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항상 해야 할 네 가지
본문/ 살전5:15-18
적용 찬양/ 꽃들도
본문 중에서 살전5:16-18절은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많은 분들이 암송하는 구절일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런데 저는 오늘 이 세 가지에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우리가 항상 해야 할 네 가지”로 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어느 단어에 눈길이 더 가세요?
어떤 분은 ‘기뻐하라’에 눈길이 갈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라’는 단어에 눈길이 가고, 어떤 분은 ‘감사하라’는 말씀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항상”이라는 단어에 제일 관심이 갔습니다.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 하라. 쉬지 말고(항상) 기도하라. 범사에(항상) 감사하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냥 ‘선을 따르라,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항상’이라는 빈도 부사를 사용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인간 습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한두 번은 잘 할 수 있는데, 계속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여러분 중에, 요즘에 새해 들어 품었던 생각들, 결심들을 잘 지키 못해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뭐든지 계속 같은 마음으로 한결 같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은 한두 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일회적 사건이지만, 삶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결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즉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우리의 공통 숙제인 것입니다.
1) 살전5:15절에서 먼저 바울은 인간 관계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쉽게 설명하면,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라’는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말씀과도 비슷하고, 롬12장의 바울의 권면과도 비슷합니다.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대며”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롬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왜 우리는 의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항상 선을 따라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 (어제 새벽 기도회 때 나눈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햇빛을 의인과 악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본받아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원수 갚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2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합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여러분, 원수 갚는 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정해야 하고, 재보복을 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해 주시겠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기에 비유하면, 우리는 선수이지, 심판이 아닙니다. 선수는 열심히 경기만 하면 됩니다. 반칙을 잡아내고 벌을 주는 것은 호루라기를 가진 심판의 몫입니다. 선수가 심판까지 하려고 하면 그 경기는 망쳐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저주하지 마시고, 직접 보복하려고 하지 마세요. 원수 갚는 것은 주께 맡기고, 오직 선을 따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보복하지 않고 용서해 주고,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면,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을 용서해 주지 못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면, 나 자신이 그 악한 사람에 매여, 평강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입니까? 본인이 가장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삼가 누가 누구에게 든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항상 선을 따라 가는 것은,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1:1절을 기억십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을 따르지 않고, 선을 따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원수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따르는 주의 제자로서 악을 따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선을 선택하고 항상 선을 따라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항상 해야 할 것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냥 기뻐하라고 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보면,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나 오늘 우리들이나 현실은 항상 기뻐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에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 박해, 환난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두 구절만 살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초대 교회 시대에 거의 모든 지역에 핍박이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지역은 더 심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 보면, 핍박이 일어나서, 데살로니가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3주만에 도망치다시피 하여 아테네, 고린도 지역으로 갔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환난 중에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2) 살전3:3절에서도 바울은 환난에 대해 언급합니다.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바울이 아테네에 있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되어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낸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보낸 이유가 – 그들이 여러 환난 중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세상에 살다 보면, 기쁨을 잃어버리고 슬퍼할 상황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더 심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삶에서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가짜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 스마트 폰으로 우울증이나 자살률 같은 단어를 넣고 찾아보세요.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마음이 병이 들어, 온전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살률이란 단어를 치니 부끄럽게도 이런 타이틀이 나왔습니다.
“부끄러운 자살률, OECD 1위, … 하루 평균 38명 목숨 끊어.”
어느 나라 이야기인 것 같습니까?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말 타이틀도 있습니다. “자살 공화국, 1위 대한민국 그 오명을 벗을 수 없을까?”(그래프 1)
우울증 환자 수를 검색해 보니, 2016년에 한국에 65만명 정도 되었습니다. 문제는 추세입니다.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프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프2)
그러니까, 100명 중에 1.5명 이상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드러난 우울증 환자보다도 드러나지 않은 환자도 많고, 무엇보다 삶에서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된 기쁨이라도 느껴 보려고 옳지 못한 방법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온갖 유흥업소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기쁨이 무엇인지,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이 사도 바울인 것 같습니다. 바울 만큼 기쁨에 대해 강조한 사도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기쁨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우선, 진정한 기쁨은 환경이나 상황을 초월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 바울이 이 말씀을 어디에서 하고 있을까요?좋은 환경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지낼 때, 빌립보서를 썼습니다. 환경적으로는 기뻐할 수 없을 때,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6장에 보면, 바울이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어떻게 했나요? 한 밤 중에 슬퍼서 운 것이 아니라 찬송과 기도를 올렸다고 했습니다.
