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민권
(빌립보서 3:20-21)
Ⅰ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울이 말한 교회 안에 있는 세 부류의 십자가의 원수들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세 부류의 십자가의 원수들 가운데 첫째는 십자가의 완전한 능력과 은혜를 무시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의 형식을 잘 지키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형식적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이단과,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도덕과 같은 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며 반도덕주의적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을 전파하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신앙의 길을 걷지 않고, 자기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성도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지 않고 땅의 기준으로 살면서, 땅의 것만을 가지려하고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세 부류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라는 말은 진리의 원수, 천국의 원수, 예수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그런 십자가의 원수는 신앙의 연조나 직분과 상관없이 최종은 멸망이며 부끄러움이고, 그래서 결국 천국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성경의 말씀 그대로를 믿는 진리의 사람이 되어 어떤 이단도 물리치는, 그리고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헌신의 길을 걷는, 그리고 언제나 하늘의 일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그런 십자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Ⅱ
이런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오늘의 본문 말씀은 땅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을 먼저 단어와 구절들을 나누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20절 상반절 말씀인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에 나오는「우리」는 예수님께서 치루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바울과 빌립보교회 교인들을 비롯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시민권」이란 한 나라에 속해있는 백성에게 그 나라가 갖게 해준 권리를 말합니다. 물론 시민권을 가진 백성에게는 나라에서 부여해 준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있음과 동시에 백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치루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지금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이미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이고, 그러기에 천국백성이 된 성도들에게는 천국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 주어져있다는 말씀이며, 따라서 천국백성이 된 성도들은 자신이 천국백성임을 늘 자각하면서 천국백성의 의무를 잘 감당하며 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20절 하반절의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는 말씀에 나오는「거기로부터」는 성도들이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 가운데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라는 구절에 나오는,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계시고 있는 천국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우편을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하는 자」는 성도의 구원을 완성시켜 천국에서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하실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는 말은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치루어 주신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갖게 된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땅의 환경이나 이단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21절 상반절 말씀인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에 나오는「그」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는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시간과 영원과 내세와 심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절 뒤에 나오는「역사」는 헬라어로 에네르게이안(ὲνέργειαν)인데 이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 즉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의 역사를 말합니다. 따라서「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라는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의 능력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같다는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 능력으로 성도들을 위해 행하실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21절 하반절 말씀에 나오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는 말씀에 나오는「우리의 낮은 몸」이란 성도가 땅에 사는 동안 갖고 있는 한계가 있는 현재의 몸을 말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죄와 욕망과 죽음과 질병과 고난 등에 대해 무기력한 육체의 연약성을 말합니다. 그리고「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입으셨던 죽음이 없는 영생의 몸과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변하게 하시리라」는 재림 하시는 예수님께서 그런 예수님의 몸과 같이 성도들의 몸도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는 말씀은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 재림의 날에 온 우주와 사탄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초자연적이고 주권적인 능력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해 주시며,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Ⅲ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시민권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는가를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준 사건과 그 일로 인해 억울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다음 날, 바울을 옥에 가두었던 관리가 간수를 통해 바울을 석방한다고 통보합니다. 그 때 바울은 ‘로마사람인 자신에게 지은 죄가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저 때리고 옥에 가두어놓았다가 이제 나가라고 하는데, 나는 나갈 수 없다 그렇게 한 관리가 직접 와서 자기를 데리고 나가라’고 요구합니다. 그런 바울의 요구를 통해 바울이 로마시민임을 알게 된 관리는 두려워하면서 바울에게 직접 와서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로마시민이라는 말 한마디에 바울을 때리고 옥에 가둔 관리가 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로마시민권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문헌을 살펴보면 당시 로마제국은 인구의 절반이 노예였고, 나머지 자유인들 중에서도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또 절반 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즉 로마제국의 백성들 가운데 1/4만이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그 말입니다. 이 로마시민권은 로마군인으로 2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나 세금을 많이 내고 황제에게 특별한 충성을 한 사람에게 주어졌고, 또 돈으로 시민권을 산 사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아버지가 로마시민권자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시민에게는 황제로부터 노예들이 한두 명씩 배당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당 된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을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로마시민들은 일을 하지 않고도 놀면서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또 로마의 식민지 지역에서 로마시민들은 방금 말씀드린 사도행전 16장의 내용처럼 특별한 보호도 받았고, 대접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죄인까지도 우대를 받았는데,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가장 끔찍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 때문에 똑같이 순교를 당했지만 로마시민이 아니었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고, 로마시민이었던 바울은 목베임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로마시민권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본문에서 로마시민권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자신과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시민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시민권은 로마시민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민권이라고 말하면서,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제 이런 본문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Ⅳ
첫째, 어떤 사람이 하늘의 시민권자가 되는가를 살펴보십시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이 말씀에 나오는 시민권은 헬라어로 폴리투마(πολίτευμα)인데, 그 뜻은 나라라는 뜻으로 실제적으로는 국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성도의 국적이 하늘나라, 즉 천국이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국적, 즉 천국의 국적을 성도가 어떻게 취득했습니까?
