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그때 무얼 하고 계셨을까? (행 7:54~8:3) 홍문수 목사

여러분, 혹시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우를 당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뜻밖의 고난을 당하는 경우 말입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이라면 차라리 낫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매를 맞는다고 생각하고 달게 받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 내가 회개하면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고난의 이유를 잘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 뜻밖의 고난이 닥쳐오는 겁니다. 그러면 정말 당황스럽고 억울합니다. 신앙에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계신거야? 안 계신거야?” “하나님이 계시다면 도대체 무얼 하고 계셨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냔 말이야!” 이런 의문들이 생깁니다. 그럴 때 조심해야 됩니다. 만일 신앙의 회의에 말려들면 훨씬 더 큰 고난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신을 차리고 신앙을 다잡으면 역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가장 큰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극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고난의 대명사’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는 동방의 의인이었고 거부였습니다. 슬하에 7남 3녀를 두었고 일하는 종들도 많이 거느렸습니다. 무엇으로 보나 다복한 사람이요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10명의 자녀를 몽땅 잃고 전 재산도 잃게 됩니다. 게다가 몸에 병까지 얻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고난 자체보다 힘든 것은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는 겁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대단한 신앙인이라도 회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욥의 아내가 그랬습니다. 극한 고난 가운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 욥을 보고 뭐라고 바가지를 긁었나요? 욥2:8~9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소리가 나와? 차라리 하나님 욕이나 하고 죽어! 악다구니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욥의 아내가 너무 했나요? 어쩌면 당연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쯤 되면 누구나 돌아버릴 지경이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다고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손해만 봅니다. 이해는 가지만 그렇게 반응하면 안 됩니다. 자기만 손해입니다. 이럴 때 신앙의 진면목이 나오는 법입니다.

 

욥은 어떻습니까? 목석이 아닌 이상 그 역시 돌아버릴 지경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허용한 것이기에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킵니다. 욥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그는 결단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고 더 성숙한 신앙으로 굳게 섭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갑절로 축복하십니다. 1장에 기록된 재산목록과 42장에 기록된 재산목록을 비교하면 정확히 2배입니다. 자녀는 10명을 주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간 자녀까지 합치면 20명이니까 자녀도 2배로 축복하셨습니다. 아내만 2배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건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욥이 그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2배의 축복을 놓쳤을 것이고 성경에 기록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설사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께 무슨 뜻이 있겠지,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이라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이지만 하나님에겐 우리가 모르는 생각과 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천양지차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혹시라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어찌하든 믿음을 지키고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는 스데반의 순교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회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의 순교는 정말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일꾼이었습니다. 행6:8은 그를 신앙과 활약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가운데 많은 기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 그가 복음을 전하다 공회에 체포되어 문초를 당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공회는 일종의 국회로 공회의원들이 대단했습니다. 그들 앞에 불려갔으니 인간적으로 두려울 법한데 그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행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가 얼마나 담대하고 침착합니까! 얼굴이 천사 같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귀한 인물이 죽임을 당하다니! 이런 일꾼은 이 세상에 오래오래 남아 있어야 교회에도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어이가 없고 황당합니다. 당연히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주님은 그때 무얼 하고 계셨을까?

 

[1] 스데반의 순교 : 주님은 그때 무얼 하고 계셨을까?

 

‘주님’(Lord)이란 호칭이 무슨 뜻입니까? 절대주권자라는 뜻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예수님, 전지전능하신 성령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란 말 속에 모든 게 들어 있습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뜻인데 이게 뭡니까? 그렇게 훌륭하고 귀한 스데반이 죽어 가는데도 주님은 무얼 하고 계신지 공회의 광란을 막지 못하고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두셨냐 말입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보면 주님이 스데반에게 무관심했던 게 아니고 방치한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그를 보고 계셨고 그와 함께해 주셨습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런데 그때는 서 계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스데반을 계속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셨다는 겁니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있을 때 대개 누가 일어납니까? 아랫사람이 일어나죠. 윗사람이 일어나는 경우는 특별할 때입니다. 언제인가요? 놀라울 때나 반가울 때입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에 관해 증거할 때, 그리고 공회에 모인 유대인들이 이를 갈며 저주할 때, 곧 돌멩이가 날아오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일어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그를 계속 지켜보고 계시다가 감동을 받으시고 일어섰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 ”라는 표현은 성령을 통해 그와 함께해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스데반을 보고 계셨고, 성령으로 그와 함께하셨고, 또한 그를 돕고 계셨습니다.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또 천사처럼 거룩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스데반이 죽게 둔 것은 너무 한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주님은 그의 순교를 통해 더 큰 일을 하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실패가 아니라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행8:1을 보십시오.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 순교 직후 복음이 확산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행1:8)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는데 겨우 예루살렘 안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흩으셔서 지사명령을 수행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특별히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있던 핍박자 사울이 변화됩니다. 그는 겉으로 볼 때 살기등등했고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시했습니다. 더욱 더 악랄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보고 뒤집어집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이미 스데반을 통해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이미 스데반의 순교 모습을 보면서 영혼 깊은 곳에서 분명히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어떻게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천사처럼 죽어갈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분명 천국에 들어가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서 완전히 변화를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스데반의 순교가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셈입니다. 그래서 고대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회는 스데반의 기도 덕분에 사도 바울을 얻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로, 아시아 각 지역으로, 그리고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면서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됩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이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천국으로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일찍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 한 알이 땅속에 심겨지면 죽어서 없어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너무 힘든 고난에 처할 때 주님은 도대체 무얼 하고 계실까 하며 답답해 하지만 주님은 분명히 섭리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고 계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칠 때 :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

