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헤픈 사랑 (눅 15:11~24)
홍문수 목사

우리 말 가운데 ‘헤프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뉘앙스가 별로 좋지 않은 말입니다. 아끼지 아니하고 함부로 쓰는 것을 묘사하는 형용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뜻밖에도 하나님도 헤프시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잘못이란 뜻은 아닙니다. 사랑에 관해서 정말 헤프실 뿐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낭비는 낭비인데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구별해서 불러야 마땅한데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거룩한 낭비’라고 불러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본문은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탕자의 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탕자의 비유보다 ‘사랑이 많은 아버지의 비유’라고 해야 보다 정확합니다.

흥미로운 게 있습니다. 탕자를 영어성경에서는 뭐라고 번역했나요? ‘the prodigal son’입니다. ‘prodigal’은 ‘헤프다’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탕자는 아주 부정적인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한자로 보면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는데, 탕자는 방탕할 ‘탕’(蕩) 자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탕자는 주색잡기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말 성경이 실감나게 잘 번역한 겁니다. 이에 비해 영어성경은 ‘the prodigal son’이라고 좀 부드럽게 번역했습니다. ‘헤픈 아들’ 정도입니다. 물론 이 경우는 나쁜 뉘앙스이기는 합니다. 하나님은 헤프다고 표현해도 나쁜 뜻은 아니고 그저 지나치다는 점을 표현한 겁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the prodigal God’이라고 하면 될까요? 실제로 하나님을 그렇게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뉴욕 리디머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설립자인 팀 켈러(Timothy J. Keller) 목사입니다. 그의 책 제목이 바로「The Prodigal God」입니다. 2008년에 나온 책으로 누가복음 15장을 강해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당시 외국여행 중에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중 흥미로운 제목을 보고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탕자도 헤프고 아버지도 헤프고 마찬가지니까 그럴 듯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차이라면 탕자는 나쁜 쪽으로 헤프고, 아버지는 좋은 쪽으로 헤프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3년 전 우리말로 번역됐습니다. 좋은 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겠다 싶어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번역서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유감입니다.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이렇게 되어 있는 겁니다. 역자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니까 ‘탕부’다! ‘탕’ 자 돌림이라 부르기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는 탕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데 헤프실 뿐입니다. 사랑이 너무 많으심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헤프다는 말을 쓰게 된 것도 죄송한데 탕부라는 말은 좀 그렇습니다. 마침 위키백과에 팀 켈러 목사님을 소개한 내용이 있어서 보니까, 이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마르지 않는 사랑’이라 번역해놓았더군요. 훨씬 낫기는 한데 맛이 안 나서 흡족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민해 보다가 ‘헤프쟁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요즘 잘 쓰지는 않지만 우리 고유어입니다. 사전에 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헤픈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버지를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겁니다. ‘헤프쟁이 아버지’(the prodigal Father) 혹은 ‘헤프쟁이 하나님’(the prodigal God)! 여러분, 어떤가요? 그럴듯합니까? 어쨌든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하나님의 헤픈 사랑’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우리 인간들을 가리킵니다. 한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졸라 유산을 미리 타냅니다. 유산을 가불한 셈인데 기가 막힙니다. 그는 좋아라하며 가출합니다. 아주 멀리 가서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리라, 출세도 하리라, 인생을 인조이하리라, … 이런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죠? 눅15:13~14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그의 계획이 다 틀어집니다. 재산을 탕진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흉년을 만나 고통을 당합니다. 호구지책으로 돼지를 치는 인부가 됩니다. 노임도 못 받고 나중에는 돼지 먹는 쥐엄열매조차 얻어먹지 못합니다. 눅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그제야 아버지 집을 그리워합니다. 제 정신이 든 겁니다.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he came to his senses-NIV) … ” 둘째 아들 탕자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달았고 아버지 집에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이제 품꾼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자식은 없는 셈치고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아마도 탕자가 가출하자마자 그때부터 동네 밖으로 나가 아들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멀리 지평선에 가물가물 보이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서 입을 맞추고 야단입니다. 말씀을 잘 보면 탕자가 아직 자기 입으로 사과하기 전입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이미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는 그 한 가지만 보고 회개로 인정해 줍니다. 그리고 용서합니다.

