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

 

시 17:1-15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악인은 고난을 당해야 하지만, 의인은 고난을 피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악인들은 떵떵거리고 잘 살지만, 의인들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지방에서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온 청년 두자매가 우리교회에 등록해서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지방의 큰 제철회사에 다니셨고, 부모님이 장로와 권사로 그 지역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고 계셨습니다. 자매들도 우리교회 청년부에서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회사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퇴사하게 됐습니다. 이 분이 너무 억울해서 기도하기 위해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자매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넋이 나간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사실 목회를 하면서 이와 같은 일을 가끔 겪습니다. 그럴 때마다 위로하고 기도하는 저도 참 많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다르게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복을 주시면 목회하기 좋을 텐데... “아무개를 보세요 저렇게 신앙생활 잘 하면 저렇게 복을 받아요” 이렇게 말하며 성도들을 권면하면, 성도들이 신앙생활 잘 해보려고 열심일 텐데...’

   그런데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나이 75세에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이민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도착하면서 처음 겪은 것이 기근입니다. 더 이상 그 땅에 머물러있을 수 없어서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힘썼지만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나이 75세에 자식이 없었는데, 그 나이에 아들을 낳아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 100세가 될 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 또한 믿음으로 살려고 힘썼지만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남다르게 신앙생활 잘하면, 이 세상에서 남다르게 복을 받는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나면, 꽃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은 이 땅에서 복을 받는 것과는 직접 연관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신 저 천국에서 받을 상과 직접 연관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을 받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은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표제가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의 다윗의 시는 표제가 “다윗의 시”라고 되어있는데, 이곳에서는 기도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이 시는 다른 시와 달리 깊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울 왕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폐하시고 대신 택하신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목동이던 다윗을 택하시고, 사무엘을 보내 왕으로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상상할 수 없던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받은 다윗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옵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제거하려듭니다. 여러 차례 직접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이 위기들을 넘겼습니다. 더 이상 사울 곁에 있을 수 없다 판단하고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사울이 끝까지 다윗을 쫓습니다. 그 세월이 10년입니다.

   본문은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이 드린 기도입니다. 이 기도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원망이 없는 기도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이 이 기도에는 원망과 불평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다윗의 상황이라면 원망과 불평거리를 찾으려면 산을 이룰 것입니다. 왜 목동으로 잘 살고 있는 나를 가만히 두시지, 택하셔서 이 고난을 겪게 하십니까? 왜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셔 놓고는, 사망의 골짜기에 있을 때 보고만 계십니까? 왜 이토록 오랜 세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등등

   그러나 본문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이 기도뿐이 아닙니다. 다윗은 죽을 것 같은 위기 속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끝이 없을 것처럼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남다른 은혜를 입어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 1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만 하다가 다 죽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홍해를 걸어서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생활이 고생스럽다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원망과 불평이 문제였습니다. 저들이 원망하고 불평하자 그동안 시내광야에서 영적으로 훈련 받았던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영적으로는 더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민족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처참했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힘없어 나라를 빼앗긴 왕실을 원망하고,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다 일본 좋은 일만 해 주는 일이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면서 술 마시며 방탕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 애국지사 도산 안창호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힘주어 외쳤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우리가 배우고 힘쓰면, 반드시 광복은 온다. 그러면서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실질을 중요시하고 실천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그랬습니다. 의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더 열심히 하나님께 나가려고 힘썼습니다. 더 간절하게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던 중에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하나님 앞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더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자신을 살피는 기도

 

   다음으로 본문의 기도를 보면 다윗은 자신을 살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자칫 교만하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린 말씀이기 때문에 다윗이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살피고 확인한 뒤에 한 말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하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다윗은 고난이 다가오자 깊이 그리고 많이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왜 이런 고난이 내게 찾아왔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혹시 내 죄와 허물 때문에 고난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살피고, 또 살폈을 것입니다. 그런데 딱히 고난의 이유로 손꼽을 만한 죄와 허물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죄와 허물 때문에 찾아온 고난이 아니라면, 나는 이 고난 중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고난에서 자신을 건져주실 텐데 그 때 내가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다면, 그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 더욱 깊이 자신을 살폈습니다. 혹시 이 고난이 내 죄 때문인 것은 아닌가? 고난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면서, 내가 죄 가운데 있다면 되겠는가? 이런 생각에 더욱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의롭게 살았는데도 고난이 닥치게 된다면, 더 이상 의롭게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의롭게 살면 뭐하나 악하게 사는 사람보다 더 고난이 많은데’ 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 될대로 돼라”하는 식으로 살기 쉽습니다.

 

  최근 중국에 ‘탕핑’(躺平)족이라는 말이 신조어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겠다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청년세대를 부르는 말입니다. 중국의 20-30세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자본가의 노예로 살다가 병만 얻고 끝난다는 생각에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중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포기하고 산다는 뜻에서 20-30세대를 ‘n포세대’라고 부릅니다. 일본은 포기를 넘어 득도해 버린 세대라 해서 20-30세대를 ‘사토리세대’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미래의 소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될대로 돼라는 식으로 포기하고 드러눕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할 때 영적 탕핑족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영적으로 드러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도 중단하고, 예배도 중단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 하던 중에 고난을 겪으면 오히려 다윗처럼 해야 합니다. 더 철저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더 신앙생활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다윗은 지독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더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 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에게 그 사랑을 나타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이렇게 기도를 마칩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자기가 계속 의로운 삶을 살아가면, 자신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의 아침을 맞게 될 것이고, 그 때 주님의 모습을 뵙고 크게 기뻐하게 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깊은 고난 중에서도 결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고난 중에도 자신을 돌아보고 더 철저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믿음으로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됐습니다. 자신을 이 힘겨운 고난의 자리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게 됐습니다.

   

  창 369장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가 가사를 쓴 분이 조셉 스크리븐(Joseph Scriven)목사님입니다. 이분은 기막힌 고난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향 아일랜드에서 대학졸업 후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 약혼녀가 말을 타고 자기 집으로 오던 중 말에서 낙상해서 강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다 정리하고 캐나다라 이민을 왔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마음의 정리가 되어 캐서린 로체라는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약혼 후 이 아가씨가 폐렴에 걸렸습니다. 4개월 동안 앓다가 결국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분은 두 번이나 결혼 전에 신부가 죽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큰 슬픔 가운데 있는데 또 고향 아일랜드에서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이 전해져왔습니다. 그러나 당장 어머니께 달려갈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신앙의 시를 쓰게 됐고, 그 시를 편지에 담아 어머니께 보냈습니다. 후에 이 시에 곡을 붙여 만들어진 찬송이 바로 369장입니다.

 

죄 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가운데 드리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입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를 드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더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고난을 겪고 계시지 않으시면 고난의 때를 대비해서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