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신명기(82)/노래

제목 : 모세의 노래(3)

성경 : 신32:20-47

 


 지난 시간에 계속 이어지는 모세의 노래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가지 위험에 대한 경고 즉 물질주의 위험과 우상숭배의 위험에 대한 노래였습니다. 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였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인간의 죄 성이 지닌 세 가지 비극적인 측면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의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표현됨(20-33)


1)하나님의 자녀에게 사랑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입은 은혜를 모두 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1-2절). 따라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지도(3절), 순종하지도(5절), 영화롭게 하지도(6절), 인정하지도(10-14절)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미혹에서 벗어나 제 정신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취하신 조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20절 상)

자기 자녀들을 바로 잡기 위해 그런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분노를 발하실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9절). 하지만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얼굴을 숨기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은 그분의 백성에게 가장 큰 저주요 가장 큰 형벌입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때 하나님께서 자기 얼굴을 숨기십니까? 그들이 여호와를 떠나서 다른 것을 향할 때입니다.

여기서 배울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부유할 때, 배가 부를 때, 먹을 것이 풍성할 때, 돈이 많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차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길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편의를 따라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할 때 어떻게 축복하였습니까?

민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는 것은 커다란 저주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곤궁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녀들은 이전에 가졌던 사랑이 다시 불타기 위해서 자신의 빈곤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순종한다.

신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이런 슬픈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환경을 이용하사 반역하는 자녀들이 다시 그분께 돌아오도록 하실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그분의 얼굴을 숨김으로써 영적인 궁핍함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키실 것이고, 외적으로는 우리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갖가지 불행한 경험들을 이용하십니다.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내가···하리라”(I will)고 말씀하시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혹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제멋대로인 자녀들이 순결하고 충성된 믿음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로 결심하셨습니다(20-24절).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엄위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들이 불순종의 길을 가는 데 내버려 두는 부모가 있다면 진정한 부모가 아닙니다. 징계가 없다면 참 자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유일무이한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공급(기근, 22절), 보호(재앙, 23-24절), 그리고 평화(침략, 25절)를 거두어 가시므로 불순종한 백성들을 꾸짖으십니다.


3)하나님의 자녀들이 무감각하다.

우상숭배에 완전히 몰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랑과 충성이라는 기본적인 언약의 자질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신 32: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중에 지식이 없도다

별 능력도 없는 적군에게 정복당했을 때, 그들이 패배의 이유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이 수적으로 완전히 열세였다면 그들의 패배는 납득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로 이스라엘이 훨씬 더 유리한 숫자, 더 뛰어난 자원, 더 유리한 위치, 더 나은 전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왜 그들은 그러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에 ‘그들의 반석이시 그들을 팔았기’(30절) 때문에 전투에서 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팔지 아니하셨다면, 그리고 그들을 내어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한 사람이 천을,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할 수 있었을까요? 일당백이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일당 천, 이당 만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소돔의 포도나무’와 ‘고모라의 밭’이라는 정죄의 언급(32절)은 가나안의 신전에서 이루어졌던 성적 불경함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신 29: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분한으로 훼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말할 것이요

하나님은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풍요의 신들에게 충성을 바치면 포도 수확이 많아질 것이라고 헛되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포도원은 독 있는 열매를 낼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모든 형태의 자기 만족은 만족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인 포도주로서(33절) 궁극적으로 유해한 것입니다. 마귀의 축복들은 가면을 쓴 저주입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포도즙의 붉은 술(14절)을 ‘그 송이는 쓰게’(32절) 된 것과 바꾸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이렇듯 지독한 무관심과 불순종과 무감각한 불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무신한 자녀’(20절)를 회개와 용서와 소망의 자리로 데리고 오십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약속됨(34-43절)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이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십니다(직역: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신다)(36절).

 그들은 불순종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신실하사 “내가 그 인줄”(39절)이라는 위대한 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언약의 이름과 본성을 재 확인하십니다.