[1] 아버지의 헤픈 사랑 : 하나님의 헤픈 사랑에 대한 표상(symbol)

그 아버지는 ‘헤픈 사랑’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모습은 바로 놀라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표상입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눅15:22~23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Quick! Bring the best robe-NIV)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the fattened calf-NIV)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돌아온 탕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고, 신발도 신깁니다. 아들의 신분을 완전히 회복시켜 준 겁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입니다. 영어성경 보면 ‘Quick!’ 이 단어가 들어 있었습니다. 종들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가 원문 상으로는 그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입니다. “그 송아지 있잖아, 그 놈을 잡아와라!” 이런 뜻입니다. 제일 토실토실한 송아지를 보면서 매일 “우리 아들 돌아오면 저 놈을 잡아 먹여야지”라며 점찍어 두었던 ‘그 송아지’입니다. 욕을 해서 쫓아버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그를 받아주고 심지어 과분한 사랑을 베풉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사랑!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그 아버지가 기뻐하며 말합니다. 눅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자식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그게 바로 죽은 겁니다. 육신은 멀쩡히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영적인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몰러진 상태이죠. 그러면 만족이 없습니다. 평안도 없습니다. 겉으로 잠시 잘되는 것 같은데 결국은 망합니다. 성공한 것 같아도 허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탕자 같은 인생들의 정답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이 세상에서도 만족하고 평안하고 기쁩니다. 어떤 인생고에서도 승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randt van Rijn)가 그린 그림 중에「돌아온 탕자」(1669)가 있습니다. 그는 돌아온 탕자가 좋은 옷 입고 가락지 끼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누추한 모습으로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긴 ‘바로 그 모습’을 그렸습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입니다. 그림을 잘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로서는 아버지 품 그 자체가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직 죄가 많고 누추할지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받아주시고 안아주십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사랑입니다. 롬5:8에서 바울은 그 사랑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그 사랑이 있기에 인생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이 얼마나 헤픕니까! 그런 사랑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다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결국은 승리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헤픈 사랑을 꼭 믿으시고 그 사랑 때문에 구원의 감격 속에 기뻐하시고, 어떤 고난이 닥쳐도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2] 돌아온 아들의 헤픈 사랑 : 그리스도인의 헤픈 사랑에 대한 표상(symbol)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궁금한 마음이 있습니다. 탕자가 돌아온 후에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 이랬을 겁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이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았습니다. 아마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절대 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할 겁니다. 어쩌면 그 아들도 헤픈 사랑을 배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게 맞는다면 돌아온 탕자의 헤픈 사랑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가질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좀 아쉽습니다. 탕자 후편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탕자 후편을 상상해 보면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의 모습이 눈이 선합니다. 서로 얼마나 좋아할까! 그 아들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며 섬길까요? 아버지의 일은 얼마나 열심히 충성스럽게 감당할까요?

