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 교회-행 2:43~47
  김광일목사
  


우리 민족이 일본 식민지로 있던 1927년 무렵,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던 조선의 젊은이들이 성서 조선 동인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무교회주의자에 속하였지만 정체성이 분명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암울했던 시절에도 성서를 연구하면서 성서 속에서 조국의 미래를 찾기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선에 귀국해서도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잡지를 발간하였으며 잡지의 이름을 성서 조선(聖書朝鮮)”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잡지가 1942년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습니다. 이유는 김교신의 개구리의 죽음을 슬퍼함이라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추웠던 겨울에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들이 얼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죽지 않은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개구리 두 마리를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전멸은 면했나 보다.” 이 글을 본 일본 경찰은 혹한에도 살아남는 개구리의 생명력을 빌려 민죽혼을 노래했다고 간주하여 잡지를 폐간시키고 모임도 없앴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말씀은 살아 움직였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민족에게 하나님은 해방이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서가 조선의 희망이라는 비전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 열렸습니다. 세월이 추워 얼어붙게 했던 어려운 시절에도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이 방방곡곡에 전해지기를 기도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천지가 무너지고 폐허가 된 땅을 바라보며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땅에 부흥을 소망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향한 하나님의 부흥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사람들로 인하여 부흥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저절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이들의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음성가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를 부릅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세울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며 주신 약속대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교회가 태동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특히 초대교회는 불신자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불신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로마 식민지 아래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을 구제하는 사업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권위를 지니게 되었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본문 47절입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의주께서는 원어로 호 퀴리오스인데 교회 부흥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부흥의 주역이시며 부흥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대목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을 통한 말씀 교육과 기도로 이루어졌으며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본 받을 때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첫째로 모임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바다의 어류 가운데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고기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어리, 멸치와 같은 물고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평상시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데 그것을 피쉬볼’(fish ball)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한 마리 한 마리가 일사불란하게 동일한 방향으로 헤엄치는데 군영’(schooling)이라고 합니다. 이 물고기들이 피시볼을 이루고 군영을 하는 이유는 포식자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모이면 포식자들이 목표를 정하기가 어렵고 공격을 해 오다가 목표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원수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모여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부흥이 임합니다. 하지만 모이기를 게을리하는 교회는 부흥이 안 됩니다.

 

본문 46절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여기의 모이기를 힘쓰고는 원어로 프로스카르 테룬테스입니다. 초대교회는 자주 모였습니다. 그때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초대교인들은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모임에 주력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 전에도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과 만남이 성전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믿고 모임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교회는 히랍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하나님의 불러냄을 받은 무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임 즉 공동체를 말합니다. 성도들이 모일 때 비로소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혼자서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심장과 같습니다. 각각 가정과 세상에서 흩어져 살다가 교회로 모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가정과 일터로 다시 나가 사명을 다합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것을 에클레시아라고 하며 성도들이 흩어져 나가는 것을 데클레시아라고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부흥의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
 

 

둘째로 나눔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태양과 곡식과 금이라는 책에 실린 하인리히 메르텐 (Heinrich Merten)손에 있는 빵을 나누세요라는 글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야곱 거리에 있는 빵집에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빵 맛도 좋았지만, 사실은 나이가 지긋한 빵집 주인의 아버지가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버스 운전기사 게라드가 빵집에 들렀습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빵집에 들어온 그에게 빵집 노인이 말을 건넸습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나 보군요?” “, 막내 딸아이 때문에 정말 걱정입니다. 그 아이가 어제 창문에서 떨어졌거든요. 그것도 2층에서 말입니다.” “몇 살이나 됐는데요?” “이제 네 살이에요.” 그러자 빵집 노인은 진열장에 있는 빵을 꺼내 둘로 쪼개어 한쪽을 게라드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당신과 당신 딸을 생각하겠소.” 게라드는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해 보지만 빵집 노인이 자기에게 빵을 떼어 줄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입원해 있는 딸을 생각하면서 아무 말 없이 함께 빵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잠시 후 한 부인이 빵을 사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빵집 노인은 부인이 들어오자마자 빵을 떼어 부인 손에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우리 함께 빵을 나눠 먹읍시다. 이분의 막내 따님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지 뭡니까? 창문에서 떨어졌다는군요. 이제 겨우 네 살인데 말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부인은 그들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빵집 노인은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픔과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진정한 교제가 무엇인지 보여준 것입니다.

 

본문 46절입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여기의 떡을 떼며, 음식을 먹고는 원어로 클론테스, 메텔람바논인데 마음을 같이하며 나누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의 나눔은 각자의 믿음과 형편에 맞추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나누며 교제하였던 초대교회를 본받아야 합니다.

지체들은 서로 감싸고 아껴야 합니다. 네 고통이 내 고통이 되어야 하고, 네 외로움이 내 외로움이 되어야 하며, 네 어려움이 내 어려움, 네 고민이 내 고민, 네 고독이 내 고독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누며 교제하는 일에 힘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부흥의 주역이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자를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베품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교인 수 1만 명의 미국 대형교회 목사가 노숙인이 된 이야기가 페이스북에 실렸습니다. 예레미야 스티펙 (Jeremiah Steepek) 목사가 어느 주일 오전 자신이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는 교회 근처에서 노숙자로 변신해 주변을 어슬렁거렸습니다. 하지만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불과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 좀 달라고 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에 들어간 스티펙 목사는 맨 앞자리에 앉았으나 예배위원들의 저지를 받고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앉게 됩니다. 이윽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다는 광고시간, 맨 뒷자리의 스티펙 목사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교인들은 경악스러워했습니다. 그는 곧장 마태복음 2531절부터 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성경을 읽은 후 스티펙 목사는 오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합니다. 오늘 아침 교인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회도 많고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제자들이 모이는 교회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 물으면서 우리 교회 교인들은 매주 주일 예배 한 시간만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입니다. 이웃과 함께 그리고 그 옆에서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라고 설교하였습니다. 내 것을 베풀 때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여기의 나눠주며는 원어로 디에메리존인데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분배를 의미합니다. 초대교인들이 자신의 소유를 교회에 내어놓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행동이 일회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베푸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나누지 않고 모아만 놓으면 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하게 됩니다. 과일 저장창고에 과일을 가득 채우고 문을 닫아 놓으면 과일들이 쉽게 썩고 맙니다. 베풀지 않는 교회와 성도들은 욕심과 인색함으로 부패해집니다. 그러므로 베푸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이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당신의 영광과 생명을 베푸셨듯이 베푸는 교회만이 주님의 기뻐하심을 입고 더욱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분재(盆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원래 분재는 일본인들이 개발한 것으로 일본어로 본사이(ぼんさい)’라고 합니다. 큰 나무를 작게 하여 화분에 가꾸는 기술입니다. 어떻게 큰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하여 난쟁이 나무로 만듭니까? 나무의 큰 뿌리를 잘라내고 잔뿌리만 내리게 하므로 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분재입니다. 나무의 주근을 잘라내고, 세근만 뻗게 하므로 크지 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교회도 신앙생활도 말씀에 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세상에 잔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모양만 내는 분재 교회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크게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새해 표어는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 교회입니다. 사람의 방법에 의한 부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이 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임과 예배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눔과 교제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품과 선교에 더욱 힘을 다해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 교회로 세워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