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나의 빛(119:105)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며 그냥 길을 가는 정도가 아니라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캄캄한 밤길을 가노라면 위험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요즘 도시에서야 표지판도 있고 가로등도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지만 캄캄한 산길을 가게 되면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만 40여 년 전 제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마지막 과정으로 소대장 실습을 위해 강원도 양구에 있는 전방부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겨울에 후보생들을 태운 60 트럭이 산길을 달리다 부대마다 한 명 씩 한 명씩 내려놓고 갔습니다. 학교로 치면 교생 실습이니까 담임교사처럼 소대장이 맞이해 줘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대장인 중위가 마침 교육을 받느라 출타 중이었습니다. 하사관과 병장이 잠시 인사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곧바로 동계훈련을 떠난다고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그만 일행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자기들끼리 가버린 것입니다. 산 속이라 금세 캄캄해졌는데 혼자서 찾아가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너무 무서워서 성경말씀을 암송하면서 막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이 진정됐고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본래 미트를 파고 켄트 속에서 은폐를 하기 때문에 최ㅐ한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데 저로서는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기다 싶어 열심히 찾아갔습니다. 영하 20도의 추위인데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마침내 그곳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소대원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소대장님, 이제 오셨어요? 늦으셨네요.” 실습소대장 체면에 티를 낼 수도 없고 태연한 척 얼버무리며 대답했습니다. “, 그냥 좀 늦었어.” 이렇게 해서 동계훈련을 마쳤고 그 후 이어진 소대장 실습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절실히 깨달은 게 있습니다. 빛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구나!

 

그런데 물리적인 빛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빛입니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진리의 빛을 발견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ēs, B.C. 400 ? ~ 323)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현자였지만 기행으로 유명한데 밝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진리를 찾으려고 그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진리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진리를 찾아다닙니다. 세상의 지식과 학문, 철학, 정보, 유행 등을 진리로 알고 따라갑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상대적인 진리밖에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달라지는 가변적 진리입니다. 그런 것들은 엄격히 말하면 참 진리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는 절대적 진리가 참 진리입니다.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이며 작가였던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학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언어는 끊임없이 폐어가 되고 있다. 철학은 계속적으로 자체의 주기를 순환할 뿐이며 제국은 끊임없는 흥망성쇠의 과정은 반복할 뿐이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인간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착잡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처럼 혼란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성경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다! 그리고 말씀이 진리이다! 그 진리를 내 인생의 빛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올바른 인생, 그리고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진리는 나의 빛 : 예수님이 진리, 말씀이 진리

 

먼저 예수님이 진리라는 사실, 예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확인해 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우주만물의 창조 기록이 나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시는데 그 중에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요한복음 1장에서 증거합니다. 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성자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이시니라 2 (말씀=성자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가 태초에 하나님(=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말씀=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여기서 말씀은 인격체로서의 말씀으로 성자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이 주신 말씀들이 곧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진리이시고, 그가 주신 모든 말씀도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전혀 오류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주신 말씀들도 당연히 정확무오합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흔히 정경’(正經, Can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본래 헬라어 카논에사 유래하는데 갈대를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고대에는 정확한 표준 자가 없어서 갈대를 꺾어 대충 길이를 쟀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중에는 카논’ ‘표준’ ‘기준등의 의미로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정경이란 절대적인 표준이란 뜻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정확무오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기록 과정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66권을 무려 1600년에 걸쳐 40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록했는데 일목요연합니다. 앞뒤가 딱딱 들어맞고 마치 구슬을 꿰듯이 모든 말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책 중에 여러 명이 쓴 공저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서로 잘 맞지 않아서 계속 조율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도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록자들끼리 서로 만날 수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었습니다. 시대가 다르고 살던 곳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목요연한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인간 기록자들이 각자 혼자 기록한 게 아니고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

