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열가지 핵심 가르침> (1)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마태 Matthew 5:14-16

   1.

   어떤 사람에게 두 자녀가 있다고 합시다. 첫째 자녀는 부모님께 늘 예의 바르고 존경심을 표하고 사람들에게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모두들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부모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한편 둘째 자녀는 겉으로 예의를 차리거나 존경심을 표하진 않지만, 부모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부모의 훈계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자녀일까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첫째 자녀처럼 예수를 믿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 늘 예의 바르고 존경심을 표합니다. 주님을 정말 믿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좋은 신자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님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듣고 실천하는 일엔 게으릅니다. 주님께 예의를 차리고 존경심을 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열심히 믿지만, 정작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별로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교회 생활을 하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선 관심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신앙인이 아니라, 교리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인으로 사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2.

   그런 뜻에서 오늘부터 이번 봄 시즌 동안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말씀’을 중심으로 마태복음 5, 6, 7장에 근거해서 연속설교를 하려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고 말씀하신 교훈들을 전부 모아 놓은 곳이 마태복음 5, 6, 7장입니다. 산상 수훈, 혹은 산상 설교로 알려져 있는 본문이지요.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된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직접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한군데 전부 모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셔서 마이크도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사천리로 이 기가막힌 말씀들을 한번에 쫘악 쏟아 내셨을까요? 누군가가 녹음기로 녹음했다가 녹취를 풀어서 기록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긴 내용을 한날 한 장소에서 단번에 말씀하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산상설교는 공생애 기간동안 시차를 두고 여러 공간에서 거듭거듭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쳐졌던 말씀 모음집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후일 기록으로 남길 때, 제자들의 뇌리 속에 가장 중요하게 각인된 말씀들이 남아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 당대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고 제자들마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날 무렵, 그들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다양한 목격담, 각기 다른 증언, 경험담들이 떠돌아 다녀서 하나의 통일된 버젼으로 기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제일먼저 통일된 버젼으로 기록을 시도한 것이 ‘마가 복음’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를 따르는 성격이 서로 다른 공동체가 존재했는데, 하나는 과부와 이방인들이 중심이된 공동체였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공동체였습니다.

   여자와 이방인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누가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마가복음을 토대로 하되,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품으시는 예수님에 초점을 맞춘 자기들의 공동체에 적합한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누가복음’입니다. 또 유대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마태 공동체’라 부르는데, 이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마태복음입니다. 특별히 마태 공동체는 체계적인 신앙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고 말씀하신 내용을 수집해서 그것을 마태복음 5-7장에 모았습니다.

   결국 산상 수훈은 마태 공동체의 교육적인 필요 때문에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을 한곳에 전부 모아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산상 수훈은 가히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을 모아 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열개의 핵심 가르침을 살펴볼텐데, ‘팔복’과 ‘주의 기도’는 따로 다룰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빼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 중에 그 첫번째 시간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3.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논리보다는 이미지가 더 도움이 됩니다. 빛의 이미지를 떠올려 봅시다. 어떤 분은 어두운 방에 불을 켤때 환해지는 빛의 이미지를, 어떤 분은 새벽녘 동쪽 하늘을 밝히며 떠오르는 태양의 이미지를, 어떤 분은 은은하게 켜둔 촛불이 어두운 공간을 서서히 밝히는 은은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어둠을 밝힌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이 생깁니다. 대개 산상수훈은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판단하지 말아라, 염려하지 말아라’처럼 구체적인 지시가 많은데,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에는 지시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물론 말 아래가 아니라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지시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 빛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겠구나’라고 다짐을 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는지 막막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중에 ‘빛으로 사는 방법’을 아시는 분 계세요?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참 멋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평소 별로 그렇게 생각해 본적 없지만, 속으로 ‘아, 나한테 숨겨진 멋이 있나’ 생각하면서 나도 몰래 내 자신을 가꾸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점점 더 멋있어 지는 겁니다. 생각해 본적 없는 멋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는 사건, 그것이 실제로 한 사람을 멋있는 존재로 바꿔주는 겁니다.      

   빛으로 사는 방법? 그것은 내가 정말 빛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때 실제로 멋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듯, 내가 빛이라는 사실을 알 때 정말 빛같은 존재로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가 빛으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소 내가 빛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어둠 속에 숨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빛이다!” 우리가 빛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빛으로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자각하는 일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빛으로 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우리의 고단한 삶이 우리 안에 있는 빛을 끊임없이 꺼트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인정을 못받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실패합니다. 화목한 가정이 깨집니다. 착실했던 자녀가 탈선합니다. 심각한 질병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모진 삶의 고난을 겪다보면, 내가 빛이라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고, 내 안에 있던 빛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실제로 거친 인생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을 가느다란 빛으로 만들기도 하고, 언제 꺼질지 모를 흔들리는 빛으로 만들기도 하며, 그러다가 한순간 우리 안의 빛을 완전히 꺼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번 질문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빛을 지킬 수 있을까? 삶의 모진 바람과 거친 파도, 감당할 수 없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굳건한 세상의 빛으로 살아 갈 방법은 없을까? 내 안에 있는 빛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4.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첫번째 질문,  빛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질문, 빛이라는걸 아는데도 빛으로 살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삶이 우리 안의 빛을 어둡게 하고 꺼트리려고 해도 우리가 빛임을 잊지 않는 한,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빛은 하나님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온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고, 스스로도 환희 빛나는 존재, 그런데 우리가 그런 존재라니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입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도 찬란하게 빛나고, 타인과 세상의 어두움도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뇌리에서 지워져가는 이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누가봐도 빛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혀 유능하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폐만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빛이라고 보기엔 너무 작고 연약하고 무능하고 어두운 존재들입니다. ‘갓난 아이, 장애인,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들’, 이들도 세상의 빛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힘들게 직장에 갔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온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갓난 아이가 누워있는 방으로 달려갑니다. 힘든 아빠를 위로해 줄줄도 모르고, 도와줄 줄도 모르고, 말도 못하고, 아무 것도 할줄 모르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갓난 아이가 누워있습니다. 이 아이는 존재의 가치, 존재의 빛이 없을까요? 천만의 말씀! 존재 자체로 아빠의 희망이고, 삶의 보람이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저희 장인 어른이 투병하시다가 임종이 얼마 안남았을 무렵, 처남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프셔도 좋으니까 저렇게 누워서라도 그냥 살아만 계시면 좋겠다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실 수 없고, 더 이상 유능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계셨고, 그냥 숨만 쉬고 계신 분이었는데도, 장인 어른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치를 지닌 존재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무력한 환자에게도 존재의 빛이 있었던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라르쉬 공동체에서 <아담>이란 장애인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아담은 뇌성마비에 지체 장애, 지적 장애까지 앓는 중증 장애인, 하루 종일 침흘리고 발작 일으키며 괴성을 지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장애인, 그냥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아담 곁에 있을 때마다 나우웬은 깊은 평안을 느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식을 가진 하바드, 예일 대학 교수였던 자신이 위로를 받습니다. 거기서 인간이 존재 자체로 얼마나 소중한 가치와 빛을 지닌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큰 실패를 겪었다 해도 여러분은 빛입니다.  힘든 일을 겪고있다 해도 여러분은 빛입니다.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생산적으로 살지 않는다 해도 여러분은 빛입니다. 스스로 빛이라고 믿지 않아도 여러분은 여전히 빛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빛이라는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라고 가르쳤을까요? 왜 이 말씀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셨을까요?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 안의 빛도 꺼지고 세상도 그만큼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우리 안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 안의 그 빛은 반드시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데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잊지 맙시다. 꼭 기억합시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