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다음세대 (삿 2:6~10)
홍문수 목사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부모가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직업은 없다.” 그녀는 인종 차별이 심한 미시시피에서 가난한 흑인 사생아로 출생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9살에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미혼모가 되고 아들이 2주 후에 사망하는 슬픔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처를 치유 받고 당당히 승리했습니다. 2013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양한 자선활동을 해왔고 아프리카에는 학교를 세워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할머니의 성경암송 교육과 아버지의 독서교육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독특한 환경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느꼈는지 모릅니다.

 

부모는 자녀교육의 청치기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맡겨주시고 잘 양육하도록 책임을 부여하신 겁니다. 감리교 창설자 존 웨슬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 ‘너의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 ‘너의 물질을 어떻게 썼느냐?’ ‘네 자녀를 어떻게 키웠느냐?’” 장차 자녀 교육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자녀 교육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면허를 딴 후 부모가 된 게 아닙니다. 결혼해서 살다보니까 부모가 됐고 부모 역할을 배운 적도 없어서 서툽니다. 그래서 실수하고 자녀들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부모 역할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별 생각 없이 세상의 방법을 따라가다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특별히 이 시대는 교육의 위기 시대입니다. 일반교육도 그렇고 신앙교육도 그렇습니다. 얼핏 보면 일반교육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걸 통해서 취직도 하고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교육이 더 중요합니다. 비유하면 인생의 뿌리 교육입니다. 아무리 일반교육을 많이 받아도 신앙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반대로 일반교육이 좀 부족해도 신앙교육만 확실히 받으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얼마든지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신앙교육이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입시 위주의 일반교육에 밀려서 소홀히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모 교단의 총회교육국 발표에 의하면 10년 동안(2006~2015) 주일학교 학생들이 무려 30%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통계대로 정말 그런가 싶어서 한 고교 교사에게 여쭈었습니다. 서초구 소재 모 고등학교 부장교사이신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20년 전에는 학생카드를 보면 종교란에 기독교 혹은 가톨릭으로 기재한 학생이 70%나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반에 5명 남짓하고 그나마 교회에 착실히 출석하는 학생은 1~2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모두 ‘인구 절벽’을 우려하고 있는데 사실은 ‘신앙 절벽’이 더 심각합니다.

 

그래서 4/14 윈도우(4/14 window) 운동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세계선교를 위해 10/40 윈도우(10/40 window) 개념을 창안한 루이스 부시(Luis Bush)가 중심이 된 ‘다음 세대 복음화 운동’입니다. 10/40 윈도우(10/40 window)란 북위 10도에서 40도에 복음을 받지 못한 미전도종족이 대거 몰려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전략을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서구교회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세계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주일학교가 몰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제 4세부터 14세의 다음 세대에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신앙교육을 잘 시키자는 운동입니다.

 

우리는 우리교회 안에 있으니까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만 지금 유.초등 학생들은 그나마 유지되는데 청년이나 청소년 복음화율은 5%가 되니 안 되니 하고 있습니다. 괴담 수준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교육이 뿌리인데 흔들리다가 뿌리가 완전히 뽑히면 정말 큰일입니다. 개인, 가정, 사회, 더 나아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교육이 흔들리면서 나라 전체가 기우뚱했습니다. 이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역사의 과오를 그대로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잘 시킴으로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경험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사사시대의 비극 :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된 것

 

본문은 여호수아 시대가 끝나면서 이스라엘의 국운이 쇠하는 형국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7절 보면 여호수아와 동시대를 살던 이스라엘의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삿2: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께서 행하신 큰 일은 출애굽, 광야생활, 가나안 정복전쟁 등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와 동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 것들을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음세대가 문제였습니다. 그 시대를 사사시대(士師時代)라고 부르는데 그 때 신앙교육에 실패해서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달리 신앙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른바 ‘다른 세대’가 된 겁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 사후부터 사울 왕 등극 직전까지(B.C.1390~1050) 340년 동안을 가리킵니다.

