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공동체의 회복(어버이주일)
신명기 5:16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에 관한 글, 하나를 소개하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배철현 교수의 <어버이 날>에 관한 글입니다.

 

나는 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부모는 나를 만들기 위해 신이 정해 놓은 오묘한 창조행위에 동참하였다. 자손을 위해 매일매일 기도하시는 마음은 나를 지탱시키는 힘이다. 부모는 나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고 나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처럼 여긴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이다. 내가 아플 때,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지만,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내가 아플 때, 연민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내 아픔을 자신이 지고 그 아픔을 덜어주려는 존재는 부모밖에는 없다. 내가 기쁠 때, 더 기뻐하는 존재는 부모다. 어버이날은 우리에게 그런 심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라는 날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나도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배철현의 매일묵상 “연민憐憫” 중에서

 

■ 호모데우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1882년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니체는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16세기 과학혁명 시대, 17세기의 계몽주의, 18세기의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 19세기의 실증주의와 다윈의 진화론 등이 등장하면서 인본주의 가치가 신처럼 숭배되는 시대를 보면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부당하게 억눌렸던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 즉 신본주의 시대가 갔습니다. 이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비로소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 대혁명 이후 230년이 흘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이 된 시대, 인간의 이성이 신으로 등극된 시대에 인간은 한껏 자유를 누렸을까요? 결론만 말씀드린다면, 인간의 이성이 신으로 등극한 이후, 자연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갈수록 무의미해졌습니다. 사회는 무한경쟁의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신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인간이 이룩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과 지구를 한순간에 초토화시켜 버릴 정도가 되었고,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도 미세먼지와 플라스틱공해,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석학들이 그냥 멸망의 길을 가는 행렬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 해체된 가족 – 무한경쟁과 연결 지어서 다시

 

 

인간이 신이 된 시대, 무한경쟁 시대엔 어떤 가치들을 강조합니까? 1등이 되는 것,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성공하는 것, 누군가를 밟고 올라 서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는 것을 성공으로 여깁니다. 독한 개인의 성공신화가 쏟아져 나오고 이러한 성공신화들을 보며 개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고, 다그쳐야 합니다. 자존감은 물론 마음의 여유를 잃어갑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쉽게 자존감을 경쟁 사회 속에 빼앗기고, 타인을 돌볼 여유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회의 문제들에, 이웃의 아픔에 ‘침묵’하게 됩니다.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도 심각한 것 같지만, 지금 당장 여유가 없으니 관심 갖기도 어렵고 이웃의 편에 서기도 각박한 것이지요.

 

이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이 현실이 나만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합리화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현실을 객관적으로 자각했으니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굴레에서 한 걸음 나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고민하는 개인들이 늘어난 공동체야말로 타인의 일에 침묵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기만족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끕니다. 개인 구원을 강조하는 보수기독교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해체된 가족, 공동체의 회복

 

 

이렇게 혈연의 가족까지도 해체되는 상황에서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북노회 지난 116회 회의록에 의하면 2018년 한해에만 300명이 넘는 교인이 줄었습니다. 2017년에는 500여 명이 줄었습니다. 해마다 저희 한남교회만 한 교회 3~4개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의 문제요, 기독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타 종교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종교뿐 아닙니다. 구호단체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공동체 혹은 가족성’을 갖는 것은 모두 해체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누가 이렇게 할까요?

 

연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서로의 문제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을 위해 함께 나서는 일을 꺼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마치, 자신이 유토피아를 만들 능력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개인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면 철저하게 개인주의화 시켜야 합니다. 이런 거짓과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것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 가족공동체의 회복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으로 ‘부모 공경’이라는 규례를 주셨습니다. 우선 ‘부모’의 일차적인 뜻은 ‘혈연적인 의미’로서의 부모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라는 말씀은 부모가 계신 모든 분께 복된 말씀입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순종하시고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추모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단지 혈연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확장된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확장된 의미로서 ’부모‘는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태계도 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내가 하루를 보내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수많은 직종에서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매일 매일을 이들 덕분에 살아가므로, 그들도 우리의 부모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우리의 부모요, 감사의 대상이요, 공경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개인주의와 ‘신자본주의의 마몬’이 자리할 곳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돕는 이웃, 모두에게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가족공동체를 이뤄가는 첫걸음입니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부모 되시는 분들은 자녀에게 모범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녀가 본 받고 싶어하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성서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으로 ‘주의 교훈과 훈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여,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신앙의 유산은 말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삶으로 물려줄 수 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또 이웃으로 인해 도움받기도 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부모를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사는 자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언제나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도우셔서 바른길로 가게 하시고, 복된 길을 열어주십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대량생산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그렇게 키우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노력, 이 둘의 만나게 되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할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가족공동체의 해체현상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가족공동체를 회복하려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상실한 하나님을 회복해야 합니다. 상실한 하나님을 회복하는 공동체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한남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한남교회를 통해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으시고, 한남교회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 되심을 체험하십시오. 제직들은 한남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가족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힘쓰십시오. 교우들끼리 서로 감사하며, 가족처럼 사랑하십시오. 그리하여 가족공동체를 회복하십시오. 어버이 주일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공동체’를 회복하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