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의 십자가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슬픈 제주 그래서 십자가 사랑이 필요한 땅

사랑을 잃어버린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요?

말씀을 시작하며 또 하나의 ‘웃픈’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입니다.

은퇴하신 원로 목회자 부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께서 유독 아내를 부를 때마다 “자기야!”, “달링!”, “허니!”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니 다른 목사님들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결국, 참다못한 친구 목사님이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아무개 목사, 당신 왜 그래? 닭살 돋게 말이야!”

그러자 그 목사님이 머뭇거리며 작은 소리로 답했습니다.

“사실은 말이야. 작년부터 마누라 이름이 전혀 기억이 안 나.”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모양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일, 참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하는 십자가 중의 하나가 참된 사랑의 십자가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길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와 자기 부인은 고통이나 억압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십자가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몇 개의 십자가를 지며 사순절을 지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는 사순절 절기에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부활의 기쁨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순절 동안 중요한 주제는 ‘다시 찾은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혹시 잊고 있었다면 다시 그 십자가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사랑, 순종, 헌신, 사명, 희생, 화해의 십자가 즉, 6개의 십자가를 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가야 할 제자의 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려는 첫 번째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가 져야 할 사랑의 십자가도 보이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십자가는 참 슬픈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가장 귀한 아들 독생자를 대신 내주신 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참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사랑에는 늘 누군가의 희생과 대가가 따르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수난주간에 교인들과 함께 제주 땅을 밟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버려진 곳, 모든 사람이 가고 싶지 않았던 이 땅에도 하나님은 먼저 오셔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주 땅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셨던 땅이고, ‘누구든지’ 제외하지 않으셨던 하나님 사랑의 흔적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주는 참 아름다운 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하고, 유네스코가 지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섬입니다. 무비자 방문을 허용한 이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이 한 해 1,500만이 찾는 여행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옛 문헌은 "육지 사람들은 제주에 오는 것을 마치 죽을 곳에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하여 모두 피하고, 섬사람들은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육지에 나가기를 마치 천당에 가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제주는 조선왕조 5백 년간 삼백여 명이 귀양살이를 한 한 맺힌 유배지이기도 했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을 위시하여 김정희, 김춘택, 김윤식, 송시열, 박영효, 이승훈 같은 역사 속의 두드러진 인물들이 이곳에서 형극의 세월을 보냈다. (목회와 신학 ‘한국 교회의 첫 선교지 제주’ 전광규 목사)

제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통해서입니다. 하멜은 1653년인 23세 때 네덜란드 상선 스페웰 호를 타고 중국과 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 제주에 상륙하게 됩니다. 64명의 선원 중 28명이 죽고 36명이 간신히 살아났지만, 불법 입국한 죄로 한양에 압송되어 심문을 받은 후, 훈련도감 밑에 편입되어 14년간 군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제주에 기독교가 직·간접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복음의 씨가 처음으로 뿌려진 때가 이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증거로 제주에 표류했던 하멜 일행이 크리스천이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겠죠. 자료를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들의 본국인 네덜란드가 기독교 국가요, 특히 장로교가 가장 성행한 나라이니 그들 중 상당수가 장로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들이 탔던 스페웰 호가 파선되었던 당시 선장 에흐베르쓰가 한 말에 “하나님의 자비에 의뢰하노라” 했다는 사실과 한국 관원들이 그들을 심문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효종실록」에 보면 왜어를 아는 자로 하여금 물어보기를 “너희는 서양 길리시단(吉利是段:Chistian, 일본에서는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부르고 썼다)이냐?” 물으니, 선원들이 일제히 “야야(耶耶:아,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연경제전집」에도 그들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주도가 유독 슬픈 것은 그 작은 섬에 피의 역사가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1901년 제주에는 ‘이재수의 난’ (신축교난)이 있었는데, 정부의 조세 수탈과 천주교의 교세 확장에 따른 폐단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1886년 한불 수호조약 이후에 선교의 자유를 얻고 공세적으로 선교에 임한 프랑스 신부는 영사재판권과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개종한 조선 사람들 역시 권력에 편승하여 신앙과 무관한 개종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지방관보다 권한이 더 큰 세금 징수관(봉세관)을 파견하였는데 이 제도는 지방 기득권자들의 이권을 침해해 양자 간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결국, 지방과 중앙정부의 충돌은 백성들에게 이중 수탈을 겪도록 했는데, 당시 천주교인들이 세금 징수관과 결탁하여 민중의 불만을 사게 됩니다.