 

그 시대는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너무나 암담했습니다. 고통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사사 시대의 모습을 보면 대개 이렇게 사이클을 이룹니다. “죄악 → 징벌 → 간구 → 구원 → 죄악 → … ”의 악순환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삿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기서 ‘다른 세대’는 다음 세대(another generation)를 가리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알다’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개개인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인격적인 연합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창4:25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동침했다고 할 때 사용됐는데 그들이 영육 간에 연합된 것 같은 체험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다음 세대에게 체험신앙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주워듣기는 했는데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가 출애굽, 광야생활, 그리고 가나안 정복 전쟁까지 거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생생한 신앙을 갖게 됐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진짜 신앙은 체험신앙입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잘 알아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그 역사하심을 체험하지 못하면 그 신앙이 형식적이 되고 미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 같은 사람은 고난 중에 체험 신앙을 얻고 이렇게 증거합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체험 신앙이 진짜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가운데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세대는 많은 고생도 했고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경배했습니다. 반면에 다음세대에게는 그런 신앙이 전수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 바알 신과 아스다롯(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각각 남신과 여신으로 풍요의 신으로 농경 신이자 전쟁의 신입니다. 불안정한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고 안정되면서 그들은 교만해졌고 안일한 가운데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 다음 세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았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신앙체험이 결여된 가운데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다음 세대’(삿2:10 다른 세대, another generation)가 이제 신앙이 변질되고 달라진 ‘다른 세대’(different generation)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또 이런 겁니다. 새로운 신세대(新世代)가 죄악된 씬 세대(sin generation)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산하는 샤인 세대(shine generation)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우상 신을 섬김으로 영적으로 타락했고, 더 나아가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급기야 어떻게 됐나요? 이방 족속들의 침략을 받고 고통을 당합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어디서든지 패배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암흑 같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삿2:13을 보면 그들의 배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이와 같은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삿2: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연전연패(連戰連敗)였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연전연승(連戰連勝)을 거두었습니다(수1:7~9). 두 세대를 비교하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분명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기성세대는 과거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경험했고 전후의 가난과 궁핍을 경험하면서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젊은 세대와 어린 세대에게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에서조차 신앙교육보다 지식 위주의 일반교육에만 온통 신경을 씁니다. 그러다보니까 영성교육이 부실해지고 인성교육도 뒷전이 됐습니다. 그래서 고학력 시대가 됐지만 오히려 불행하고 사회적으로도 혼란해진 겁니다. 계속 이런 추세로만 나간다면 개인도 불행해지고,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 인류에게도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현세도 중요하지만 내세는 더욱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현세는 기껏해야 1백년 남짓이지만 내세는 영원합니다. 내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현세에서 성공하고 출세한들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cf. 요일5:12) 세상에서 온 천하를 얻더라도 구원받지 못하면, 영생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만사가 허사로 돌아갑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잘 나갔던 솔로몬조차 이렇게 증거합니다. 시127:1~2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여러분, 성경적 축복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먼저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영혼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고 다른 모든 일이 잘 됩니다. 요삼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면 저절로 만사형통, 그리고 건강의 축복이 이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범사가 비틀어지고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만사불통입니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우리말 속담으로 하면 이런 겁니다. “엎어져도 코가 깨지고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 게 어렵다면 어렵지만 사실은 쉬운 길이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우선순위는 ‘신앙제일주의’입니다. 이 원칙만 지키면 다른 것들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예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를,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제일주의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의 모든 것을 차고 넘치도록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이 있죠.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다! 틀렸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신앙이 최고입니다.

 

역대 세계 최고 부자인 록펠러의 이야기입니다. 현재는 세계 최고 부자가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인데 가치 평가를 해 보면 록펠러가 더 크 부자입니다. 록펠러가 꼭 부자라서 인용하는 게 아니리 신앙제일주의로 성공한 케이스라 소개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 교훈 세 가지를 받았습니다. 첫째, 주일은 꼭 지키라. 예배 시간에 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십일조는 많든 적든 꼭 해라. 셋째, 목사님의 말씀(=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순종해라. 그는 이 세 가지를 지키며 살았고 하나님이 그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 사업을 하다 보니까 욕심 때문에 그 원칙들이 흔들렸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악덕재벌가라는 오명을 얻게 됐습니다. 어쨌든 그는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그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탈모증 비슷한 병(alopecia)으로 머리카락과 눈썹 빠지고 피골이 상접해졌는데 의사가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하루는 병원 로비에서 벽에 걸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마음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돈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됐던 자신을 돌아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데 저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소녀가 돈이 없어서 입원이 안 된다고 거절당하자 그 어머니가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서 익명으로 대납해 주었고 다행히 그 소녀가 회복하게 됩니다. 그는 큰 기쁨을 경험했고 그때부터 감사가 넘쳤습니다. 영적 멘토 목사와 의논해서 록펠러재단을 설립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자선사업, 선교사업, 그리고 교육사업 등을 전개했습니다. 그 일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 후 록펠러는 건강을 회복해서 98세까지 살다가 평안한 모습으로 감사기도를 드리며 소천했습니다. 신앙제일주의 원칙을 회복하자 인생이 바로 세워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만사형통한 것입니다.

