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번제의 메시지
민 28:1-8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상번제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상번제란 무엇일까요?
상번제란 성경원어 ‘올라 타미드’(עלה תמיך)를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올라’라는 말은 제단 위에서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것을 ‘번제’(燔祭)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타미드’라는 말은 ‘계속해서’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항상 ‘상’(常)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두 단어를 합해 보면 ‘계속해서 드리는 번제’라는 뜻으로 정해진 규칙을 따라 지속적으로 드리는 번제를 말합니다.
실제로 본문을 보면 상번제를 이렇게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 한 마리씩을 매일 두 차례 아침과 저녁에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와 아울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약 2.3리터)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약 1리터)을 섞어서 소제도 함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독주 1힌(약 1리터)을 전제로 함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엄히 명하셨습니다. 매일 두 차례 소제와 전제를 곁들여서 상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물론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를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와 무관한 말씀이니 그냥 넘어가서도 안됩니다. 분명 이 말씀을 성경에 담아 우리에게 읽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이 상번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언제(When)
우선 이 상번제 말씀이 주어진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하실 때는 광야 40년 생활이 끝나갈 때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출애굽 이후 시내광야에 머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 받은 뒤,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반역을 저지른 뒤 38년을 더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반역했던 출애굽 1세들이 대부분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20세 이상 장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계수하게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출애굽 초에 계수한 출애굽 1세와 그 수가 거의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이 출애굽 2세들로 구성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전에 출애굽 1세에게 명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출애굽 2세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상번제에 대한 말씀은 출 29:38-46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40년 전 출애굽 1세들에게 상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제 출애굽 2세들에게 그대로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1세대에게 하셨던 말씀을 2세대에게 반복해서 하신 것일까요?
현대 과학의 위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로 ‘유전자’ 즉 DNA의 발견을 꼽습니다. 이 DNA는 두 개의 가닥이 꼬여 있는 이중나선구조로 되어 있는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이 DNA 안에 모든 생명체의 성장, 발전, 작동, 생식의 유전정보가 담겨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이 유전정보를 따라 나고 자라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DNA는 오직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점입니다. 원숭이는 원숭이 새끼를 낳고, 그 새끼는 원숭이로 자라갑니다. 아무리 사람처럼 먹이고 입히고 훈련을 시켜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안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원숭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생물학적 DNA 외에 영적 DNA를 생각해 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생물학적 DNA를 물려주는 것처럼 영적 DNA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들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출애굽 2세들에게 하신 것이 바로 그런 메시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녀들에게 생물학적 DNA만 물려줄 것이 아니고, 영적 DNA도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 1:1-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족보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기 전에 이스마엘을 먼저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에는 이삭만을 낳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왜일까요? 아브라함이 생물학적 DNA를 이스마엘과 이삭에게 전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DNA는 이삭에게만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낳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삭도 야곱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삭은 쌍둥이로 에서와 야곱을 함께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에는 야곱만 낳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왜일까요? 이삭이 생물학적 DNA를 에서와 야곱에게 모두 전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DNA는 야곱에게만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낳았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12아들을 낳았는데 유다를 비롯해서 그 모든 아들을 다 낳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왜일까요? 야곱은 12아들 모두에게 생물학적 DNA를 전해주었을 뿐 아니라 영적 DNA도 다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아들을 중심으로 12지파의 민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야곱의 다른 이름인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낳아서 양육하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의 생물학적 DNA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영적 DNA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자녀들 가운데 육적인 DNA만을 물려주고, 영적 DNA는 물려주지 못한 자식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식들 가운데 이스마엘이나 에서와 같은 자식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영적 DNA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처럼 우리 자식 모두가 다 우리의 영적 DNA를 물려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왜(Why)
