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따라 붙는 사람 (신 28:1~14)
홍문수 목사
19/01/13 주일낮예배(1902)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특히 새해가 되면 그런 소원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새해인사는 두말할 것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복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다고 자동으로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해에 품은 소원이 무색할 정도로 허망하게 한 해를 날려 보내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또 복을 갈망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스스로 속아서 산 인생으로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지 못할까요?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복의 근원을 몰라서, 또 하나는 복을 받는 방법을 몰라서입니다. 복이 어디서 오는지 그 근원을 모르면 이미 틀린 겁니다. 당연히 복을 받는 방법도 모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복을 받겠다며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서 이런 것들입니다. 많은 분들이 새해 해돋이를 보러 동해안으로 몰려갑니다. 새해 일출 보면 재수가 좋다나 뭐라나. 동해의 일출은 정말 장관이죠. 좋은 구경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떠오르는 해가 복을 주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고 운수가 좋다고 하면 복권을 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복권이 맞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저기 복(福) 자를 써 붙입니다. 중국인들은 복이 쏟아지라고 복(福) 자를 아예 거꾸로 붙여놓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게 헛된 일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복을 누가 줍니까? 우주만물의 창조주이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방법으로 복을 구해야 됩니다. 그게 아니고 엉뚱한 방법을 추구하면 다 헛수고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신명기 중에 핵심적인 말씀으로 흔히 ‘축복 장(章)’이라 부릅니다. 부디 그 비결을 잘 배워서 풍성한 복을 꼭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1] 복의 근원 :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
먼저 본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복의 근원임을 밝히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하늘의 보고 즉 보물창고에 복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말합니다. 신28:12(상)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 ” 이스라엘은 비가 적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비는 모든 복 중의 복입니다. 비가 안 오면 모든 게 끝장입니다. 농사도 안 되고 목축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 문을 연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축복해 주심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게 바로 신앙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그리고 개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모든 복의 근원이십니다.
성경 보면 곳곳에 이런 사실을 강조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중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상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을 절대주권자로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위해 예비하신 복이 얼마나 풍성한지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은 축복의 보고에 복을 잔뜩 쌓아두시고 어떻게 해서든 인생에게 그 복을 부어주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복을 내리시기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상호 관계 속에서 복을 주십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죠.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는 부화 과정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부화 시기가 되면 병아리가 알 속에서 작은 부리로 껍질을 콕콕 쫀다고 합니다. 바로 그 때 타이밍을 맞추어 어미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아 줍니다. 그때 비로소 껍질이 깨지고 병아리가 나옵니다. 병아리가 혼자 나올 수 없으므로 어미닭이 쪼아 줍니다. 그렇다고 어미닭이 모든 것을 다 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마치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분명히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만히 있는 가운데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행할 몫인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2] 복을 받는 비결 : 하나님과 신뢰 관계 유지 –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함으로
순종은 신앙의 자연스런 표현입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신뢰 관계가 유지됩니다. 본래 하나님과 인간은 좋은 관계였는데 아담 이후 범죄함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 관계 즉 불통 관계가 됐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복이 내려가지 못하게 된 겁니다. 그것은 해결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롬5:10). 십자가 대속으로 죄를 사해주심으로 이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즉 소통 관계가 가능해졌습니다. 축복의 보고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 ”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긴밀한 신뢰 관계가 유지되어 하나님에게서 복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본 관계가 형성되었어도 지속적으로 원활한 소통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하늘 보고의 문이 닫힐 수 있습니다. 순종함으로 그 관계를 잘 유지해야 됩니다.
히브리어로 복을 나타내는 단어가 ‘브라카’인데 이 말의 어원이 흥미롭습니다. 동사 ‘바라크’에서 파생됐습니다. ‘바라크’는 ‘하나님께 복을 빌다’라는 뜻인데 본래의 뜻은 ‘무릎을 꿇다’입니다. 그러니까 복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도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우리가 계명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과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믿음은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약2:26). 그리고 이렇게 증거합니다.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믿음이 있다고 말은 해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그게 진짜 믿음이요 그 결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약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순종함으로 복을 받습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바가 바로 이겁니다.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삼가 듣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듣고 또 듣다’라는 뜻입니다. 경청함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대로 순종하면 세상 사람들과 비교되지 않는 놀라운 복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2절에서도 재차 강조합니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all these blessings shall come on thee, and overtake thee-KJV) ‘청종’(聽從)은 ‘들을 청’, ‘따를 종’입니다. 경청(listening)과 순종(obeying)을 포함합니다. 이렇게 하면 복이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여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르리니’는 영어성경(KJV)에 ‘overtake’(따라잡다, 따라붙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복이 따라붙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은 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복이 따라붙는 사람’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자석에 자력이 강하게 생기면 쇠붙이들이 척척 달라붙습니다. 그와 같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인생에 축복의 자력을 얻게 되어 복이 다가와서 달라붙게 됩니다.
