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갈 중에 있는 영혼 (암 8:11~14) 홍문수 목사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이 설움 저 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다.” 인간에게 여러 가지 고통이 있지만 그 중에 굶주리는 고통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목마른 고통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의 일입니다. 고된 훈련 중에 얼마나 목이 마른지 부대원들이 수통의 물을 다 마셔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수통에 물을 절반 남겨두었습니다. 그걸 알고 너도 나도 달려들어 물을 얻어 마시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목마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배고픔이나 목마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있는데, 그것은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 즉 영적인 기갈(飢渴)입니다. 육신의 기갈은 금세 느끼고 해결하려고 하는데 영적인 기갈은 잘 느끼지 못하니까 오히려 더 심각합니다. 왠지 모르는 가운데 갈등하고 방황하다가 결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육신의 질병 중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썩어 들어가는 게 가장 심각합니다. 자신도 잘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존재라는 말은 라틴어로 ‘homo spiritus’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창조 과정을 보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보십시오. 창세기 1장을 보면 우주만물 창조 기록이 나옵니다.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인간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2:7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dust)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a living being)” 이 구절을 갖고 인간 존재의 공식을 만들면 이렇습니다. “인간 = 흙(dust) + 생기(breath) = 육체(flesh) + 영혼(spirit) = 생령(living soul)” 인간은 흙으로 빚어져 그 코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했고 그 결과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영혼이 연합된 상태로 살다가 육체의 수명을 다하면 죽게 되는데,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12:7 “흙(the dust)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the spirit)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게 바로 육체의 죽음입니다. 분리된 육체를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내세로 들어갑니다. 영혼은 불멸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도 중요하지만 영혼이 정말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영혼의 중요성을 알고 그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생이 행복할 수 있고 험한 세상에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풍요로워야지 빈곤해지면 곤란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영적 사망’이고, 그 다음으로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는 ‘영적 빈곤’입니다. 그게 바로 ‘영혼의 기갈’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깨달아 영적 기갈을 극복하고 영적 풍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내 행복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B.C. 8세기 북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남 유다 왕국, 그리고 북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런데 북 왕국은 쿠데타로 세워진 나라로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남쪽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남 유다는 다윗 왕가를 이었고 제사장과 성전을 갖고 있었지만 북 이스라엘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약점을 만회한답시고 백성들을 미혹하여 금송아지를 섬기게 합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제쳐놓고 바알이나 아세라 같은 우상 신을 숭배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이쯤 되니까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세워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돌이키질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아모스 선지자를 세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영영 돌이키질 않았습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육신적으로 보면 멀쩡하게 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기(B.C. 793~753)였는데 솔로몬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영 돌이키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심판하십니다. 결국 앗수르 제국에 의해 B.C. 722년 멸망하고 맙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북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 : 영적인 기갈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잘못한다고 당장 심판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고 오래 기다려주십니다. 북 이스라엘도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니까 아모스를 통해 최후의 통첩 같은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심판 날을 예고하며 그때가 되면 영적 기갈이 있을 거라고 증거한 말씀입니다. 영적 기갈! 이게 바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최악의 저주입니다. 심판 날에 멸망하는 것은 영적 기갈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앗수르 제국의 군사들에 의해 멸망하지만 영적으로 따져 보면 영적 기갈이 근본 문제입니다. 인생 만사는 영적인 데서 기인합니다. 영적으로 잘못되면서 결국은 삶의 현실에서 비극적인 일들이 나타납니다. 이런 공식대로 됩니다. “영적 타락 – 도덕적 타락 – 현실의 실패 – 결국은 멸망”

 