그러자 천주교도들은 제주 한림에 진출했던 불만 세력들을 습격하고 총질까지 자행하여 주민을 살상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 관노 출신의 이재수를 중심으로 한 민중이 제주성에 입성합니다. 이재수는 관덕정 광장에서 문제의 천주교도들을 처형합니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6월에 프랑스 군함이 들어와 대한제국 군대와 함께 민란이 진압하고 이재수를 처형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제주에서 일어난 이재수의 난은 힘을 가진 종교가 얼마나 무섭게 변질될 수 있는지, 그리고 십자가 없는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와 연관되어 제주 땅에 흘린 슬픈 역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제주의 아픈 역사는 4.3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복 후 제주는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미곡 정책의 실패, 일제 경찰의 군정 경찰로의 변신, 군정 관리들의 모리 행위 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1947년 3월 1일에는 3.1절 기념행사를 관람하던 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발사하여 민간이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으로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고,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가 참여하는 대규모 민. 관 총파업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미군정은 발단이 된 경찰의 발포보다는 민로당 선동에 비중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강공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를 외지인으로 교체하면서 파업 주모자에 대한 검거작전이 시작됩니다. 한 달 만에 500여 명이 체포되고 1년 동안 2천500명이 구금되기에 이르게 됩니다. 1948년 3월 일선 경찰지서에서 세 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제주 사회는 폭발 일보직전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총성과 함께 한라산 중허리의 오름마다 봉화가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오르게 됩니다. 350명의 무장대는 이날 새벽 12개의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합니다.

이 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협상을 시도했지만 결렬되었고, 그해 5월 10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치러지게 됩니다. 하지만 제주는 어수선한 사회상황에서 투표수가 과반에 미달되는 유일한 지역이 되고, 결과적으로 5.10 선거를 거부한 지역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자 이승만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전하는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해 10월 17일 정부는 제9연대장으로 송요찬 소령을 임명하고, 해안선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모든 이를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중산간 지대는 초토화되는 참상을 겪게 되고,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간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합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해안마을에 소개된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를 들어 살해하게 됩니다. 그러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입산하는 피난민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고,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초토화됩니다.

1949년 3월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신임 사령관은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겠다는 사면 정책을 발표합니다. 이때 많은 주민이 하산했고, 1949년 5월 10일 재선거가 성공리에 치러지고, 6월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가 사살됨으로써 무장대는 궤멸되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발발한 6.25로 인해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4.3 사건과 연류 된 사람들이 붙잡혀 집단으로 희생되고,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관련자들이 모두 즉결 처분됩니다. 1954년 9월 21일이 되어서야 한라산 전 지역이 개방되어 7년 7개월을 끌었던 제주 4.3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아직 남아 제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슬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4.3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1980년대 이후부터 각계각층에서 노력하여 2000년 1월에 이르러 4.3 특별법이 공포되고 정부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 2003년 10월 희생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사과하였고 4.3 평화 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정부의 진상 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건의 피해는 25,000에서 3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강제진압으로 불타 없어진 마을의 가옥이 39,285동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연이 아름다워서 더욱 슬픈 땅 제주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땅, 그 땅에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고 전파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고난주간 만나교회 순례단이 제주 땅을 밟으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실 때, 푸르른 땅, 슬퍼서 더 퍼런 이 땅을 가슴에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는 듯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땅에 그리고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사랑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수년 전, 우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신 임은미 선교사님의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임 선교사는 미국에서 잘 나가던 2세 사역자였습니다. 이중 언어를 구사하며 목회자로서의 큰 꿈을 품고 있던 때,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땅 케냐에 도착해서 자신을 일을 도와주던 선교 센터 경비원에게 책을 빌려주며 임 선교사는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을 믿게 된 그 경비원이 선교사님에게 이렇게 묻더랍니다.

“선교사님! 왜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곳에 보내셨는지 아시나요?”

질문이 당황스러워 대답하지 못하는 임 선교사를 보면서 경비원이 대답합니다.

“저 때문에 선교사님을 보내셨습니다. 저를 구원하시려고요.”

그런데 임은미 선교사님은 그 대답에 대하여 긍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까지 왔을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당신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여기에 보내셨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 와중에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역지를 돌아보던 중 마사이족이 사는 어떤 마을을 방문해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에게는 이런 수칙이 있습니다.

“대접하는 모든 음식은 열심히 맛있게 먹는다!”

