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명자의 삶 8

“소명자와 시험”

(신명기 8:1-6)

 

 

[들어가는 말: 세 종류의 시험]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해서 처음 실시했던 훈련 과정이 <일대일제자양육>이었습니다. 처음에 직분자들과 함께 세 반으로 나누어 16주 동안을 공부했습니다. 또 그 중 대다수의 분들이 13주 동안의 양육자반 과정을 마쳤고, 나중에 일대일로 연결되어 또 다시 16주를 공부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모두 15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뒤쪽으로 가면 “시험을 이기는 삶”이라는 과가 있습니다. 거기서 ‘시험’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정리를 해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시련(trial), 둘째는 유혹(temptation), 셋째는 테스트(test)입니다.

 

시련이란, 하나님의 허락 하에 마귀가 주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을 주면서 우리를 흔들어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한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욥이 있고, 또 큰 박해를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있습니다. 시련이 올 때는 인내하며 견딤으로 이길 수 있는데, 특히 입 조심을 해야 합니다.

 

유혹은 마귀가 거짓말로 하는 것이며,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혹을 받은 대표적 인물은 요셉과 다윗이 있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가장 좋은 길은 그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테스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데, 그 목적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테스트를 받은 대표적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100세에 얻은 그 귀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테스트를 받았고 통과했습니다. 그가 테스트를 잘 통과하게 된 것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이처럼 시험이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실제 삶 속에서 이 세 가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험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오면, 이게 시련인지, 유혹인지, 아니면 테스트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도 있고, 서로 뒤섞여서 올 때도 있습니다.

 

혹시 지금 내가 당하는 어려움이 이 중 어떤 것인지 헷갈려서 걱정되십니까? 그러나 그것이 시련이든 유혹이든 테스트이든, 어차피 다 하나님의 손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내 삶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선한 뜻이 있으셔서, 내가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고 해도, 하나님의 권한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유혹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못하게 하시면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허락을 하셨으니까 유혹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테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우리가 정말로 아름답고 귀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1.   시험하시는 하나님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2-3절)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시험에 대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반드시 시험하신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의도적으로 시험하십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5절)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표현까지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은 사랑하셔서 잘되라고 하시는 것임을 가르쳐주는데, 여기서도 똑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되게 하기 위해 부모가 혼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랑하는 자녀들을 분명히 시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좋은 것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시험하신다.

 

그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1절)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6절)

 

시험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지를 보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명령을 지키라고 하시는 이유는 ‘살고 번성하고 약속의 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려주실 엄청난 축복을 제대로 누리게 하시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안 믿는 분들에게 교회 나오라고, 예수 믿자고 하면 “조금만 더 놀고 오겠다”고 합니다. 교회를 나오면 성경에 하도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많으니까 코가 꿰어서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오해입니다.

 

왜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하는 명령이 많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되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망가지는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하면 최고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잊지 말라!”

 

광야 생활이 하나님의 시험, 하나님의 테스트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가나안 땅의 풍요를 축복으로 누릴 수 없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냥 썩어버리고 망가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시기 위해 시험하셨고, 그것을 제대로 통과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엄청난 복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테스트)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시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런 시험이나 어려움을 가리켜 ‘변장된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시험이라는 것은 소명자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은 믿음의 인물이 누가 있습니까?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종으로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사도 바울도, 모두 시험을 통과하여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부귀영화도 누렸고 힘도 있었고 용맹했지만, 그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여 비극적인 삶을 살다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인용하신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3절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시험은 피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소명자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2.  시험을 통과한 인생 (다윗의 경우)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오늘은 특별히 다윗에게 초점을 맞추어보고 싶습니다. 이전에 다윗의 인생의 전반부를 살펴보았기 때문에, 다윗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잘 통과함으로써, 목동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일이 없었으면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여 목동의 자리에서 왕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삶에서 시험이라는 것이 결코 쉽고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시험은 너무나 혹독하고 힘들었습니다. 죽을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처럼 시험은 언제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시험이 쉽다면 시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주 쉬운 시험이 있습니다. “생명의 삶” 시험입니다. 지난 13기까지 144명이 수료했는데, 그 중에서 시험에 낙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제가 “생명의 삶”을 할 때마다 말씀드니다. ‘제발 저 좀 떨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금식기도를 하더라도 그 기도는 절대 응답되지 않으니까, 시험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고 늘 말씀드립니다. 그런데도 다들 염려를 하십니다. 강사가 너무 마음이 좋아서 시험 문제의 반 이상을 그대로 다 가르쳐드리고 시험을 봅니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시험이 “생명의 삶” 시험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겪어야 했던 시험은 정말 힘든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겪은 시험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주어진 일을 통한 시험