여기서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감동을 영감이라고 하죠. 이를 성경영감설’(Biblical inspir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성자 예수님이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 세상에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를 가리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라고 하죠. 그러므로 그분 자신이 진리이시고, 또 진리의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기 전 빌라도 총독 앞에서 불법재판을 받으실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심문하자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다고 밝히십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뭐라고 하죠? 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그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임을 알았기에 십자가 못 박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반발해서 타협하게 됐고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진리의 빛으로 확신하며 따라가면 됩니다. 성경 말씀을 진리의 빛으로 확신하며 따라가면 됩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과학이나 정보니 하는 것들이 홍수처럼 밀려와도 요동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근대과학의 기초를 놓았고 특별히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튼(Isaac Newton, 1642~1727)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보다 더 확실히 검증된 과학은 없다.” 과학자가 한 말이니까 더욱 감동적입니다. 흔히 과학이 발달하면 성경과 상충되어 성경 진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비과학적인 게 아니라 과학을 넘어서는 초과학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것 아십니다. 인간이 모르다가 하나씩 발견한 것은 체계화시켜 놓은 게 과학입니다. 그러니까 제한된 과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판단한다는 게 어불성설입니다. 과학으로 성경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은 틀려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 아직 무지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진리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본문 시119:10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발에 등은 가까운 데를, 길에 빛은 먼 데를 비추어 주는 빛입니다. 그 빛이 인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진리의 빛을 따라 감으로 올바른 인생, 그리고 복된 인생을 꼭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진리의 빛 : 생명의 길, 축복의 길, 승리의 길로 인도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진리의 빛이 우리 인생을 어떤 길로 인도하는지 살펴봅니다.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생명의 길, 축복이 길, 승리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생명의 길 :

 

첫째, 진리의 빛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의 죄와 사망을 가리켜 어둠으로 비유합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육신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에 두려움과 허무가 밀려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게 영적인 어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혼 가운데 영접하면 이 어둠이 사라집니다. 어둠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빛밖에 없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즉시 사라집니다. 두려움과 허무는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이 어둠을 이긴 빛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성탄 당시에 베들레헴 지경에 빛이 나타난 것도 그렇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낮인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습니다. 그것은 실제 어둠이기도 했지만 죄와 영원한 사망,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어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죄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아침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 부활의 새 아침입니다. 물리적인 빛이기도 했지만 부활의 빛을 상징합니다. 그 빛은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의 빛입니다.

 

성경에 위하면 지옥은 영원한 사망의 장소로 어둠이 가득한 곳입니다.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반면에 천국은 영생의 장소로 빛이 가득한 곳입니다.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의 어둠에서 구원해서 천국의 빛으로 인도하시는 참 빛이십니다. 그래서 요1:4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란 겁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행히 진리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은 육신의 생명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영적인 생명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서 죄로 죽었던 영혼이 거듭남으로 생기는 새 생명입니다. 그때부터 육신의 죽음을 넘어 천국까지 영원히 이어집니다. 그래서 영생이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만 따라가면 영생을 얻고 천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직접 주신 말씀입니다.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헬라어 원어셩경이나 영어성경을 보면 길, 진리, 그리고 생명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유일성을 표시하는 정관사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진리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구주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런 진리가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잘 따르고 동시에 진리인 말씀을 잘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부터 영생을 누리고 이 세상 떠날 때 당당히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A. 링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을 늘 펴놓으라. 그러면 당신이 천국 가는 길도 늘 펼쳐져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진리이신 예수님, 진리인 말씀의 빛을 잘 따라감으로 영생을 누리다가 장차 빛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길 :

 

