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동역자
(빌립보서 2:19-24)
Ⅰ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의 내용은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 불렀던, 그리고 그가 신실한 동역자로 인정했던 디모데를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있던 형편에서 빌립보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그런데 그런 형편에서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서신을 보내기 전에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감옥에 갇혀 고난을 겪고 있는 바울을 염려하면서, 당시 빌립보교회의 목회자였던 에바브로디도를 로마에 보내어 바울을 돕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와서,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돕게 되었는데, 그렇게 바울을 돕던 가운데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병과의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 병이 치료가 되어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만, 그렇게 그가 로마에 머물러 있게 된 까닭에 빌립보교회 교우들은 여러 달 동안 목회자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회복하자 자기도 건강을 회복한 에바브로디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했지만, 목회자가 없는 빌립보교회의 형편을 염려하며 그를 바로 빌립보로 돌려보내며 교회를 살피도록 합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에바브로디도가 갈 때 자기도 함께 빌립보에 가고 싶었지만, 현재 자신이 옥에 갇혀있는 형편이라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있게 될 자신의 재판을 통해 자유를 얻게 되면 자기도 빌립보교회에 직접 갈 계획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재판 결과가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할 결과가 나올 경우, 자기 대신 자기가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던 디모데라도 빌립보교회에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즉 자신은 못 간다 할지라도 디모데를 자기 대신 빌립보교회에 보내 당시 초대교회에 침투해 있던 이단에 대한 경계심도 갖게 하고, 교우들의 영적 필요도 채워주며, 그를 통해 교회의 소식을 듣기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우리가 빌립보서라 부르는 빌립보로 돌아가는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서신 안에 디모데에 대한 소개의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Ⅱ
이렇게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의 신실한 동역자로 인정하면서, 자기가 빌립보교회에 가지 못하면 대신 디모데를 보내겠다고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디모데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바울이 그를 자신의 신실한 동역자로 인정해 주었을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의 부모는 피가 같은 동족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 그의 어머니와 외조모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사회에서는 디모데를 유대인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럼 왜 유대사회에서 아버지가 이방인이었음에도 그를 유대인으로 인정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는 유대인의 민족분류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은 민족분류방법에 있어서 부모 둘 다 유대인일 경우에는 그 자녀를 당연히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아버지와 이방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유대인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이방인으로 간주했습니다. 반면 유대인 어머니와 이방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사회에서는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이방인일지라도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사회가 왜 그렇게 민족을 분류했을까요?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자기 민족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혈통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그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즉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이방인일지라도 그 자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보면서, 유대사회는 그렇게 태어난 자녀를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 말입니다.
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경우들을 가지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는 신앙이 있으나 어머니가 신앙이 없을 때,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것 같습니까? 아버지가 신앙을 갖고 있으니 그 자녀들 역시 잘 할 것 같습니다만 사실 그런 자녀들은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아버지는 신앙이 없으나 어머니가 신앙이 좋으면 어떻습니까? 그런 자녀들은 대부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품은 인생의 내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기에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을 실제적 유대인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을 사람이 갖게 되는 데에는 신앙의 어머니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이방인 아버지를 통해 이방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의 신앙교육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게 되었고, 또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가졌던 그가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의 제자가 되어, 누구보다도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디모데의 믿음을 바울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믿음의 아들이라 불러줍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 디모데가 세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도 큰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목회자들도 자신의 목회사역을 잘 도와주는 신실한 동역자들이 주위에 많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떤 사람이 목회자들이 주위에 있기를 바라는 신실한 동역자일 것 같습니까? 물질로 목회를 후원하는 분들이나, 목회자가 피곤에 지쳐있을 때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는 분들 모두 다 참으로 귀한 목회의 동역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물질의 후원이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목회자라면 자신을 돕는 신실한 동역자가 갖추어야 할 으뜸되는 조건으로 누구나 다 믿음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목회사역인데,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목회사역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목회자와 신실하게 동역할 때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다 디모데처럼 큰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부족한 저를 비롯한 우리교회 모든 목회자들의 신실한 동역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신앙과 삶의 내용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 주위에는 사역을 감당하겠다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내 교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줄만한 사람으로는 디모데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0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렇게 ‘디모데 밖에는 없다’는 바울의 확실한 인정을 디모데는 받았습니다. 왜 그가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두말할 필요없이 그가 그런 인정을 받은 이유는 그의 신앙과 삶의 내용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려는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럼 디모데의 신앙과 삶의 내용이 어떠했기에 그가 바울에게 그런 인정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인정했던 디모데의 신앙과 삶의 내용을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과 뜻이 같은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바울은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뜻이 같았습니다. 뜻이 같았다는 이 말은 디모데의 사역의 방향과, 목회적 관심, 그리고 영혼에 대한 열정이 바울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사람사이에 뜻이 같아야 길도 같이 갈 수 있고, 일도 같이 할 수 있으며, 목적도 같이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성도가 목회자의 신실한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까? 목회자와 뜻이 같은 성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신과 뜻이 같았던 디모데를 동역자로 인정했던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의 일을 구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바울은 21절 말씀에서 디모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동역자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즉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진정한 사역자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사역을 한다 하면서도 자기 일이나 구하는 사람이었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그가 진정으로 감당해야 할 일로 여기며 우선적으로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자신이 쓰임 받는다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감격으로 여기며 언제나 예수님의 일을 먼저 구했습니다. 그런 디모데의 신앙과 삶의 자세를 바울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역을 대행할 합당한 사람으로 그를 인정했고, 그를 빌립보교회에 보내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디모데를 연단을 통과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22절 상반절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연단이란 말은 헬라어로 도키메(δοκιμή)인데, 이는 시험을 받아 합격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어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시험에 그 물건이 모두 합격이 되어야 판매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여러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연단이라 한다 그 말입니다.
