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레위기(4)/제사/소제

제목: 오대제사(2)-소제

성경: 레 2:1-16

 

구약의 5대 제사 가운데 유일하게 곡식으로 드려지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이 제사는 단독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었으나(레 6:14, 민 5:15), 보통은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레 7:12-14). 소제는 고운 가루로 바치는 제사로 향기로운 냄새가 그 목적입니다. 빵을 구울 때 냄새가 나듯이, 고운 가루에 기름을 넣어 유향과 함께 불사르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소제는 눈에 보이는 피는 없지만 개인 소유의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제가 생명 헌신이라면 소제는 재산의 헌신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 생명을 주께 바칩니다’라는 고백만 듣고 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다면 생명보다 못한 재산도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생명을 거룩하게 하오리다’라고 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네 생명과 아울러서 네가 소유한 재산도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㰡•(ה㰕—㰘㰗¬)입니다. 이 말은 넓은 의미에서 희생제물까지 다 포함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창 4:3-4; 삼상 2:17; 26:19). 일반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이나 우호의 표시로 바치는 조공이나 선물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삿 3:15; 삼상 8:6; 창 32:19; 43:11). 성경에서 일찍이 가인의 제사나 멜기세덱의 이야기(창 14:18)를 통해서 소제의 오랜 전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땅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감사하는 표현입니다. 번제가 예배(헌신)에 강조점이 있다면 소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사람끼리도 좋은 교제를 나누려면 어떻게 합니까? 맛있는 식사를 나누면서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사람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도 함께 식탁을 나누듯이 하나님과 교제의 식탁을 나누는 것이 바로 소제입니다.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이 소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드릴 수 있는 제사입니다. 남들처럼 소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루로 드리는 제사를 못 드릴 백성이 있겠습니까? 특히 소제는 피를 흘린 다른 제물 위에서 불사르도록 되어 있습니다(레 5:11,12). 그렇게 함으로써 피 흘린 다른 제물과 같게 하셨습니다. 평민들 중에는 양도 없고, 비둘기조차도 드릴 수 없는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위해 고운 가루 한 줌을 피 흐르는 남의 제물 위에 곁들여서라도 제사하게 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제물이 없어 나오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피 없는 제사는 없습니다.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1.소제는 어느 때 드려졌습니까?

①상번제를 드릴 때-상번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이 일은 제사장들이 행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직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것을 중지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흠없는 수 양 둘을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렸습니다. 그리고 ‘소제’도 함께 드린 것입니다(민 28:3-8).

②절기 때 드리는 제사 드릴 때-역시 소제를 드리게 했습니다(레 23:12-13, 민 28:9-10).

③온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했을 때-이를 대속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릴 때에 같이 소제를 드렸습니다(민 15:24).

④나실인이 서원 기간이 끝났을 때-번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를 드렸습니다(민 6:14-17).

⑤감사제를 드릴 때(레 7:11-14).

⑥제사장 임직식 때(레 8:26-28).

⑦의심의 소제(민 5:15)

민 5:15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2.소제는 어떻게 드렸을까요?

①굽지 않는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2:1-3)

소제는 꼭 ‘고운 가루’로 드려야 합니다. 체를 쉽게 빠져나간 보통 밀가루를 「케마흐㰡•라고 하고 고운 밀가루를 「쏘레트㰡•라고 부릅니다. 고운 가루는 맷돌로 일차 간 것을 굵은 체로 치고, 그것을 다시 세밀한 맷돌에 넣고 다시 간 다음 체로 쳐낸 가루를 말합니다. 지금은 밀가루를 사먹지만 옛날에는 농사를 지어 밀가루를 빻았습니다. 단 번에 고운 가루가 탄생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거칠거칠한 것인데 나중에 여러 번 빻고 가는 체로 치면 고운 가루가 나옵니다. ‘고운’이라는 말은 ‘흔들다’라는 뜻입니다. 고운 가루를 만들려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고운 가루는 거친 것이 하나도 없으신 순결하고 깨끗하고 죄없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운 가루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부셔져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는 깨어져야 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밀이 알갱이로 있으면 안됩니다. 부셔져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고운 가루처럼 죄악의 속성을 완전히 부수고, 말씀의 체를 통하여 걸러내야 합니다. 덩어리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져져서 거친 것이 없어야 합니다. 부드러워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온유한 성품을 상징합니다. 주님과 교제를 나누려는 사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온유는 생래적인 기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만드신 것입니다. 자연인에게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결코 온유해질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고운 가루가 되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고운 가루가 되게 하십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고난을 받은 후에 정금같이, 고운 가루같이 나올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정금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제련을 통하여 정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존 밀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40세에 맹인이 되었고 아내 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이런 고통을 통해서 내가 창조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②구운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2:4-10)

