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72
용서와 심판

창세기 42장 1-25절
1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 삼 일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23 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인의 돈은 그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요셉은 총리의 자리에 올랐고, 가나안 땅에는 기근이 임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식량을 사기 위해 애굽에 왔다가 요셉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의 꿈, 형제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던 그 꿈이 실제로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드라마로 말하자면 클라이맥스입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형님들 저 요셉입니다” 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겠습니까? 이어서 과거에 대한 원한에 대해서 분풀이를 하든지 아니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든지 다음 단계를 밟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장면을 매우 길게 끌고 있습니다. 42장부터 45장까지 무려 네 장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마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분량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왜 이처럼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까요? 요셉은 무슨 의도로 자신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형제들을 시험하고 있을까요?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건너가는 것이 창세기 구원사의 정점이고 또 요셉이 해야 했던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이런 임무를 위해서라면 요셉이 바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결정적 장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용서와 화해라는 문제입니다. 요셉과 그 형제 사이에는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았던 일입니다. 중동 사회는 가족과 종족 간의 의리와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 점에서 같은 핏줄인 형제를 죽이려고 하고 팔았던 사건은 중대한 죄악이며, 그 당사자인 요셉에게는 평생의 한이 되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42장에서 45장까지 이르는 긴 이야기는 용서와 화해의 어려움과 함께 어떻게 그것에 이룰 수 있는 지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서가 쉽니?

요셉과 그 형제들의 만남에 대해서 언급하기에 앞서 최근 개봉되었던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용서와 화해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들고 싶습니다. 먼저 한 편은 《밀양》입니다. 전도연 씨가 주연을 하고 이창동씨가 감독을 하여 2007년도에 칸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또 국내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밀양에 정착한 신애(전도연분)는 그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나 불행은 혼자 오지 않듯 자기 아들이 유괴를 당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이 엄청난 슬픔을 신애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극복하려 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함으로써 그 상처를 다 털어버리려 합니다. 그래서 교도소를 찾았지만 신애는 그곳에서 더 큰 절망감만 안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 살인자가 이미 감옥에서 예수를 믿고 자신은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하며 평화로운 얼굴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애는 이 장면에서 멍한 표정으로 나오다 그만 쓰러지고 맙니다. 나중에 심방을 온 목사를 향하여 신애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나요? 그 인간 이미 용서받았다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요?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그는 평화롭습니다.”

이 영화는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용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껏 용서하러 갔는데 상대방이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뻔뻔스럽게 서 있을 때 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신애도 그 살인자도 용서의 문제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애는 그를 용서한다고 했지만 진실로 용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살인자마저도 용서하는 지극히 관대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위선이 실패하자 비로소 그 안에 꼭꼭 눌러 놓았던 분노가 폭발했던 것입니다. 이후 분노하고 신을 향해 저항하는 신애의 모습은 오히려 불가해한 삶의 시련 앞에 선 인간의 자연스런 행동이라 할 것입니다. 그 살인자 또한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만 회복되면 그만이라면 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의 용서보다 하나님의 용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원수 된 자를 향하여 너무나 쉽게 용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또 하나의 영화는 2010년에 개봉되었던《파괴된 사나이》입니다. 배우 김명민 씨가 주연했던 영화인데 그리 흥행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주목했던 이유는 김명민 씨가 목사의 역할을 맡고 유창한 설교를 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이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2) 일흔 번씩 일곱 번은 곧 490번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향하여 무한한 용서를 행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 김명민 목사의 사정이 전혀 그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 딸이 유괴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1년이 넘어가지만 전혀 단서를 찾지 못합니다. 가정은 파괴되고 아내는 유괴된 아이를 찾다 교통사고를 당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이런 형편인데 목사인 김명민은 그 유괴범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김명민 목사는 외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할지어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지어다!” 청중들은 이 모습에 감동된 듯 “아멘!”을 외칩니다. 그러나 김명민 목사는 결코 이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유괴범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목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교회당을 박차고 나갑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합니다. “XX고 있네.” 설교 석상에서 상스러운 말을 할 수 없지만 김명민 목사는 용서를 외치는 성도들의 위선이나 그런 운명을 만들어내고 전혀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욕을 해대고 신앙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유괴범을 찾아 복수를 행합니다.

우리는 곧잘 피해자들에게 원수를 용서하라고 조언하지 않습니까?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이 복수하는 것을 성경은 금지하고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자신이 먼저 죽는다고 하며 대단한 상담가나 된 마냥 충고하는 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가해자의 입장에 서버리고 마는지 모릅니다. 가해자는 죄를 회개할 생각도 없는데 성경 말씀을 들이대며 피해자에게 용서하라고 또 한 번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궁극적으로는 원수를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용서에 이르는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늘 요셉과 그 형제들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용서에 이르는 과정

