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본문/ 요14:15-24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관계입니다. 왕과 백성, 주인과 종의 관계, 또는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남녀 연인의 관계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구약 호세아서에 보면, 하나님은 신실한 남편으로, 이스라엘은 신실치 못한 아내의 관계로 표현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호2:19-20)
특히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있을 만남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후11:2, 계19장)
연인 사이에서 사랑을 할 때도, 같은 사랑이지만 사랑의 표현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선물을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선물을 사서 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은 시간을 함께 하며,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시간을 내서 데이트 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려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손으로 일을 도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은 잘 하지 않아도, 선물을 잘 사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일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스킨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등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이상한 것은 결코 압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은 교회의 여러 사역, 봉사에 많이 참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2) 어떤 사람은 기도로써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합니다.
3)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 나라 사업을 위해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4) 어떤 사람은 사회 봉사 등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사랑을 표현합니다.
5) 어떤 사람은 자주 자주 예배에 참여해서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어떤 분은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고, 또는 선교사가 되어서 일생을 주께 바치는 것을 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합니다.
연인 사이에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표현할 때, 사랑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랑을 무엇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나요?
- 우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사랑을 무슨 추상적인 것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되어져야 한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감정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고백되어져야 하지만, 사랑은 고백 그 이상입니다.
- 예수님은 사랑을 순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If you love me, you will obey what I command.(my commandments)”
이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최소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순종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결과적으로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은 ‘계명에 대한 순종의 여부’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는 남편에게) 여보, 술을 그만 드세요. 음주 운전은 위험하잖아요.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죠.” “여보 주일에는 하나님께 함께 예배드려요.”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한다면,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지간에 자주 싸우는 자녀들에게) “얘들아, 서로 사이 좋게 지내야지. 제발 싸우지 말라. 동생은 형에게 형 대우해 주고, 형은 동생을 사랑해 주어야지”라고 하셨다면, 만약 자녀들이 부모를 사랑한다면 부모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 이야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순종을 말슴하셨습니다.
본문 요14:21절에서는 예수님은 이 말씀을 뒤집어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그런데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부담이 될 것을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어제 새벽에도 나눴습니다만) 벌써 창세기 3장부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죄에 빠진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동산에 있는 각종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지니,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란 계명을 그들이 지키지 못하여 에덴 동산에서 추방 당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고 살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모세를 통해 열 개의 계명(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계명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라고 약속까지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지키는데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실 리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는 계명을 지킬 것을 말씀하실 때, 보혜사 성령님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계명을 지킬 것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요14:16-1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인간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보혜사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위험에 처한 순간에는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떠나가시지만,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이제는 열두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 곁에가 아니라 안에,속에 오셔서 영원히 떠나가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면서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핵심이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어떤 역할을 하실까요?이것이 예수님의 다락방 강의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1) 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세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14:17절을 다시 보세요.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성령님은 믿은 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계시면서 또한 속에 계신 분이요, 영원히 떠나가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3)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고아처럼 살기를 원치 않으셔서 성령으로 오셔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4)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14:19-20절을 보세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러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내주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보혜사 성령을 받게 되고, 영원히 떠나가지 않고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인도, 보호, 도우심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옛 언약 시대와 달리, 주의 계명들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옛 언약도 좋은 언약이요 은혜로운 언약이지만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계명을 다 지킬 수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언약 안에서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기쁨으로 계명들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는지에 대해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너무 놀라워서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14:21절을 말씀을 다시 보세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여기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두 가지 축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에스더가 아하수에르왕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의 사랑을 받는 왕비가 된 것이죠. 나중에 하만이 유대민족을 멸하려 하였을 때, 왕의 사랑을 받는 에스더로 말미암아 하만의 계획이 수포가 되고,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웠던 나무에 역으로 하만이 달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 왕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외쳤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생각할 때, 너무 사랑스러워서 뭐든지 해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타나내리라.”(요14:21)
(2) 요14:21절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도 그를 사랑하여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께서 나타내시는 존재가 되는 것은 엄청난 영광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은 ‘부활 후에 나타내 보이시겠다는 의미도 되지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누군지 알도록 영적으로 계시해 주신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는 것보다 더 귀한 지식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무나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믿는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을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믿는 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거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의 축복은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요14:22절에서 가룟인 아닌 유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을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의 대답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축복을 받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14:23-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과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14:20절에서도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도 다시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요15:4-5을 보세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께 함께 거하는 것이 곧 천국의 삶인 것입니다. 계시록 21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거하는 것에 대한 전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살게 되면 성령의 귀한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참으로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귀한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에서는 아홉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홉 가지는 포도 송이처럼 전부 하나로 묶여져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삶 속에서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써 이 열매들을 맺으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self-control.)
성령의 열매들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축복이면서 또한 맺어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사과 나무- 사과를 맺히고,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열매들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보혜사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맺어질 수 있는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홉 가지 열매의 특징은 대부분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조건이나 환경과 상관 없이 성령으로 맺어지는 열매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 –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
희락 – 환경과 상관 없이 주어지는 기쁨, 다른 사람이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 하는 것
화평 – 하늘의 평안, 용서를 통해 이웃과의 관계가 화평하게 되는 것
오래 참음 –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빨리 변하지 않을지라도 참는 것
자비 -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양선 –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선한 마음을 품는 것
충성 –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신실하게 행하는 것
절제 –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를 내지 않고 자기 절제하는 것
(결론)
·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주,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잘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하면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께 순종이 잘 안되는 것은 아직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하시며 들어 쓰실까요?
오늘 말씀에 의하면,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순종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귀하게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순종) 베드로와 안드레는 – 갈릴리 바다가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놀라운 순종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것이 베드로가 부름받을 때에, 말씀에 대한 순종이 무엇인지 보여준 사건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몇 번 순종을 했는데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고, 지금까지도 저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주시고, 사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순종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1) 고2 때,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것
(2) 목회자로 부르실 때, 순종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것
(3) 선교사로 부르실 때, 순종하여 간 것.
여러분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부르심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어떤 분은 목자와 목녀로 부르실 때, 순종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제직 부서장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와 요한- 예수님의 부름에 불순종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리 마태가 주님의 부름에 불순종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순종을 통해 주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주님을 사랑하는 자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경험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