(2) 기쁨은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뻐하기로 결단하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도 불평하고 실의에 빠져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 좋은 상황에서도 기뻐하기로 결단하면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기쁨은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밝은 성격에서 기쁨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샘솟는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5:40-41절을 보세요. 복음 전하다가 매를 맞은 후에 사도들이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우리가 항상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항상 기뻐하는 것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바울은 본문에서 세 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해야 할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번역 상의 문제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이 24시간 기도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밥도 먹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는데, 어떻게 24시간 기도할 수 있겠어요?
쉬지 말고 – (아디알레입’토스 프로슈’케스쎄) – 더 정확한 의미는 ‘단념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기도를 드릴 때, 쉽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기도에 대해 가르치실 때, 강청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눅18:1-2,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
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합니다. 문제는 기도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원하는 때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기도를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죠.
이런 비극적 상황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통해서 포기 하지 말고 계속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재판장은 하나님과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돈만 밝히는 불의한 재판장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도시의 과부의 억울한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부는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세요’ 부탁한 것입니다. 한두 번 하고 만 것이 아니라 계속 찾아 간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장이 어떻게 했다, 라는 것입니까?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지만,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줘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힐 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결론이 뭡니까?예수님의 결론입니다.
눅18:6-8절입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슨 제목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까?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기도하다가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비유 속의 과부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뤄 주실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셨는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더 쉽게 해석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루 24시간 기도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날마다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라, 날마다 기도하라, 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밥을 먹습니다. 끊임 없이, 숨을 들이쉬고 있습니다. 운동도 규칙적으로 합니다. 잠도 규칙적으로 자려고 합니다.
마찬 가지 라는 것입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 우리가 매일 해야 할 것을 멈추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쉬지 말고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기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시고, 매일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게 되길 축원합니다.
4)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네 번째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해야 할 것 :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에 관한 말씀은 해마다 추수감사절 때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간단하게 언급하고 싶습니다.
- 바울 사도가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위에 믿지 않은 사람들을 살펴보세요.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든지, 본인이 진급했다든지 좋은 일이 생기면, 기분이 좋기 때문에 묻지 않아도 이야기하고, 한턱을 내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감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사를 표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감사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 좋은 일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안 좋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 여러분,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의 섭리를 전적으로 믿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결코 안 좋은 일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으로 바꿔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 중에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은 요셉입니다.
예) 요셉
꿈 꾸는 자 요셉은 꿈 때문에 청소년기 때 큰 시련을 만납니다. 여러분, 꿈을 꾸는 사람은 고난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형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의 이집트 노예-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그는 노예가 되고, 이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에도,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 세상의 출세와 성공은 아닙니다. 만약에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형통이라면, 요셉이 노예가 되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형통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창39:23)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서 2년 정도 머무는 기간이 요셉의 인생에서 보면, 가장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있었던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 역사에서 요셉이 감옥에 2년 머무는 기간에 정치적 소용돌이, 즉 내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내전은 외국과의 전쟁보다 더 비참한 전쟁입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드니, 내전에서는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 내전 때에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였을까요? 바로 감옥 안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지키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이집트 정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과의 인연으로 인해, 바로 왕에게 소개되어 꿈을 해석해 주면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왜 우리 믿는 자들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지, 나중에 형들을 만났을 때, 고백을 하였습니다. “자기를 이집트로 인도하신 분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다윗
다윗도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 땅(아기스)에 살 때, 시글락이란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 때 블레셋과 사울 왕의 이스라엘과 전쟁이 일어나서, 다윗도 블레셋 편에서 이스라엘과 전쟁해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장군들이 다윗이 자기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는 것을 결사 반대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변심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와 보니 마을이 불에 타고, 남아 있던 어린이, 여자들, 노인들이 다 사로잡혀 간 것입니다.
처음엔 나무나 당황하였지만, 기도 후에 힘을 내서 뒤쫓게 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 군대를 만나 기습 공격으로 잃어버린 사람들과 물건들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아말렉이 노략했던 것들까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블레셋 장군들이 반대하지 않아서 이스라엘과 싸웠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시글락이 불에 탄 사실도 몰랐을 것이며, 더 심각한 것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막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 놓여 있는 분 있으세요?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 맘을 상하신 분이 있으세요?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두 군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살전4: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을 본받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군데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5-18)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순종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처럼 사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좇고, 항상 선을 따르고, 항상 기뻐하고,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시는 우리가 항상 실천해야 할 네 가지를 기억하시고, 삶 속에서 매일 매일 실천하며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선을 따르고, 항상 기뻐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살전5:15-18)을 같이 일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꽃들도” 함께 찬양합니다.
처음 불러보는 성도님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쁨으로 찬양했으면 합니다.
이 찬양을 통해, 기쁨을 잃어버린 분들,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다시 기쁨을 되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분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