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4)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리라! (막 10:46-52; 겔 36:25-27)
성경을 보면 눈에 관한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첫째는,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꼬집으면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사 43:8; 렘 5:21)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나의 눈을 밝히소서”(시 13:3),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시 119:18)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죄악으로 마음의 눈이 가리워지지 않기를, 그리하여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달라”(엡 1:18)고 기도했습니다.
눈과 관계된 둘째 표현은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될 때에 일어날 사건들을 묘사하는 중에 “소경의 눈이 밝아질 것”(사 35:5)이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소경이 보게 되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마 11:5). 여기서 소경의 눈이 밝아지는 것은 단지 장애가 극복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던 영적인 눈이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을 종합해보면, ①마음의 눈이 있다, ②죄로 말미암아 마음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다, ③마음의 눈이 회복되는 것이 곧 영적인 회복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되는 사도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마음의 눈과 영적 회복과의 관계에 관한 아주 좋은 예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를 향해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합니다. 그때 하늘에서 비친 빛의 광채 때문에 눈이 멀게 됩니다.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로 지내다가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통해 시력이 다시 회복됩니다. 그 후,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회심의 핵심은 사흘간 눈을 보지 못했다가 다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하는 영적 레이저 광선을 통해서 영적 라식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회복됨으로써 그의 삶 전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2.
마가복음 10장에서 우리는 바디메오라는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선천적인 소경이 아니라 사고나 질병으로 시력을 잃게 된 경우입니다. 그가 예수께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51절)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언제 어떤 일로 인해서 시력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눈이 멀쩡했을 때에, 그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보고 또 봐도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사랑스런 애인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력을 상실한 이후 그 모든 것들은 단지 가슴 아픈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먼 탓에 거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력과 더불어 그의 모든 행복, 모든 미래를 함께 잃어버린 것이죠. 그런 바디메오가 예수님의 치유와 회복의 손길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시력이 회복되었으니 그로 인해 잃어버렸던 다른 것들도 차차 되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집으로 달려가 부모형제의 얼굴부터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에게로 달려가야 할까요? 소경이 된 후에 자기를 놀리고 외면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보란듯이 회복된 눈을 보여줄까요? 하지만, 바디메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52절). 다시 보게 된 눈으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된 것은 그의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의 눈이 치유되는 순간, 그의 마음의 눈도 함께 치유되었습니다. 치유되고 회복된 마음의 눈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알아본 것입니다. 그분이 단지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로운 능력의 소유자만이 아니라 인생의 참된 목적이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가고 닮아가는 삶 속에 참된 생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3.
신체의 여러 기관들 중에 눈은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눈이 마음의 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눈을 통해서만 드러납니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눈빛이 맑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눈빛도 따뜻합니다. 눈빛이 곧 마음빛입니다. 마음이 슬픈 사람은 눈망울이 슬프게 보이고, 마음에 근심 걱정 염려가 가득찬 사람은 눈빛도 불안합니다. 눈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무언가 부끄러운 일을 하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합니다. 어떤 사람과 눈을 마주보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군목 훈련을 할 때에 한 내무반에 저를 포함해서 목사 세 명, 스님 한 명, 신부님 두 명이 함께 지냈습니다. 서로 다른 세 종파 성직자들이 한 내무반에서 동거동락을 하니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중에 정말 얼굴이 험상궂는 신부님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 신부님의 눈빛이 참 선하고 따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험상궂게 보이던 얼굴이 보면 볼수록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어느날, 훈련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후 내무반에 와 보니 한 가운데에 있는 책상 위에 초코파이가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 있고, 초가 한 개 꽂혀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관학교에 훈련을 들어왔었는데, 그 날이 바로 제 딸의 백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신부님이 첫 딸의 백일 때에 가족들과 떨어져 훈련을 받고 있는 저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그런 자리를 마련해준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 중에 여섯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깨끗하니 마음의 눈도 맑을 것이고, 그 맑은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죄와 욕심으로 마음이 뿌연 사람은 눈이 흐려져서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눈과 마음과의 관계를 다시금 분명히 알게 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곧 마음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죄된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 (겔 36:25-27).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 되는 것, 낡은 마음이 새 마음이 되는 것, 돌같이 굳은 마음이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는 것 – 이것이 바로 영적인 회복입니다.
4.
돌같이 굳은 마음이 무엇입니까? 첫째, 좁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인색하고 옹졸해서 남의 잘못도 용서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실수도 용서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마음에는 늘 분노가 가득차 있습니다. 둘째, 닫힌 마음입니다. 배타적인 마음, 포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마음입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늘 고독합니다. 셋째, 어두운 마음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마음입니다. 좋은 쪽, 밝은 쪽보다는 나쁜 면, 어두운 면만 봅니다. 이런 마음에는 불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넷째, 교만한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깔보고, 업신여기고, 과소평가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에는 왜곡된 자기애로 가득차 있습니다. 다섯째, 악한 마음입니다. 사실과 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 정직하지 못한 마음, 거짓으로 일관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어째서 인간의 마음이 이처럼 돌같이 굳어집니까?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방치되었기 때문입니다. 밭을 일궈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해두면 땅이 굳어집니다. 몸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근육이 굳어집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도 선한 목적,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목적을 위하여 계속 사용되지 않으면 굳어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심으로 즉 마음을 다하여 하지 않는 것이 마음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몸은 쓰면서 사는데, 머리는 쓰면서 사는데, 마음을 쓰지 않으면 그 마음이 굳어집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내버려두시기 때문에 마음이 굳어집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사람들의 마음을 버려두신다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24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26절)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28절)
시편에서도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죄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려두셨다고 말합니다.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내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집대로 버려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게 하였다. (시 81:11-12)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 돌같이 굳어지는 근본 원인입니다. 인간이 고집스럽게 하나님을 떠나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멀리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두십니다. “그래. 한 번 네 맘대로 살아보려무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시면 그 마음이 굳어집니다. 마치 몸에서 산소가 빠져나가면 몸이 굳어지는 것과 같이, 생명의 기운이신 하나님의 영이 떠난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마음이 돌같이 굳어지는 원인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 어떻게 다시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모셔들여야 가능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엡 3:17).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밭을 일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면 그 영이 즉 성령이 우리의 굳은 마음밭을 갈아주시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굳어진 마음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마음(빌 2:5)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돌같이 굳은 마음과 정반대의 마음입니다. 첫째, 넓은 마음입니다. 어떤 죄악이라도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둘째, 열린 마음입니다. 누구든지 품는 마음, 누구든지 맞아주는 환대의 마음입니다. 셋째, 밝은 마음입니다. 언제나 좋은 쪽을 보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격려하고 칭찬하고 세워주는 마음, 인생은 긍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넷째, 겸손한 마음입니다. 늘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빌 2:3)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낮아지는 섬김의 마음입니다. 다섯째, 선한 마음입니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꾸밈없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새빛 교우 여러분, 이 마음을 품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이 마음이 회복되어야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온전해집니다. 마음이 넓어져야 인생도 넓어집니다. 마음이 밝아져야 인생도 밝아집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결국 높아집니다. 영적인 눈이 회복되고 마음이 회복되어야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시력이 회복되고 마음이 회복되는 일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바디메오가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48절),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51절)라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의 눈이 치유되기를, 그리스도의 마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치유의 은혜가 허락될 것입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어서 선하고, 겸손하고, 밝은 마음으로, 넑게 열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11년,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마음이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더욱 온전해지고, 우리교회가 더욱 온전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