다음으로 왜 상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출애굽 2세들입니다. 당시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광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땅도 아닙니다. 대대로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일컬어 가나안 7족속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당시 남자 장정만 60만이 넘습니다. 전체 인구를 다 파악해 보면, 못해도 200만이 넘을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7족속의 수보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몇 사람이 이민 오듯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가나안 원주민과 생사를 걸고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들을 내쫓느냐 아니면 우리가 내쫓기느냐의 처절한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이야기를 써놓은 ‘여호수아’를 보면, 온통 전쟁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사람들이 시급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전쟁 준비가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상번제입니다. 그것도 광야를 행군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상번제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서 평소처럼 상번제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전쟁 다 끝내고, 가나안 땅 정복한 뒤 여건이 갖춰졌을 때 예배를 드리라고 하시면 되지 않았을까요? 왜 이 상황에서 예배 잘 드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한 마디로 전쟁에서 이기려면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의 전쟁은 타 민족의 전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고 하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출애굽 2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쟁을 치르며 이 사실을 직접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 첫 번째 전쟁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전력으로는 결코 넘볼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민족들처럼 전쟁을 치렀다면 이스라엘백성의 피해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포기하고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여리고성을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전위 군사들이 앞장서고, 그 뒤에 제사장 7명이 양각나팔을 불며 앞장서고, 그 뒤에 언약궤가 나가고, 그리고 그 뒤에 후위 군사들이 대열을 맞춰 행군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한 번, 그리고 7일이 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이 길게 나팔을 불 때 여호수아의 명을 따라 군사들이 큰 소리로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느 전쟁에서는 볼 수 없는 놀라운 광경입니다. 그저 성을 돌았을 뿐인데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직접 역사하셨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제가 즐겨 부르는 CCM곡 가운데 [세상의 유혹 시험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1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 때에, 나의 힘으로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 때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전쟁과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탄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치열하게 삶 속에서 경쟁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때론 생존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보다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내편으로 세워놓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하나님을 내편으로 삼을 수 있고, 하나님을 내편으로 삼아야 인생의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 상번제를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How)
그러면 상번제는 어떻게 드려야 했을까요? 상번제는 일단 양 한 마리를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 뒤에, 제단에서 나무에 불을 피워 태웠습니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까 가죽 외에 전체를 태울 때 세 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상번제를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드렸습니다. 자료를 보니까 오전 9시에 한 차례 상번제를 드렸고, 또 오후 3시에 또 한 차례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오전 제사가 9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나면 또 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단에 가득한 재와 여기 저기 튀었을 피와 오물들 청소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족히 1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 제사를 바로 준비해야 했을 것입니다. 3시에 제사를 시작하려면 제물도 가져와야 하고 나무도 다시 쌓아야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제사장들은 이 상번제를 드리느라 하루가 너무 바빴을 것입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 생각은 온통 예배에 있었고, 그들의 영적 시선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세상을 향할 겨를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상번제를 드리게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민 2:2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당시 이스라엘백성은 텐트생활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수로 다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텐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중앙에 성막을 세워두고 모든 텐트가 다 중앙 이 성막을 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텐트 문을 열면 성막이 보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이렇게 진영을 짜면 안 됩니다.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안 되고, 전략적 요충지에 군단을 조직해서 분산해서 진영을 짜야합니다. 그리고 텐트가 바깥쪽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외부 적의 침입을 감시할 수 있고,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진영을 짜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텐트를 회막을 바라보게 하셨을까요? 매일 드려지는 상번제를 멀리서라도 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상번제를 드리지만 이스라엘백성들도 눈으로 마음으로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이 늘 주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있습니다. 반복해서 바라보면 그 생각에 빠져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깊이 바라보면 그 생각에 사로잡혀버리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을 생각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볼수록 우리 생각이 주님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반복해서 바라보면 그것 때문에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깊이 바라보면 그것을 닮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 때문에 변화되고, 결국 주님을 닮게 되어있습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주님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예배를 반복해서 그리고 깊이 드리면 우리의 영적 시선은 주님께 고정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생각은 주님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변하게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고 주님 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매일 매일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여기에 상번제의 소중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상번제를 드리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가 우리에게 주님을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전쟁 같은 우리 인생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예배의 중요성을 영적 DNA로 우리 다음세대에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승리하시고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