본문을 보면 탕자 후편 대신 맏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밭일을 하다가 귀가하는데 집에서 풍악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랍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종에게 물으니 둘째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기뻐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다는 겁니다. 그때 맏아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눅15: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So his father went out and pleaded with him-NIV)” 그는 화를 냅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작은 가출을 한 셈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가서 권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권한다고 번역했지만 영어성경에서는 ‘plead’라고 번역했습니다. 애걸했다는 말입니다. 아니,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러시나요? 아버지가 자신의 것으로 자기 아들이 돌아왔다고 잔치하는 것인데 맏아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따지고 보면 자신도 아버지 집에 붙여 살고, 일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 밭에서 일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뭐라고 항의하죠? 눅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this son of yours-NIV)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실컷 일하는 나에게는 염소새끼도 잡아주지 않더니 탕진한 저 놈에겐 살진 송아지 잡아주다니 말이 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맏아들의 말이 거의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럴 만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암시합니다. 맏아들 역시 탕자라고. 구분하면 ‘돌아온 탕자’와 ‘집안의 탕자’입니다. 줄이면 ‘돌탕’과 ‘집탕’입니다. 속된 말로 그 놈이 그 놈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맏아들도 사실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을 한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은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그 은혜를 안다면 즐겁게 일해야 되는데 그의 말 속에는 투정이 들어있습니다. 돌아온 탕자와 비교하면 맏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진짜 탕자일지도 모릅니다. 탕자는 이제 회개했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압니다. 맏아들은 겉으로 보면 착실한 것 같지만 그 마음은 아버지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그 역시 회개해야 합니다. 공간적으로는 아버지 집안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가출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눅18:10~14을 보면 ‘세리의 바리새인의 기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리는 그 당시 로마제국에 빌붙어 동족 유대인에게 과세하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친일파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과오를 부끄러워하며 회개합니다. 통회하며 기도합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알고 착실한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인지 자랑인지 모를 야릇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 중에 회개한 세리가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탕자가 잘 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회개한 것은 가상합니다. 맏아들이 다 잘한 것 같지만 회개하지 않은 게 큰 잘못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기에 동생에 대한 사랑도 없었습니다. 돌아온 탕자는 이제 아버지도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신의 과거 모습처럼 못난 사람조차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처럼 헤픈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인물들이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온 후 헤픈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섬깁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딤전1:13~14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흉악한 죄인이었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한 하나님의 그 헤픈 사랑을 경험했기에 자신도 힘껏 헌신한다는 겁니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For Christ’s love compels us-NIV)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십자가 그 사랑이 헤픈 사랑이요, 그러기에 그 사랑에 이끌리어 자신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헤픈 사랑은 먼저 용서로 나타납니다. 주기도문 가운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처럼 용서하며 살라는 겁니다. 그게 어려우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헤픈 사랑을 묵상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세족 사건이 나옵니다.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데 유대인의 관습으로 보면 파격 중의 파격입니다. 제자들이 질겁하고 거절했지만 예수님은 기어코 발을 씻어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인간들의 조건적인 사랑과 다르게 예수님처럼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게 아버지의 헤픈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자격 없는 자들에게, 심지어 흉악한 자들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아니, 작은 손해도 보기 싫어하는 우리의 본성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을 알면 가능해집니다. WEC국제선교회 설립자인 C. T. 스터드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해 드리는 나의 어떤 희생도 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헤픈 사랑을 해 주셨다면 우리가 좀 헤픈 사랑을 한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이겁니다. 실제로 C. T. 스터드는 53세에 “식인종들도 선교사를 기다린다”는 포스터를 보고 쇠약한 몸이었지만 아프리카 콩고로 떠납니다. 그로부터 18년 복음을 전하다 그곳에서 소천합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7천여 명의 아프리카인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헤픈 사랑이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 존 헤론(John W. Heron, 1856~1890)의 이야기입니다. 입국으로 보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최초지만 파송으로 보면 존 헤론이 최초입니다. 그는 테네시 의과대학 역사상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면서 교수직을 제의 받았고 결혼할 자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선교에 헌신합니다. 선교잡지에 실린 이수정(마가복음 번역자)의 글을 조선 선교사로 가려고 결단합니다. 다행히 사귀는 자매도 헌신해서 함께 조선으로 옵니다. 미국 장로교 최초의 조선 선교사가 된 겁니다. 먼저 출발했지만 일본에 가서 이수정을 만나 조선어와 조선 문화를 익히고 가느라 언더우드 일행보다 2개월 뒤에 입국합니다. 그는 의료선교사로 제중원에서 사역했고 고종 황제의 주치의로도 일했습니다. 안타깝게 그가 과로로 병사했는데 조정에서 양화진을 묘지로 내줍니다. 그게 바로 양화진 선교사 묘지의 시작입니다. 그의 묘비명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존 헤론 역시 헤픈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헤픈 사랑의 릴레이가 바로 기독교 역사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1911~1995)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는 돈을 벌려고 병원을 하는 건지 돈을 버리려고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부음 기사는 쓴 기자는 그를 가리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자신은 당뇨병에 시달리면서도 무의촌을 찾았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치료비를 대주며,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병원에서 몰래 도망가라고 문을 열어주었던 의사, 집 한 채 없이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에 두고 온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며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으나 이산가족 상봉의 특혜는 거절한 분이었습니다.” 춘원이 그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를 가까이 지켜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성자가 아니면 바보야!” 그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바보 소리를 들으면 성공한 거지!” 그는 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분들이 너무 커보여서 너무 쉽게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마음먹고 하자면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최고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선교회보에서 이런 간증을 읽었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이주민 선교하는 분들이 많은데 대전에 사는 성도의 간증입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무슬림 방글라데시 출신 형제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사역을 합니다. 친해져서 개인 면회도 하고 가끔 영치금도 넣어줍니다. 처음에는 겁나고 서먹했지만 상당히 친해졌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인니다.” 이제 그 형제는 성경쓰기반에 들어가 성경을 열심히 쓸 정도가 됐습니다. 그 성도는 무슬림 선교사 한 명 배출하는 비전을 갖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한인 선교사가 무슬림 나라에 가면 여러 해가 지나도 열매를 맺기 어려운데 한국에 온 무슬림에게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니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먼 나라에서 온 사람, 무슬림인 사람, 한국에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이 얼마나 낯설고 두렵겠습니까! 그런 사람까지 사랑해야 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바로 헤픈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변화의 역사를 이룹니다.

사실은 가정에서부터 헤픈 사랑이 필요합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가족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고받는(give & take) 수준의 조건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화를 냅니다. 예를 들어 부모 자식 사이에 이럴 수 있습니다. 말 잘 듣고 공부 잘해서 명문대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 잡으면 좋아하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고 비난하고 거부하면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잘 하는 자식은 부모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도 칭찬하고 좋아합니다. 그런 수준이 아니라 당장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고 미흡해 보여도 끝까지 사랑하고 기도하며 기다려 주는 게 진짜 사랑입니다.

워싱턴의 한인 목사님의 이야기를 교계 신문 칼럼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 미국에 조기유학 갔는데 잘못 돼서 히피족으로 살았습니다. 부모의 속이 얼마나 썩였을까요? 특히 그의 아버지는 장성 출신인데 속이 얼마나 터졌을 것이며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하지만 그 아버지는 아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크게 될 놈이야. 아버지는 너를 믿는다.” 어떻게 보면 꼭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사랑이 아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아버지의 헤픈 사랑 때문에 자신이 변화됐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깝게는 가족들에게, 멀게는 낯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헤픈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정이 변화되고, 내가 있는 곳이 변화되고, 더 나아가 세상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사순절에 하나님의 헤픈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이제는 헤픈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