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이야기
마 3:13-17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 중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의문입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이 베푸는 세례는 회개의 세례인데, 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 세례를 받으셨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던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4-1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예수님께서 명하셔서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당시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은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세례를 받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깨달을 때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의를 이루는 것”
본문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의를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란 무엇일까요? 원어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σύνη)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이요, 그 일에 합당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사람들이 볼 때는 이상한 일이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올바른 일입니다.
마 1:23을 보면,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우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죄 없으신 분을 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일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죄인의 자리에 서시는 일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회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르시기 전에 먼저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신 일이요,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빌 2:5-8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선 당신을 비우셔서 인간이 되셨고, 다음으로 스스로 낮추셔서 죄인의 자리에 서셨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이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의 낮추심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자리까지 낮추셨고, 자기를 위해 일하는 일꾼에게 세례를 받으시기까지 낮추신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자기를 낮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높인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모세는 나이 40에 애굽의 왕족이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미디안 광야로 쫓겨 가게 하셨고, 그곳에서 양치기로 살게 하셨습니다. 왕족이 양치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신 것입니다. 그렇게 40년 동안 철저하게 낮아진 채 살던 모세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하여 다윗을 택하셔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 후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섰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그후 백성들이 다윗을 높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다윗을 사울 대신 왕의 자리에 앉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에게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 되게 하셨고, 사울에게 쫓겨 도망자 신세가 되게 하셨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다급한 도망자로 십여 년을 살게 하셨습니다. 낮추시고 또 낮추신 것입니다. 그렇게 낮아진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아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결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교만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낮아져서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체험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훈련과 준비가 된 사람,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자연을 보며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은 해발이 무려 8848미터나 됩니다. 그 꼭대기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합니다. 사람이 그곳에 등정을 해도 잠시 머물고 빨리 내려와야 합니다.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생존할 수 있는 한계를 ‘수목한계선’이라고 하는데, 그 높이는 불과 해발 3000미터밖에는 안 됩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려면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려면 낮은 곳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높아지면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려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높아져 있지는 않는지? 계속 높아지기만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는 않는지? 예수님을 본받아 낮아지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세례 받을 때 일어나지 않았던 일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을 때 성령이 임했던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사 61: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메시아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그 후에 메시아로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강림한 것은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에 따르면 성령이 강림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메시아 사역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을 받으신 뒤부터 본격적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례 받으신 사건이 사생애와 공생애를 구분 짓는 분기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30년을 사생애를 사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사신 것입니다. 이제 3년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메시아로 구원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때부터 성령이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셨다는 것입니다.
행 19: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에베소에 와보니 이미 교회가 있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어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저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당시 에베소 교인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는데 물세례만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을 받으신 것처럼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부족해 보였던 것입니다.
배를 생각해 봅니다. 옛날에 노 젓는 배만 있었습니다. 사람이 힘겹게 노를 저어야 배가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바다로 나갈 수 없었고, 조그만 풍랑이 일어도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범선이 나타났습니다. 큰 돛을 달고, 바람의 힘으로 배가 힘차게 앞으로 나갑니다. 큰 바다로 나갈 수 있습니다. 웬만한 파도나 풍랑은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 낼 수가 없습니다. 마치 노 젓는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 고난도 극복하며 신앙생활을 잘 해 낼 수가 있습니다. 마치 돛단배 범선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힘만으로 기도하려 할 때 참 힘이 듭니다. 30분 이상 기도하기가 힘이 듭니다. 집중도 잘 안되고, 기도할 말도 없고, 다리에 쥐도 나는 것 같고...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도움을 힘입고 기도하면, 언제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철야도 할 수 있고, 며칠 금식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는가? 나는 성령의 도움을 힘입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또 다른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역시 그 어떤 사람이 세례 받을 때 일어나지 않았던 일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예수님께만 들려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례를 베푼 세례요한은 물론이고, 세례 받기 위해 나온 많은 사람들이 다 듣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공개적으로 선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시 2:7을 보면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 말씀이 세상에 선포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예수님께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마 28: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권세를 위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 권세를 받으신 것입니다.
병원마다 ‘의사자격증’을 걸어놓았습니다. 성명, 전문 과목, 생년월일, 성별 등을 기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자격취득의 근거가 되는 법 규정과 취득한 날짜를 표기해놓았고, 보건복지부 장관 직인이 찍혀있습니다. 이 자격증이 의사가 의사로서 진료할 수 있는 권세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자격증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메시아로서 권세를 행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 받으실 때 공식적으로 이 권세를 받으신 것입니다.
요 1: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참 많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 아버지께 나갈 수 있는 권세, 아버지께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권세,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권세,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권세, 그리고 천국을 상속받을 권세 등입니다. 우리가 이런 권세를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일전에 이해할 수 없는 뉴스를 본 일이 있습니다. 50억 재산가가 노숙을 하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부모로부터 토지보상금 50억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은행에 넣어두어 매달 1000만원씩 이자를 받고 있는 사람인데, 인천, 서울, 천안을 떠돌며 노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의 권세를 주셨는데, 그것을 쓰지 못하고 영적인 고아처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후에 하나님께 놀라운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잘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 권세를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알찬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