 

어느 날 다윗의 눈에 골리앗이라는 적군의 엄청난 장수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골리앗 때문에 이스라엘 군대가 완전히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자기가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테스트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그들 앞에 가져다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위험한 것을 보게 하셨다면 그것이 테스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아무도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어린 다윗만이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혹시 그때 다윗도 ‘어휴, 저 엄청난 거인 좀 봐. 하지만 나는 군인이 아니니까 내 일이 아니고 나와는 상관이 없어.’라고 하며 도망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니면 ‘저 군인들이 왜 저래? 자기들이 용사라고 으스대더니 저 꼴이 뭐야?’ 하며 이스라엘 군대를 비난하고 욕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황에서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분노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저 자가 누군데 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 그가 제 정신인가?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다. 내가 나가서 처치해야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싸우리라!’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적을 향한 거룩한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싸워 이김으로 첫 번째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도 역시 테스트입니다. 골리앗 한 명을 물리치고 졸지에 군대장관이 됩니다. 갑자기 사울의 군대장관이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정말 지혜롭게 처리했습니다. 계속해서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니게 되는데, 아둘람 굴에 들어갑니다. 그랬더니 부모님과 가족들이 다 내려와서 함께 거합니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모여듭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제대로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낙오자, 패배자, 실패자 등, 그런 사람들 400명이 모였고, 다윗은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테스트입니다.

 

어떤 일이 나에게 맡겨진다면, 그것이 작은 일이든 커다란 일이든, 분명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테스트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 가지 일을 통하여 당신의 사람들을 테스트하십니다.

 

 

2) 상황을 통한 시험

 

일을 통한 시험과 비슷한 것이 상황, 특히 어려운 환경을 통한 시험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의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가 나타나는 곳마다 군인들이 모두 존중해주고 그랬었는데,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던 그가 사울 때문에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제대로 먹을 것도 없어서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특히 400명이나 있으니까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도망 다니면서도 이리저리 구걸하러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상황이 좋았다, 나빴다 할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는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고, 반대로 함부로 취급당하고 무시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그것은 시험입니다. 잘 풀린다고 교만하거나 잘 안 된다고 넘어진다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테스트입니다.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통과해야 합니다.

 

 

3) 관계를 통한 시험

 

다윗에게 있어, 조금만 생각해도 아주 갑갑하고 골치 아픈 인물이 있는데, 바로 사울입니다. 아예 블레셋이나 다른 적대적인 나라의 왕이라면, 그냥 대적하며 미워하면 됩니다. 하지만 사울은 자기 나라의 왕일 뿐 아니라 자신의 장인이기 때문에 더 답답한 겁니다. 게다가 정신이나 온전합니까? 오락가락 하면서 자기를 죽이려 듭니다. 그렇다고 그냥 없애버릴 수도 없기 때문에, 다윗을 아주 힘들게 하는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에 빠져 본 적이 없으십니까? 정말 미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계속 참자니 미칠 것 같고, 그렇다고 확 쏘아주자니 그럴 수도 없는 관계? 그런데 바로 그것이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시려고 그런 관계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테스트하여 훈련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도 어떨 때는 정말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기도를 하고 큐티를 해도 계속 답답했습니다. QT를 하면서도 노트에는 그 사람 욕만 썼습니다. 그렇게 참고 또 참다가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드디어 하루는 그에게 가서 ‘당신, 그러면 안 돼. 그렇게 인생을 살면 곤란해.’ 하고 확 쏘아주려 했습니다.

 

그래도 크리스천이니까 나가기 전에 QT를 하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제가 그 인간 때문에 죽겠습니다. 이젠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이제 가서 뭐라고 하려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때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냐? 그러면 죽을 때까지 한 번 참아볼 수는 없겠니? 참아주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한 번 참아줄 수는 없겠니?”

