도 가꾸고, 한쪽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와 먹거리를 직접 키워보려는 꿈을 꾸며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산자락 경치 좋고 한적하고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원생활 첫해를 보내며 후회가 밀려오더랍니다. 여러 가지가 힘이 드는데, 자기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마당 여기저기, 텃밭 구석구석 어떻게 생기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잡초들이 끊임없이 자라더라는 것입니다. 장마 후에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라더랍니다. 그래서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잡초를 제거하는 일에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영적 삶의 문제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동안에 생각지 못했던 갖가지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 문제 때문에 영적으로 지치고, 그 문제 때문에 공동체에 갈등이 생기고, 그 문제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들 가운데 그리고 우리 교우들 가운데 믿음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심할 경우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돌보고 관리해야 합니다. 마치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하듯이 우리 영적인 삶의 자리를 보살펴야 합니다. 마치 제사장이 밤새워 등잔불을 보살피듯이 우리의 영적 등잔불을 보살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복음의 불을 밝혀주셨습니다. 꺼지지 않도록 성령의 기름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꺼지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살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