하늘나라의 시민권은 부모가 목사이고 장로라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행위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돈으로 사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분명 하늘나라, 즉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만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만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방법입니다. 만약 사람의 노력이나 행위나 돈으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겠습니까? 진정 하늘나라의 시민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치루신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자신의 죄를 대속해주신 죽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갖게 된 순간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자신에게 하늘의 시민권이 주어졌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복 중에 이 믿음을 갖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하늘나라에 가게 된 것보다 더 큰 복이 사람에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만큼 귀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나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성도가 된 여러분에게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십시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 나라는 세 가지의 특권을 줍니다. 그 첫째는 거주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무한정 우리나라에 거주할 수 없습니다. 비자 기간이 만료되면 떠나야 합니다. 만약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추방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추방당할 염려 없이 언제까지나 거주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보호받는 특권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여기자가 북한에 잡혀 있다가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들어가 데리고 나온 일이 있습니다. 왜 미국 정부에서 전직 대통령까지 동원하는 많은 노력과 돈을 들이면서 그 여기자의 석방을 위해 힘썼습니까? 그 여기자가 미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민권자는 나라의 보호를 받습니다.
셋째는 영광을 누릴 특권입니다. 나라가 일등 나라가 되면, 그 나라의 국민은 일등 국민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국가 대항전에서 승리한 나라의 국민은 자기가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나라가 승리한 까닭에 나라와 함께 승리의 영광을 누립니다. 이런 세 가지 특권을 나라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에게도 그런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하늘나라, 즉 천국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보호를 언제나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살이의 여러 고달픔과 악한 마귀의 여러 유혹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이 땅에서 받기도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그 고달픔과 유혹을 이겨내고 하늘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성도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은 오늘 읽은 21절 말씀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사건인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는 그 능력의 역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누리실 영광을 함께 누릴 영광이고, 또 썩고 욕되고 약한 몸이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썩지 아니할 거룩하고 강한 영광의 몸으로 변화하는 영광입니다.
힘 있게 따라서 외치시길 바랍니다. “나는 하늘의 시민권자이다. 따라서 하늘나라 시민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하늘나라의 특권을 늘 기억하며 용기와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살펴보십시다.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삽니다. 그래서 성도는 두 나라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이것을 두 왕국의 백성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럼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이 땅에서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인식하면서 본향인 하늘나라를 향해가는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 그대로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용장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런 내용들 가운데 그들의 믿음이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이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고 순례자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본향이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본향인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의 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 하늘나라 법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한 나라의 시민은 그 나라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의 시민인 성도도 하늘나라 법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가 지켜야 할 하늘나라 법은 이웃에 대한 법과 하나님께 대한 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웃에 대한 법을 요약하면, 그 법은 사랑의 법이고 생명의 법이며 자유의 법입니다. 즉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하고, 이웃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야하며, 이웃의 자유를 보장하며 살아야한다 그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 대한 법을 요약하면, 그 법은 사랑의 법이고 충성의 법이고 거룩의 법입니다. 즉 하늘나라 시민인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아야하며,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야한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고, 하늘나라 법을 준수해야 하며, 하늘나라에서 결산하게 될 그 날을 준비하며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성도가 된 사람들은 이미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보호도 받고, 또 그 나라의 시민이라는 의식과 자세를 가지고 나름대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복락도 누리기 못한 상태이고, 예수님과 같은 영광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때,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과 같은 영광에 이르게 될 때가 언제입니까? 그 날은 예수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서 강림하시는 날(살전 4:16), 즉 재림의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재림의 날에 성도의 구원은 완성됩니다. 그래서 그 재림의 날에 성도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고, 예수님의 영광과 같은 영광을 예수님과 함께 누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할 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분명 예수님의 재림은 성도의 소망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 날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따라하십시다. “나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답게 살아야 한다.” 성도인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답게 순례자 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법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 땅에서의 삶을 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Ⅴ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것, 우리 인생에 이 보다 더 크게 감격할 일이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더 크게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하늘나라의 시민답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신앙적 의식과 자세로 신앙인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