아모스 시대가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면서 도덕적으로도 몹시 타락했습니다. 정의와 공평이 무너졌습니다. 상층부에 있는 자들은 평민과 빈자를 억압하고 수탈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셨던 하나님이 최후통첩을 하셨는데 그가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 날’은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때가 되면 육신의 기갈이 아니라 영적인 기갈을 내리시겠다는 겁니다. 끝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는 이런 저주가 임합니다. 은혜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영적인 기갈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지 12절~13절을 보시죠. 암8:12~13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살 텐데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는 가장 왕성한 사람들인데도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말씀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은혜의 통로가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무서운 겁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은혜를 받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기다려주십니다. 고난을 통해서나 다른 사람들 통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은혜의 통로가 막혀 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정말 큰일입니다. 나중에 다급해서져서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또 우상을 찾아다니고 세상에 호소해봅니다. 그래봤자 헛일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멸망하게 되니까 그제야 하나님을 찾고 난리법석을 부려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암8: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그곳에는 우상이 득실거렸습니다. ‘단’은 북단의 도시이고 ‘브엘세바’는 남단의 도시인데 거기에 금송아지 제단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되면 아무리 우상 신을 불러 봐도 소용이 없단 겁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때 그랬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난리를 피웠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발악과 같은 거짓 기도를 듣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사무엘상 28장에 나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핍박하고 미쳐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임하는 등 그의 상태가 점점 악화됩니다. 그러던 중 블레셋이 침공해오려고 합니다. 그 심각성을 감지한 사울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거역했던 그에게 이미 은혜의 문이 닫혀버렸던 겁니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왕의 체면이 있으니까 변장을 하고 갔지만 들통이 납니다. 아무런 효험도 없이 전사할 것이란 예언만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 정말 그 전쟁에서 비참하게 전사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과 짝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인생의 비극적인 말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은혜 베풀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면 될 일도 되고 안 될 일도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은혜의 문을 닫으시면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도 안 됩니다. 그런 현상을 체험했던 솔로몬이 증거합니다. 시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후일 학개 선지자도 증거했습니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허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2] 말씀을 통한 영적 풍요 : 치유, 회복, 형통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육신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양식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cf. 신8:3)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영적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치유와 회복, 그리고 형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119:103,127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꿀맛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순금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게 바로 말씀을 통해 누리는 영적 풍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 좋은데 이런 영적 리듬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흔들리고 영육 간에 질병과 고통으로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속히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모스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호세아가 이렇게 외칩니다. 호6:1~2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어느 집사님 부친의 이야기입니다. 그 어르신은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연세가 드시면서 그만 치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믿는 성도들도 얼마든지 치매에 걸릴 수 있습니다. 미리 예방하고 혹시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초기에 치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분은 당황스러웠지만 약도 다 끊고 기도하면서 성경 쓰기를 하면서 이겨내셨습니다. 금년에 88세이신데 아무 건강하게 지내십니다. 모임에서 회계도 맡아보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이와 같은 치유의 역사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양영자 탁구 선수를 아시죠. 88 올림픽 때 복식으로 금메달을 딴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는 대한체육회 꿈나무탁구 감독입니다. 그녀는 WEC국제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15년간 몽골 선교에 매진하다 귀국 후 화성에 <양영자탁구클럽>을 개설하고 탁구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있습니다. 탁구 인생의 정점에 올라갔을 때 갑작스런 은퇴와 어머니의 소천 등이 겹치면서 심적인 충격으로 조울증에 걸려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체중이 10kg 이상 늘었고 거식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시달렸습니다. 모태신앙인으로 선수 시절 질병과 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기도로 당당히 승리했던 그녀였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주변 성도들의 도움과 말씀 묵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요양 차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좋은 사람과 만남으로 도움을 받다가 그와 결혼하면서 완전히 회복됩니다.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에 다녔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없었는데 하나님을 1대 1로 깊이 만나게 된 겁니다. 그녀는 몽골 선교를 마치고 귀국해서 탁구선교사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전부!

 

여러분, 인간은 영혼을 갖고 있고 그 영혼은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엄마를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듯이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기승전 결국은 엄마!”입니다. 우리 영혼도 “기승전 결국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살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혹시라도 인생을 살아가다가 답답한 문제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눈 녹듯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회복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평소에 말씀을 통해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라도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순하게 넘어갑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과 악한 세상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그러면 형통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형통은 아무런 고난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이 있어도 극복하고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가뭄이 와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물을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청청하고 철따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요삼1:2도 동일한 원리를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는 것은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영적 풍요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범사가 잘 되고 육신도 건강해집니다. 이를 가리켜 ‘3통(通)의 원리’라고 불러봅니다. 신통(神通)하면 인통(人通)하고, 인통(人通)하면 물통(物通)한다! 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인간관계가 좋아지면 물질 관계도 좋아지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사형통(萬事亨通)을 소원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먼저 영적인 문제부터 풀어야 되는데 이게 단 돼서 그런 겁니다. 먼저 영적으로 잘 풀려야 모든 게 풀리는 법입니다. 즉 만사영통(萬事靈通)이 되어야 만사형통(萬事亨通)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미국의 농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 1864~1943)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별명은 ‘땅콩 박사’입니다. 본래 노예 출신으로 그 당시 미국의 남부에는 노예제도로 흑인 노예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생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신실한 주인의 배려로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리고 극적으로 농과대학에 진학합니다. 당시 흑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목화 재배뿐이었습니다. 그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흑인들을 보면서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땅콩을 연구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품종 개량을 통해 대풍이 됐는데, 이번에는 생산량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습니다. 사방에서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피넛버터’를 만들게 됩니다. 지금은 평범한 것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땅콩을 재로로 비누, 샴푸, 페인트 등 숱한 발명품을 만들어냈는데 무려 300개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기도와 말씀 묵상입니다. 이른 아침 숲 속을 거닐며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다 보면 그때 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말씀을 통해 영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의 형통입니다.

 

여러분, 이 가을에 영혼을 위해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영혼의 기갈입니다! 우리 영혼이 풍요로워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형통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홍수 때 식수난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 지식과 정보의 홍수 시대지만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사실입니다. 무수한 책들이 있고 사이버 공간에 성경 자료도 차고 넘치지만 오히려 영혼을 죽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단 사설도 많고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무공해 식품을 찾듯이 좋은 말씀을 선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직접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10월 마지막 주간에 준비된 심령부흥사경회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집중해서 말씀을 들을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혼의 풍요를 누림으로 늘 행복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형통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