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창세기 47:7-12, 27-31
7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12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야곱이 바로 앞에 섰습니다. 바로가 묻습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나 되십니까?” 바로가 왜 다짜고짜 나이를 물어보았는지 의아합니다. 야곱의 나이가 정말 많아 보여 궁금하였는지 아니면 자기 예상과는 달리 젊어 보여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곤혹스런 질문 중에 하나가 나이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자기가 나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밝혔지만 나이 들어서는 자신이 늙었다는 것이 싫고, 또 나잇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면 한참 계산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중 하나는 실은 50이 가까워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40대를 맞을 때보다 더 두려움이 심한 것 같습니다. 5, 60대 어르신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인생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말할 때 “몇 살 먹었습니까?” “몇 살입니다.” 하고 ‘살’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살이란 단어는 인생살이, 머슴살이, 더부살이, 타향살이 등 살아가는 일 곧 삶을 의미합니다. 또 살다, 산다, 살았다 등 생명을 지니고 행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한 살은 하나의 삶이, 두 살은 두 개의 삶이, 쉰 살은 쉰 개의 삶이 쌓여 이루어집니다. 세월의 무게라는 말은 실제 그렇습니다. 작품으로 따지자면 쉰 살은 쉰 개의 작품을 쓴 것과 같습니다. 자기 나이에 만족하십니까? 나잇값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그만큼 자기 인생에 능숙해졌습니까? 자기 나이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고 정말 후회 없는 인생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험악한 세월

나이에 대한 바로의 질문에 대한 야곱의 대답이 참 인상적입니다. “내 나그네 길 인생 130년입니다. 짧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 조상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말이 우리 가슴에 두고두고 여운을 남깁니다. 어떻게 자기 인생에 대해서 한 마디로 ‘험악했다’고 정의할 수 있나? 그렇지만 창세기를 읽다보면 야곱의 이 표현에 우리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정말 험악했습니다. 뱃속에서 출생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형의 발목을 붙잡고 태어났습니다. 의식도 없는 갓난쟁이가 본능적으로 어떤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 차자로서의 박탈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그 자리에 앉으려는 그런 눈치 보기 인생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속여 형인 척하며 그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이 때문에 형의 눈을 피해 밧단아람이란 곳에서 20년 동안 타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돌아와서도 형 에서의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겨우 화해는 하였지만 함께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자식들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르우벤과 레위가 힘들게 했습니다. 노년에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헤어졌고 그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슬픔 가운데 살았습니다.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그 인생이 나그네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평안히 발을 뻗고 잘 땅이 없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고 여전히 목표를 찾아 방황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조상들의 나그네 삶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야곱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나마 정들었던 가나안 땅을 떠나 기약도 없이 낯선 애굽 땅에서 살아야 될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삶이란 것은 외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실감할 것입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달라 불편합니다. 더욱 힘든 것은 끊임없이 느껴지는 이방인 의식입니다. 함께 오래 살아도 그 땅 사람들이 ‘넌 우리와 달라’ 라 말하는 것 같고 스스로도 이런 괴리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 또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제가 장례식장에서 드는 생각이 바로 이것입니다. 70년 80년 이상을 한국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정말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한 번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십시오. 1945년까지 36년 동안 일제 강점기를 보냈습니다. 해방되자마자 남북이 분열되었고 급기야 1950년 한국전쟁을 치렀습니다. 수백만이 목숨을 잃었고 피난민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승만 독재 과정에서 오늘날 중동 민주화 시위와 같은 4.19 혁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박정희 유신 독재가 뒤를 이었습니다. 6,70년대는 근대화와 고도성장의 시기였습니다. 다들 농촌과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세대들은 고향을 떠나거나 잃어버렸습니다. 1980년대는 군부독재와 민주화 시기를 거쳤습니다. IMF 위기를 겪은 이후부터는 이제는 자식들이 걱정입니다. 늘 실업의 위기를 안고 삽니다. 2000년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우리는 남북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험을 안은 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험악한 땅에서 사시다 죽음을 맞는 분들에게 늘 존경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가셔서도 한국 땅에 살았다는 것 자체로도 하나님은 “고생했다” 하고 반갑게 맞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일생(一生)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을 의미하는 생(生)자의 한자 풀이가 재미있습니다. 한 일(一) 자 위에 소 우(牛)입니다. 소 한 마리가 외나무다리를 걷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일생입니다. 인생은 소처럼 미련한데 더욱이 외나무 위를 걷는 것처럼 매우 위태롭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면 ‘험악했습니다’ 하고 고백할지도 모릅니다.  순탄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인생을 소설로 쓰면 몇 권이 나올 거라 말할 수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병으로, 물질로, 사업으로, 인간관계로, 자녀 문제로 우리 인생도 험악한 세월의 점철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씨의 일생이 최근 MBC 스페셜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이분 사진이 항상 웃는 모습이어서 아픔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분은 6.25의 아프고 추운 기억과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은 아들에 대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든 것이 펜이었고 박완서 씨의 소설에는 이런 상처들이 녹아들어 가 있습니다.

