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감사 제목
본문/ 살전1:1-10
감사와 관련해서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감사할 일이 많으면서도 전혀 감사하지 않고 늘 불평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았습니까?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가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베풀어 주셨는데, 은혜를 잊고 늘 불평 불만, 원망만 쏟아 놓았습니다.
(2)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도 감사하지만, 지금 당장은 좋지 않게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선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일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섭리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8장 2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때, 우리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 사상이 있다면, 비록 기도 응답이 지연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지라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 퍼즐을 맞출 때,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퍼즐을 다 맞춰보면 멋진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와 같습니다. 빅 픽쳐(큰 그림)으로 보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기회 때 나눈 ‘다니엘’ -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자 굴에 던져질 상황 앞에서도 평상시대로 기도하였는데, 그냥 기도가 아니라 감사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어야 할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다면 그런 상황에서 감사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고 찬양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 같은데 감사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지난 주 새벽 기도시간에 기도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술로 감사하다’고 하는데, 감사가 아닌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감사,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은 감사가 아니라 자랑이며, 자기 자랑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의 감사 기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형식은 감사였지만,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것입니다. 감사를 빙자한 자기 자랑이었습니다.
눅18:11-12,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혹시 우리의 감사가 이 바리새인과 같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려면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 중에 서론에 해당합니다. 바울 서신의 특징 중에 하나는 서두에 항상 감사의 내용이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두에서 발신인, 수신인, 축복의 인사, 그리고 감사로 시작합니다.
감사는 – 신앙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증거 중에 하나가 “마음과 입술에서 늘 감사가 흘러나온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늘 감사한 마음이 충만한가요? 여러분의 입술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붙어 있나요?
그런데 사도 바울의 감사는 일반 사람들의 감사와 많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감사의 제목은 현세적인 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엇에 감사하세요?’ 라로 물어보면,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어요. 딸이 좋은 회사에 취직했어요. 남편이 진급했어요.’ 등과 같은 대답을 합니다.
이런 것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얼마든지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감사의 제목들이 많이 생겨나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서신서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감사 제목들을 보면, 십중팔구는 복음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뿐 아니라 영원한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에 있어서 특별한 마음을 갖게 했을까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다른 교회보다 더 특별한 마음이 있었던 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도, 그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7장에 보면, 제2차 전도 여행 때, 바울과 실라,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핍박을 받고 감옥에 까지 갇혔다고 데살로니가로 왔는데, 이곳에서도 핍박이 일어나서 3주간(한 달도 안되는 기간) 복음을 전하고, 베뢰아를 거쳐서 아덴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세운 교회 중에서 아마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어떤 교회보다 더 훌륭한 교회로 세워지고 성장해간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믿다가 환난이 오면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난 중에 오히려 믿음이 더 뜨거워지고 견고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애틋한 마음이 들고 더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을까요?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의 첫 번째 감사 제목 :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주 균형 잡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가는 것으로 인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 가지가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살전1:3절을 보세요.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 없이 기억함이니”
이 교회는 기독교의 중요한 3대 덕목,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었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표현이 구체적입니다. 그냥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었다고 하지 않고,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영어 성경으로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We continually remember before our God and Father your work produced by faith,your labor prompted by love, and your 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우리 말로 ‘믿음의 역사’를 영어로는 your work produced by faith, 직역하면, ‘믿음에 의해 만들어진 일(사역)’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관념적이거나 입술로만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순종과 삶으로 열매 맺는 믿음, 즉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의 역사를 본문 뒷부분에서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믿을 때에 과감하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믿음은 전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처음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을 때, 사도행전9장에 보면, 벌써 다메섹에서 바울이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한 것처럼,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벌써 복음을 힘써 전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본문 살전1:8절을 보세요. 벌써 그들의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마게도냐를 넘어 아가야 지역까지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참 믿음은 반드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회개와 전도,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만 있었던 교회가 아니라 사랑의 수고가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냥 사랑이 있었다고 하지 않고 사랑의 수고라고 바울이 표현한 것은 사랑은 반드시 수고, 즉 섬김과 희생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고- 영어로 labor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단어는 노동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은 말과 혀의 사랑이 아닌, 수고와 헌신, 노동이 수반된 사랑이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가령, 가난하거나 병든 자가 있으면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돌보고 돕는 사랑의 실천이 있었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의 수고는 초대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전도가 강력할 수 있었습니다.
전염병이 돌았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전도가 강력했던 것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의 인내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이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 속에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망이 중요한 것은 소망이 고난을 견디게 하고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의 순서로 이야기하고,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순서를 약간 바꾸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순서로 이야기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이 소망의 인내를 마지막에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소망을 맨 마지막에 놓은 이유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소망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 복음을 받았고, 바울이 편지를 쓰는 그 시간에도 여전히 고난 가운데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인내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도 소망의 인내가 특별히 필요한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의 인내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 부활하심으로써 죽음까지도 이기셨고, 더 나아가서 주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막을 수 없는데, 그 무엇이 우리의 소망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서 바울의 감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2) 두 번째 바울의 감사 :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살전2:13절에서도 바울이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기선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 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말씀을 받은 태도에 대해 감사했을까요?여러분,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이 사도 바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어떤 태도로 받느냐에 따라 신앙 성장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귀한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대로 사는 사람은 신앙이 잘 자라며,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정말 형통한 삶을 살고 싶으신 분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여호수아 1장 7-8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가 형통의 비결인 것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형통한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열매를 맺는데,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시1:2)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묵상하고 순종하려고 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의 감사 제목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감사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명에 대한 감사입니다. 자격 없는 자를 사도로 불러 주셔서 사용하신 하나님께 그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충성했습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이 자주 고백하였지만, 다른 사도들보다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게 된 것은 그가 전에는 박해자요, 비방자요, 폭행자였으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해 주시고 택하여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을 생각하면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해 주시고, 또 불러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감사의 대부분도 사도 바울의 감사와 같습니다. 교회로 인해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대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사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가 아니라 불평불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감사의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감사가 생길까요?어떻게 해야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언제 감사가 생겨나는 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면 됩니다.
(1) 첫째로, 기도할 때 감사가 생깁니다.
바울의 감사는 기도할 때 하는 감사였습니다.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 없이 살다보면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감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감사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갖게 되는 좋은 습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그렇다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을 해 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감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다니엘을 보세요. 기도 시간에 감사하였습니다.
(2)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감사가 생깁니다.
기억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쁜 기억은 노력하지 않아도 잘 기억되지만, 감사 제목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감사 제목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2절과 3절에서 기억이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 2절에서는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한다고 했고,
- 3절에서는 우리 주 하나님 앞에서 끊임 없이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기억은 아이큐(IQ)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이큐가 좋은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가 좋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감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3) 세째로,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알 때 감사가 생깁니다. 본문 4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알다 – 원어로 에이돈인데, 보다, 알아차리다, 알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택하여 주시고,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믿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신 것을 알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축복들 즉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30절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과 부르심에 대해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택정하여 주시고, 불러 주시고, 또한 의롭다 하여 주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여 주셨다, 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닫고 너무 감사해서 그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을 아세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계세요?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일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바로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때,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시고, 성도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시고, 천국의 상속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런 영적 축복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축복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은 무슨 일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에 감사합니까?
교회로 인해 감사합니까? 복음이 전파되며,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소식을 들어며 감사하고 있나요?
소명에 감사하고 있나요?
자격 없는 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심을, 세상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하고 있나요?
(축원)
바울처럼 복음으로 인해 감사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과 섭리 신앙으로 인해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