가구를 만드는데 있어서 고급 재료로 인정받는 것 가운데 하나가 폭풍이 몰아치는 자리에서 자란 오크(oak)라고 하는 참나무입니다. 이 오크는 재질도 단단하고, 나뭇결도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오크가 그렇게 단단한 재질과 정교하고 아름다운 나뭇결을 갖게 된 이유는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 나무가 폭풍이 몰아치는 자리에서 그 폭풍과 부딪혀가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폭풍과 싸우며 자란 까닭에 오크의 재질이 단단해졌고, 나뭇결도 정교해졌으며 아름다워졌다 그 말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슬픔과 시련과 고통의 폭풍을 잘 견뎌낸 인생이 강한 인생이 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디모데는 이런 저런 인생의 연단을 주위 사람들이 다 인정해 줄 만큼 잘 통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을 만난 이후 가난한 전도자가 되어 부잣집 아들로서 안 해도 될 고생을 스스로 자청하며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난과 고생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헌신의 자세를 더 굳건히 했습니다. 또 그에게는 그를 자주 괴롭혔던 위장병으로 인해, 어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질병을 통한 연단을 통과하여 헌신의 열정을 더 키워갔습니다. 그 밖에도 그는 이런저런 슬픔과 시련들을 인생길에서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슬픔과 시련의 연단도 잘 통과하여 헌신의 내용을 더 채워 나갔습니다. 그런 연단을 그는 10여 년 동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디모데의 연단받는 과정과 연단을 감당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를 연단을 통과한 자로 인정했고, 빌립보교회에 그를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넷째, 바울은 디모데를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인격의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22절 말씀 중반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10여 년 동안 디모데는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바울을 도왔던 그 10년이라는 기간에는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디모데는 바울과 혈연적으로 관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바울과 함께 했던 일은 고난과 고생이 따르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혈연적 관계도 없는 사람과 고달픈 일을 하면서 함께했던 기간이 10년입니다. 10년은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얼마든지 바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 10년을 변함없이 복음전파를 위해 수고하는 바울을 곁에서 도왔습니다. 어떻게 도왔습니까?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사실 바울과 같이 적당하게 사는 것을 거부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다 바울과 디모데는 한 세대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 사이에는 세대차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10여 년 동안 변함없이 바울을 도왔습니다. 이것이 10년이라는 기간에 담겨 있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라는 말은 그가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바울 앞에서 자식이 되어 언제나 바울에게 우선권을 주며 겸손했다는 말이고, 모든 일에 바울의 말을 따르며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 같은 바울이 박수를 받는다면, 자식 같은 자기가 박수를 받지 못한다 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바울을 10년 동안이나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그렇게 도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디모데의 믿음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고, 또 그의 인내가 대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다 우리가 분명하게 첨가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살줄 아는 인격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사람의 인격은 개인의 삶에 그 내용이 제한되지 않고, 이웃과의 관계까지 그 내용이 넓혀집니다. 그리고 그 이웃과의 관계는 이웃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인격의 사람은, 그리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줄 아는 인격의 사람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박수를 받는 것을 시기하지 않는 인격의 사람은,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됩니다. 디모데가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격을 가지고 자신과의 조화를 이루며 동역했던 디모데를 바울이 인정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방금 네 가지로 정리하여 말씀드린 디모데와 같은 신앙과 삶의 내용을 여러분도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의 거룩한 역사에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쓰임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Ⅲ
안타깝게도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신앙인들은 불신자들의 조롱을 받을 정도로 거룩함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오늘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도 세상이 교회를 염려해줄 정도로 쇠락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는 정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일을 바로 감당할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 필요한 사람들 중 우선 필요한 사람은 바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즉 좋은 교회의 지도자가 오늘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하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교회의 지도자로 세움받은 저는 오늘에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늘 기도도 하고 있고, 말씀에 대한 공부도 쉬지 않고 있습니다. 간곡하게 부탁드리기는 저를 포함한 세움받은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바울과 같은 사람은, 즉 지도자는 모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한 명이었듯이 그런 지도자는 적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기에 또 다른 사람들이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바울의 사역에 최선을 다해 협력했던 디모데와 같은 사람입니다. 즉 참된 사역의 자세로 헌신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지도자들의 사역을 돕는 신실한 동역자들이 오늘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하다 그 말입니다.
분명 오늘의 기독교 역사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던 지도자들과 그런 지도자들의 사역에 적극 협력했던 지도자들의 신실한 동역자들이 함께 이루어낸 역사입니다. 즉 바울과 디모데가 신실하게 동역한 역사가 오늘의 기독교 역사를 이루어 냈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바울과 같이 능력과 지혜가 훌륭했던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를 돕는 디모데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들이 그 지도자에게 없다면 그 지도자는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설령 조금 부족한 사람이 지도자로 일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역에 신실한 동역자들의 협력이 있다면 그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실한 동역자들인 디모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도자는 더 힘 있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늘의 디모데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런 오늘의 디모데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오늘의 디모데가 되는 것이 이 땅에서 최고의 인생을 살게 하는 능력이고, 영원을 소유하게 하는 인생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디모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디모데가 되기 바랍니다.
Ⅳ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에 디모데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가 하나님의 일과 교회를 위해 사역하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축복하기는 여러분 모두 다 디모데와 같이 큰 믿음을 소유한 사람도 되고, 또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부터 좋은 신앙과 삶의 내용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되어, 교회 지도자의 신실한 동역자로 쓰임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