선교사 수칙에 따라 임 선교사는 정말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심지어 더 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돌아오는 길, 비포장도로로 수 시간 차를 타고 오면서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순복음교회에서 자라나 열정적 신앙이 있던 선교사님은 기도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응급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맹장이 기도하고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죠.

수술을 마치고 병원을 나올 때, 의사는 안심하며 집에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수술한 부위가 감염될 확률은 5%밖에 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역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와야 했고. 집에 돌아오자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감염될 확률이 5%밖에 되지 않으니 참았답니다.

그래도 명색이 선교산데 재수 없이 확률 5%에 걸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자신이 재수 없는 5%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고,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실밥을 풀고 고름을 짜야 하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와 누워있으면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저 누워 있으려고 아프리카에 온 게 아닌데요.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풍성한 열매도 맺고 싶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이런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은미야! 선교는 내가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저를 불러주셨습니까?”“나는 너에게 사역의 열매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삶의 열매를 원한다.”

그제야 아프리카에 이사와 처음으로 만난 그 경비원이 ‘자신을 위해’ 선교사님을 보내주셨다는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나의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얻기 위해 온 것이구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사순절에 우리가 바라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사랑입니다.

어떤 열매가 아니라,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에서 그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묵상하고 그 사랑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뭔가 거창한 일을 꿈꾸며, 뭔가를 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나의 계획과 나의 욕심일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의 욕심과 너의 생각, 그리고 너의 계획을 한 번 내려놓을 수 없겠니? 그리고 단지 내가 너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없겠니?”

사순절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죄를 회개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죄를 바라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슴에 들어옵니다. 사순절의 사랑이 놀라운 것은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셨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는 “so much”라고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는 그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순절의 사랑은 우리를 확증하시는 사랑이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를 생각해 보세요.

사순절의 사랑은 바로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먼저 찾아와 우리를 향해 손 내밀어 주신 그 사랑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나는 사순절은 바로 그 사랑을 확증하는 절기요, 시간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제주 땅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것인데, ‘이렇게 우상이 많고 많은 피를 흘린 이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죠. 우리 팀들이 제주 땅을 밟으며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보며, 외롭고 고통스럽게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을 보며, 여전히 그 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쓰러진 나의 삶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 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 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아마도 우리의 영적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다면 ‘돌 같은 내 마음’이 아닐까요?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을 살다 보니, 각박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 마음이 굳어져서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말 같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한, 이제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참으로 힘들어 보입니다. 내가 너무 굳어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런 세상 가운데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I love you so much!”

우리가 잠시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보았는데, 그렇게 상처가 나고 딱지가 생겨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람들의 땅이기에 그 사랑이 더욱 절실한 것은 아닐까요?

이 말씀이 오늘 우리 개인 개인에게 더욱 그렇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 사랑이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혹시 그런 기억이 있으세요? 아이들이 찰흙을 가지고 놀다가 곤란한 일을 당합니다. 오랫동안 공기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딱딱하게 굳어져 모양을 만들 수가 없지요. 그때 어른의 손으로 찰흙을 잘 만져 줍니다. 큰 손으로 반죽을 합니다. 그러면 그 찰흙이 다시 말랑말랑해지지요. 바로 그렇게 십자가의 사랑이 여러분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미녀와 야수]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오래전 디즈니에서 만화영화를 만들었던 것을 다시 지난해 영화로 만들었죠. 우리 청년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참 편안하고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happy ending’이었기 때문이죠. 요즘은 나이가 들면서 잔인한 영화를 보기가 참 힘들고, 또 주인공이 죽는 영화를 보면 오랫동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참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끝이 행복한 것이죠.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이미 행복한 마지막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미녀와 야수라는 영화로 돌아가 볼까요?

야수에게도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멋진 궁전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러나 어느 날 찾아온 저주로 말미암아 궁전은 어두워졌고 왕자는 비참한 야수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어둠 가운데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아름다운 소녀가 어두운 궁전을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하여 절망적인 상황이 희망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합니다. 무서운 야수의 외모를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으면 저주가 풀리지 않아 영영 그렇게 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야수의 모습을 사랑해 줄 미녀가 등장한 것이죠.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고 으르렁거리며 침을 흘리는 야수를 바라본 미녀가 있었습니다.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가 야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동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미녀가 야수에게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그녀가 야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야수를 사랑하게 된 것으로 인해 야수에게 덮쳤던 모든 저주가 한순간에 물러가게 되지요.

그런 생각을 해 보셨나요?