요셉은 바로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충분히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을 위기로 몰아가고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할 때까지 양심에 충격을 가합니다.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왔습니다. 가나안의 촌뜨기들이 대제국 애굽의 심장부에서 느꼈을 두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에는 애굽의 총리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채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알아보았지만 형제들은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다짜고짜 “너희는 정탐꾼들이다”(9) 하고 몰아 부칩니다. 이에 그들은 자기들은 정탐꾼이 아니며 열두 형제들 중 열 명인데 한 명은 가나안 아버지 집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아버지 집에 있는 아들 베냐민을 그 증거로 데려오라고 하며 형제들 중 하나인 시므온을 결박합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형편입니다. 이 장면에서 형제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사실 형제들은 요셉을 노예로 판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이렇게 억울함을 당하자 요셉이 당했었을 억울함이 생각났던 것 같습니다. 그 피 값을 오늘날 하나님께서 갚는다고 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드러냅니다. 죄를 지은 자는 이처럼 과거에 매여 삽니다.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요셉이 24절에 보면 울었다고 합니다. 왜 울었을까요? 그때의 억울함이 생각나서는 아니었을까요? 요셉은 형 시므온을 붙잡아두고 나머지 형제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돌려보내면서 그 곡식 자루에 그들이 가져왔던 돈을 다시 넣었습니다. 아마 선의로 돈을 넣어 돌려보낸 것 같지만 영문을 모르는 형제들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35절입니다.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아버지 야곱은 잘못하면 베냐민마저 죽게 만들 것 같아 애굽으로 보내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온 곡식이 다 떨어지고 다시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가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곡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유다가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43장 9절입니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베냐민이 위험할 경우 자기 목숨을 대신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에 야곱은 베냐민과 함께 그 형제들이 애굽에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베냐민과 함께 온 형제들을 보고 요셉이 자기 집으로 들이도록 하자 형제들의 불안감이 증폭됩니다. 43장 18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죄를 진 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는 법입니다.

요셉은 이번에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들을 후히 대접한 후 돌려보냅니다. 이번에는 베냐민의 자루 속에 요셉의 은잔을 몰래 넣습니다. 이 은잔은 요셉이 점을 칠 때 사용하는 도구로 매우 소중하여 훔쳐간 자는 사형을 내려도 무방할 정도로 애굽에서는 귀하게 생각하는 도구였습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돌아가던 형제 일행을 요셉의 수하들이 뒤따라와서 그들이 도둑질 한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결백하다고 하며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44:9) 하며 섣부른 장담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은잔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결국 다시 요셉 앞으로 끌려오고맙니다. 요셉 앞에 끌려온 형제 중 유다가 대표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44:16) 유다는 베냐민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든 형제가 죄를 함께 받겠다고 합니다. 특히 유다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적발한 죄가 무엇입니까? 은잔을 훔쳐간 것입니까? 아니면 요셉을 팔았던 죄입니까? 아마 유다는 요셉을 판 죄를 지금 자기들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요셉이 베냐민만 잡아 종으로 삼고 나머지 형제들은 돌려보내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유다가 나서서 요셉에게 간곡히 청원합니다. 44장 18절에서 34절까지가 유다의 긴 대사인데 마치 심판대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와 같습니다. 매우 비장하며 아버지와 형제를 위한 사랑이 간절히 묻어나고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30-31) “청컨대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33) 유다는 대신 자기가 종이 될 터이니 베냐민을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요셉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45장 1절에서 3절입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극적인 상봉 장면입니다.

심판도 필요하다

요셉이 이런 긴 과정을 통하여 형제들을 시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고통을 주고, 그래서 형제애를 회복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용서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진만큼 충분히 아파하고 그에 대한 가책과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 요셉은 이런 용서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제들을 심판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형들에 대한 미움을 다 잊고 용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잘못에 대해서는 심판이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가 서고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용서를 받고 용서를 행할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해준다고 해서 죄에 대한 대가나 책임마저도 용서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와 불륜을 행하고 또 그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그 남편 우리야를 살인교사하여 죽였습니다. 이런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알고 나단을 통해서 책망하자 다윗은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합니다. 사무엘하 12장 13절입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그러자 곧바로 나단이 죄의 용서를 선언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러면 이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저지른 죄의 대가는 참으로 컸습니다. 바세바 사이에서 낳은 불륜의 아이가 죽임을 당합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가 절반으로 나뉘는 전쟁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들 압살롬이 아비 다윗의 후궁들을 모욕하여 아버지를 부끄럽게 만드는 수치도 당하고 그 아들도 잃게 됩니다.

영화 《밀양》이나 《파괴된 사나이》의 경우 하나님의 용서가 가진 이런 심판의 측면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인은 기독교가 먼저 제공했다 할 것입니다. 용서를 피해자에게 강요하고, 가해자의 죄를 너무 가볍게 용서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평안히 죽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그 어떤 죄인도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죄에 대해서는 평생도록 벌을 받아야 하고 그가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었다고 하여 우리가 피해자에게 행한 죄에 대한 책임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피해자에 대하여 평생토록 미안해 해야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하여 그 죄의 대가에 대해서 갚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요셉의 형제들의 불안은 평생 동안 갔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고난 후 형제들은 요셉이 자기들을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50장 15절에서 17절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죄는 용서되지만 죄의 고통은 끝까지 가는 법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엄청난 죄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 인간들 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냥 가볍게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신학자 본훼퍼는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가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것은 매우 값비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얻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손으로 원수를 갚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너무 쉽게 용서를 말하기 전에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렸으면 하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용서는 강요해서 이루어질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가해자의 죄의 인정과 회개가 따르고, 피해자가 그 상처를 잊고 극복할 수 있을 때 용서라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따르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든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설픈 용서가 피해자의 마음을 두고두고 아프게 하고 분노에서 자유롭지 않게 합니다. 물론 피해자도 궁극적으로 용서라는 행위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두고두고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는 말씀은 상처받은 자들을 향한 주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원수는 내가 친히 갚을 터이니 너희는 너희 영혼을 보존하라는 주님의 위로입니다.

죄에 대한 대가는 가해자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양심의 가책을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그 형제들이 그동안의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줍니다. 요셉을 애굽에 팔자고 먼저 제안했던 유다는 이번에는 베냐민을 대신해서 자신이 노예가 되겠다고 자청함으로써 과거 자신의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심판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42장에서 45장에 이르며 길게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요셉이나 그 형제들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