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인하는 신앙

마 16:24

   오늘 본문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천하기는 더욱 어려운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우선 자기는 무가치하고 무능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말씀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사람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자기를 잊으라는 말씀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 또는 ‘몰아’(沒我) 즉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말씀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왜(Why)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만을 데리시고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을 특별하게 훈련시키시기 위해서 수련회를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저 유명한 말로 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셨고, 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장면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 또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부인’(self-denial)을 말씀하신 대상은 열두 제자들입니다. 그것도 특별히 수련회를 여서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 볼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직업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그리고 꿈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사실을 모르실 리 없으실 텐데 왜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베드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놀라운 고백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말씀하시자 가로막고 나선 것입니다.

   베드로는 왜 주님을 가로막고 나섰을까요? 물론 겉으로는 주님을 위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따르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워왔습니다. 주님께서 메시야로 다윗 왕처럼 등극하시게 되면, 자기들은 크게 한 자리 할 것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면 그동안 꿈꿔왔던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막아섰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을 더욱 성숙한 단계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수련회를 여셨고,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동안은 자기를 위해서 주를 따랐다면 이제는 주를 위해서 주를 따르게 하시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변태’라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죽은 것같이 있다가, 때가 되면 고치를 비집고 나와서 나비로 하늘을 날게 됩니다. 이 변태 과정을 통해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애벌레와 같은 낮은 차원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나비와 같은 높은 차원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도약을 하려면 변태와 같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고치에서 죽은 듯 번데기로 지내는 것처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부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누구나 다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이 자기부인을 이해하며,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기부인을 실천하며 영적으로 자신을 더욱 훈련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What)

   그러면 도대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자기는 무엇이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요?

   저명한 영성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자아를 둘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거짓자아’(false self)이고, 다른 하나는 ‘참 자아’(true self)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영성훈련은 거짓자아를 떨쳐버리고, 참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머튼은 하나님께서 참자아를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 후 참자아를 잃어버리고 거짓자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뒤 성령의 인도를 따르게 되면서 참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참자아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머튼이 말하는 거짓자아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자아를 말합니다. 원죄가 인간 안에 자리 잡으면서 원심력으로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점점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밖으로 밀어내서, 결국 점점 더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무관한 존재가 된 인간의 자아가 거짓자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거짓자아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가 되었고,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머튼이 말하는 거짓자아를 떨쳐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자기, 그래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 되어버린 자기를 떨쳐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자기인 참자아를 찾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부인의 가장 확실한 예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보여주신 모습 모두가 다 자기부인을 완성하신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장면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자기부인의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마치시고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는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해서 먹으라는 시험입니다. 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셋은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입니다.

   요일 2:1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바로 이 세 가지 시험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충동하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머튼이 말한 대로 거짓자아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야말로 단칼에 뿌리치셨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조금도 미혹되지 않으시고 뿌리치신 것입니다. 마치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시며 뿌리치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셨을까요? 거짓자아를 떨쳐버리시고 참자아로 공생애를 맞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부인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대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초기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한 신학자인 어거스틴(St. Augustine)이라는 분의 일화입니다. 이분은 청년시절 마니교라는 종교에 심취해서 쾌락을 누리며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이분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분이 성령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회심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과거에 어울렸던 창녀와 마주치게 됐습니다. 그 창녀가 이분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그 때 이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날의 어거스틴은 죽었소.”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과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살던 자기를 청산하고 새로운 자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지성 루이스(C.S. Lewis)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려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인생의 커다란 목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세금 내는 사람 같다.  납세자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고도 자기 주머니에 얼마만큼의 돈이 남게 되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을 위해 얼마간 떼어드리고 여전히 남은 것이 많아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채우길 바란다는 뜻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속마음입니다. 여전히 거짓자아가 청산되지 못하고 살아있습니다. 아직도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How)

   그러면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인해야 할 자기란 머튼이 말한 대로 거짓자아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롬 7장을 보면, 바울이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은 2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이 예수 믿고 난 뒤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두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모습과 다른 하나는 죄의 법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 믿고 난 뒤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죄의 종이 되어 욕망 따라 살아왔던 육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마 26:4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베드로가 아직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던 시절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도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기 안에서 두 모습이 충돌하여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곤고하다고, 그리고 사망의 몸이라고까지 탄식했습니다.

   이것은 머튼이 말한 대로 거짓자아로 살아오던 사람에게 믿음이 생겨서 참자아가 깨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안에서 거짓자아와 참자아가 주도권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전쟁입니다. 우리가 이 영적전쟁의 실체를 올바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거짓자아와 참자아 사이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그 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는 기도입니다. 다시 마 26:41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에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시면서 처방을 내려주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막 9:29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여쭙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자석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도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 힘을 받습니다. 귀신을 쫓을 수 있는 힘,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특히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힘, 거짓자아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이 말씀대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는데 그냥 졸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부인해야 할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입니다. 마 4장에 나오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후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능력으로 충만하셨기에 마귀의 시험에 흔들리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 다 마귀를 물리치셨다는 점입니다. 마귀가 한 시험을 이기신 것은 물론 마귀 자체를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던지는 시험을 이기는 것과 마귀 자체를 쫓아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셨을까요?

   바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가 시험할 때 모두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그 말씀을 듣자 그대로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에는 기도와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기도에 마귀시험을 이길 힘이 있다면, 말씀에는 마귀 자체를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엡 6:17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마귀를 찌르고 악한 영들을 처단하는 강력한 무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여러분들이 자기를 부인하는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한 차원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는 일 더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 더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더욱 충만한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