 그들은 무감각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신 지혜 안에서 주권적으로 행동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적군들은 교만하고 강하지만 ‘그들이 실족할 그 때’(35절)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간섭하여 구원하기에 적절한 순간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인생의 무질서한 사건처럼 보이는 일들의 배후에 지혜로운 섭리의 목적이 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34절)에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비는 영적 갱신이라는 네 가지 중요한 측면으로 나타납니다.

➀죄를 드러내심(34-38절)

➁구원을 약속하심(39-42절)

➂찬양을 불러일으키심(43절)

➃죄사함을 보장하심(43절)


1)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신다(34-38절).

죄 사함을 받으려면 먼저 그 죄를 밝혀내고, 정죄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진노하시지만 죄인을 향해서는 자비로우십니다. 범죄는 무시되거나 묵과되지 않지만, 범죄자는 분명히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진노와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상반되지 않고 상호 보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 32:3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더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능함, 즉 인간에게는 그것을 바로 잡을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 역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재판관(36절)으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36절), 치유자(39절), 승리자(40-42절)로서 그들 편에 서시는 때는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입니다.

우리 죄인들은 더 이상 의지할 것이 없고, 우리의 도덕적 무능함을 인식하고, 값비싼 희생을 초래한 불충함이라는 엄청난 잘못을 고백해야만 비로소 깨끗하게 되고, 용서를 받으며, 화목하게 되고, 구비될 수 있습니다. 은혜는 값싼 싸구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던 우상들이 우리가 정말로 곤궁에 처할 때 얼마나 무익한지를 깨닫도록 그것을 직시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2)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신다(39-42절).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하나님에 대해 ‘내가 ···· 이다’(I am)라는 칭호를 택한 것은 섬세하고도 의도적입니다. 이 이름은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과 출애굽의 구원 사건을 회상케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종된 공동체뿐 아니라 죄인된 개인을 향하신 여호와의 자비를 상기시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라는 말씀은 십계명에 나오는 언약의 확증을 생각나게 합니다.

신 5:7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오직 그분의 방식대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해방자, 죽이고 살리시며, 상하게 하시고 낫게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을 가지신 분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맹세를 할 때처럼 ‘자신의 손을 들고’ 우리 대적들을 정복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불러일으키신다(32:43상).

이 노래는 대중적인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에 걸맞게 모든 이스라엘인이 반응하도록 권하면서 찬양과 약속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신 32: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마무리 권고는 ‘허사’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 32:47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에 두고’ 주의 깊게 그 말씀에 순종하면(47절), 우리는 그 같이 비교할 수 없고(39절), 신뢰할 수 있는(40절), 권능의(41절) 하나님의 크신 업적들을 찬양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4)하나님은 죄 사함을 보장하신다(32:43절 하).

하나님은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 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속죄’라는 말은 희생 제사와 관련된 용어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반역자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쳤습니다(37-38절). 하지만 그 같은 금지된 제물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속죄’라는 말은 ‘덮어 가리움, 제거함, 보상’ 등을 의미합니다. 불만을 품은 자기 백성이 언약을 깨뜨리고 그 분께 큰 슬픔을 안겨 드렸지만, 여호와께서는 약속을 깨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들어 올린 손은 땅과 하늘을 향해 말씀하신 맹세의 신비성을 입증합니다.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40절) 그들의 죄 사함은 보장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연은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하나하나 모두 씻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죄들을 완벽하게 덮으실 것이므로, 그 죄가 이 땅에서 우리를 따라 다니지 않으며, 하늘에서도 결코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에서 인간의 죄를 드러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그 죄를 가리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드러냄은 죄를 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 노래는 인간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묘사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결론부의 각 연은 유일하시고(39절 상), 강력하시며(39절 중), 동정심이 많으시며(39절 하), 신실하시고(40절), 살아계시며(40절), 영원하시며(40절), 주권적이시며(43절), 자비로윈(43절)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합니다.


결국 이 노래를 지어 준 것은 요단을 건너가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날 위험이 있을 때 다시금 이 말씀으로 경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허사가 아니며 너희의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랑이 없을 때, 불순종할 때, 무감각할 때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찬양을 불러일으키십니다. 죄사함을 보장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