우리가 바로 그 무서운 야수라는 사실을, 아니 누구도 바라보기를 꺼려하는 추악한 모습의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았다 해도 누구도 탓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야수는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에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어진 축복을 마음껏 누리던 행복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덴에 저주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불순종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고 우리의 마음속에는 욕망의 저주로 인해 분노와 싸움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내면에는 아주 흉측한 야수의 얼굴이 숨어있게 된 것이지요.

혹시 우리는 그런 야수의 본능을 스스로 경험하며 놀랐던 기억이 없으신가요?

혹시 우리는 머릿속에서 은밀한 상상으로 죄를 짓고 있는 무서운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누군가 적나라하게 보고 있다면 그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때 얼마나 부끄러우리라는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수없이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살인과 분노, 계략과 속임의 무서운 얼굴들 말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그런 자신의 야수와 같은 모습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고민했지요.

로마서 7장 15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바로 여러분의 내면에서도 그런 고민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야수의 본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때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시던 때가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예수님을 성난 군중에게 내어주며, 자신은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는 빌라도의 비정한 모습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볼거리를 원했던 헤롯의 잔인함에서, 골고다로 향하는 순간마다 피를 원했던 군병들과 성난 군중의 모습, 그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며 잔인한 욕구를 채웠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모욕을 주며 즐겼습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있는 예수님을 외면하고 도망가기에 바빴던 제자들의 모습.

이 모든 이의 모습이 바로 야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비난한다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야수의 모습을 가지고 절망적인 삶을 살던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피가 강같이 흘러서 우리를 덮었습니다. 추악한 우리의 모습을 덮어버렸습니다. 마치 으르렁거리는 야수,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서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었던 야수를 사랑과 연민으로 덮었던 미녀의 입술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피가 야수와 같은 우리를 덮어버렸습니다.

이 십자가의 피는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어쩌면 기대할 수 없었던 선물이 되었습니다.

‘믿는 자마다’라는 말이 너무 쉽게 느껴지나요?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사랑의 십자가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받았던 그 십자가의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죠.

참 희한한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는 데, 너무 가깝고 쉬워서 찾지 못하거나 무시할 때가 참 많죠.

그래서 이런 말을 하죠. “가까운 데서 찾아!”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답을 구했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절을 보세요.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니고데모는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에게서 신앙이란 끊임없는 노력과 율법의 지킴이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많은 사람에게 그 부분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노력만을 가지고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대답이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본문을 우리가 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겠느냐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16절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광야의 뱀’은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는 동안 얼마나 불평을 하는지,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모세를 향해 얼마나 비난을 하는지, 이제는 만나도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며, 오히려 애굽의 옛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뱀을 보내 그들을 죽게 합니다.

이제 죽음 가운데서 이들은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길을 주셨습니다. 즉,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그것을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에게 드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그것 밖에요?’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좀 더 수고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나가서 뱀을 잡든지, 아주 신기한 약초를 바르든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무서운 불 뱀에게서 구원을 받기에는 그 방법이 너무 쉬워 보입니다.

이 간격이 어디에 존재하나요?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하셔서 가장 쉬운 방법을 주시지요. 물론 베푸는 쪽에서는 늘 손해요 희생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용서를 받는 쪽에서는 그것이 너무 쉬워서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단지 믿으면 되는 것이지. 왜냐하면 ‘십자가는 선물’이기 때문이란다. 선물은 너희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원해서 받게 된 것이기 때문이지.”

아마도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향해, “네가 하나님을 위해 더 수고하고 애쓰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네가 좀 더 노력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킨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면,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 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구원의 방법을 물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 중의 하나가 거듭나야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영적으로 대답을 하셨고, 니고데모는 육적으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건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이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수동적인 역할만을 합니다. 아기를 낳는 출산의 수고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입니다. 구원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고와 희생,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주 수동적인 일 한 가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뱀에 물렸을 때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 방법이 너무 쉬었다는 것입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기만 해라!”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우리를 위해 살과 피를 다 흘려주시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라!”

그 방법이 너무 쉽게 느껴지십니까?

분명한 것은 그 쉬운 십자가를 위해 한없는 아픔과 희생이 치러졌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유일한 선물 십자가!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소유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선물을 받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누구든지’라는 말이 얼마나 굉장한지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혹은 직장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거기에는 바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옷을 벗고 씻기도 전에 군침이 돌고 손이 갑니다. 그래서 그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내 혹은 엄마에게 묻습니다. “이거 먹어도 돼요?”

