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십자가

마 10:38

   여기 본당 강단중앙에 십자가가 서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디자인할 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십자가를 세울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주장해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앞에 나와서 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 무슨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입을 맞추거나 손을 대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 십자가는 상징일 뿐입니다. 하트가 사랑을 상징하고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하듯이 기독교를 상징할 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십자가가 상징이라면 어떤 십자가를 세울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먼저 교우들이 이 십자가를 볼 때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판매하는 십자가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았습니다. 멋있고 아름다운 십자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떠올리기에는 적절치 않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잘 아는 기독교미술작가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것과 같은 십자가 형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흉측해서 인테리어 상으로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기도하며 궁리한 끝에 이 분이 제작한 작품이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높이가 약 3미터 정도입니다. 그리고 무게도 물에 가라앉는 흑단나무로 만들어서 무려 300킬로그램 정도나 됩니다. 실제로 사람이 달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특징은 이 십자가에 채찍을 맞은 상처를 상징하는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흉측하지 않게 마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십자가를 보실 때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해야 하고, 다음으로 우리가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할 우리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고 따라야 할 우리의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자기 십자가

   우선 “자기 십자가”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예수를 믿는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십자가라 할 때 그 십자가라는 말은 하나의 비유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라고 할 때 우리도 예수님께서 지신 그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대신 져야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더더욱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처럼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에 서로 삶의 나눔을 가졌습니다. 어떤 분이 사춘기 아들이 자기에게는 십자가라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라고 해도 게임만 하고 자꾸 엇나가고 자기를 너무도 힘들게 한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음 사람이 장단을 맞추듯이 자기는 남편이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집안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아서 너무 속이 상한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날 유행처럼 십자가타령이 이어졌습니다.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일까요? 물론 맞지 않습니다. 이분들이 십자가라고 표현한 고난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겪는 보편적인 삶의 고난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런 삶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예수를 믿는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그런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 19:38-39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 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에 장례를 치렀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더더욱 예수님의 12제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까지 조용히 숨어서 예수를 믿어왔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 두 사람은 당시 사회지도층 인사였습니다. 부자였고, 공회원이었습니다. 만일 자기들이 예수 믿는다는 것이 드러나면 잃을 것이 너무도 많아서 숨어서 예수 믿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요즘 말로 ‘커밍아웃’한 것입니다. 이후로 자기들에게 닥쳐올 고난을 감수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명예, 지위, 그리고 재산 다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잘못하면 사회에서 매장될 뿐 아니라 옥에 갇힐 것을 각오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두 사람은 제일 먼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때문에 겪게 되는 불편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도 참 많습니다. 게다가 예수 믿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도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믿기 때문에 겪는 조롱, 비난, 박해도 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섬김과 봉사도 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마음고생, 육체적인 고통, 재정적이고 시간적인 희생...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인생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 해 전 중국 선교여행 중에 한 쇼핑몰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지역이 옥 주산지여서 옥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한 가게를 둘러보았습니다. 마침 가게 주인이 기독교인인지, 옥으로 만든 십자가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에 띠는 십자가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비취색 옥으로 만든 십자가 목걸인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크기고 적당하고 기품이 있어보였습니다. 특히 제 아내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삼백만원이나 됐습니다. 삼십 만원도 아니고 삼백만원이라는 소리에 그만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그날 내내 그 십자가가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녁에 숙소에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목에 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지라고 주신 것이다.” 그 후로 그 십자가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져야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는 않으면서 장식만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건물 위에 십자가를 세우고, 강대상 위에 십자가를 걸고, 방에 십자가를 장식해 놓고, 자동차에 십자가 표시를 걸어놓고,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 좋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신 장면이 떠오릅니다. 마 26:39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기가 두려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요?

  이번 2월 첫 주 [주간동아]에 실린 기사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금년 들어 각광을 받게 될 트렌드로 ‘입는 로봇’(wearable Robot)을 소개하는 기사였습니다. 입는 로봇이란 영화에 나오는 아이언맨슈트처럼 사람이 입을 때 슈퍼맨처럼 되게 해 주는 그런 로봇을 말합니다.

  참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 다양한 입는 로봇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거나 시장에 출시하고 있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조끼형태로 상향작업을 지원하는 로봇과 장시간 앉아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릎관절보호 로봇을 개발하여 공장에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젬스라는 로봇을 개발했는데 노약자나 환자들이 허리와 종아리에 착용했을 때 쉽게 보행을 하거나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각국이 다양한 형태의 입는 로봇 경쟁에 돌입해서 조만간 우리 삶을 상상이상으로 편리하게 해 줄 시대가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우리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는 너무도 좋은 예화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합 3:19을 보면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덧입을 때 마치 사슴처럼 저 높은 곳을 다닐 수 있다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암송하고 있는 행 1:8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우리의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힘을 덧입혀주시면,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가 권능을 받게 되면 그것이 어떤 십자가든지 우리는 넉넉히 질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입는 로봇을 착용한 것처럼 우리 힘으로 질 수 없는 우리의 십자가를 넉넉히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성령충만을 받고 주님 주시는 권능을 덧입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십자가를 그저 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글자 그대로의 뜻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그 뒤를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더라도 제멋대로 십자가를 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진 모습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언짢게 해드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가를 보고 그대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우선, 말없이 져야 합니다.

  일전에 보았던 신앙만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앞서시고 그 뒤에 한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릅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며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저 사람들이 안 보이십니까?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조금 뒤에 이 사람이 예수님께 언성을 높여 말합니다. “주님 저 사람들 그냥 놔두실 겁니까? 야단을 치시든 혼내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 사람이 하다하다 지쳤는지 자기도 말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 할 말이 많습니다. 주변에서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왜 조롱하고 비난하느냐고 따지고 항변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정도 모르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해명하고 싶은 말도 있습니다. 그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가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기도 합니다. 주님께 알아달라고 말씀드리고도 싶습니다.

   모두가 부질없는 일입니다. 설명한다고 하소연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추해질 뿐입니다. 그저 주님처럼 말없이 지고가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입니다.

다음, 완주해야 합니다.

  울트라마라톤이란 경기가 있습니다. 달려야 할 거리가 100킬로나 됩니다. 42.195킬로인 일반 마라톤도 완주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이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요?

  완주자들이 말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충분한 훈련과 컨디션 조절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70킬로 지점에서 한계를 맞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정신력싸움이라고 합니다.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는 데까지 가보지!”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은 절대로 완주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완주하겠다!”라는 마음을 참여한 사람들만 완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뒤를 따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일을 완주하셨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한계를 만나셨습니다. 지고 가던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지고 가는 것도 힘드셨는데 그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완주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완주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완주하겠다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교회력으로 이번 주 수요일 2월 26일이 소위 “재의 수요일”입니다. 이 날부터 부활절 전날인 4월 11일까지 40일 동안이 사순절입니다. 이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에게 지라고 주신 우리의 십자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