 

그렇다면 혹시 우리에게 이해하지 못할 고난이 닥쳐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라 :

 

첫째,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데반은 공회에 끌려가서 사방팔방 원수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숨이 막힐 정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하나님 보좌가 보였습니다. 행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주님을 보고 외칩니다.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이 보노라!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아마 두려운 마음이 물러가고 새 힘이 넘쳤을 겁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눈앞의 현실만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계시니 안 계시니 하면, 하나님이 무얼 하고 계신가 하며 원망하면 절망 가운데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힘이 들겠지만 이겨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영적인 싸움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살고 암담한 현실만 바라보면 죽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시선 집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혹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해 있습니까? 그래도 한눈팔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심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흔들림 없이 믿음을 꼭 지킴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믿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라 :

 

둘째로, 믿음으로 주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길이 쫙 열립니다. 그러면 주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이 그랬습니다. 행7:59(상)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 ” 사방에서 돌이 날아왔지만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행7:60(상)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 ” 아마 돌을 맞고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힘을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숨지기 전까지 기도하지 못할 때는 없습니다. 스데반처럼 어떤 경우에도 숨지기 전이라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도와주실 물로 믿습니다.

 

다니엘도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년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고난 가운데 기도로 승리하고 또 승리했습니다. 메대의 다리오 왕 시절 세 명의 총리 중 하나가 됐는데 나중에는 왕이 그를 총애해서 단독 총리로 세우려 합니다. 간신들이 이를 저지하고자 다니엘 뒷조사를 합니다. 탈탈 털어도 허물이 나오지 않자 그들은 다급한 나머지 왕을 속여서 이상한 법을 만들어 공포합니다.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만일 이를 어기면 왕에게 불충한 죄를 물러 사자 굴에 처넣어 처형하는 법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딱 걸렸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 어김없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거든요. 그는 타협하기 싫었습니다. 현실을 보면 원수들이 사방에서 노리고 있지만 그는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흔들리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담대히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를 노리던 원수들의 고발로 사자 굴에 떨어집니다. 그때 인간적으로 보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주님은 무얼 하고 계십니까? 믿음의 절개를 지키고 있으니까 주님이 보호해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오히려 사자 굴에 들어간 후에 도와주는 게 낫습니다. 천사를 보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해 주실 뿐 아니라 모든 원수들을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단독 총리가 되어 승승장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우리는 가급적 편한 쪽을 소원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간혹 우리가 고난에 처하더라도 놀라운 일을 계획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체험을 주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혹자는 “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 하나님이 나를 놀라게 하지 않으시면 좋지”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입니다. 아무 일 없이 살려면 천국에 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기도함으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③ 주님을 의지함으로 인내하라 :

 

셋째, 주님을 의지함으로 인내해야 됩니다. 슬쩍 한번 주님을 바라보고, 잠시 기도하면 척척 모든 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실은 내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고난이 닥쳐와도 견뎌내면서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시간이 짧으면 좋겠지만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섭리대로 되는 것이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인내했습니다.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지어 원수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고 운명합니다. 비록 온 몸에 상처가 나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지만 천사의 모습처럼, 마치 잠드는 것처럼 평안히 숨을 거둡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 모습을 보고 사울이 충격을 받고 속으로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그 모습이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셈입니다.

성경은 누누이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포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인내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여러분, 혹시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Raoul Sosa, 1939~ )를 아십니까? 오래 됐지만 내한 공연을 한 적도 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인데 그는 왼손 하나로 연주합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황금의 왼손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아르헨티나 태생인데 캐나다에 귀화해서 몬트리올 음악원 교수를 지낸 분입니다. 5세에 피아노 시작했는데 10대 초반에 이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 그리고 실내악 곡들을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20대에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오른 손이 마비됩니다. 피아니스트로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왼손 하나로 연주하는 독특한 기법을 연마합니다. 그리고 왼손 하나로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을 직접 작곡합니다. 그 결과 오히려 특색 있는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됐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사고가 났고 오른 손이 마비됐다고 원망이나 하고 좌절했다면 그의 음악 인생은 그대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는 당당히 재기합니다. 아니, 더욱 놀라운 모습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오묘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혹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오면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로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④ 주님이 계신 천국을 소망하라 :

 

넷째, 주님이 계신 천국을 소망해야 됩니다. 스데반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천국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십시오. 행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그는 천국에서 두 팔 벌리고 영접해 주시는 주님을 향해 외칩니다. “주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이 그를 품에 안아 주시고 모든 눈물을 씻어주셨을 겁니다. 계21:4에 기록된 천국의 광경 그대로 말입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리고 주님은 약속대로 스데반에게 천국의 면류관을 주셨을 겁니다.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cf. 딤후4:7~8) 흥미로운 것은 스데반의 이름의 뜻입니다. 헬라어로 ‘스테파노스’(Στεφανος)인데 그 뜻이 ‘면류관’(crown)입니다. 그는 이름대로 천국의 이름대로 면류관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스데반은 아무리 장렬하게 죽었어도 요절한 인생에 불과할 것입니다. 분명히 천국이 있기에 그는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스데반의 경우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주님은 무얼 하고 계실까?”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때 꼭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갖고 섭리하십니다. 마치 조각가가 이미 마음속에 조각상의 완성품을 품고서 정으로 돌을 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의지함으로 인내하십시오. 그리고 천국을 소망하십시오. 지금은 그 고난이 왜, 그리고 어떻게 왔는지 잘 모르지만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아무리 늦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아무쪼록 어떤 고난이 닥쳐도 주님을 굳게 의지함으로 당당히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