일본의 지진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일본인들도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섬나라이기에 어디 달아날 곳도 없습니다. 끊임없는 지진의 공포에 시달리며 삽니다. 평생에 쓰나미를 한 번 맞기도 힘든데 이번에 보니 어떤 마을은 쓰나미를 두 번이나 맞았습니다. 첫 번째 쓰나미가 무서워서 10m 높이의 제방을 쌓아 놓고 이제는 안심이다 하였는데 이번에는 15m 쓰나미가 와서 절반이 죽고 마을은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험난한 인생에서 터득하게 된 것이 바로 ‘혼네’ 곧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그런 태도입니다. 슬퍼도 그렇지 않은 척,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합니다. 자기 남편이나 자녀를 잃었는데도 감정을 자제합니다. 어떤 화면에서는 심지어 약간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통에 적응하는 한 방법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발설할수록 더 힘들어질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속마음을 드러내면 위험하다는 것을 오랜 전쟁과 고난의 과정에서 터득한 결과입니다. 한국인은 고통 앞에서 대성통곡함으로 해결하려 하고 일본인은 참음으로 해결하려는 차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장례식장은 한 편에서는 통곡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집니다. 간혹 싸움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일본은 조용하고 절제된, 그래서 어느 때는 무서울 정도 침착하고 인내하는 모습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에게는 상처가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이처럼 험악한 세월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인생은 험악합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건데?’ 입니다. 험악한 세월 앞에 그 인생 또한 모질고 험악하게 될 것입니까? 아니면 진주 조개가 그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진주라는 보석으로 바꾸어가듯 자기 인생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갈 것입니까? 성경에서 고난은 좋은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정금처럼 연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항상 그런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까?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더 독하게 만들고 더 세상을 원망하게 만들지는 않습니까?

야곱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야곱이 그 험난한 세월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축복한다는 것은 높은 자가 낮은 사람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을 설명하면서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히7:7)고 말씀합니다. 야곱은 바로 앞을 나오면서도 바로를 축복합니다. 10절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은 바로라는 대제국의 왕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지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땅의 나라 임금을 축복합니다. 단순히 의례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8:14)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그 축복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모습에서 야곱이 얼마나 자기 인생을 긍정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을 축복 할 정도의 큰 그릇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130년의 인생은 험난했지만 그는 그 험난함을 승화시켜 자기도 복된 사람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험난한 세월을 거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험난한 세월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가고 있습니까?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상처는 남북분단과 전쟁일 것입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고 늘상 전쟁의 불안을 안고 삽니다. 어제가 천안함 사고 1주기였습니다. 천안함 사고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여전히 남북은 서로 불신하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서로 ‘공격했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서로 ‘먼저 도발했네, 너희가 먼저 도발했다.’며 싸우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 일부 언론은 북한의 소행이 확실하다며 비분강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야당과 시민단체 또 다른 일부 언론은 여전히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장들만 난무하지 진실에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은 없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분노해야 하는데 누구를 향해서 어떻게 분노해야 할지 정말 답답합니다.

논의야 어쨌든 46명의 사랑스런 자녀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들의 슬픔은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다가 괴이한 신문 제목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기관총” 엄마와 기관총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그런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천안함 사고로 자식을 잃었던 어떤 부모가 국가에 무기 구입에 사용해달라고 보상으로 받은 성금을 기탁했다고 합니다. 이 성금으로 초계함용 기관총 18정을 구입해 9대의 초계함에 두 정씩 장착했다고 합니다. 정식 명칭은 천안함 사고 난 날을 기념하여 ‘3.26기관총’ 이었고, 기자가 글을 쓰며 ‘엄마의 기관총’으로 달은 것입니다. 자식을 잃은 엄마의 분노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엄마의 기관총은 또 다른 아들들을 죽이는데 사용이 될 것이고 아들을 잃은 또 다른 엄마의 피눈물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험난한 세월이 우리를 오히려 반(反)인간으로 만들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남북한의 갈등이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독기와 분노, 왜곡과 불신만이 가득합니다. 분노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갈등과 전쟁의 위험은 커지기만 합니다. 험난한 세월을 승화시키지 못한 까닭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로시마 나가사끼에서 수십만의 생명을 원폭으로 보내야 했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위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50여 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지었습니다.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동북아를 피로 물들였으면서도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여전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도대체 역사에서 무슨 교훈을 받은 것입니까?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펄 벅이라는 여류문학가가 있습니다. 『대지』라는 소설로 유명하고 그 소설로 노벨문학상까지 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인생 또한 험난했습니다. 펄 벅에게 캐롤 벅이라는 유일한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자폐증과 정신지체를 가진 장애아였기 때문입니다. 펄 벅의 자기 나이 60세 되던 해에 『자라지 않는 아이』란 책을 썼는데 딸의 문제로 험난했던 자기 인생을 기록한 책입니다.

