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민수기(10)/나실인/성별

제목: 성별된 나실인의 규례

성경: 6:1-21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나실인의 법은 앞장에 나타난 부정한 자와 간음한 자가 진 밖으로 쫓겨나고 저주받는 일과 비교해 보면 커다란 대조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5장에서는 이스라엘 안의 죄악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거룩함을 유지시키려는 규례였다면 6장에서는 철저한 헌신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경건한 분위기를 북돋우려는 나실인의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나실인은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제자 됨의 의미를 일반 사람들에게 실천을 통해서 보여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별된 나실인의 규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나실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1-2)

나실인(ריזנ, 나지르)’이란 히브리어의 구별하다(separate)’, '분리하다(set apart)란 뜻을 지닌 동사 나자르(רזנ)’에서 유래된 말로써 구별된 자’,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 ‘세상과 분리된 자란 의미이다. 즉 세상적인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실인은 특정한 기간동안 또는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기기로 서원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공동체와 분명히 분리되는 삶이 요구되었습니다. 나실인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가 없이 누구나 다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방인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나실인은 삼손과 사무엘 그리고 세례요한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 헌신함으로써 평생 동안 나실인으로 살았습니다. 바울도 나실인의 서원을 하였으며(18:18), 네 명의 나실인들의 정결의식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21:23-36).

나실인으로 헌신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강요나 공포 및 부담스러운 의무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이란 말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이라는 말을 통해서 볼 때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헌신하였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억지의 헌신을 받으실 까요? 하나님께서 절대로 억지의 헌신을 강요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나실인의 서원은 특별한 경우(13:2-5; 삼상 1:11)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본인이 원할 때만, 그리고 그 사람이 원하는 기간만큼만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거룩한 자들로서 제사장 역할을 담당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몸을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나실인은 더욱 성결한 자들이었습니다. 나실인 제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의 경건한 생활을 더욱 촉진시키는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동시에 나실인 제도는 오늘의 죄악된 문화권 아래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온전한 헌신을 통하여 죄악에 물들지 않고 성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나실인이 해서는 안될 일은?(3-12)

나실인으로 자신을 구별하여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은 세 가지 해서는 안될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께 헌신하였다는 공적인 증거로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영향력에서 탈피하여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기쁨이요 주권자로 고백하는 증표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이러한 증표가 필요합니다. 똑 같이 행동한다면 구별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포도주와 독주(쉐카르)를 마시지 말라(3-4)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것은 일체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술은 늘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한 사람에게는 거룩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져다가 분향하려 하다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었습니다. 그후에 제사장들은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는 영영한 규례를 주셨습니다(10:8-10절 참조).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러시아 정교회 신부들은 항상 술에 취하여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복장도 너저분하고 냄새도 심하게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선교사님들을 보니까 완전히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항상 단정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심지어 생포도, 건포도는 물론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초로 만들어 먹어서도 안되었습니다. ‘는 취하게 하지는 않았으나 보다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음료였기 때문입니다(2:14). 제사장에게도 포도주나 독주를 금했으나 초나 포도즙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실인에게는 초를 마시는 것까지도 금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철저하게 마음과 몸을 드려 헌신해야 했음을 봅니다.

포도주는 물론이거니와 독주는 더욱 금지된 음료였습니다. 독주(쉐카르)는 곡식, , 대추 또는 과실로 만들어진 취하게 만드는 수입산 음료였습니다(5:22). 아마도 고대 근동에서 종교 행사를 할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셔 취하게 하여 황홀경에 들어가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같습니다.

28:7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 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기 위해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타락했음을 보게됩니다. 따라서 나실인에게 하나님의 능력 외에 그 어떤 힘도 주장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나실인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은 심각한 죄악이었습니다.

2:12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2)머리에 삭도(削刀)를 대지 말라(5).

히브리인들에게 머리털은 힘과 생명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나실인의 머리털은 그의 헌신의 표요,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표(7)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에게는 머리털을 깎는(미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깎이지 않고 계속 자라는 머리털은 약화되지 않는 힘을 상징했는데, 이러한 힘을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머리털을 깎이운 후에는 평범한 사람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는 헌신된 사람이라는 표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든지 저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것은 헌신된 자로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도록 하는 절제의 표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머리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왕하 2: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따라서 나실인이 머리를 기르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바침이 되었음을 나타내고 그러므로 매사에 근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제자 됨의 표식이 있습니까?

 

3)시체를 가까이하지 말라(6-12).

시체는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5장에서 살펴 본대로 주검으로 인하여 부정케 된 자는 진 밖으로 내어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시체는 죽음으로 온 것이고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체를 멀리한다는 것은 죄를 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 형제자매가 죽을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 보다 더욱 엄격하게 시체를 멀리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2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백성 중의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려니와

21:2 골육지친인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21:3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친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이것은 인륜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며 그분께 헌신하라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합니다(10:37).

그러나 사람이 생활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시체에 접촉할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체로 부정케 된 자는 시체를 가까이한 날부터 7일째 되는 날에 머리를 밀어야 합니다(9). 8일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제사장에게 주어 각각 속죄제물과 번제물로 드리게 하고(10,11), 새로 서원하는 날에 1년 된 수양을 속건제물로 드리고 그 날에 나실인의 헌신 기간을 다시 정하도록 했습니다(12).

나실인이 고의적으로 범한 죄는 그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부정하게 되었을 때는 상세하게 해결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나실인의 우선 순위는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부정이라도 그 부정에 일단 접촉하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헌신이 무효가 되고 아무리 동정이 가는 우연한 경우라 하더라도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빛의 자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3.나실인 서원의 기간이 끝났을 때?(13-21)

나실인의 서원 기간이 찼을 때 회막문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16). 나실인으로 지내면서 무의식중에 범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번제를 드립니다. 바치는 자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특히 일년 된 흠없는 수양을 번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이런 의식을 집행하는 동안 나실인은 그 동안 길렀던 머리털을 깎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다 태웁니다. 그리고 요제를 드린 후에 나실인은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정한 기간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규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실인에게 왜 이러한 제사들을 요구하셨을 까요?

1)인간은 아무리 아름다운 일을 수행하였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냉철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3:10).

2)하나님의 공의의 법 앞에서는 누구도 감히 자신 있게 나설 수 없다는 사실 및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줍니다.

3)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고 계십니까?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오늘날의 나실인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 자들로서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셋째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신령한 제사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헌신된 삶을 사는 나실인으로서 어떤 표식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육체의 소욕을 철저하게 제어하고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통해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정을 받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