㰊± 화덕에 구운 것으로

레 2: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㰊² 번철에 구운 것으로

레 2:5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레 2:6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㰊³ 솥에 삶은 것으로

레 2:7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③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드리는 소제(2:14)

레 2: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민하’는 땅의 첫 열매로 드리는 곡식 예물입니다. 물론 매년 첫 소산은 여호와께 바쳐야 했습니다. 여호와는 바로 땅의 주인이기 때문이요, 백성들은 그 주인의 소작이기 때문입니다.

레 23: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레 23: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3.소제에 첨가될 것과 첨가 시켜서는 안될 것?

①소제에 첨가할 것

소제물에는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레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가 소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소제에는 유향이 추가되었습니다. 유향은 감람과에 속하는 유향나무에서 짜낸 고급 향료를 가리킵니다. 동방박사 가운데 한 사람이 주님께 드린 예물이 바로 유향이었습니다. 이것을 첨가하는 것은 제물이 향기를 풍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향기롭게 드려져야 합니다. 유향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계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시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또한 소제에는 소금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소금은 고대에서는 불로 “파괴할 수 없는”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소금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다는 영원한 언약(민 18:19, 대하 13:5)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언약은 변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이 소금을 먹는 다는 것은 우정을 간직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스 4:14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왕의 수치 당함을 참아 보지 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소금은 화목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욥 6: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음식도 간이 맞아야 맛이 있습니다.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십니까? 성령 안에서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교제합시다. 언제나 변함없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교제하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②소제에 첨가해서는 안될 것

레 2:11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소제에서 금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누룩과 꿀입니다. 누룩은 발효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누룩은 죄의 전염성과 부패를 상징합니다. 순전하고 진실한 삶은 누룩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소제에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은 성도의 삶에서 죄를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소량의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작은 죄악도 우리로 하여금 지옥의 밑바닥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 바위나 작은 모래나 강바닥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죄와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경고하셨습니다.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이것은 저들의 외식적인 삶과 가르침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무익한 것,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소제에 첨가할 수 없는 또 하나는 꿀입니다. 성경에서 꿀은 쾌락을 상징합니다.

잠 5: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세상이 주는 쾌락은 잠시 잠깐은 꿀맛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매우 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절제한 쾌락은 사람을 패가망신시킵니다. 만일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에 말려들어 죄악을 범하였다면 그가 애굽의 제 이 인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마귀는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님께 까지 찾아와서 십자가 없는 달콤한 영광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없는 영광은 결코 생각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마귀의 시험을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으신 것입니다.

순간의 즐거움 때문에 영원을 포기하지 맙시다. 성도들의 삶은 세상이 주는 달콤함, 마귀가 유혹한 죄의 달콤함을 이겨내는 삶인 것입니다.

4.제사장의 몫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소제를 드리고 남은 것의 처리입니다.

레 2: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2: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당시에 제사장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할 처지가 안 되었습니다. 레위기에 규정된 그 많은 제사들을 주도하는 제사장들이 별도로 생계에 대책이 있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소제물의 남은 것을 제사장들에게 주게 한 것은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특히 이 남은 소제물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셔서 거룩히 구별된 아론과 제사장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하고 계시다면 드리는 자도 이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제사 드리고 아론한테 가는 것이 싫어서 태울 만큼만 딱 가지고 온다든지, 아론은 다 태우면 남을 게 없을 것 같으니까 자기 것을 미리 떼어서 남겨 놓고 조금만 태운다든지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가져오는 사람은 조금 풍성하게 가져와야 할 것이며, 아론은 자기 몫을 미리 계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풍성한 마음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주의 일꾼들에 똑 같은 개념이 적용됩니다.

고전 9: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성도들이 목회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를 배려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고, 성도들의 귀한 재물로 바쳐진 헌금을 하나님의 귀한 일에 아름답게 쓰이도록 애쓰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소제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자기 백성들과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아침저녁으로 소제를 드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듯이 날마다 주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