펄 벅은 아기가 세 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자 병원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거고, 글을 읽거나 쓰지도 못할 겁니다. 고작 해야 네 살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다 공통적입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지금은 그래도 자폐증이나 정신장애자들에 대한 지식도 있고 편견도 완화되었지만 그때는 1920년대였습니다. 그냥 미친 사람,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때의 고통을 펄벅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삶의 모든 기쁨은 모두 사라지고,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죽으면 이 모든 고통도 끝나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주 마음속으로 차라리 내 아이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울었던가! 정신지체인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 부모의 이야기가 이따금 신문에 실린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아이가 오늘도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매일 느끼면서 절망은 더욱 깊어 간다. 아이를 돌보기는 힘들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아무런 성과도 없다. 몇 살이 되던 간에 정신이 자라지 않는 몸뚱이를 돌보아야 하고, 생기 없고 반응이 없는 흐린 눈동자를 바라보아야 하고 더듬거리는 손놀림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이 절망감을 더해 주기만 한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야 하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펄 벅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점차 적응해 갔습니다.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나면, 거기에서 위안을 찾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된다.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망하고 탄식하는 데 힘을 다 쏟아 붓지도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나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 것이었다. 삶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삶에 순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쉽지 않습니다. 다시 무너질 때도 많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행동하는 모습만 보아도 어째서 우리 애는 하고 절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 펄 벅 여사는 “나는 주저앉아 있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것이 내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야 해.’”하며 다시 일어섰다고 합니다.

펄 벅은 아이를 위해 최선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아이를 고치기 위해 중국으로 미국으로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어렵게 되자 이번에는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시설과 환경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평생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펄 벅 여사의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 결과 『대지』라는 소설은 노벨상을 받기에 이릅니다.

딸 아이와 함께 하면서 펄 벅 여사는 배운 것도 많았다고 합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배운 것이 정말 많다. 무엇보다도 인내를 배웠다. 이렇게 슬픈 여정을 거쳐서 나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도 배웠다. 인간성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며 누구나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가르쳐 준 것이 바로 내 아이였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참지 못하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또 지능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진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거짓을 간파할 줄 알고 거짓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펄 벅은 이후에 자신이 받은 인세를 기부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혼혈아라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입양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펄 벅 재단입니다. 자신은 국적이 다른 아홉 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길렀다고 합니다. 펄 벅은 1973년도에 죽음을 맞이했고 그 딸, 캐롤 벅 또한 1992년 72세의 나이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펄 벅 여사는 험난한 인생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여인이었습니다. “우리 모녀의 모든 것을 바쳐 다른 사람이 이런 괴로움을 겪지 않도록 힘쓸 수 있다면, 우리의 생애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이다.”

험난한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험난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결정과 태도에 따라서 그 험난한 세월을 진주와 같은 보배로운 것으로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험난한 인생을 사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도와주시길 원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고백은 바로 야곱의 고백이었고, 모든 시련을 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소망과 위로의 말씀입니다. 험난한 세월을 통해서 우리는 정금처럼 빚어져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금처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7:11) 하나님은 세월의 험난함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정수를 뽑아내셨던 것입니다.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야곱은 애굽 땅에서 17년을 더 살았고 147세를 향수했습니다. 그의 마지막이 가까워오자 야곱은 요셉을 불러서 자기 환도뼈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킵니다.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29-30) 자신의 뼈를 가나안 땅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혔던 곳에 함께 묻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야곱은 죽는 순간에도 자녀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애굽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 우리는 나그네라는 교훈입니다. 우리에게는 돌아가야 할 약속의 땅이 있다는 교훈입니다. 죽음으로 주는 교훈이 더 결정적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야곱의 묘를 생각하며 돌아갈 자신의 땅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11:13) 삶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많아진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땅에 코 박고 사는 우리들을 향해 하나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 얻은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에게 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십니다. 매이지 않아야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더 인간다운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애굽의 물질에 매인 이 시대는 무엇보다 나그네 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