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1)
본문/ 요7:10-24
(세 가지 분별력)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기도제목이 많지만, 중요한 기도 제목 중에 하나가, 분별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분별력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솔로몬 왕이 젊은 나이에 왕이 된 후에, 아직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그날 밤에 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여러분 같으면 주님의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왕으로서, 하나님께 지혜, 즉 분별력을 구했습니다.
왕상3:7-9,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이 올바른 기도로 인해 주님께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별력을 주셨을 뿐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그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별력과 관련해서 세 가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 첫째로,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천기는 분간할 줄 알면서 때는 분간하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12:54-56,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요한복음 7장 앞 부분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시면서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명절이 되었는데, 갈릴리 지역에서만 사역하지 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드러나게 사역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조언하고 있습니다.
기왕에 사역을 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유명하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동생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요7:3-4절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예수님은 동생들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의 때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아직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요7:6-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여러 번, 때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신 후, 그의 때가 되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에도 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를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떤 때인 것 같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입니다. 더 깨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예배 생활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특히 온라인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은 더욱 집중해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과 악한 사탄이 주는 생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이라고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귀신도 있습니다. 무당을 보세요. 신이 내린다고 하는데, 귀신을 받은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인들, 유대인들 중에는 성경의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눅11:15절)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세상을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7: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들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사람들을 미혹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요한일서4장에서는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영적 분별력이 있으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고전2:14절을 보세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예화) 외국어를 아는 사람은 누가 외국어를 할 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는 몇 개의 외국어를 아는데, 영어 외에, 러시아어, 우즈벡어, 카작어를 알고 있습니다. 길가다가 어떤 외국인이 러시아어를 이야기하면, 저는 알아듣습니다. 그분이 러시아를 말하는지, 영어를 말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영어도 모르고, 러시아어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외국어를 말할 때, 분별이 안될 것입니다. 지금 외국인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을 가지려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영적 분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세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분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입니다.
(a)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우선 내 뜻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훈(가르침)은 자기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선생이 아니라 전령으로 인식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실 때 자기 생각,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 자기 생각, 자기 사상, 자기 뜻을 전하려는 유혹을 갖는 것입니다. 그릇에 무엇인가를 담으려면 먼저 비워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분별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생각, 자기 뜻을 먼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요소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선입견, 아집, 욕심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경이 다른 것으로 덧입혀 있으면 볼 수 없듯이, 내 생각, 고집, 선입견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릴 때, 우선적인 기도는 내 뜻을 버리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이 보이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순종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요7:17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거꾸로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하나님의 뜻을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 밥이 몸에 도움이 된다,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밥을 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쇠귀에 경 읽기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권을 다 잃어버리고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어 고통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따르겠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히 쓰시는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 즉 순종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c)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려면,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요7:18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스스로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만 구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자기 영광을 구한다는 것은 이기적 욕망, 사심, 옳지 못한 마음의 동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거짓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참되고 그 속에 불의가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 겉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여도, 속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모를 보기 쉽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조차도 사울 왕에 이을 왕을 뽑을 때, 이새의 아들 중에서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잘 생기고 키도 큰 것을 보고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면서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을까요?
외모에 있어서, 누구보다 잘 생기고, 키도 컸던 사울 왕이 교만하여 변하는 것을 보시고, 새로운 기준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사욕, 영광만을 구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분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 앞에서 예배드리면서 우리 마음의 중심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마음의 중심이 바른가, 순수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사도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세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하든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d) 넷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잘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는데, 문자적으로 말씀을 아는 것보다 그 본질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을 많이 아는 것과 율법의 본질을 알고 행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말씀의 본질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살인 충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본질에서 벗어났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볼 때는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 같이 보였지만, 실상은 예수님은 안식일 정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정신을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은 그를 병에서 해방시켰으며,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을 지킨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7:19-24절에서 이런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하나이까?”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할례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치료해 주신 일을 예로 들면서, 율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일로 사람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며 죽이려고 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들도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대로 하면 그들도 율법을 범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은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23절)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셨지만 결코 안식일을 범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 때, 문자적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요약해 주신 것처럼 성경 말씀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22:37-40)
(e)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뜻에 민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일을 정확히 알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고전2:10-1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이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안에 두 소욕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 자아의 소욕, 즉 육체의 소욕이 있고, 또한 성령의 소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소욕은 서로 거스르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갈5:16-17절을 보세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께서 언제 주로 말씀해 주시는가?
말씀을 묵상할 때,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날마다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에- 신33장에 기록된 모세의 축복 기도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설교 준비를 하는데, 성령께서 제 마음에 – 내일 새벽에는 설교를 줄이고, 아이들과 미국, 한국을 축복하는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는 어린 아이들, 청소년, 청년들, 조국과 미국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자주 성경을 읽거나, 묵상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성령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 시간에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 –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것을 구하는 것은 기도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화) 환자와 의사의 대화
어떤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떠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 저는 여러 군데 아파요. 두통이 있구요. 소화도 안되구요. 테니스 때문인지 팔꿈치도 아픕니다. 잠도 잘 못잡니다.” 자기의 불편한 사항을 다 말하고 나서, 시계를 보더니,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점심 약속이 있는데, 가봐야겠어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고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잠깐만 기다려요. 아프면 진찰도 받아야 하고, 의사인 내 말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 우스운 이야기 같이 들리지만, 기도할 때, 우리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 제목을 말씀드리고,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려고 하면 시계를 보면서 서둘러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고 지시를 내리신 경우가 많습니다.
행13:2-3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이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고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 결혼한 부부- 오래 동안 같이 살면서 친밀해지면, 눈빛만 보아도 감정도 읽을 수 있고, 배우자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말로 표현하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표정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친밀함이 뜻을 분별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의 전화 –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의 전화는 알아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열쇠가 됩니다.
예) 예수님 –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과 모든 면에서 친밀하셨습니다. 기도로 늘 하나님과 교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셨습니다. (요10:30) 늘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일치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 준 기도는 겟세마네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는데요, 십자가의 잔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눅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또 하나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얼마나 친밀하셨는지를 잘 보여준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때에 마치 아기가 엄마 품에서 잠을 들듯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였습니다.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순종하며 산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와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이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분별하며 순종하며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기도 제목
1)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우리들의 예배가 타락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면 합니다. 예배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분들도 영적으로 깨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소서.
한국과 미국을 축복하는 기도 드렸으면 합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남북의 평화 통일이 이뤄지도록. 미국의 인종 갈등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되도록, 11월의 대선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주시도록, 공의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대통령이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