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월 22일, 뉴욕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수송선 도체스터호는 904명을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항해 12일 만인 그 해 2월 3일, 독일 잠수함이 도체스터호에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어뢰를 맞은 도체스터호는 얼마가지 않아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배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병사들은 서로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네 명의 군목들은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타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더 이상 나누어줄 구명조끼가 없었습니다. 그때 군목 클라크 폴링 (Clark V. Poling) 중위가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러자 군목은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 너는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네 명의 군목은 모두 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병사들에게 주었습니다. 도체스터호에 점점 물이 차올랐습니다. 네 명의 군목들은 서로 팔을 끼고 기울어진 갑판에 서서 ’내 주를 가까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였습니다. 생존한 병사 그래디 클락(Grady Clark)은 군목들의 최후를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병사들에게 벗어주고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수병들은 군목들의 희생을 기억하였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4명의 군목, 감리교의 조지 폭스(George L. Fox), 유대교의 알렉산더 구스(Alexander D. Goode), 장로교의 클라크 폴링(Clark V. Poling), 카톨릭의 존 와싱턴(John P. Washington)을 기리는 기념예배당 (US Naval Chapel)을 건축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시에서는 용감하고, 희생적인 네 사람의 군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포 채플린스(Four Chaplains)‘ 기념관을 짓고, '4인의 불멸의 군목들'이라는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1992년에는 작곡가 제임스 스웨어린젠(James Swearingen)이 이들을 소재로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이라는 뮤지컬을 제작, 공연하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가 없다면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본래 죄없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육신을 입으셨다 해도 성령을 통해 나심으로 아담의 원죄에 오염되지 않았고 또한 죄의 본성이 없으시므로 죽을 이유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인간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형은 사악한 죄수들을 처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사악한 죄인으로 취급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비천한 자리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광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피하시려고 핏방울이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택하시고 죽음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셨습니까?
 

첫째로 비움으로

하버드 대학 신학부 교수 헨리 나우엔 (Henri J. M. Nouwen)의 이야기입니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급기야 우울증까지 겪었습니다. 고민 끝에 지적 장애인들을 섬기기 위하여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본 어떤 사람이 “당신은 누구신가요?”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습니다. “하버드대학 교수 헨리 나우엔입니다.” 그러자 그가 되물었습니다. “하버드가 뭔데요?” 그 말에 나우엔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오늘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하버드대학 교수인 것이나 나의 업적에 관심이 없다. 나는 그저 헨리 나우엔일 뿐이다.” 이 일을 계기로 헨리 나우웬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비웠습니다. 그 후 우울증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비움의 영성이 가져다주는 복입니다. 자기를 비우면 누구나 평화로워집니다. 모든 갈등과 다툼이 사라지게 됩니다.

본문 7절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여기의 ’비워‘는 원어로 ’에케노센‘인데 ’통이 빌 때까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와 종의 형체를 남김없이 보여 주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지위를 뒤로한 채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종의 외양만 취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종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죄와 죽음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를 비워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고난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용하던 컴퓨터의 속도가 늦을 때 불필요한 파일들을 정리해 주면 속도가 제대로 나옵니다. 자동차도 트렁크를 비워 무게를 줄이면 기름이 적게 듭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비우는 행위는 개인의 작은 행위에 불과하지만, 이 비움이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비움의 영성을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낮춤으로

어느 수도사가 기도하던 가운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천국의 보좌 하나가 비었는데 그곳에 광채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보좌는 왜 비어 있습니까?” “본래 천사가 앉았던 자리였는데 타락하여 쫓겨나서 비어 있다” “그러면 누가 앉을 것입니까?” “겸손한 프랜시스가 앉을 것이다” 수도사가 성 프랜시스 (Sanctus Franciscus)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프랜시스 선생님,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진실되지 못합니다. 강도나 악한 자가 많은데 어찌 선생님이 그런 자들과 비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프랜시스가 대답합니다. “세상에 악한 자가 많지만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그들에게 주었더라면 나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았을 것이다.” 수도사는 감탄하며 “내가 천사에게 들은 말이 합당한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당연히 누릴 권리라도 주장하지 말고 포기하여야 합니다. 종의 위치까지 낮추어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여기의 ’낮추시고‘는 원어로 ’에타페이노센‘인데 ’내리누르다, 겸손하다‘라는 뜻입니다. 영광의 주님이 낮고 천한 모습이 되신 것을 비하(卑下)라고 합니다. 낮을 ‘비(卑)’와 아래 ‘하(下)’를 쓴 말로 비천해지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몸이 아닌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겸손의 영성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겸손은 영어로 ‘Humility’인데 라틴어 ‘Humus’(땅) 혹은 ‘Humilis’(땅바닥에 엎드리는)에서 유래합니다. 예수께서 낮고 천한 인간이 되셨으니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위치는 흙 바닥입니다. 그런데 자꾸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려고 애를 씁니다. 그로 인해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 생깁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모든 갈등과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셋째로 복종으로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 (Max Lucado)의 ‘사랑(Love)’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성공회 목사인 친구는 기도를 마치면 “아멘”하고 항상 성호를 그었습니다. 루케이도가 그 친구에게 “아멘 하면 되지, 왜 성호를 긋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가슴에 갖다 매면 대문자 영어로 ‘I’ (나)가 되지, 그 후에 한쪽 어깨로 갔다가 반대편 어깨로 가게 되면 ‘I’(나)를 반 토막 내는 셈이 된다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할 때 나를 반 토막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십자가가 완성됩니다. 나를 죽이면 복종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나를 죽이지 않고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복종이 안 됩니다. 복종은 나를 철저히 죽이는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여기의 ’복종하셨으니‘는 원어로 ’휘페코오스‘인데 ’완전히 순종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자기 비하의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크라이맥스였습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복종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는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죽기까지 예수를 따르고 복종하는 삶은 미래가 보장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복종하는 삶이야말로 영광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신의 안일함을 버리시고 복종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모습입니다. 이는 복종의 영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페스트 전염병이 창궐하였을 때입니다. 페스트균에 감염되면 죽게 되는 치명적 병이었습니다.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페스트가 급속도로 번져 삽시간에 도시가 죽음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의사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긴급하게 모인 의사들은 페스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페스트에 걸려 죽은 환자를 해부하고 정밀검사를 하여 치료법과 약을 속히 개발하는 것이 대책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해부하는 의사가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는 일이기에 감히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의사 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장 귀욘(Jean Casimeir Felix Guyon)입니다. “제가 프랑스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페스트에 걸린 시체를 해부하고 관찰하여 기록할 것을 여러분에게 서약합니다.” 즉시 자리를 떠난 장 귀욘은 기도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새벽 장 귀욘은 페스트로 죽은 환자의 방에 들어가 해부하고 정밀하게 검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치료에 필요한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기록한 종이에 묻은 균이 사람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종이를 식초병에 넣고 방을 나왔습니다. 열 두시간 후 의사 장 귀욘은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장 귀욘이 죽어가면서 파악한 페스트에 대한 기록은 페스트를 정복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페스트로 죽어가던 프랑스를 구했으며 유럽을 구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우리에게 포기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 학벌, 가문, 명예, 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자라 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본받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움의 영성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영성으로 더욱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종의 영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