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할 길

< 본문 출애굽기 3:7-12 >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스캇 펙(M. Scott Peck, 1936-2005) 박사가 쓴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의 영적 방황에 길잡이를 제시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주 유명한 저서입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삶은 고해(苦海).”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다. 이것이 위대한 진리인 까닭은 진정으로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고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냥 고통스러운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야만 할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캇 펙은 이 책에서 고통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이겨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 가운데 스캇 펙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스캇 펙은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사려고 노력할 때 우리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성숙하게 되어 있고, 그런 사람이 고해와 같은 인생에서도 참된 가치를 깨닫고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사랑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성장해 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어 다른 사람도 성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통해 서로가 성장해 갈 때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가치 있고 성숙한 삶,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의 후속편으로 『끝나지 않는 여행』『그리고 저 너머에』『아직도 가야 할 길, 그 길에서의 명상』 등을 연이어 출간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여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길이 험난할지라도,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순간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만의 인생 지도를 만들어 앞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단 한 개인의 인생사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스캇 펙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담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임상에서 만나며 글을 쓰고, 그들을 통해 우리 각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을 탐구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개인보다 더 큰 집단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나라 광복 76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1년 전인 1910822,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인 이완용과 제3대 한국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하나가 된다.’는 한일합방 조약에 서명하고, 일주일 후인 829일 그 조약이 공포되고 발효되면서 우리나라는 주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458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35년간 우리 민족은 영토와 주권과 자유를 잃고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정치적인 압박과 경제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종교적 신앙의 자유까지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천왕숭배를 강요하면서 종교를 탄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제 징용된 사람들은 일본으로 끌려가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혹독한 노역을 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남태평양 팔라우제도에까지 끌려가 강제부역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들 수십만 명을 식당 종업원이나 간호사 등을 모집한다.’는 말로 속여 일본군 위안부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에 당한 우리나라의 폐해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때 ‘815일이 해방절이냐 광복절이냐하는 문제가 날카롭게 대두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속박으로부터 풀려났다.’는 뜻을 가진 해방이라는 말은 자칫 일본이 선심을 쓰듯 우리를 해방시켜준 것이라는 어감 때문에 해방절이라고 쓰는 것보다,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목숨 걸고 싸워 쟁취한 것이기에 잃었던 빛(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의 광복절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거기에는 북한에서 815일을 민족해방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반감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광복이나 해방이나 그 의미는 별로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지긋지긋한 압박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장면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면서 애굽 땅에서 노예생활하며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 내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려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여러 가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당신의 백성이 이방 땅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분명히 보았다.’는 말씀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지켜보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그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백성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데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을 건져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려 하신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이어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9절에서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그렇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해방시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고 모세를 보내 그들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려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려 하신 이유는 그들을 약속한 땅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입니다. 8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을 건져내고 그들을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 가시기 위함입니다. 그 가나안 땅, 본문 8절에 언급되고 있는 가나안 부족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은 이미 5-600여년 전에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창세기 13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제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세 가지 이유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려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도록 그들을 해방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이유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세밀하게 지켜보신 이유도, 그리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신 이유도, 더 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신 이유도 다 이것을 위함입니다. 그 모든 이유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과정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 그들이 부지런히 싸우며 이루어야 할 더 중요한 목표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한 목적을 이루가야 했습니다. 기적같은 방법으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문 12절의 말씀처럼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새롭게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을 맺고 그들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 율법을 계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마친 후에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해방되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훈련받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믿음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으로 살지 못하고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해방시켜주신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민족은 어떻습니까? 1945815일 광복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일제에 빼앗겼던 주권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한 해방을 얻었습니까? 완전한 광복, 완전한 해방, 완전한 자유는 그것의 목적을 이룰 때에야 가능합니다.

  물론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은 많은 면에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탈출했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때 그들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하겠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통 가운데 부르짖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된 후에 우리는 독립을 위해서 거친 투쟁을 해 왔습니다. 3.1 만세운동을 비롯해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만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끊임없이 독립을 위한 투쟁과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독립된다면 곧바로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중국에 임시정부를 마련하고 정부조직과 각료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해방과 독립을 위해 우리는 수없이 투쟁하고 준비했습니다. 배워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뜻 있는 사람들은 학교를 세우고, 야학이나 농민회 등을 통해서 계속해서 지식을 쌓도록 했습니다. 오직 부르짖는 것만 한 애굽에서의 이스라엘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물론 우리도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고 교회당이 불에 타면서도 독립을 위해 교회들이 투쟁했고 기도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등을 비롯해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말씀을 선포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 민족은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데 분명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독립과 해방과 광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 노에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은혜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국민들이 독립을 원했고, 그래서 독립운동과 거센 투쟁을 했습니다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본을 이겨내고 독립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에 임시정부를 조직했고 이국 땅에서 독립을 위한 투쟁과 전쟁이 계속되었지만, 우리 힘으로 독립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 두 발을 투하하고, 결국 일본이 항복을 선언함으로 우리는 그렇게도 원하던 독립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미국을 통해서 일본을 패망케 하시고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은혜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독립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끝은 분명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독립과 해방과 광복을 주신 목적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해방을 주신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목적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이유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때로는 가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마귀의 권세에 눌려 살던 우리 영혼을 해방시켜 주셨고,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음을 향해 가던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갑자기 찾아든 불안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세상의 온갖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신 이유, 가난과 질병과 마귀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이유, 두려움과 공포, 불안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신 이유는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심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민족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자신도 그렇거니와 우리 민족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애굽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음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실패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하거나 믿음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말씀드린 스캇 펙 박사가 표현한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완성을 위해 우리는 지금도 가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길목에서 완성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완성을 위해 가는 길목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스캇 펙 박사는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스캇 펙 박사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을 저술할 때에는 불교도였습니다. 그 책을 쓴 후에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가르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믿음의 완성으로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 믿음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도 사랑이 가득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에 우리 신앙인들이 불쏘시개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불쏘시개 말입니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일본과 경기할 때 어느 경기에서는 이기고, 어느 경기에서는 졌습니다. 올림픽에서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일본과 경기할 때면 다른 나라와 경기할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다른 나라에게는 져도 일본에게만은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우리민족의 감정이 그런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이 하는 행태를 보면 일본이 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강제징용을 해서 부려먹었으면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피해보상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꽃다운 나이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가 그들의 인생에 치명적인 고통을 주었으면서도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부아가 치밀어오고 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우리의 감정입니다. 그게 잘못외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감정에 따라서만 살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내 마음을 지배하려는 감정을 이겨내고 말씀에 뿌리내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일본이 미웁더라도, 우리는 그 감정을 이겨내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품어야 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미웁다고 그들이 망하길 바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과 일본 사이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일본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덧입는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게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이유 아니겠습니까?

 

  해방은 미완성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도 미완성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도 미완성입니다.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의 해방도 미완성입니다. 우리는 온전함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완성을 향해 나가는 걸음에 미완성을 완전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야말로 해방을 완성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을 만들라고 말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 이웃(이웃 나라)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가고 있는 이 믿음의 길에서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오직 사랑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