13절~14절 보면 모세가 거듭거듭 순종을 강조합니다. 신28:13(하)~14 “13 …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이와 같이 순종할 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3절 이하에 구체적인 목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풀세트’(full set)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whenever, wherever, whatever) 복을 받게 됩니다. 여기 열거된 모든 복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풍요의 복, 명예의 복, 그리고 안전의 복입니다. 이 세 가지면 인생을 사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천국 영생과 더불어 이 모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하늘 보고의 문이 열어야 되는데 순종이 그 열쇠라는 것입니다. 흔히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나 마나입니다.
그런데 28장을 읽으면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흔히 ‘축복 장’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저주의 메시지도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축복과 저주의 장’이라고 하는 게 정확합니다. 축복의 메시지(신28:1~14)에 비해 저주의 메시지(신28:15~68)가 거의 4배나 됩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잔소리’입니다. 우리도 그렇죠.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 되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 하고 또 하는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나니까 말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신28:15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저주가 따라붙는다(overtake)는 것입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하죠.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저주가 따라붙기 시작하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계속 일이 꼬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을 받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노력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경험도 많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순종하죠.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만선이 됩니다.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죠. 나병으로 절망하던 그가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에 갑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던집니다. 버럭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람 나라의 2인자를 박대한다 이거죠. 다행히 신하들의 만류로 마음을 고쳐먹고 순종합니다.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가 중간에 순간순간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을까요?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며 순종했을 때 치유의 이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자 토머스 왓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보다는 우리의 특권이다.” 딱 맞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해라!”, “밥 먹어라!”고 하는 말에 따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함으로, 예배 시간에는 설교를 경청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꼭 순종해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복의 관리 : 축복의 선순환, 축복의 계승
그리고 복을 받으면 또 관리를 잘 해야 됩니다. 잘못하면 복이 줄줄 새어버립니다.
복을 잘 관리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신28: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cf. 출19:5~6, 벧전2:9) 이스라엘을 성민으로 삼는 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들이 거룩한 백성으로 복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그 복을 전달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신약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12절(하)을 보면 꾸어준다는 말이 나옵니다. 신28:12(하) “ …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꾸어준다는 것은 복을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우선 잘 누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즐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 혼자 누리고 즐기는 데서 그치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의 저수지’로 부르신 게 아닙니다. ‘축복의 강물’ 즉 ‘축복의 통로’로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신 말씀에도 나와 있습니다(창12:2~3). 축복은 특권이면서 동시에 부담이요 책임입니다. 우리는 먼저 복을 받은 사람으로 그 복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우리는 ‘축복의 저수지’가 아닙니다. 저수지는 고여 있다가 썩을 수도 있습니다. 강물은 맑은 상태로 흐르고 넘칩니다. 우리는 반드시 ‘축복의 강물’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내가 복을 나누면 하나님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이런 원리를 가리켜 ‘축복의 선순환(善循環)’이라 부릅니다.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부자 기업가였고 자선 사업가였습니다. 수 천 개의 교회, 도서관, 학교 등을 건립했고 카네기 홀도 건립했습니다. 그의 말년에 기자가 물었습니다. “회장님! 최고의 부자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바구니에 철철 넘치게 채우세요. 그러면 성공하는 것 식은 죽 먹기가 될 거요!” 성경적인 원리 그대로입니다.
작년에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솔라그라시아교회를 헌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 에릭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국교회와 후원 연결이 되면 목회자들과 다른 교회들을 먼저 챙겼습니다. 그러다가 후원이 끊기면 자기 몫은 없어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큰 교회당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부산참사랑교회에서 교회당 거축 후원을 약속했는데 애초 계획보다 큰 교회당을 짓게 된 겁니다. 예산이 많이 초과되어 난감한 상황이 됐는데 선교사님을 통해 그 사정을 듣고 우리교회에 헌금하신 분이 있어서 추가 후원이 가능해졌습니다. 결국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짓게 된 겁니다. 다른 교회에 계속 양보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장 큰 교회당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그리고 복을 관리하는 또 하나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복을 잘 계승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내가 당대에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그 다음에 자동으로 대대로 복을 받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에 말씀 순종의 신앙을 잘 가르쳐 전수함으로 복을 계승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교육을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자주 강조하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조금 주는 것이고, 공부시켜주는 것은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을 전수해 주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말씀 순종의 신앙만 확실하면 하나님이 직접 책임져 주시고 자손에게 복 주실 테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새해에 복을 많이 받고 싶으십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뜻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을 받을 때마다 누리시고 또 나누십시오. 그럴 때 복이 따라붙는 사람이 되고 축복의 선순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자손에게 신앙을 잘 가르침으로 그들도 계속 축복의 선순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십시오. 그래서 복을 따라가도 번번이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감으로 ‘복이 따라붙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