둘째, 진리의 빛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인간의 범좌와 타락으로 세상에는 저주가 가득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살면 하나님이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신명기를 보면 우리 앞에 복과 저주가 있음을 증거합니다. 그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진리를 따라가느냐 따라가지 않으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신명기 28장을 가리켜 흔히 축복 장이라고 하죠.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축복과 저주의 장입니다. 축복의 메시지는 1~14절에 있고 저주의 메시지는 15~68절에 있습니다. 28:1~2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come on you ... overtake you KJV)” 말씀 청종하면 하나님이 함께해 주셔서 축복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진리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거역하면 엉뚱한 길로 가다가 저주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 ” 반면에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반면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멀리 갑니다. 그것은 곧 진리의 말씀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육신적으로 잘 사는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가다가다 소돔까지 가게 됩니다. 13:12~13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이렇게 소돔에 눌러앉았다가 나중에 유황불심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나마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구원해 냅니다. 유황불 심판의 와중에 탈출합니다. 그때 천사의 경고를 무시한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됩니다. 롯은 두 딸과 함께 겨우 빠져 나옵니다. 그런데 두 딸에 소돔 성에 살면서 얼마나 죄악의 풍조에 물들었는지 서슴없이 아버지와 큰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두 딸은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인 후 하룻밤씩 동침함으로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을 낳게 됩니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 두 족속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길게 보니까 아브라함은 더디 가는 것 같았지만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롯은 빨리 가는 것 같았지만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성도가 경영하는 회사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벤처기업으로 첨단 장비를 취급하는 회사입니다. 모든 것이 최신형에다 최고급으로 세팅되어 있는데 어울리지 않게 작은 책상에 낡은 성경이 놓여 있는 겁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니, 첨단 장비들과 어울리지 않게 왜 성경책을 거기 놓아두는 거죠?” 그러자 그 성도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경책이야말로 최고의 첨단 장비이거든요. 이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대로 따라가면 예상치도 못했던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죠.”

 

시편 1편을 보면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했습니까? 1:2~3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곧 진리를 따르는 자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진리이신 예수님, 그리고 진리인 말씀을 잘 따라감으로 축복의 길로 인도받으시기 바랍니다.

 

승리의 길 :

 

셋째로, 진리의 빛은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세상은 위험하고 환난으로 가득합니다. 그런 가운데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고 방황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영영 인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되 수시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세상에 휩쓸리다가 혹시 길을 잃으면 속히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번민 중 95%는 성경을 읽지 않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민이 생기고 갈피를 못 잡을 때면 속히 진리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119: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길 잃은 양처럼 방황할 때 얼른 계명 즉 진리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마치 빛을 보고 따라가는 것처럼 말씀을 보고 따라가면 실패와 절망에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컴컴한 밤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방향을 잃고 표류합니다. 나침반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죠?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별들 중에 북극성을 찾아야 합니다. 항상 정북향을 가리키니까 북극성만 찾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군 형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두 명의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A는 탈영한 후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해서 살해했습니다. B는 월남전 참전 중에 화가 난다고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해서 살해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는 발악을 하다 마지막에 남은 돈으로 먹을 것을 구입해서 실컷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B도 실컷 먹고 죽을까 생각했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교도소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기 전에 작은 것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모 교회 찬양대가 위문을 왔습니다.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그는 목사님에게 자신이 모아 놓았던 돈을 전부 헌금으로 드리며 좋은 일에 보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 교도소 교회를 건축하고 있었는데 강대상 구입에 사용됐습니다. 헌당식에 그 사연이 소개됐는데 그 미담 기사를 본 대통령이 특별 감형을 해 주었습니다. 그 후 모범수로 복역하다 계속 감형되어 마침내 출옥하게 됩니다. 출소한 그는 완전히 새사람으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때 인생을 잘못 살다 파멸의 위기에 처했지만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다 보니까 놀라운 승리의 삶으로 반전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부족한 인간이기에 방황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면 얼마든지 회복되고 반전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죄와 사망, 그리고 위험과 환난의 어둠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인생은 마치 그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빛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참 진리가 있습니까?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진리만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참 진리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절대적 진리가 진짜입니다. 그 진리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진리는 나의 빛!”이란 신앙고백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 그리고 말씀을 따라 올바른 인생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