 

[2] 신앙교육의 사명 회복 : 부모의 사명, 교회의 사명

 

우리가 아무리 자녀 교육을 잘 시키겠다고 발버둥을 쳐도 신앙제일주의 원칙에서 벗어나면 허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앙교육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샤인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교육의 사명은 가정과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정의 사명이 더 큽니다.

 

① 부모의 사명 :

 

교육의 기본적인 장은 가정이고, 교육의 제1 주체는 부모입니다. 여호수아 세대에 이스라엘이 신앙제일주의 원칙을 잘 지킨 비결이 무엇일까요? 여호수아의 신앙을 엿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24:15(하) “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세상 사람들은 우상 숭배를 하고 별의 별 짓을 해도 자신과 가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철저히 섬기겠다는 각오를 밝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이 다음세대에 가서 흔들린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상 욕심 때문입니다.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이유는 딴 데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일반은혜인데 착각하고 엉뚱한 우상 신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만 주는 특별은혜(구원, 영생, 평안, 기쁨, 지혜 등)의 가치를 모르고 그만 세속주의로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좋은 길로 인도한다고 하면서 신앙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계속 강조하는 게 올바른 신앙교육입니다. 그러면 만사형통입니다. 신6:4~9 보면 신앙교육의 명령이 나옵니다. 이를 가리켜 구약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 부릅니다. 신약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마28:18~20)이지만 구약의 지상명령은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키되 생활 현장에서 체험 신앙으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신약에서도 계속 강조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교육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게 체험 신앙으로 이어지려면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는 실제 삶의 현장에서 부모가 사는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신앙교육이란 게 본래 그런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른 말 잘 듣는 아이는 없다. 하지만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는 아이도 없다.”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볼드윈이 한 말입니다. 그만큼 부모가 본을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녀 교육의 마무리는 기도입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라도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갈 때 여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부디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특히 눈물로 기도함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꼭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세대도 계속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 교회의 사명 :

 

다음세대 신앙교육에 대한 교회의 사명도 큽니다. 부모가 신앙교육의 제1 주체지만 그 중심을 잡아주는 사명이 교회에 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눈부신 성장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주일학교가 그랬습니다. 지금 장년 성도들이 이만큼 된 것도 그 결과입니다. 그런데 최근 급격히 주일학교가 쇠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역자나 교사들이 패배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아무리 애써도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 기간이 되면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교회의 교역자와 교사들은 시험에 듭니다. 부모들이 신앙제일주의의 원칙을 갖고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주일에 한 두 시간 예배드린다고 공부를 못합니까? 그건 이미 신앙이 흔들린 겁니다.

 

이런 애로가 있지만 교역자와 교사들은 어려운 현실에 실망하지 말고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인언을 보지 말고 한 영혼을 보고 나아가면 됩니다. 한 사람을 확실하게 변화시키면 그한 사람을 통해 20년, 30년 후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D. L. 무디를 보십시오. 그로 인해 그 시대가 변화됐습니다. 많은 헌신자들이 선교사로 세계를 행해 나아갔습니다. 그 중에 상당수가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디 한 사람을 변화시킨 것은 캠벨이란 교사 한 사람이었습니다. 구두방에서 일아던 무디를 계속 찾아갔고 결국 교회로 인도합니다. 교회 에 와서 복음을 들은 무디가 회심했고 그의 인생이 변화됐고 그 후에 그를 통해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갖고 부모와 교사들이 더욱 열심을 내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모와 교사의 모델입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가르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렇게까지 표현합니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cf. 시126:5~6) 여인이 육신의 자식을 잉태하고 해산할 때 오랜 시간 얼마나 수고하고 애씁니까? 그와 같이 한 영혼이 구원받고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이 되기까지 최선을 다해 수고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해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선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신앙교육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우리 교회가, 부모와 교사들이, 어른들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가르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호수아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다시 한 번 신앙교육의 부흥을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디 자자손손 하나님 안에서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