 

그래서 그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얼마 후에 그 사람이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으면서, 그때 하나님께서 넓은 마음을 주셔서 자기가 미워하던 그 사람을 자기 집으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고 축복하여 보내주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분은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좋은 관계도 시험일 수 있지만, 그토록 힘들게 하는 관계라면 정말로 시험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인가 하면, 다 나를 훈련시키려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잘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 편함을 추구하게 하는 유혹의 시험

 

다윗에게 다가온 가장 큰 유혹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중에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도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성적 유혹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강렬했던 유혹은 바로 복수의 유혹입니다. 그것은 정말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이기만 했다면 그 힘들고 모진 도망자의 삶을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복수의 유혹이 아니라 그 속을 보면 복수하여 편안해지고 싶은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아주 힘든 또 다른 유혹이 있는데, 그것은 안락의 유혹입니다. 이젠 그만하고 끝내라는 유혹입니다. 10년을 도망 다녔으니 이젠 그만해도 된다는 유혹입니다. ‘블레셋으로 가서 거기 왕의 신하로 그냥 살아도 괜찮지 않나?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하는 편안함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블레셋 땅에서 신하로 살게 되었다면, 그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겁니다. 편안함의 유혹입니다.

 

 

5) 기다림의 시험

 

아주 사람의 피를 말리는 시험이 바로 기다림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실 때 이것이 언제쯤 끝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건 6개월이면 끝난다.’ 하시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민을 오느라 군대를 안 갔지만, 아버지께서 직업군인이셨습니다. 군대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을 압니다. “거꾸로 매달아놓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 언젠가는 제대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3년이었는데 요즘은 2년입니다. 3년이든, 2년이든, 길다고 느껴지더라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견디고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은 단 몇 주, 아니 며칠이라도 사람을 잡습니다. 언제 끝날지를 모르니 아주 애간장이 타들어갑니다. 그런데도 그냥 기다리라는 겁니다. 아무 기약도 없이 무조건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기다림의 시험은 정말 어렵습니다.

 

다윗의 도망자 세월 10년을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면서 이런 생활이 10년이면 끝날 것이라고 미리 알았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 9년 11개월째에도 몰랐을 겁니다. 미리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는 겁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께서 되었다고 하실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방바닥에 뒹굴면서 가만히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날이 올 때까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특별히 이것들을 지키며 기다려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지켜져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겁니다. 지금 상황이 힘들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급하니까 자꾸 사람을 찾아다니고, 심지어 점을 보러 가고,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며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도록 하신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켜야 합니다. 어떤 분은 힘드니까 자기 마음이 아프다고 함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해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구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시험이 끝나고 나서 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지만, 알고 보니까 다 자기가 쏜 총과 휘두른 칼(언어폭력, 물리적 폭력)에 맞아서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도 망가지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도 다치고, 그래서 관계도 힘들어지고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이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켜줄 것은 지켜주어야 합니다.

 

 

3.  시험에 대해 기억할 두 가지

 

1) 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테스트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형편에 있든지, 그것은 우리 삶을 더 복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테스트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이 잘되거나 안 되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것도 쉬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잘 안 풀린다면 그것은 결코 내가 재수가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무슨 벌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업보’가 아닙니다. 일이 잘 풀린다면 그것 역시 내가 운이 좋아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뭔가를 잘해서 상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뭡니까? 내 삶에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은, 나를 더 복되고 아름답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이야기들은 다 시험이라는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이 와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도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은 시험입니다.

 

 

2) 시험이라면 패스해야 한다.

 

‘시험’이라는 단어 뒤에 절대 붙어서는 안 되는 단어가 있는데, ‘떨어졌다’입니다. 시험은 붙어야 합니다. 시험은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패스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험이 올 때는 어렵기 때문에 여러 복잡한 감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휘둘리거나 나 혼자 생각에 휩싸이면 안 되고, 이것이 시험이라면 어떻게 패스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것은 결단하며 나가야 패스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기다려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담대히 싸워야 패스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참고 견디어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온 힘을 다해 붙들어야 패스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냥 내려놓아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재빨리 움직여야 패스할 수 있고, 어떤 것은 끝까지 기다려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분명하게 잘잘못을 가릴 때 패스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알면서도 덮어주어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아주 엄격하게 해야 패스할 수 있지만, 때로는 부드럽게 해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성령으로 알려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패스하겠다고 노력하는데도 왜 그렇게 하느냐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토록 오래 기다려주는 거냐? 왜 그냥 덮어주는 거냐? 왜 아픈 데도 말을 안 하느냐? 왜 이렇게 떨리는 상황 속에서도 숨지 않고 나아가는 거냐? 왜 열 받는 일인데도 가만히 엎드려 있느냐? 왜 알면서도 모른 체해주느냐? 왜 손해 보면서도 당하느냐?”

 

그렇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모든 것의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시험을 패스하려고 그럽니다. 지금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패스해야만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이 시험을 패스하도록 도와주심으로, 복되고 아름답고 귀한 소명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