그런데 “아니, 그건 오늘 오실 손님을 위한 거야!” 혹은 “특별히 동생을 위한 거야!”라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실망스럽습니까?

우리가 좀 어려웠던 시절, 손님이 오셨을 때 그분이 음식을 먹고 돌아갈 때까지 가만히 숨어서 지켜보아야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님이 음식을 먹고 남겨야 우리 차지가 되었던 시절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서도 “누구든지 먹을 수 있어”라는 말이 그렇게 굉장한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어!”라고 놀라운 선포를 하지요.

십자가의 선물은 ‘누구든지’의 모든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선물로 만들어진 ‘누구든지’의 정책에는 그 어떤 누구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우리를 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 되기 위해 우리의 신분을 높이거나 옷을 깨끗이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정책’에는 어떤 누구도 특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선물로 주신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십자가의 선물은 ‘누구든지 정책’을 넘어서 ‘언제든지 정책’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상품권, 집을 청소하다가 발견한 상품권, 어디에 두었는지 잠시 잊었다 생각나서 집어 든 상품권. 얼마나 가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상품권을 보는 순간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제약들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서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꼭 갈 수 없는 날과 시간에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선물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유효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포도원 일꾼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비유이지요.

이 비유 역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나에게는 유효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좀 못마땅한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에게 품삯을 주는 주인이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똑같은 은혜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많이 일한 사람에게는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야기합니다. “주는 것은 내 마음이다!” 즉 선물을 베푸는 것은 받는 자들이 주도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정책의 핵심에는 누구에게든지 필요한 것은 주기를 원하는 주인의 마음이 들어있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순절에 묵상해야 하는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누구든지 정책’ ‘언제든지 정책’ 바로 그 정책이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참 신기한 것은 장대 위에 들린 구리 뱀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장 12절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바로 이 부분에서 많은 논란이 되고, 신앙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가 신앙을 가지는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됩니다.

이 시대는 관용의 시대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는 어떤 명확한 규범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개성을 존중하며 하고 싶은 모든 것이 허용되고, 지금까지의 원칙이 해체되어 버리는 시대입니다.

그런 이 시대에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얼마나 반감을 주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편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신앙의 본질은 우리 삶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한 타협할 수 없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하나님께로 가는 모든 방법을 열어 놓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잘 화합하고 서로 인정하자고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모든 전국의 사찰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저에게도 이 근처의 스님이 늘 축하 화분을 보냅니다.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나심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저도 석가모니의 탄생을 얼마든지 축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부분에서는 절대로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어디를 가든지 타 종교인들에게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잠재적 크리스천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관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위해서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대교에서도 역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불교도들은 해탈을 대망하죠, 수없이 많은 윤회의 과정을 통해 성불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즉, 해탈의 경지,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인본주의자들은 생명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은 손금을 보고, 관상을 보고, 태어난 일시를 보고 인생을 판단합니다. 힌두교도들은 하나님을 단수가 아닌 복수의 비인격체로 여깁니다.

이렇듯 모든 종교의 주장이 틀리죠.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이 그런 자신들의 방법을 가지고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기를 산에 올라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다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에게 “십자가 이외의 길은 없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던 장소가 모스크바였습니다. 바로 어제저녁에 이곳에 도착해서 시차 때문에 일찍 잠을 잤고, 일찍 일어나서 조용한 시간에 말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어제 KAL을 타고 도착했는데, 이곳에 오기 위해 아주 분명하게 선택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내가 원하는 항공사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아무 비행기나 타고 “모스크바로 갑시다!”라고 했다면 아주 엉뚱한 곳에 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 목적을 상실한 채 무척 당황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모스크바를 가야 하는데 어느 여행사에 전화했더니, 모스크바하고는 관계없이 저에게 아주 기내식이 좋은 비행기를 소개합니다.

“목사님, 그 비행기를 타면 음식이 끝내주고요, 간식도 많이 나옵니다. 그냥 타세요.”

“목사님, 그 비행기를 타면 서비스가 무척 좋습니다. 너무 친절하고요.”

그런데 이런 조건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시지요.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서 여러 항공사가 생기고, 많은 비행기가 발명되고, 서비스가 좋아져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비행기는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타지 않는다면 나의 수고와 시간 방향이 모두 틀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그분을 믿는 것이며, 그분이 우리를 향해 마련해 놓으신 가장 최선의 방법과 그분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십자가 그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에 다시 찾은 사랑의 십자가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이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한없는 사랑의 십자가, 누구든지 믿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